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174화 (174/250)
  • [제56장] 영웅맹 3

    둥둥둥!

    “지금부터 영웅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

    무림맹 장사지부 대연무장을 가득 메운 군웅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직접 사회를 맡은 죽림거사가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이 모인 군웅들을 보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참석 인원을 대략 이십만 정도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대회가 개최된 오늘 무려 백만이 넘는 무림인들이 모여든 것이었다.

    서장무맹 백만 무사가 그렇게 멀지 않은 천자산에 포진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같은 병력이라 왠지 마음이 들뜨는 것 같았다.

    “백만 군웅이 모이다니 실로 감개무량합니다. 여러분 모두 오늘 결성될 영웅맹에 가입하기 위해 오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물론입니다.”

    와아아!

    짝짝짝!

    함성과 박수가 다시 쏟아졌다.

    죽림거사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오늘 선출될 맹주님을 중심으로 난국을 헤쳐나갔으면 합니다. 먼저 이번 영웅대회 개최를 준비한 백인고수분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죽림거사가 단상에 앉아 있는 백여 명의 지휘부 고수들을 일일이 소개했다.

    죽림거사 역시 천룡자, 광무대제와 함께 백인고수에 포함되어 있었기에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고수들이 소개될 때마다 엄청난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오래도록 무림에 명성을 떨친 은거고수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우리 중원 무림은 살아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백만 군웅이 모인 것이 그 증거입니다. 삼의맹이 실질적으로 해체된 지금 유일한 희망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와아아.

    군웅들의 함성이 더욱더 높아졌다.

    죽림거사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적들이 너무 강한 게 사실입니다. 일단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은 바로 천자산에 주둔하고 있는 서장무맹 세력입니다. 놈들은 오만에 사로잡혀 우리를 일망타진할 속셈으로 진군을 멈추고 있으나, 내일은 이곳 장사성으로 몰려올 겁니다. 우리 역시 맹이 결성되고 맹주님이 선출되면 놈들의 공격에 적극적으로 맞서야겠지요. 맹주님을 뽑는 비무에 앞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십시오.”

    죽림거사의 말에 군웅들이 술렁거렸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물었다.

    “악양성에 백만 황군이 입성했다고 들었습니다. 황군 역시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제 황군 쪽에서 연락이 왔었는데, 무림과 관부의 불간섭 원칙을 앞으로 일 년간 철저히 지키기로 했습니다.”

    “서로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는 말씀입니까?”

    “네. 솔직히 말해서 그저께까지만 해도 이곳 장사성에 계시는 절대황녀님과 상의해 힘을 합치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악양을 점령한 황군 측에서 먼저 불간섭 원칙을 서로 지키자는 제의를 먼저 해왔고, 숙의 결과 수락했습니다. 무림의 일은 무림인 스스로 처리하는 것이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 절대황녀님 측과 맺은 약속을 어기게 되어 이 자리를 빌려 유감을 표명합니다. 하지만 일단 무림이 살아야 훗날을 도모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다시 말하지만, 무림이 정리된 후 황군 역시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겁니다.”

    “일 년 후에는 황군과도 싸울 거라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일단 그렇게 결정이 났고 저를 비롯한 세분의 고수가 어제 직접 관아에 가서 설명해 드렸습니다.”

    죽림거사가 관아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는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이런 솔직한 고백이 나중에 관부와의 협력을 기대하게 하는 면도 있었다.

    한편 오늘 본선 비무에 나설 고수들 역시 대기석에 모여 죽림거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어젯밤 늦게까지 계속된 예선에는 총 열여섯 명의 본선 진출자가 결정되었다.

    백자안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절대황녀의 허락을 받은 그는 즉시 다시 역용하여 급히 예선에 참여한 것이었다.

    다행히 예선은 기관통과 방식이었기에 때문에 출전할 수 있었다.

    기관은 총 열 개로 그 모두를 통과해야 오늘 본선 진출 자격이 주어졌다.

    백자안은 쉽게 통과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출전자 대기석에 앉아 있는 것이다.

    마지막 시합 조인 그는 여유 있게 대회장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혹시 모를 분란을 방지하기 위해 절대황녀와 황룡선생 두 사람 또한 오늘 불참했다.

    백자안이 영웅맹주가 된다면 그때 정식으로 절대황녀 측과 동맹을 체결한다는 계획이었다.

    다만 절대황녀가 힘을 써준 것은 바로 추천장이었다.

    절대황녀가 신원을 보증해줌으로써, 백자안은 시합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둥둥둥!

    “그럼 바로 시합을 개시하겠습니다. 상황의 시급함을 고려해 오늘 결승까지 진행해 초대 맹주님을 선출하겠습니다.”

    와아아.

    짝짝짝.

    함성과 박수 소리와 함께 비무가 시작되었다.

    *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열띤 비무시합의 결과 총 네 명의 진출자가 결정되었다.

    원래는 이들 네 명이 내일 다시 겨뤄야 하지만, 적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와중이라 조금 쉬었다가 속개할 예정이었다.

    4인 결선에 오른 무림인의 면모는 다음과 같았다.

    불이승(不二僧).

    강호방랑자(江湖放浪者).

    만수도인(萬壽道人).

    만상서생.

    이들 중 만상서생이 백자안임은 물론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비무 시합에 앞서 그가 자신이 장사성주라는 사실을 전격적으로 밝힌 점이었다.

    얼굴 역시 장사성주의 얼굴로 다시 역용했다.

    장사성주의 무림별호가 바로 만상서생이기 때문에 정식 명칭은 만상서생으로 정해졌다.

    물론 그 일로 한때 소란이 일었으나, 대회 규정상 참가에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

    사실 예선전에는 황궁 출신 고수들도 상당히 많았다.

    다만 현직 성주가 맹주 자리에 도전한다는 사실이 주최 측에 놀라움을 준 것뿐이었다.

    죽림거사, 천룡자, 광무대제 세 사람 역시 수긍을 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설마 백자안이 우승까지 차지해 맹주가 되겠느냐는 생각이 깔려있었다.

    “다음은 불이승과 강호방랑자 두 분의 대결입니다.”

    와아아.

    짝짝짝.

    함성과 박수 소리와 함께 두 명의 고수가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시합 규칙은 간단했다.

    비무대 밑에 먼저 떨어지는 사람이 패하는 것이 바로 그 규칙이었다.

    백자안이 두 사람 중 불이승을 보며 눈을 빛냈다.

    ‘유일하게 내가 무공 수준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저 불이승이다. 소림 출신으로 오래도록 천하를 떠돌며 홀로 수련을 해왔다고는 하나, 적잖이 의심스럽구나.’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그가 상대의 실력을 간파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 매우 우려할 상황이었다.

    신체 특징상 그렇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으나, 그렇지 않다면 상대의 무공이 자신보다 강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물론 대결은 워낙 변수가 많아 한두 가지 조건만으로 승부가 결정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말의 불안요소가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강호방랑자라고 하오.”

    “아미타불. 무림십대고수 중 한 분이군요. 이번 대회를 개최한 백인고수 회합에서 대표로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소승은 불이승이라고 합니다.”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지금 소림파가 멸문에 가까울 정도로 무너졌는데, 대사 같은 고수가 나타나 다행입니다.”

    강호방랑자가 말을 한 후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는 죽림거사, 천룡자, 광무대제와 함께 이번 대회에 참가한 무림십대고수답게 기도가 비범했다.

    백자안 역시 오늘에서야 알았지만, 강호방랑자가 백인고수의 대표가 된 것은 사전비무에서 승리했기 때문이었다.

    ‘의외로 빨리 승부가 날 수도 있겠군.’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그때였다.

    불이승과 강호방랑자 두 사람의 장력 대결이 시작되었다.

    꽈앙.

    특별할 것도 없었지만 대회장 전체로 퍼지는 묵직함이 대단했다.

    한데 그 결과가 놀라웠다.

    어느새 강호방랑자가 비무대 밑으로 떨어져 피를 토하고 있지 않은가.

    이번 대회의 장소를 제공하고 있던 무림맹 장사지부장 우문호가 급히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하지만 이미 내장이 끊어졌는지 이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럴 수가!”

    “아!”

    군웅들이 술렁였다.

    하지만 원래 생사결까지 허락된 시합이었다.

    정정당당하게 장력을 겨뤘고 그 결과 한쪽이 실력 차가 커서 사망한다고 해도 그 죄를 물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무림십대고수라 그 파장이 매우 컸다.

    “아미타불. 빈승은 그저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애석하군요.”

    불이승이 안색을 굳혔다.

    군웅들 역시 잠시 침묵을 지켰다. 누군가 박수를 보내자 이내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강호방랑자의 죽음이 애석하기는 하나 그런 고수를 일장에 죽인 불이승의 무공 실력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껏 기대를 모았던 삼의맹주 백자안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반선이나 마신과 겨룰 정도의 탁월한 고수라고는 할 수 없는 무림십대고수보다 훨씬 강한 고수가 나타나자 열광한 것이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지.”

    “강호방랑자 같은 고수가 저렇게 약할 줄 알았는가. 나라도 최선을 다했을 거야.”

    군웅들이 한마디씩 하며 불이승을 두둔했다.

    주최 측 역시 시합 도중 사망자가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불이승의 승리를 선언했다.

    다만 자신들이 대표로 세운 강호방랑자가 죽자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실수가 아니다. 의도적으로 죽였다. 맹주가 된 후 분란을 방지하기 위해 죽인 것 같군. 수양이 깊은 고승이 그런 마음을 먹을 리 없을 테니, 저자가 수상하구나.’

    백자안이 불이승을 한차례 쳐다본 후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다음은 만수도인과 만상서생의 대결입니다. 참고로 만상서생께서는 현 장사성의 성주님이기도 합니다.”

    와아아.

    짝짝짝.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그중 대부분은 백자안에게 향한 것이었다.

    처음 백자안이 성주 신분을 밝혔을 때는 군웅 중 대다수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대회 시작 전 죽림거사가 밝힌 바와 같이 무림과 관부의 불간섭 원칙이 확인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비웃음의 가장 큰 이유는 백자안에 대한 과소평가였다.

    무공이 상당히 강하다는 소문이 돌긴 했지만, 성주가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겠냐는 것이 전체적인 평이었다.

    하지만 강호에 유명한 고수들을 차례대로 격파하자 그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특히 조금 전 강호방랑자가 불의의 죽음을 다한 이후로 그를 지지했던 군웅들 상당수가 백자안을 지지하고 있었다.

    “만수도인이오.”

    “만상서생이라 하오.”

    만수도인과 백자안 두 사람이 삼장 거리를 두고 비무대 위에 섰다.

    대결 방식은 이번에도 장력 대결이었다.

    만수도인은 재야의 고수로 소문이 난 자로, 그 실력은 무림십대고수로 뽑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으음······ 기가 조금 이상하군. 강력한 사기(邪氣)가 느껴진다. 지금 보니 역용을 한 것 같기도 하군. 이자 역시 속셈을 지니고 참가한 것인가.’

    백자안이 안색을 조금 굳혔다.

    하지만 겉으로는 전혀 표시를 내지 않았다.

    ‘주위에 사기를 드러내지 않고 오직 나에게만 보내고 있다. 최근에 무공이 급상승한 느낌이군. 그렇다면 나 역시 봐주지 않겠다. 살려두면 어떤 수작을 부릴지도 모르니까.’

    백자안이 가볍게 장력을 날렸다.

    만수도인 역시 겉으로는 평범하게 장력을 날렸다.

    하지만 교묘하게 그 장세 속에 사기를 포함했다.

    사기에 당하면 즉사할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특수 독과 비슷하구나. 하지만 어림없다.’

    아직 내상이 덜 회복되었지만 백자안의 무공 수준은 측정이 불가할 정도였다.

    꽈앙.

    폭음과 함께 한 사람이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비무대 밑으로 떨어져 즉사한 사람은 바로 만수도인이었다.

    “앗! 또 죽었다!”

    “이런!”

    군웅들이 놀라는 가운데 백자안이 천천히 만수도인에게 다가갔다.

    그때였다.

    죽음으로 인해 기가 빠져나갔기 때문인지 만수도인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다.

    역용이 풀린 것이었다.

    누군가 만수도인의 본 얼굴을 보고 소리쳤다.

    “흑천방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