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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181화 (181/250)
  • [제58장] 구중천심공 3

    창궁서생과의 대화는 밤새도록 이루어졌다.

    백자안은 지난 일 년 간의 무림 상황이 궁금했고, 창궁서생은 어느 무림인보다 정보에 밝았다.

    창궁서생 역시 오랜만에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난 듯 자신이 아는 내용을 아끼지 않았다.

    백자안이 관심 있게 들은 내용은 바로 낙양에서 천축무맹과 서장무맹이 공동으로 영웅대회를 연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니까 한 달 후 낙양 천축무맹 총단에서 대회를 열어 최종대리자를 뽑는다는 말씀입니까?”

    “그러하네. 서장무맹주 불사대불과 천축무맹주 우주존자(宇宙尊者) 두 사람이 최종 승자를 겨루는 셈이지. 서장무맹과 천축무맹의 모든 무사가 모이는 자리라고 하니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룰 것이네.”

    “정파 무림이 멸망했는데 대회 구경을 하러 갈 사람이 있겠습니까?”

    “무슨 소리인가? 흑도인들이 있지 않은가? 중도를 표방하는 무림인들도 많고 말이야. 게다가 이번에는 최종대리자를 뽑는 대회라 의외로 무림인들이 많이 모일 것 같네.”

    “창궁서생께서도 가보실 생각입니까?”

    “그러하네. 그동안 이곳 정성촌에서 은신 아닌 은신을 했지만, 대체 상황이 어떻게 될지 알고 싶어 가볼 생각이네. 물론 놈들의 축제에 겉으로는 맞장구를 쳐줘야겠지.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네.”

    “그게 뭡니까?”

    “어쩌면 이번 영웅대회 때 그야말로 최후의 정파 영웅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고 있네. 서장무맹과 천축무맹이 모두 모이는 곳이니 위험이 따르겠지만, 반대로 운만 따른다면 놈들에게 심대한 타격도 줄 수 있을 것이네.”

    “일 년 전 영웅맹에 가입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으시군요.”

    “하하하! 그걸 어떻게 알았나? 사람은 후회가 없어야 하는데, 장사성 함락 당시 나는 너무나 겁이 많았네. 놈들과 싸울 생각도 하지 않고 곧바로 도망쳐 나왔으니 말일세. 하지만 이제는 다르네. 설사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내 할 일을 하고 싶네.”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능력이 부족하지만, 저 또한 돕고 싶군요. 가능하겠습니까?”

    “하하하. 물론이네. 시원시원해서 좋군. 사실 이 말까지는 하지 않으려 했는데, 장사성 안에서도 아직 놈들에게 저항하는 세력이 있네.”

    “성안에 말입니까?”

    “그러하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와 함께 장사성으로 가지 않겠나?”

    “저는 좋습니다. 어차피 장사성에 가봐야 했으니까요. 한데 저항 세력이라 하심은?”

    “나도 소문만 들었네. 그야말로 최후의 저항세력이 다시 나타난 셈인데, 아마도 그들 역시 이번 영웅대회에 참여할 것 같네. 따라서 이번 기회에 그들의 모임에 꼭 가입하고자 하네. 자네 역시 나를 따라가겠나?”

    “저항 모임이라 하면 이전의 복사천회 같은 세력입니까?”

    “그렇다고 봐야겠지.”

    “모임의 대표는 대단한 고수이겠군요.”

    “대단한 고수이긴 하지. 하지만 어린 소녀라 한계가 있을 것이네.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는 사실 그녀 때문이 아니라 사부 때문인지.”

    “사부라 하심은?”

    “만상서생, 즉 영웅맹주가 바로 그녀의 사부라고 하네. 그녀는 아직도 만상서생의 복귀를 굳게 믿고 있다고 하더군. 물론 그 소속 무림인 수가 많은 것은 아니네. 그래도 대략 천여 명은 될 것이네. 서장무맹과 천축무맹 무사가 모두 삼백만 명이 넘는 것을 생각해보면 터무니없이 적은 병력이라 할 수 있지.”

    “아!”

    백자안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자신의 제자라면 바로 방일화이기 때문이었다.

    ‘일화가 무사했었구나. 잘된 일이다. 꼭 만나봐야겠다. 내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백자안이 미소를 지었다.

    창궁서생이 의아해했다.

    “왜 그러는가? 자네도 이미 알고 있었는가?”

    “네. 소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영웅맹주에게 여제자 한 명이 있다는 것을. 적진이나 다를 곳이 없는 장사성 안에서 그렇게 저항 세력을 키웠다는 자체가 대단하군요.”

    백자인이 눈을 빛냈다.

    “언제 출발하실 겁니까?”

    “아침 먹고 바로 출발하려 하네. 여기서 장사성까지는 하루 거리니 빨리 가면 밤에 도착할 수 있을 걸세.”

    “저항세력과 접선할 방법을 알고 계십니까?”

    “모르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직접 부딪치면 답이 나오지 않겠나?”

    “네. 맞는 말씀입니다.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는 일단 행동한 후 평가해도 늦지 않지요.”

    “하하하. 내 생각과 같군. 하지만 너무 걱정은 말게. 장사성 안에 내가 알고 있는 정보상인들이 제법 있으니, 어쩌면 알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네.”

    “그러면 더욱 좋지요. 그럼 객방에 들어가 조금 눈을 붙인 후 식사를 하고 바로 떠나도록 하지요.”

    “좋네.”

    * * *

    장사성.

    변두리에 위치한 한 장원 안에 아침부터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대연무장 안에 모여 있는 그들은 대략 천여 명 정도였다.

    무슨 일인지 대부분 비장한 표정이었다.

    “회주께서 오십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며 안채 쪽에서 한 소녀가 걸어 나왔다.

    한데 그녀는 바로 방일화가 아닌가.

    “복장사회(復長沙會) 회주를 맡고 있는 방일화입니다.”

    방일화가 군웅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짝짝짝.

    박수가 터져 나왔다.

    외부에 소음이 새어나가는 것을 의식하는 듯 대표 몇몇이 조용하게 치는 손뼉이었다.

    백의노인 한 명이 말했다.

    “회주님. 더는 못 기다립니다. 영웅맹주이신 만상서생께서는 소문대로 황궁마신과 동귀어진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낙양에서 열리는 놈들의 영웅대회까지 남은 시간은 한 달. 대회 전까지 우리 복장사회 무사들이 궐기하여 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요자(逍遙者)이시군요. 말씀하신 것도 일리가 있으나, 어떤 계획도 사부님께서 돌아오시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에요. 일 년이나 참았으니 좀 더 기다려보도록 하지요. 아직 여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방심은 금물입니다. 놈들이 우리 은신처를 알아내기 전에 선공을 가해야 합니다.”

    “우리 전력으로 가능할까요?”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천축무맹의 많은 무사들이 낙양 총단으로 복귀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천축무맹 무사들은 삼만 명에 불과합니다.”

    “삼만 명이 적은 수인가요?”

    “물론 적은 병력이 아닙니다. 하지만 일단 한번 전투가 벌어지면 숨어 있던 고수들이 나타나 도움을 줄 겁니다. 부디 실기하지 마십시오.”

    소요자가 언성을 조금 높였다.

    방일화가 안색을 굳혔다.

    엉겁결에 회주 자리를 맡았지만, 사실 명목상 자리였다.

    영웅맹주의 제자라는 신분이 아니었다면 절대 회주 자리에 합의 추대되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하루만 더 기다려보겠습니다. 내일 저녁까지 사부님께서 복귀하지 않으시면, 여러분 뜻대로 장사성 탈환을 시도해보도록 하지요.”

    방일화의 말에 군웅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시했다.

    소요자가 말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감사해요. 그럼 오늘 회의는 이 정도로 하지요.”

    방일화가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때였다.

    엄청난 함성과 함께 장원 안으로 천축무맹 무사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적이다!”

    “놈들이다!”

    복장사회 무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침입자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차차차창.

    “으윽!”

    “크윽!”

    복장사회 무사들이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무력에 있어 너무 큰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방일화는 달랐다. 검을 뽑아 미친 듯이 휘두르자, 대여섯 개의 목이 우수수 떨어졌다.

    확실히 지난 일 년간 무서울 정도로 무공이 높아져 있었다.

    반면 다른 복장사회 무사들은 속절없이 죽어 나갔다.

    기습 공격을 가해 온 천축무맹 무사들은 일만여 명.

    수적으로도 절대 열세였다.

    “아! 어찌 이런 일이······.”

    방일화가 죽어 나가는 복장사회 무사들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수십 명의 무사들에게 둘러싸인 그녀 역시 여유가 없었다.

    ‘사부님께서 계셨다면 놈들을 금방 물리칠 수 있었을 텐데······.’

    방일화가 백자안을 떠올리며 아쉬워했다.

    “후후후! 네년이 복장사회주 방일화냐?”

    우두머리로 보이는 금의노인이 방일화에게 다가왔다.

    그러는 순간 북장사회 무사 일쳔 명은 전멸당하고 말았다.

    “아!”

    방일화가 탄식했다.

    어렵게 모은 무사들이었는데 하루 아림에 모두 전사하고 만 것이었다.

    살아남은 사람은 방일화 외에 소요자가 유일했다.

    하지만 그 역시 천축무맹 무사들의 우두머리인 금의노인의 일장에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린 채 즉사하고 말았다.

    이제 남은 사람은 방일화 한 명.

    그녀는 재빨리 결단을 내리고 도주를 시도했다.

    “저년을 잡아라!”

    금의노인의 명에 천축무맹 무사 수천 명이 그녀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 * *

    “헉헉!”

    이름 모를 야산 중턱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사람은 바로 방일화였다.

    그녀의 옷은 완전히 피로 물들어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처치한 적만 수백 명이었다.

    대부분 하급무사이긴 하나 그래도 무공이 고강하기로 소문난 천축무맹 무사들이었다.

    “휴우! 더는 무리다.”

    방일화가 주위를 두리번거린 후 숲속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회복운공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지금 경계하고 있는 것은 공격을 가해온 천축무맹 무사들의 우두머리인 금의노인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수하들이 장로로 부르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이곳 장사성에 주둔하고 있는 천축무맹 무사들을 다스리는 지휘부 인물일 것이다.’

    방일화가 바위 옆에서 가부좌를 한 후 곧바로 회복운공에 들어갔다.

    원래는 주위에 호법을 세워야 하나 긴급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그녀의 몸 상태는 탈진 직전이었다.

    이때 조식을 하지 않으면 자칫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었다.

    “아! 또 이런 신세가 되다니!”

    방일화가 탄식했다.

    일 년 전 장사성 싸움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아 모처에 은신해 있던 것이 기억났다.

    이후 백자안을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다들 영웅맹주가 황궁마신과 함께 동귀어진했다고 했으나 그녀는 믿지 않았다.

    물론 그 와중에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 그는 절정고수 반열에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아직 여러모로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다.

    ‘힘만 있었다면 복장사회 무사들이 몰살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모두가 내 잘못이다. 사부님께서 어서 돌아오셔서 지도를 해주셔야 할 텐데······ 그때까지 힘을 내자.’

    그녀가 눈을 빛내며 본격적인 운공에 들어갔다.

    이제 최소 일각 정도는 운공을 풀지 않고 일주천을 해야 했다.

    그 말은 그 시간 동안 절대 적의 공격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려한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금의노인이 갑자기 나타나 혈도를 찍고 만 것이다.

    쿵.

    쓰러진 방일화가 금의노인을 쳐다봤다.

    금의노인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계집! 네년이 내 수하를 그렇게 많이 죽이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네년의 옷을 모두 벗긴 후 사지를 잘라주마.”

    “아!”

    방일화가 절망 어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타개책이 없었다.

    ‘아! 이럴 때 사부님이 계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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