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175화 (175/250)

[제56장] 영웅맹 4

흑천방주가 정체를 숨기고 대회에 참가했다가 시신이 되어서야 밝혀진 것은 적잖은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군웅들 모두 놀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전모는 빠르게 밝혀졌다.

흑천방주가 비밀리에 서장무맹에 가입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군웅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흑천방에 원한이 깊은 자로 지금까지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다.

특히 그의 원수는 바로 흑천방주였다.

오래전 흑천방주가 그의 부모님을 죽였기 때문에 불구대천의 원수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흑천방주가 이번 영웅대회 때 나타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흑천방주 저놈이 서장무맹에 투신한 것은 확실합니다. 이후 서장무맹주에게 절세무공을 배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데 오늘 이렇게 놈들의 간자로 나타나다니. 성주님, 아니 만상서생께 감사합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백자안이 겸양하며 얼굴을 조금 붉혔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제법 기뻤다.

흑천방주를 이번 기회에 제거함으로써 흑천방과의 악연을 끝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죽림거사가 말했다.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으나, 새 맹주를 뽑는 일은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불이승과 만상서생 두 분은 비무대 위로 올라가 주십시오.”

“네.”

백자안이 담담한 표정으로 불이승의 눈빛을 봤다.

물처럼 담담한 기운이 느껴졌다.

“역시 대단한 고수다. 만약 싸움이 벌어지면 그 승패를 예상하기 힘들다.”

백자안이 내공을 끌어올렸다.

불이승 역시 아까와 마찬가지로 아무렇게나 서 있었다.

하지만 은연중 무형의 강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백자안과 불이승의 거리가 삼장 정도로 좁혀지자, 죽림거사가 소리쳤다.

“어서 시작하시오!”

둥둥둥.

북소리와 함께 최후의 싸움이 개시되었다.

꽈아앙.

두 사람 간의 장력이 부딪히자 대회장 전체에 큰 진동이 느껴졌다.

사람들이 급히 보니 어느새 한 사람이 비무대 밑으로 떨어져 있었다.

한데 그는 바로 불이승이 아닌가.

그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몸 상태는 멀쩡했다.

다만 백자안과의 내공 대결에서 조금 밀려 비무대 밑으로 떨어졌을 뿐이었다.

“아미타불. 어찌 이런 일이······ 하지만 빈승이 패배한 것은 확실하니 깨끗이 패배를 승복하겠소이다.”

짝짝짝.

박수가 쏟아졌다.

깨끗하게 승복하는 모습을 군웅들이 높게 평가한 것이었다.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귀하는 불이승이 아니오. 진짜 불이승은 어디에 있소?”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오? 내 비록 패배했으나 대회 규정에 따라 영웅맹의 부맹주가 될 것이오. 만상서생 그대가 이제 맹주가 되었다고 내게 누명을 씌워 쫓아내려는 것이오?”

“진짜 불이승을 죽인 것 같군. 그대는 아마도 무적세가의 대공자였던 독고준일 듯하오. 그렇지 않소?”

백자안의 말에 불이승이 흠칫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구려. 차라리 내가 부맹주 자리를 포기하겠소.”

“도망갈 수 없소.”

백자안이 다시 일장을 날렸다.

불이승이 장력으로 응수했으나 이번에는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으윽!”

불이승이 연신 피를 토했다.

그때였다.

백자안이 빠르게 다가와 그가 얼굴에 쓰고 있던 인피면구를 벗겨냈다.

특수한 재질로 만든 그 인피면구는 천축에서 만든 것으로 얼굴뿐만 아니라 무공까지 숨길 수 있었다.

백자안이 불이승의 무공을 간파할 수 없었던 것도 그 이유였다.

한편 불이승의 본 얼굴이 드러나자 곳곳에서 놀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독고준이다!”

“천축무맹에 투신했다고 하더니!”

놀란 목소리가 점점 분노로 바뀌었다.

특히 독고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강호방랑자 측 무림인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정말 독고준 네놈이었구나. 무림인들을 배신한 것도 모자라 이렇게 또다시 모든 사람을 속이려 하다니!”

죽림거사와 천룡자, 광무대제 세 사람이 일제히 다가와 독고준을 포위했다.

바로 죽일 수도 있었지만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백자안에 의해 내상을 입었다고는 하나 독고준은 최고수 중 한 명인 강호방랑자를 일장에 죽인 자였다.

“네놈이 천축무맹주로부터 제대로 무공을 배웠구나. 하지만 이제 네놈의 운명도 끝났다.”

죽림거사가 들고 있던 지팡이를 휘둘렀다.

쐐애액.

독고준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비록 내상을 입었지만 죽림거사를 비롯한 무림십대고수 세 명을 일장에 죽일 힘이 남아 있었다.

이는 천축무맹주가 직접 내공을 전수해준 덕분이었다. 백자안을 죽일 수 없을 뿐 도주하는 것은 자신이 있었다.

‘네놈들이라도 죽여 내 체면을 세워야겠다. 나는 이미 이전의 내가 아니거늘.’

독고준이 내공을 발산하려는 순간.

그가 움찔했다.

갑자기 단전 부위가 뜨끔해지며 모든 기혈이 막혔기 때문이었다.

독고준이 급히 백자안 쪽을 바라봤다.

자신의 혈도를 막은 암경이 그쪽에서 왔었다.

“빌어먹을!”

독고준이 한탄했다.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욕망을 불태웠으나, 사실 그는 원래부터 악한 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무림의 패자가 되고 싶어 했던 마음이 너무 강했다.

죽음을 앞두고 가장 후회가 되는 일은 천축무맹에 투신하면서 무적세가 고수들을 대거 손수 죽인 일이었다.

그의 투항을 끝까지 반대하던 세가 고수들을 죽여 버린 것이었다.

그 결과 자신을 따르던 세가 무사들을 모두 잃었지만, 천축무맹주의 신임을 얻어 절세무공과 내공을 얻을 수 있었다.

만약 그가 오늘 백자안을 만나지 않았다면 모든 계획이 성공했을 것이었다.

독고준이 회한에 잠길 때.

강호방랑자와 친분이 깊었던 죽림거사의 지팡이가 그의 머리를 타격했다.

퍽!

수박처럼 터져버린 머리.

그것이 바로 독고준의 최후였다.

이제 남은 것은 백자안의 정식 맹주 취임이었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백만 군웅들이 일제히 영웅맹에 가입함과 동시에 예를 표했다.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기쁨보다는 책임감이 앞섰다.

흑천방주, 독고준 등을 상대하면서 절세무공을 보여줬지만, 여전히 내상에서 회복이 덜 된 몸 상태였다.

게다가 서장무맹과 천축무맹의 의도를 아직 정확하게 간파하지 못하고 있었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앞이 보이지 않는 장애물이지만 하나하나 넘다 보면 반드시 그 끝이 있을 것이다.’

백자안이 상황보검을 높이 들고 소리쳤다.

“지금 이 시각부터 우리 영웅맹은 공주님을 따르는 관부 무사들과 힘을 합쳐 이 난국을 타개할 겁니다. 모두 저를 믿고 따라주시겠습니까?”

그가 말을 마친 순간, 상황보검에서 금빛 강기가 기둥 모양으로 솟구쳤다.

실로 장엄한 광경이었다.

와아아아.

짝짝짝.

엄청난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이제 더는 무사들을 잃지 않을 것이다.’

* * *

사흘 후.

영웅맹주가 된 백자안은 취의청에서 작전 회의를 열고 있었다.

무림맹 장사지부였던 이곳은 이제 영웅맹 임시 총단으로 변해 있었다.

임시 총단으로 정한 것은 훗날 낙양 총단을 수복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여러모로 영웅맹은 중원무맹의 후신이라 할 수 있었다.

마교와 동방무맹의 잔존 무사들의 행방을 아직 모르는 지금 그나마 중원무림인들이 백만이나 모였기 때문이었다.

특이한 것은 이들 영웅맹 백만 무사 중에 이전에 백자안과 함께 활동했던 중원무맹 무사들은 거의 없었다.

지난 사흘간 백자안이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가장 중요한 가족 소식도 마찬가지였다.

낙양에서 이곳 장사로 온 무림인도 많았으나, 천축무맹이 낙양 총단을 점령한 이후 풍운장원에 있던 사람들 소식이 모두 끊겼다고 했다.

백자안은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아무 소식이 없는 것 역시 그 밑에는 희망이 깔려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최후의 보루인 장사성이 함락될 위기였다.

“이미 서장무맹 백만 무사와 황군 백만이 장사성 인근에 도착했습니다. 맹주님 명대로 놈들을 저지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습니다. 하지만 곧 성안으로 진입하려 할 텐데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죽림거사의 말이었다.

그를 비롯하여 천룡자, 광무대제 세 명이 맹의 장로가 되었다.

나머지 백인고수들은 모두 호법으로 임명되었다.

지금 영웅맹 지휘 체계는 이들 호법들이 한 명당 만 명 정도의 무사를 거느리는 것을 기본으로 했다.

한편 작전 회의에는 절대황녀와 황룡선생, 담대선생도 참여해 있었다.

참고로 그들이 거느리고 있던 삼십만 병력은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었다.

새롭게 맹의 총순찰이 된 우문호가 말했다.

“죽림거사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제 계획을 말씀해주십시오. 맹주님.”

지척까지 온 적군만 이백만이었다.

반면 영웅맹과 관군의 동맹은 백삼십만 정도.

수적인 면에서 확실한 열세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개개인의 무공 실력 차이였다.

지난 사흘간 영웅맹 백만 무사들의 무공 수준을 파악한 결과 대부분 초보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점은 지휘부 고수들의 실망으로 이어졌다.

거의 적 한 명을 상대할 때 아군 열 명이 붙어야 할 정도였다. 따라서 실제 병력은 백만이 아니라 십만으로 봐야 했다.

그럼 면에서 절대황녀를 따르는 관군들의 무공은 비교적 높은 편이었다.

특히 절대황녀와 황룡선생을 처음부터 따르던 무사들은 정예라 할 수 있었다.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제가 놈들이 오기만을 기다린 것은 지리적 이점 때문이었습니다. 성곽이 있으면 방어하기가 쉬워질 터. 놈들의 지휘부 고수들만 제거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누가 놈들의 지휘부를 제거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럴만한 고수들이 없습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아니 일단 모든 전투는 저 혼자 시작할 겁니다. 지원무사가 필요하면 제가 직접 요청하겠습니다.”

백자안의 말에 좌중이 술렁였다.

우려대로 백자안이 단독으로 출전할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었다.

절대황녀가 말했다.

“맹주께서 이곳 장사성의 성주 임무까지 맡고 있어 고심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무리하다가는 아무리 맹주라도 방심할 수 없을 거예요. 혼자서 싸우는 것 말고 다른 방도가 없나요?”

“지금으로선 마땅한 게 없습니다. 하지만 놈들의 수괴를 제거하면 분명 효과가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 출정하실 겁니까?”

“내일 새벽입니다. 성문 밖 장사벌에서 혼자 놈들을 기다리겠습니다. 제가 신호를 보내면 즉시 무사들을 이끌고 성 밖으로 나와 공격에 가담하면 될 겁니다.”

“하지만 놈들 중에 고수들이 너무 많습니다. 삼의맹주 백자안 대협이 돌아와서 막는다고 해도 우려가 큰데, 하물며 맹주님께서는 아직 대군을 상대한 경험은 적지 않습니까?”

“경험이 많은 편은 압니다. 하지만 경험보다 중요한 것은 실력이지요. 제대로 된 실력만 있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짝짝짝.

백자안의 말에 박수가 쏟아졌다.

영웅대회 이후 백자안은 대들보가 되어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웅맹주이자 장사성주였다.

“저의 모든 것을 걸고 놈들을 막아낼 겁니다. 여러분은 저를 믿고 제 명에 따라주시면 됩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제7권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