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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164화 (164/250)
  • [제53장] 복사천회 2

    당기가 절망감을 느끼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기혈이 흔들린 상태이긴 하나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무리한 것이었다.

    서장무맹 측의 우두머리 무사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일단 네년을 눕혀주지. 아직 발악할 힘이 있는 것 같으니까.”

    우두머리 무사가 일장을 날렸다.

    당기 역시 혼신의 힘을 다해 독장을 날렸다.

    하지만 상대의 장세에 막혀 독장이 너무나 쉽게 해소되어 버리는 게 아닌가.

    그도 그럴 것이 독장이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려면 그 내공의 기반이 확실히 잡혀 있어야 했다.

    특히 당기처럼 아직 그다지 무공이 강하지 못한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다시 말해 기초가 약해진 상태에서 무리하게 독공을 펼치는 바람에 그 위력이 원래의 일할도 되지 못한 것이다.

    파앙.

    폭음과 함께 우두머리 무사가 날린 장력이 당기의 가슴에 작렬하기 직전.

    미처 피하지 못한 당기가 절망했다.

    ‘정말 끝이구나.’

    당기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이미 피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상황.

    그때였다.

    팡, 하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이 놀라서 보니 당기는 멀쩡했다.

    반면 승기를 잡았던 우두머리 무사가 피를 토하며 쓰러져 있었다.

    수하들이 매우 놀라 그를 부축했다. 하지만 이미 칠공에서 피를 흘리며 즉사한 이후였다.

    “웬 놈이냐?”

    서장무맹 무사들이 일제히 소리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들 역시 제삼자가 개입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허허허. 나다. 이 늙은이가 저놈을 죽였다. 왜 잘못되었느냐?”

    객잔 한구석에서 일어난 사람은 바로 백자안이었다.

    노인으로 역용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고 자연스럽게 노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저놈을 죽여라!”

    서장무맹 무사들이 일제히 백자안에게 달려들었다.

    스무 명에 가까운 인원인데다 객잔 역시 넓은 곳은 아니었지만 일사불란한 동작이었다.

    슈우욱! 슈욱!

    병장기들이 빛을 발하며 백자안의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발길 듯 파고들었다.

    미동도 없던 백자안이 허공으로 몸을 솟구친 후 들고 있던 술잔을 날렸다.

    퍽퍽퍽!

    “크윽!”

    “크윽!”

    서장무맹 무사들의 다급성이 터져 나왔다.

    객잔 안의 손님들이 놀라서 보니 이미 스무 명가량의 서장무맹 무사들이 모두 쓰러져 있었다.

    이마에 구멍이 하나씩 뚫려 있었는데, 놀랍게도 모두 즉사였다.

    당기가 기뻐하며 백자안에게 다가왔다.

    “어르신.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소녀는 당기라고 해요.”

    “당문주의 여식인가?”

    “네. 선친을 아세요?”

    “으음, 이전에 한 번 도움을 받은 적이 있지. 부친을 잃어 상심이 크겠군.”

    “네. 하지만 반드시 복수할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르신처럼 강한 분이 필요해요. 혹시 은자림 고수이신가요?”

    “은자림? 그딴 것은 나도 몰라. 하지만 자네의 선친을 생각해서 돕기로 하지.”

    “감사합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이곳에는 곧 놈들이 들이닥칠 거예요.”

    당기가 서둘러 백자안을 데리고 객잔 밖으로 나갔다.

    백자안은 내심 복사천회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 했기 때문에 순순히 따라갔다.

    ‘일단 내 정확한 신분을 밝히지 않는 게 좋겠군. 간자들이 있을 수도 있고, 내가 나타났다는 것이 밝혀지면 놈들의 경계심만 높아질 뿐이다. 다른 놈들은 크게 걱정되지 않지만, 혹시라도 마신들이 알게 되면 어려워질 수 있다.’

    * * *

    백자안이 당기를 따라간 곳은 성도 내에서도 변두리 쪽에 위치한 한 폐가였다.

    사천당문과의 거리도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라 여차하면 한나절도 안 되어 공격을 가할 수 있었다.

    복사천회 무사 오백여 명이 은신해 있는 곳은 다름 아닌 폐가의 지하였다.

    폐가의 지하에는 거대한 광장이 하나 있었다. 이곳은 사천당문의 직계만이 알고 있는 비상 은신처였다.

    폐가가 지어진 것은 오래전의 일로 원소유자는 황궁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이후 그 소유권이 사천당문에게 넘어왔는데, 폐가 밑에 백만 명도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안가로 삼은 것이었다.

    “회주님. 돌아오셨군요.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복사천회의 군사를 맡고 있는 태을선생(太乙先生)이란 자였다.

    그는 학사 출신으로 당문에서 오래도록 식객으로 머물고 있던 자였다.

    서장무맹과의 전쟁 중 그가 살아남은 것은 후일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죽은 당문주 당길중의 명을 받은 그는 이곳 은신처를 관리하며 은밀히 사람들을 모았다.

    대부분 사천무림연합 무사들로 서장무맹 무사들에게 쫓기는 자들이었다.

    그러던 차에 당기를 만나 복사천회를 조직하게 된 것이었다.

    “이분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당기가 안색을 굳히며 객잔에서 있었던 일을 알려주었다.

    태을선생의 만류를 무시하고 혼자 나갔던 그녀가 미안한지 정식으로 사과했다.

    “죄송해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좀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모두 제 불찰이었습니다. 한데 이분은?”

    태을선생이 당기와 함께 온 백자안을 가리켰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지하 광장에 마련된 지휘부 처소로, 광장 주위 벽에 뚫려 있는 수백 개 동굴 중 하나였다.

    지하 광장은 은신해 있는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곳이었다. 평소에는 각자 배정된 동굴에서 생활하는 것 같았다.

    지금 이곳은 그 동굴 중 지휘동굴로 가장 큰 곳이기도 했다.

    “별호가 어떻게 됩니까?”

    태을선생이 정중하게 물었다.

    백자안이 껄껄 웃었다.

    “나는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으로 따로 별호가 없소.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구려. 그러하니 무명노인(無名老人)으로 불러주면 고맙겠소.”

    “아! 무명노인이셨군요.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태을선생이 미소를 지었다.

    물론 무명노인이란 별호를 전에 들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의례적으로 상대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반갑소. 아무쪼록 이 늙은이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오.”

    “감사합니다.”

    태을선생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 당기가 백자안이 한 수에 스무 명의 서장무맹 무사를 제거했다고 말한 것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복사천회에 지금 필요한 것이 상승고수였다.

    “다른 일은 없었나요?”

    당기의 물음에 태을선생이 안색을 굳혔다.

    “안 그래도 회주님이 돌아오시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놈들이 내일 정오 때 뇌옥에 갇힌 무사 천 명을 모두 처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아! 어디서 말인가요?”

    “저잣거리입니다. 아무래도 놈들이 우리를 유인해 일망타진할 속셈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분들이 처형당하는 것을 두고만 볼 수는 없지 않나요?”

    당기가 안색을 굳혔다.

    태을선생 역시 난감한 표정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진퇴양난입니다. 일단 내일 처형될 사람들의 수만 천 명으로 우리보다 두 배가 더 많습니다. 놈들은 필시 충분한 병력을 배치할 것이니, 안타깝지만 우리가 내일 처형장에 가는 것은 자살행위에 가깝습니다.”

    “포기할 수는 없어요. 지금 당장 작전 회의를 열어야겠어요. 머리를 맞대면 좋은 방안이 나올 수도 있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바로 소집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회주님이 돌아오시지 않으면 자체적으로 회의를 열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있다가 회의실로 오시면 되겠습니다.”

    태을선생이 석실 밖으로 나갔다.

    지휘동굴 안에는 여러 석실이 있었다.

    회의실은 지휘동굴 가장 안쪽에 있었다. 지휘부 고수들이 모이려면 최소한 일각 정도는 걸릴 것 같았다.

    당기는 그 시간도 기다리기 힘든 것 같았다.

    “어르신. 회의실로 함께 가시지요.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지휘부 고수들이 올 거예요.”

    “지휘부 고수? 몇 명 정도 되는가?”

    “오십 명 정도 돼요. 대부분 사천무림연합 소속인데, 아무래도 무공이 높은 분들이 많이 살아남았기 때문에 지휘부 고수 분들이 병력에 비해 많은 편이에요.”

    “그랬군. 어서 가지.”

    “네.”

    백자안이 당기를 따라 회의실로 향했다.

    당기는 백자안이 옆에 있는 것이 그나마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어르신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서장무맹 놈들의 병력은 그동안 계속 보강이 되어 여전히 백만에 가까운데, 우리는 고작 오백 명이에요. 제 생각에 처형장에는 적어도 놈들이 만 명은 데리고 올 것 같아요. 고작 오백 명으로 만 명을 무찌르고 포로들을 구출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가능하지.”

    “그게 정말인가요?”

    당기가 걸음을 멈추고 눈을 빛냈다.

    백자안이 너무 쉽게 말해 놀란 것 같았다.

    백자안이 껄껄 웃었다.

    “허허허. 걱정하지 말게. 놈들은 별것 아니니까. 서장무맹 놈들은 내게 맡기고 복사천회 무사들은 포로들을 구출하는 데만 신경 쓰도록 하게.”

    “아! 그럴 수만 있다면······ 하지만 어르신 혼자서 어떻게······?”

    “날 못 믿겠다는 것인가? 객잔에서 내 무공을 봤을 텐데······.”

    “그야 그렇지만······.”

    당기가 안색을 조금 붉히며 다시 회의실로 향했다.

    하지만 조금 전과 달리 안색이 어두운 것이 백자안을 못 미더워하는 것 같았다.

    얼마 후 도착한 회의실에는 벌써 오십여 명의 지휘부 고수들이 와 있었다.

    아무래도 비상 대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지휘부 고수들의 관심은 온통 백자안에게 향해 있었다.

    당기가 회주이긴 했으나 사실 그녀는 상징적인 인물에 불과했다.

    죽은 당문주 당길중의 명성 때문에 그녀를 구심점으로 삼은 것이었다.

    “이분은 무명노인이란 분으로 절세고수이세요. 그 무공은 추측하기 힘들지요. 이번 구출 작전을 펼칠 때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실 거예요.”

    당기의 말에 청성파 장로 신분인 정진도인(精進道人)이 언성을 높였다.

    “회주! 아직 구출 작전을 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 결정되지 않았소이다. 개인적으로 빈도는 이번 작전이 무리라고 생각하오. 병력이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고, 개별 무공 역시 우리가 절대 열세요. 물론 내일 처형될 분들이 모두 우리 동문 형제들인 것은 사실이오. 하지만 우리마저 개죽음을 당한다면 구심점이 완전히 사라져 사천성을 수복할 기회는 사라질 것이오.”

    “정진도인께서는 그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기서 숨어 지내자는 건가요?”

    “그건 아니오. 지금 정보에 의하면 사천성과 하남성을 제외한 나머지 성에서 자발적으로 저항 세력이 생기고 있다고 하오. 특히 은자림 고수 중 여태까지 직접 나서지 않았던 분들이 대거 강호에 출도를 했다고 하니 희망이 있소. 우리는 여기서 그분들이 병력을 모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합공을 가해야 하오. 그러지 않고 놈들의 유인작전에 걸려 섣불리 내일 처형장에 갔다가는 십중팔구 개죽음을 당할 것이오. 내 말에 틀린 점이 있소?”

    정진도인이 회의실에 앉아 있는 고수들을 둘러봤다.

    다들 안색이 무거운 것이 쉽게 반박을 못 하는 분위기였다.

    태을선생이 말했다.

    “정진도인의 말씀도 일리가 있소. 하지만 이곳에 있는 것도 한계가 있소. 놈들은 어떻게든 이곳을 알아낼 것이오. 지원 세력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는 뜻이오.”

    “그럼 군사께서는 어떻게 하자는 것이오? 정말 우리 병력으로 포로들을 구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확신은 할 수 없소. 하지만 여기 계신 무명노인께서 잠시 놈들을 막아준다면, 그 시간에 포로들을 구출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오.”

    태을선생이 다시 무명노인을 지목했다.

    정진도인이 발끈했다.

    “저분의 별호를 아는 사람이 이곳에 아무도 없소. 설마 저분이 삼의맹주 백자안 대협처럼 혼자서 수십만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이오?”

    “허허허. 이 늙은이를 너무 우습게 보는군.”

    백자안이 우수를 뻗었다.

    순간, 회의실에 있던 오십여 명의 지휘부 고수들의 신형이 한 자 이상 떠올랐다.

    “허억!”

    “으윽!”

    지휘부 고수들이 다급성을 내며 저항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제압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당기와 태을선생 두 사람뿐이었다.

    “역시!”

    태을선생이 매우 기뻐했다.

    백자안의 무공이 생각보다 훨씬 높은 게 증명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면 되었는가?”

    백자안의 물음에 정진도인이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승복하겠소.”

    “좋아.”

    백자안이 우수를 흔들어 무형 올가미를 풀어주자, 지휘부 고수들이 다시 제자리로 내려왔다.

    “정말 대단한 무공이세요.”

    당기의 칭찬에 백자안이 껄껄 웃었다.

    “허허허. 뭘 이 정도로 그러나.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내일 내가 놈들을 꼼짝 못 하게 만들 테니, 그때 사람들을 구하도록 하게. 그들을 모두 이곳으로 데려올 건가?”

    “네. 저희는 어르신만 믿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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