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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170화 (170/250)
  • [제55장] 만상문 2

    “승상 그놈이 황위를 찬탈한 것도 모자라 공주님을 체포하기 위해 직접 백만 황군을 이끌고 이곳 장사성으로 오고 있습니다. 어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장사성 총관 담대선생의 말에 관아 취의청에 모인 사람들이 안색을 굳혔다.

    취의청에는 담대선생 외에도 장사성주 유관성과 대장군 이장락, 절대황녀, 황룡선생이 있었다.

    보안을 위해 이들 다섯 명만 회의에 참여한 것이었다.

    사실 이들이야말로 새 황제가 된 승상 세력에 대항하는 핵심이었다.

    물론 다른 성의 성주들 역시 승상에 대한 반감은 컸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저항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협박을 받긴 했지만 전대 황제가 스스로 승상에게 양위한 것이 컸다.

    강제 폐위나 다름없다는 것을 천하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당장 승상 세력에 대항할 무력을 가진 곳도 없었다.

    대놓고 저항하는 세력은 절대황녀가 유일했다.

    그 때문일까.

    절대황녀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만일 절대황녀가 이끄는 무사들이 큰 승리를 거둔다면 천하 각지의 성주들 역시 이에 호응할 가능성이 매우 큰 것이다.

    반대로 이번에 절대황녀가 잡히거나 죽임을 당한다면 승상에 대한 저항은 끝날 것이 분명했다.

    “승상부 무사들을 중심으로 한 놈들의 병력은 무려 백만입니다. 게다가 놈들의 배후에는 신급 고수라는 황궁마신이 있습니다. 여러모로 승산이 거의 없습니다.”

    황룡선생이 탄식했다.

    장사성주 유관성이 물었다.

    “정말 우리가 승리할 가능성이 없소? 이곳 장사성에는 본 성주가 지휘하는 관군 이십만이 있소. 공주님이 이끄는 십만 무사와 합치면 삼십 만이오. 놈들이 비록 백만이라 하나 작전만 잘 짜면 승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오. 공주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 역시 우리만으로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승상이 거느리는 무사들은 대부분 정예인 데 반해 우리는 일반 무사들이 많지요. 게다가 사기도 떨어져 있어 공격을 받게 되면 제대로 저항도 못 해보고 토벌될 거예요.”

    “아! 공주님마저 비관적일 줄이야. 하지만 이대로 놈들에게 당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이미 승상 그놈이 공주님에 이어 저 역시 반역도로 몰고 있으니, 어떤 경우에도 항복은 할 수 없습니다.”

    유관성이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절대황녀가 미소를 지었다.

    “감사해요. 유 성주님. 저 또한 놈들에게 투항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만약 놈들에게 붙잡히게 된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이에요.”

    “아!”

    유관성, 황룡선생, 담대선생, 이장락 네 사람 모두 깊은 탄식을 했다.

    “공주님.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공주님은 우리 모두의 희망이신데, 설령 그런 일이 있다 해도 목숨을 부지해 후일을 도모해야 합니다.”

    “감사해요. 하지만 놈들은 이번에 반드시 저를 죽이려 할 거예요. 제가 죽게 되면 황궁에 갇혀 있는 폐하 역시 시해하겠지요. 그래서 이번 승리가 꼭 필요해요. 우리가 한 번이라도 대승을 거둔다면 인근 성의 성주들이 군사를 보내 지원해줄 가능성이 클 거예요. 그렇게 되면 황군 역시 동요할 것이고, 전세는 단숨에 역전될 수 있지요.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황궁마신의 무공이에요. 사실 지난번에 폐하께서 강제 양위를 하시게 된 것도 그놈이 황궁 위사들을 모조리 죽인 때문이었잖아요?”

    지난 기억이 생각난 걸까.

    절대황녀가 분노 때문에 두 손을 떨었다.

    저항 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눈물과 함께 황궁을 빠져나왔지만, 승상이 황궁을 공격한 그때 실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군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대 황제에게 충성을 바쳤던 대장군들은 대거 숙청되었다.

    지금 승상을 따르는 황군들은 새롭게 재편된 것으로, 이전부터 승상부 소속 무사로 활동하는 자들이 대부분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황군 중 일반 무사들의 마음은 사실 아직 전대황제에게 있었다.

    아무런 힘이 없는 그들로서는 대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상황을 역전시킬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황룡선생의 말에 좌중의 사람들이 눈을 빛냈다.

    “선생님. 어떤 방법인가요?”

    절대황녀가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이번에 승상을 제거하면 됩니다. 놈이 죽고 공주님이 강제 양위의 진실을 밝힌다면 천하 각지의 성주와 지사들이 반드시 호응할 겁니다. 물론 기존 승상부 무사들은 끝까지 저항하겠지만, 황군 대다수는 공주님을 지지할 겁니다.”

    “일리가 있군요. 하지만 승상 그자 옆에는 항상 황궁마신이 있다고 들었어요. 이번에도 따라왔을 가능성이 매우 커요.”

    절대황녀가 안색을 굳혔다.

    그녀의 무공 역시 매우 강했지만, 스스로 황궁마신의 적수는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럴 때 백자안 공자가 있었다면 좋으련만······.”

    절대황녀가 아쉬워했다.

    황룡선생이 말했다.

    “백 맹주가 살아있다면 반드시 이번 대회에 참가할 겁니다. 백 맹주가 우리의 어려움을 알게 되면 절대 못 본 체하지 않을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무림과 관부가 불간섭이라고 하지만 서장무맹이 황궁마신에게 충성을 맹세했으니까요. 그 때문에 승상 역시 이번 영웅대회에 모인 무림인들을 공격하는데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 할 거예요. 물론 놈의 일차목표는 우리겠지만 말이에요.”

    “정확한 판단이십니다. 어차피 무림인의 도움을 얻어야 하니, 영웅대회 때 참석해서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 분명 영웅대회 때 새 맹주를 선출할 것 같으니, 그분과 의견을 교환해 무림과 관부의 동맹을 체결해야 할 거예요. 물론 백 공자가 복귀해 다시 전권을 가지게 된다면 동맹 체결이 훨씬 쉽겠지만, 우리로서는 여러 경우를 대비해야 할 거예요.”

    “명을 받들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절대황녀의 정리로 오늘 회의가 마무리될 때 무사 한 명이 취의청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담대선생이 안색을 조금 굳히며 물었다.

    극비 사항을 의논할 예정이니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명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만상문이라는 문파의 문주와 그 여제자 두 명이 왔는데, 공주님을 뵙고자 합니다. 삼의맹주 백자안의 부탁을 받고 왔다고 하더군요.”

    “아! 어서 모셔오세요.”

    “네.”

    * * *

    “하하하. 만상서생이라 합니다. 절대황녀로 유명하신 공주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만상문 제자 방일화라고 해요.”

    간단한 통성명이 있고 난 뒤 본격적인 질문이 시작되었다.

    그 질문은 당연히 백자안과의 관계였다.

    만상문이란 문파의 이름을 모두 처음 들었기 때문에 두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기대는 거의 없었다.

    “백 공자의 부탁을 받고 왔다니 그게 무슨 뜻이지요? 백 공자가 살아있나요?”

    “백자안 그 친구 말입니까? 제가 부탁을 받은 것은 낙양에 있을 때의 일이니, 이후의 소식은 잘 모릅니다. 소문에 의하면 반년 전에 사천성 성도에서 주화입마가 된 후 사라졌다고 하던데, 아마 살아있지 않겠습니까?”

    “아! 그 말씀은 백 공자의 현재 소식을 모른다는 것이군요.”

    절대황녀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순간적이지만 백자안의 복귀를 기대하며 희망에 부풀었기 때문이었다.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공주님이 나의 복귀를 기다리고 계셨구나. 하지만 아직 내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 정체가 드러나서는 안 된다. 정체를 밝히는 순간 곧바로 곳곳에 숨어든 간자들 귀에 들어갈 것이다.’

    백자안이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백자안 그 친구와는 한때 함께 무공을 수련하던 사이였습니다. 서로 무공을 비교하면서 연마했기에 그 친구 무공도 많이 알고 있지요.”

    “아, 네. 잘 오셨어요. 한데 부탁이란 저를 도와달라는 것이었나요?”

    “네. 황궁이 위기에 처하면 자기 대신 도와달라더군요. 자신은 신선계 상황 정리에 전념해야 할 것 같다면서······.”

    “그 말씀은 혹시 백 공자가 지금 신선계에 있다는 뜻인가요?”

    “확실히는 모릅니다. 다만 지금까지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신선계에 가 있을 가능성이 크지 않겠습니까? 듣자 하니 지니고 있던 보검도 신선계에 있다고 하던데, 검들을 찾고 절대마인이 완전히 되는 것도 막을 겸 말이지요.”

    “추측이군요. 하지만 신선계에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을 거예요. 신선계 문이 닫혔다고 해요. 그나마 마신 중 세 명이 빠져나왔는데 그중 한 명이 백 공자에게 소멸당했지요.”

    절대황녀가 은근히 다시 백자안을 칭찬했다.

    백자안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자신을 칭찬하고 있는 것인데, 지금 모습의 그는 백자안이 아니라 만상서생이기 때문이었다.

    “무공을 조금 보여줄 수 있겠소?”

    담대선생의 물음이었다.

    관아에서 간자들을 색출하는 임무를 맡은 그였다.

    백자안과 친분이 있는 고수가 온 것 같아 처음에는 그도 기뻐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을수록 별 신통치 않게 생각 드는 것 같았다.

    사실 이런 위기 상황 때 명성이나 부를 얻기 위해 불쑥 나타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다.

    “물론입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백자안 그 친구의 무공이 비록 뛰어나나 저를 이기지는 못합니다. 쉽게 말해 막상막하라 할 수 있지요.”

    백자안의 자화자찬에 절대황녀, 담대선생 등이 안색을 굳혔다.

    안 그래도 겉으로는 전혀 무공이 드러나지 않는 백자안이었다.

    오히려 백자안 보다 옆에 있는 방일화의 기세가 강했다.

    “제가 한번 시험해보지요.”

    앞으로 나온 사람은 바로 장사성 대장군 이장락이었다.

    절대황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드려요.”

    “네.”

    이장락이 고개를 한 번 숙인 후 백자안을 향해 다가갔다.

    “우리를 돕기 위해 오신 분이니, 어찌 위험한 대결을 할 수 있겠소? 서로 장력을 겨뤄 뒤로 조금이라도 더 물러난 사람이 지는 것으로 합시다.”

    “알겠습니다.”

    백자안이 우수를 들었다.

    한 손만 든 것인데 그 모습을 본 이장락의 눈썹이 꿈틀했다.

    양손이 아닌 한 손으로 상대하려는 그 모습이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것이었다.

    하지만 절대황녀 앞이라 내색을 하지 않았다.

    대신 어느 정도 봐주려고 했던 생각을 완전히 접었다.

    ‘사기꾼 같은 놈! 뭐 네놈이 백 맹주와 동수를 이뤄? 미친놈!’

    이장락이 속으로 백자안을 향해 욕을 하며 자세를 바로 했다.

    물론 그 역시 우수만 든 상태였다.

    담대선생이 말했다.

    “두 분은 출수하시오!”

    쏴아아.

    쏴아아.

    삼장 정도 사이를 두고 이장락의 장력이 먼저 발출되었다. 백자안 역시 장풍을 날렸다.

    꽈앙.

    폭음과 함께 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 사람은 바로 이장락이었다.

    장사성 관아에서 최고수로 평가받는 그가 비록 한걸음이지만 밀린 것이었다.

    절대황녀 등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실망감도 엿보였다.

    절대황녀 자신 역시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오히려 전력을 다한다면 장풍만으로 이장락을 대여섯 걸음 뒤로 물러나게 만들 수 있었다.

    사실 지난 반년간 그녀의 무공 성취 속도는 놀라웠다.

    이전에 연마했던 황궁무공을 집대성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적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특히 내심 조정제일고수로 소문이 자자했던 승상을 직접 죽일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더욱더 보안을 유지했다.

    백자안은 절대황녀의 표정을 보고 흠칫했다.

    뭔가 잘못된 것을 느낀 것이다.

    그가 이장락을 한 걸음 정도만 뒤로 물러나도록 힘 조절을 한 것은 부상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장락은 장사성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기에 조금의 상처라도 입히면 안 되었다.

    한데 그러한 배려가 절대황녀의 실망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놀라운 무공이군요. 관아에 거처를 마련해줄 테니 전투가 벌어지면 공을 세워주세요. 황상께서 복위하시면 절대 그 공을 잊지 않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백자안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미 그에 대한 평가는 끝나있었다.

    백자안은 절대황녀와 좀 더 세밀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일단은 물러나야 했다.

    담대선생이 즉시 무사를 불렀다.

    “두 분께 거처를 마련해주도록 해라. 두 분께서는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아마 영웅대회 때 공주님 호위로 가장 먼저 활동하시게 될 겁니다.”

    “네.”

    백자안이 고개를 조금 숙인 후 무사의 안내를 받아 방일화와 함께 취의청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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