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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178화 (178/250)

[제57장] 중간지대 3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중간지대 숲속을 한참이나 걷고 난 후 백자안이 도착한 곳은 거대한 골짜기였다.

분지형으로 된 그곳은 신비한 안개가 엷게 깔려 있었다.

하지만 정작 백자안의 눈길을 끈 것은 바로 수없이 많은 망부석이었다.

사람 모양을 한 그 돌들은 그야말로 누군가 일부러 조각한 듯 생생했다.

그 개수는 대충 봐도 수백만 개가 넘어 보였다.

“이런 것들이 있을 줄이야.”

백자안이 매우 놀라며 망부석들 사이를 거닐었다.

망부석의 모습은 가지각색이었다.

한데 자세히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대부분 병장기를 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무림인들을 본 따 만든 것인가.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이렇게 많은 석상을 만든 그 자체가 경이롭구나.”

백자안이 석상들 하나하나 살펴봤다.

혹시라도 아는 얼굴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순간적이지만 이 석상들이 혹여 무림이나 신선계에서 이곳 중간지대로 넘어온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석상의 얼굴은 그다지 정교하지 못했다.

단지 남녀구별과 노소 구분만 조금 될 뿐 모두 비슷비슷한 이목구비였다.

백자안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하기야 그럴 리가 없지. 나 역시 중간지대로 넘어왔는데 별 탈이 없지 않았던가. 다만 그 회오리바람은 아직도 의문스럽구나. 여기 오면서 정신을 잃어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고, 의문투성이다.’

백자안이 석상들 속에서 빠져나왔다.

그 대신 석상들이 보이는 높은 곳으로 갔다. 마침 끝없이 솟아있는 나무가 계곡 입구 부근에 있었다.

휙.

백자안이 경공을 펼쳐 나무 위로 올라갔다.

“어! 몸 상태가······.”

백여 장 높이의 나뭇가지 위에 올라선 그가 깜짝 놀랐다.

조심스럽게 경공을 펼쳤는데, 몸 상태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다.

분명 황궁마신과 겨룬 후 그의 상태는 매우 좋지 못했다.

삼 할의 내공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였던 것이다.

한데 어떤 기혈이 막히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탁기가 전혀 없다는 것.

그것은 바로 내상이 완벽하게 치유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백자안이 기뻐한 것은 물론이었다.

내상이 회복되려면 다시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중간지대로 들어온 그 자체로 모든 내상이 회복된 것이었다.

‘좋은 징조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곳이 내게 좋은 휴양처인 것 같구나. 하기야 공기부터 다른 것 같다. 아니 나에게만 좋은 환경인가.’

백자안이 미소를 지으며 석상들을 내려다봤다.

예상대로 끝없이 펼쳐져 있는 석상들의 물결이었다.

최소한 이삼백만은 되어 보이는 석상들.

그 정체를 아직 알 수는 없었으나, 백자안은 자신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계속 이곳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백자안은 계곡의 이름을 망부곡(望夫谷)으로 정한 후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 * *

백자안이 다음으로 간 곳은 산봉우리였다.

숲속을 계속 걸어 봐도 기화이초와 나무들 외에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어 전체 풍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휙휙.

경공을 펼쳐 올라가다가 봉우리를 둘러싼 구름을 발견하고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이전에 신선비급을 통해 연마했던 운운술을 펼쳐볼 생각이 든 것이었다.

백자안이 우수를 뻗어 구름을 가리켰다.

순간 구름 한 조각이 천천히 다가와 옆에 멈췄다.

백자안이 구름 위에 두 발을 놓자 마치 바닥에 판자가 깔린 듯 안정감이 느껴졌다.

“성공이다!”

백자안이 매우 기뻐했다.

이 운운술을 펼칠 수 있다는 자체가 그의 내상이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었다.

느낌으로 몸 상태를 아는 것과 이렇게 실제 행동으로 증명되는 것의 차이는 컸다.

‘그렇다면 특수 이동대법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곳 중간지대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내부에서 이동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백자안이 구름을 타고 봉우리 위로 올라가면서 눈을 빛냈다.

하지만 특수 이동대법 시전은 좀 더 미루기로 했다.

아직 내상 회복의 정확한 이유를 모르고 있는 상황. 자칫 무리했다가 다시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었다.

특히 특수 이동대법을 통해 중간지대를 빠져나가려는 것은 그 시도 자체에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었다.

신선계의 수많은 반선들이 이곳 중간지대에 들어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는 말을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서두르지 말자. 그것이 오히려 빠른 길이다.’

백자안이 마음을 느긋하게 했다.

중간지대의 공기는 매우 청량했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내공이 높아지는 느낌이었다.

몸 상태가 좋아지자 마음 역시 한결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봉우리 위에 도착한 백자안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봉우리 위에는 한 채의 초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전에 누가 살고 있었던 집이 틀림없었다.

백자안이 조심스럽게 초가에 다가갔다.

오래되어 먼지가 가득했지만, 혹여 사람이 살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한편 봉우리 위에서 본 중간지대의 전체 모습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다.

봉우리 역시 끝없이 솟아나 있었다.

산맥이 끝없이 이어져 그 전체 크기 역시 신선계와 다름없었다.

물론 백자안은 이 모든 게 실제 공간이 아니라 환상 진법의 작용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법이 너무 거대하면 현실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법.

백자안은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초가 앞에 당도했다.

“계십니까? 아무도 안 계십니까?”

백자안이 내공을 실어 불러보았으나 아무 대답도 없었다.

백자안이 방문을 열었다.

덜컹.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역시 예상대로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백자안은 무형의 기운으로 초가 안팎에 쌓인 먼지를 제거한 후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 있는 물건은 낡은 책상 하나와 그 위에 있는 철상자 이렇게 두 개였다.

백자안의 시선을 빼앗은 것은 바로 철상자였다.

“안에 뭐가 들어있지?”

백자안이 뭔가에 홀린 듯 상자 뚜껑을 열었다.

원래라면 조심했어야 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손을 댄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독 같은 것은 묻어 있지 않았다.

끼이익, 소리와 함께 상자 뚜껑이 열리며 그 안에 있던 것이 드러났다.

“아!”

백자안이 탄성과 함께 상자 안에서 한 권의 비급을 꺼냈다.

한데 얼마 가지 않아 또 한 번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바로 비급 겉장에 적혀 있는 제목 때문이었다.

<무자천서>

“어찌 이런 일이······ 또 한 권의 무자천서란 말인가.”

그랬다.

백자안에게는 두 번째 무자천서였다.

첫 번째는 내공종 안에서 발견한 것으로 지금 그의 몸속에 있었다.

백자안이 급히 무자천서의 내용을 살폈다.

이번 비급 역시 아무런 글자가 적혀 있지 않은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 역시······.”

백자안의 입에서 실망 어린 목소리가 나왔다.

이번 무자천서 역시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포기하게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한 것일까.

백자안이 자신의 몸속에 있던 첫 번째 무자천서를 꺼냈다.

그리고는 두 번째 무자천서와 비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두 비급은 외양까지 똑같았다.

‘분명 두 비급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아니면 한 권은 분실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둔 사본인가.’

백자안 두 비급을 여러 형태로 놓아두고 세밀히 살폈다.

하지만 아무런 특이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어느 순간부터는 어느 것이 첫 번째 비급인지도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어쩔 수가 없구나. 나중에 다시 연구해볼 수밖에······.”

백자안이 잠시 망설이다가 두 비급을 일단 철상자에 넣어두었다.

아직 초가 안팎을 더 조사해봐야 하므로 일단 상자 안에 두고 나중에 이곳을 떠날 때 두 권 모두 몸속에 넣어둘 생각이었다.

그렇게 두 비급을 상자 안에 넣고 뚜껑을 닫으려던 찰나.

뚜껑 안쪽에 글자가 하나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화(火)>

“불이라······ 무슨 뜻일까?”

백자안이 상자 뚜껑을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뚜껑을 거꾸로 놓았는데 글자가 선명했다.

“으음······ 불이란 이 글자는 분명 비급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상자의 재질이 특이하구나. 보통 철 상자가 아니다. 설마······ 비급을 불로 태워야 그 내용이 나타난다는 뜻일까?”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었다.

확실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비급만 불태워버리게 되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었다.

‘그래, 조금만 태워보자. 어차피 백지나 마찬가지이니 약간만 태워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 변화가 없으면 바로 끄면 되니까.’

백자안이 결단을 내린 듯 삼매진화를 일으켜 불꽃을 만들어냈다.

이제 남은 것은 비급을 불 위에 올리는 것이었다.

백자안이 조심스레 비급 한 권을 불 위에 올렸다.

화르르!

“앗!”

백자안이 깜짝 놀랄 정도로 비급에 불이 붙어 순식간에 재가 되어 버렸다.

도중에 끄고 말고 할 시간이 없었다.

백자안이 매우 놀라면서도 재를 뒤져 보았다.

“이건······?”

백자안이 재 속에서 양피지 한 장을 끄집어내었다.

급히 보니 알 수 없는 문자가 가득 적혀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글자였다.

“그래도 백지보다는 낫군.”

백자안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나머지 비급마저 삼매진화로 태웠다.

화르르! 소리와 함께 그 비급 역시 재가 되었다.

그리고 발견한 또 하나의 양피지.

놀랍게도 그 양피지에는 그림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백자안이 급히 보니 그림에는 한 사내가 뒷짐을 지고 절벽 위에 서 있었다.

뒷모습만 그려져 있어 얼굴은 알 수 없었지만, 주위 풍광이 실로 수려했다.

‘어떤 봉우리 위 같은데······ 아! 맞다. 바로 이곳이다.’

백자안이 탄성을 터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림 속의 봉우리와 지금 백자안이 있는 봉우리 모양이 똑같았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초가가 있다는 정도였다.

‘그림이 그려져 있는 비급이 아마도 원래 철상자에 들어가 있었던 것 같구나. 그분은 이 그림을 통해 뭔가 깨달음을 주려 한 것일까.’

백자안이 그림을 다시 봤다.

하지만 묵묵히 허공을 쳐다보고 있는 고독한 사내의 모습일 뿐이었다.

당연히 무공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였다.

다만 한 가지 느낌은 있었다.

바로 그림 속 사내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었다.

왠지 그가 낯설지 않았다.

뒷모습만 봤을 뿐인데 마치 백자안 자신처럼 느껴졌다.

백자안이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 처음의 양피지를 봤다.

전혀 모르는 글자가 빼곡히 적혀 있던 양피지.

자세히 보면 그 양피지 또한 특수한 것이라 불에 타지 않는 재질 같았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괴상한 문자의 내용이었다.

백자안은 직감적으로 그 내용이 자신의 앞으로의 행보에 큰 영향을 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그 글자들을 봤다.

그것은 사실 무모한 시도였다.

모르는 글자를 무턱대고 본다고 그 뜻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일까.

한 번에 모든 내용을 알려는 욕심을 버리고 자신이 그림 속 사내라고 생각했다. 이후 맨 첫 글자 하나에 집중하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마치 글자 표면에 껍질이 있다가 벗겨지듯 그 내용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백자안이 매우 기뻐하며 글자 해독을 계속 시도했다.

그러자 조금씩 그 내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백자안이 잊지 않으려는 듯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천족의 후예에게 천서(天書)를 남긴다. 천서는 천족의 후예만이 연마할 수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릇 하늘의 도는 천계에서 비롯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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