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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166화 (166/250)

[제54장] 동심무적진 1

[제54장] 동심무적진

“집행하라!”

휘익.

만통자가 집행패를 던졌다.

애초 복사천회 무사들의 등장을 기대하며 온 그였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자 최후의 수를 던진 것 같았다.

물론 그 이면에는 백자안이 정말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가 집행패를 정말 던지자 당황한 것은 물론 복사천회 쪽이었다.

태을선생, 당기 등 복사천회 지휘부 고수들이 기대한 것은 바로 백자안이었다. 한데 그가 아직 행동을 개시하기 전에 처형 명령이 내려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구출 작전을 펴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다.

한 가지 가능한 방안은 바로 집행패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집행이 실제 개시되면 이를 막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집행패를 낚아챈다면 사정이 달라지는 것이다.

태을선생이 급히 백자안을 쳐다봤다.

백자안이 신형을 솟구쳐 단상 앞으로 날아간 것은 바로 그때였다.

“멈춰라!”

백자안이 호통과 함께 우수를 내밀었다.

순간,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집행패가 그대로 가루가 되어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백자안이 좌수를 흔들어 강력한 지풍을 날리자, 사천무림연합 포로들의 목을 베려 하던 집행무사들의 도가 두 동강 나버렸다.

놀랍게도 백자안이 날린 지풍이 천여 개로 분화하며 도를 부러뜨린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그들의 목숨을 취한 것이 아니라 만통자, 혈안대불 등 서장무맹 지휘부 고수들이 일단 백자안을 쳐다봤다.

“웬 놈이냐?”

집행관이 소리쳤다.

하필이면 그의 앞에 백자안이 내려선 상황이었다.

하지만 백자안은 더는 말을 하지 않고 주위를 둘러봤다.

오십만 서장무맹 무사들과 십만 군웅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쏠려 있었다.

사실 그가 지금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이곳에 숨어 있을 수도 있는 또 다른 고수였다.

기감을 통해 만통자와 혈안대불은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함을 느낀 그였다.

물론 서장무맹 무사의 수가 오십만이나 되었기 때문에 부담이 컸다. 하지만 그렇다고 목숨의 위협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서장무맹주 불사대불 또는 서불마신이 왔다면 상황은 달라질 가능성이 컸다.

만약 그들이 이곳에 왔다면 작전은 변경이 불가피했다.

‘으음······ 다행히 다른 고수는 없는 것 같군. 불사대불과 서불마신 두 사람만 없으면 큰 문제가 없다.’

백자안이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집행관이 검을 찔러 들어왔다.

슈우욱.

그가 노리는 부분은 백자안의 목이었다.

백자안이 자신을 아랑곳하지 않고 주위를 살피며 주의를 게을리하자, 기습공격을 감행한 것이었다.

사실 집행관의 무공 또한 매우 강한 편이었다.

가히 장로급 고수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백자안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집행관의 검이 백자안의 목에 닿기 직전, 호신강기가 발동되어 검이 그대로 부러졌다.

백자안이 오른손으로 가볍게 원호를 그린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집행관이 십여 장이나 날아갔다.

사람들이 놀라서 보니 이미 그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즉사한 이후였다.

“네놈이! 정체가 무엇이냐?”

만통자가 소리쳤다.

그러면서 옆에 앉아 있는 혈안대불에게 눈짓했다.

혈안대불이 고개를 숙인 후 나머지 십대장로와 함께 백자안을 포위했다.

혈안대불을 비롯한 십 인의 장로.

서장무맹 지휘부 고수들의 핵심이라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공한 것은 그들의 합공이었다.

불사대불이 혹시 백자안이 올 수도 있다는 서불마신의 이야기를 듣고도 자신이 오지 않은 이유도 그들에게 있었다.

십대장로의 합공은 불사대불 자신도 막아내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불사대불의 자존심도 있었다.

백자안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속으로는 아직 승복하지 않고 있는 그였다.

“나 말인가? 나는 무명노인이라 한다.”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일단 최대한 적의 지휘부 고수들을 제거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야 나중에 서장무맹 무사 전체를 제압한 후 도주가 쉬워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십대장로의 포위망은 매서웠다.

아직 공격을 개시하지 않았지만 백자안은 적지 않은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무명노인? 허튼소리 하지 마라. 네놈은 백자안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냐?”

만통자가 노성을 터뜨렸다.

순간, 서장무맹 무사들이 일제히 백자안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십대장로 포위망 위에 다시 포위망을 쌓은 것이었다.

동심원 모양의 포위망은 순식간에 수십 아니 수백 수천 겹이 되었다.

그 바람에 군웅들이 한쪽으로 밀려났다.

복사천회 무사들은 물러나지 않고 포로들을 구출할 준비를 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백자안 이야기가 나오자 그들 또한 놀라는 표정이었다.

백자안이 잠시 망설였다.

자신의 정체를 밝힐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무엇보다 단번에 자신의 정체를 알아낸 만통자의 말에 흠칫했다.

‘이미 내가 나타날 것을 알고 있었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불사대불과 서불마신 그들이 이곳에 올 수도 있을 듯하다.’

백자안이 긴장하며 기감을 퍼뜨렸다.

하지만 아직 특이한 느낌은 없었다.

‘기호지세다. 놈들 전체를 제압하는 것은 조금 미루고 각개 격파를 최대한 지속하는 것이 낫겠군. 그러다가 불사대불와 서불마신이 나타나면 그들과의 승부에 집중한다.’

백자안이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이미 청성벌에서 자신의 한계를 깨달았던 그였다.

섣불리 전체 제압을 노려 내공을 소진한다면 이후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그렇다. 내가 바로 백자안이다!”

백자안이 우수를 들어 역용을 풀자 그의 본 모습이 드러났다.

순간,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태을선생, 당기 등 복사천회 무사들의 놀라움이 컸던 것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환호성도 잠시 중과부적인 현 상황 때문에 오히려 더욱더 긴장된 분위기가 느껴졌다.

“후후후! 역시 네놈이었구나. 네놈 얼굴은 초상화를 통해 우리도 잘 알고 있다. 네놈을 죽이기 전에 한 가지만 묻겠다.”

“무엇이냐?”

“청성벌에서 본맹의 무사들과 성성이들을 죽인 놈이 바로 네놈이냐?”

“그렇다.”

“으음, 역시······ 우리 서장무림인들은 복수를 철저히 한다. 네놈 손에 죽은 우리 동료들의 복수를 지금 이 자리에서 할 것이다. 동심무적진(同心無敵陣 )을 펼쳐라!”

만통자가 소리치자, 서장무맹 무사들이 일제히 백자안을 가운데 두고 돌기 시작했다.

수백 수천의 동심원 물결이 생겨났다.

돌지 않고 있는 서장무맹 무사는 일차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는 십대장로뿐이었다.

백자안이 흠칫했다.

설마 하며 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동심무적진이 발동되자 비틀거릴 정도로 엄청난 압박을 받은 것이다.

놈들의 동심원 모양 포위망에서 이미 무서운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으음, 동심무적진이란 것이 내공을 한데 모아 포위망에 갇힌 자를 살기로 죽이는 진법이구나. 실제 공격이 개시되면 버텨내기 어려울 듯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본격 공격이 개시되었을 수도 있겠군.’

백자안이 비틀거리는 신형을 애써 바로잡으며 눈을 빛냈다.

그의 이마에서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지금 상황이 당연했다.

무려 오십만 무사의 내공이 뭉친 압박이었다.

게다가 가장 위협적인 십대장로가 언제라도 합공을 가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하하하! 이제 네놈은 독 안에 든 쥐다. 역시 마신님의 예지력은 대단하구나. 네놈이 올 것을 예견하고 우리 맹주님께 귀띔을 해주셨으니 말이다. 하지만 맹주님과 마신님이 오늘 이 자리에 안 계셔도 네놈은 이제 죽음을 피하기 어렵다. 이미 진이 발동되었으니까.”

“으음······.”

백자안이 신음을 내뱉었다.

이를 지켜보는 복사천회 무사들 또한 무거운 안색이었다.

끝까지 백자안을 믿어보는 표정이었으나 하나같이 절망감이 보였다.

태을선생과 당기 역시 갈피를 차리지 못했다.

백자안에게 불리한 상황임을 두 사람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병력도 아니었다.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오히려 백자안에게 불리할 수도 있었다.

“후후후! 백자안! 죽기 전에 할 말이 있으면 말해라! 내가 알기로 네놈 가족이 모두 천축무맹주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 죽었다고 하던데, 그 사실을 알고는 있느냐?”

“으윽!”

백자안이 피를 한 모금 토했다.

애써 막아두었던 기혈이 가족의 소식에 크게 흔들린 것이다.

만통자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총군사답게 혹시 몰라 거짓된 정보를 흘린 것인데, 백자안이 바로 걸려든 것이었다.

물론 백자안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의 생사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그였다.

솔직히 가족의 생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만통자의 말을 들으니 그만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이제 그의 몸 주위는 오십만 서장무맹 무사들이 뿜어낸 살기가 무형의 쇠사슬이 되어 옥죄고 있었다.

이대로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심맥이 모두 끊겨 죽고 말 것이었다.

특히 조금 전부터 십대장로들이 동심무적진에 합류하고 있었다.

휙휙휙 하는 소리와 함께 동심원 모양으로 회전하는 그들의 속도는 매우 빨랐다.

백자안에게 가해지는 압박은 곧바로 두 배 이상 강해졌다.

사실 일차 포위망에서 가해지는 공격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알게 모르게 십대장로들이 오십만 무사들의 내공을 자신들의 몸에 한데 모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백자안으로서는 방심하고 있다가 호되게 걸려든 셈이었다.

지금 상황으로는 애초 생각했던 지존금광과 독 기운 발산을 시도도 하기 힘들었다.

마치 혈도가 몸 전체에 찍힌 듯이 급격히 몸이 경직되고 있었다.

‘어렵구나. 하지만 꼼짝할 수 없는 것은 나만이 아니다.’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그랬다.

움직일 수 없는 것은 서장무맹 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그들은 멀리서 군웅들을 포위하던 무사들까지 가세해 오십만 무사 거의 전부가 동심무적진에 가담하고 있었다.

가담하지 않고 있는 사람은 만통자가 유일했다.

백자안이 고개를 돌려 태을선생과 당기 등을 쳐다봤다.

당기가 소리쳤다.

“맹주님. 우리가 도울게요.”

“아니오. 어서 포로들을 데리고 이곳을 떠나시오. 시간이 없으니 빨리!”

백자안이 소리쳤다.

당기가 고개를 저어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맹주님을 놔두고 우리만 갈 수 없어요.”

백자안의 진짜 신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당기의 결심은 굳건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백자안은 당기의 우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부친을 비롯해 당문 사람들이 몰살에 가까운 피해를 본 후 그녀가 바랐던 것은 사실 백자안의 도움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해 애만 태울 뿐이었다.

한데 이렇게 그를 만나게 되니 어떻게든 함께 이겨내려는 것이었다.

백자안이 다시 한번 소리쳤다.

“당 소저! 지금 나는 최후 공력을 사용해 이자들을 몰살시키려 하오. 한데 힘 조절이 어려워 여러분이 있으면 성공하기 힘드오. 군웅들 역시 마찬가지이니 모두 떠나도록 하십시오! 서장무맹에서는 여러분까지 모두 죽이려 할 겁니다.”

백자안의 말에 군웅들이 매우 놀라며 처형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당기 또한 태을선생의 설득으로 마음을 돌렸다.

태을선생은 명을 내려 복사천회 무사들로 하여금 포로들을 구출해 처형장 밖으로 떠나도록 했다.

그들이 향할 곳은 예의 은신처였다.

“몸조심하세요! 맹주님!”

당기가 떠나며 애타게 소리쳤다.

한편 만통자는 복사천회 무사들이 포로를 데리고 떠나도 개의치 않았다.

군웅들이 떠나가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 중요한 것은 백자안 저놈이다. 다른 놈들은 나중에 얼마든지 찾아내 소탕할 수 있다. 이제 남은 시간은 불과 일각 정도. 절대 더는 버티지 못할 것이다.’

만통자가 긴장된 표정으로 백자안을 쳐다봤다.

서장무맹 무사 오십만의 압력을 혼자서 상대하고 있는 백자안은 지금 한계에 달해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극에 달하면 되돌아가는 것인가.

우려가 되었던 복사천회 무사들과 군웅들이 모두 떠나자, 그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래, 아직 포기할 때가 아니다. 내 몸속에 있는 천력의 진정한 위력을 모두 끄집어낸다면 최소한 목숨은 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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