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161화 (161/250)

[제52장] 천축무맹 2

촌장 주재로 긴급 소집된 회의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산골 작은 마을이고 이렇다 할 무사들도 없었지만, 그들에게는 생사가 달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백자안 역시 모른 척 할 수 없어 회의에 참석했다.

촌장 역시 백자안의 도움을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상대는 서장무맹 무사들이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무려 백 명 정도.

서장무맹 무사들이 사천성 곳곳을 누비며 저항 세력을 제거하고 있는 것은 유명했다.

기본적으로 스무 명 정도가 한 조가 되어 움직였다. 이번에 백 명이 출동했다는 것은 혹시 있을지도 모를 적들을 완전히 토벌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했다.

“놈들이 어떤 경로로 우리 마을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아직 우리 마을의 정확한 위치를 몰라 여기까지 오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적어도 한 시진 후에는 도착할 가능성이 큽니다. 대책이 시급합니다.”

청성촌 호위대장의 말이었다.

그는 삼십 대 사내로 마을에서 유일하게 무공을 익힌 인물이었다.

그가 마을로 들어와 지내게 된 것은 일 년 전의 일로 원수를 피하고자 이곳에서 은신 중으로 알려졌다.

혹시 모를 마적들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고수가 필요했던 마을 사람들은 그를 환영했다.

무림인답지 않게 사람들에게 친절했으며 마을의 치안을 책임지기에 충분한 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실력이라는 것도 일반 마적들 대여섯 명 정도를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이지, 서장무맹 무사들에게까지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당장 호위대장 자신 또한 서장무맹 무사 한 명도 상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토로한 바 있었다.

“호위대장. 자네 실력으로 놈들을 처리하는 것은 무리겠지? 한두 명도 아니고 백 명씩이나 되니까 말이야.”

“물론입니다. 놈들의 무공은 개개인이 거의 일류에 가깝다고 들었습니다. 제 실력으로는 도저히 무리입니다. 대원들 역시 아직 무공이 숙달되지 못해 아예 상대가 되지 못할 겁니다.”

“아! 이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촌장이 탄식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마을의 군사 역할을 하고 있는 방일화가 말했다.

“놈들이 우리를 노리는 것은 아마도 우리 마을과 한 달 전 청성벌 싸움이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 때문일 거예요. 마을에 그때 전투에 참여했던 무사들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당시 우리 마을에 온 새로운 사람이라고는······.”

방일화가 안색을 굳히며 백자안을 쳐다봤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였지만 한 달 전 서장무맹 무사와 괴수들의 전사자 규모는 이십 만이었다.

당연히 그들을 제거한 무사들 역시 대규모로 생각했었다.

그 때문에 백자안이 그 전투와 관련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확인이 필요했다.

촌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백 무사라고 했었나? 혹시 한 달 전 청성벌 전투와 관련이 있나? 아까 놈들을 정탐하다가 다쳤다고 들은 것 같은데······.”

“저는 그 전에 놈들에게 당해 청성벌 전투에 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그가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것은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싸움에 관해서 설명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백자안이라는 사실을 밝혀야 했다. 그렇게 되면 소문이 퍼져 설령 자신이 떠난 후에도 계속 놈들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격이 임박한 상태라 당장 닥친 위기를 벗어나는 것이 중요했다.

촌장이 말했다.

“그랬었군. 아무튼 백 무사가 삼의맹 소속이니 도움을 기대하고 있네. 물론 아직 내상이 회복되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소만, 우리가 어떻게 해야 좋겠나?”

“으음, 제 생각에는 놈들과의 일전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 후의 일인데, 혹시 이곳 말고도 마을 사람들이 이주해 살 수 있는 곳이 있습니까?”

“있긴 있네. 우리는 본래 화전민이라 몇 년에 한 번씩 거주지를 옮겨 다니고 있었네. 이곳에서 제법 먼 곳이지만 산자락을 따라 사흘 정도 가면 이전 거주지가 있긴 하네. 안 그래도 일이 년 내로 그곳에 갈 생각이었네.”

“잘되었군요. 그곳은 안전합니까?”

“네. 워낙 깊은 계곡 속이라 외부인들은 전혀 알지 못할 것이네. 하지만 마을 사람들 수백 명이 한꺼번에 움직이려면 시간이 필요하네. 한 시진 안에 마을 사람들 모두 대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마을을 비울 수는 있겠지만 놈들의 추적을 따돌릴 수는 없을 게야.”

“좋습니다. 놈들은 걱정하지 마시고 지금 당장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 짐을 꾸리도록 하십시오. 비단 이번 일이 아니라도 현 시국에서는 더 깊숙한 곳에 거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니까요. 그렇게 최대 일 년 정도만 견디다 보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나? 우리 청성촌은 터전이 두 곳 이상이 되어야 살아갈 수 있다네. 한데 놈들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니, 백여 명이나 되는 놈들을 어떻게 상대할 생각인가?”

“걱정하지 마십시오. 놈들은 저 혼자 상대할 수 있습니다. 놈들을 제거해도 다시 지원 병력이 올 수도 있으니, 그전에 아까 말씀하신 곳으로 마을 사람들을 이주시키십시오.”

“아!”

촌장과 방일화, 호위대장 등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백자안의 말에 왠지 믿음이 갔다.

“저를 믿고 서둘러 주십시오. 제가 언제까지 여러분 옆에 있을 수 없으니까요.”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최소 사흘은 함께 있으려고 했지만,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서 한 말이었다.

하지만 결정권자라 할 수 있는 촌장은 아직도 완전히 믿지는 못하고 있었다.

믿음이 가긴 했으나, 백자안이 실제 보여준 무공이 없어서였다.

백자안이 하는 수 없이 옆에 놓여 있는 청동향로를 행해 우수를 뻗었다.

아직 몸이 덜 회복되었지만, 기본 내공은 복원된 상태였다.

백자안의 무형지기를 받은 청동향로가 그대로 녹아내렸다.

“아!”

“오!”

마을 사람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촌장 역시 매우 기뻐했다.

“알고 보니 대단한 고수였군. 자네 말대로 하겠네. 놈들을 물리친 후 꼭 한번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와주게.”

촌장이 새로 이주할 마을의 거처를 간단하게 알려주었다.

“알겠습니다. 다른 변수가 없다면 놈들을 제거한 후 바로 따라가겠습니다.”

“그렇게 해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걸세. 그럼 지금 바로 이주를 하겠네. 자네는?”

“저는 이곳에서 놈들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러니 한 시진 안에 모두 짐을 챙겨 떠나십시오.”

“알겠네. 자네만 믿겠네.”

* * *

한시진 후 청성촌.

백여 명의 서장무맹 무사들이 마을 어귀에 속속히 도착했다.

“이곳인가?”

“네. 대주님. 청성벌 인근 마을 중 아직 조사를 못 한 유일한 곳입니다.”

“일단 살아있는 것은 모조리 죽인다. 어차피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할 것 같으니, 아예 마을 자체를 불태우는 것이 좋겠군.”

“명을 받들겠습니다.”

서장무맹 무사들이 일제히 마을 안으로 진입했다.

이미 사천성 전역을 장악한 서장무맹이었다.

이런 산골 마을 공략에 어려움이 있을 수 없었다.

다만 청성산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그들 중 일부가 이곳에 온 것은 새로운 정보 때문이었다.

청성산의 한 지류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에 마을이 하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한 달 전 백자안에 의해 선발대와 성성이 부대가 궤멸되었을 당시 서장무맹 진영은 발칵 뒤집혔었다.

그 때문에 인근을 샅샅이 뒤졌음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가공할 무공을 지닌 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서장무맹주는 조사를 유보하고 성도 공격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그 때문에 조사가 늦춰지고 만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사천성 전역을 관할하게 되자, 다시 청성벌 전투 대패의 원인을 찾게 된 것이었다.

아직 그 세력이 남아 있다면 성도에 주둔해 있는 서장무맹 본진에도 큰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진상은 오리무중이었다.

무엇보다 그만한 병력이 중원 쪽에 없었다.

그 때문에 혹시 개인 전력이 아닌가 의심도 했지만, 그것 역시 아직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따라서 이제는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을 수도 있는 사람들을 몰살시키는 방향으로 굳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을에는 아무도 없었다.

급히 어디론가 떠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대주님.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온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으음, 마을 놈들이 그런 정보력이 있을 리가 없다. 필시 우리가 산 위로 올라오는 모습을 본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니 추적하면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수색대주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시 저쪽인가?”

수색대주가 산길 한쪽을 가리켰다.

그들이 올라온 길과 반대쪽으로 오히려 좀 더 산속 깊숙이 들어가는 길이었다.

그때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가 가리킨 길목 옆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바로 백자안이었다.

“웬 놈이냐?”

서장무맹 수색대 무사들이 백자안을 포위했다.

그들 모두 매우 놀란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 인기척도 없이 백자안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무명소졸이오. 서장무맹 무사들이오?”

“그렇다. 죽고 싶어 환장한 놈이구나. 감히 우리 앞을 가로막다니.”

수색대주가 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그 역시 백자안이 고수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기도는 없었지만 너무나 태연했기 때문이었다.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몇 가지 묻겠소. 성도가 함락된 것이 사실이오?”

“그렇다. 어찌 성도뿐이겠냐? 사천무림 전체가 우리 서장무맹 손아귀에 들어왔다. 이제 곧 강남무림 전체가 우리 지배하에 들어올 것이다.”

“천축무맹이 낙양을 장악한 것도 사실이오?”

“후후후! 그렇다. 천축무맹이 다른 마신 한 분의 도움을 받아 삼의맹 총단을 장악할 줄은 우리도 몰랐다. 겉으로는 천축무맹이 우리와의 동맹을 거절했었으니까. 하지만 보안을 위해서 그랬다고 나중에 알려주었지. 우리는 마신님들의 권고에 따라 천축무맹과 동맹을 체결하고 중원 무림을 남북으로 지배하기로 합의했다.”

수색대주가 말했다.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한 것인데, 그 이유는 자신도 몰랐다.

다만 백자안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마신들이라 함은 누구를 말하는 것이오?”

“우리 서장무맹을 뒤에서 봐주시는 서불마신님과 천축무맹을 다스리는 반야마신(般若魔神)님을 말한다. 두 분은 신선계 내에서도 유일하게 폐쇄진법을 뚫고 무림으로 오신 분들이지.”

“그랬군. 서불마신과 반야마신이 바로 백대마신에 속해 있는 마신들이오?”

“그렇다. 우리 맹주님과 천축무맹주 두 분이 그분들의 최종대리자가 되어 무림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또 그놈의 최종대리자로군. 알겠소. 내친김에 더 물어보겠소. 정말로 삼의맹 백삼십만 무사들이 천축무맹에 의해 대패를 당해 뿔뿔이 흩어졌소?”

“그렇다. 반야마신의 도움을 받아 전투 전에 삼의맹 무사들은 모두 산공독에 중독되고 말았지. 이후 백만 천축무맹 무사들이 총공격을 가했고, 놈들은 전멸에 가까운 대패를 당하고 불과 수천 명만 살아서 도주했다고 들었다.”

‘으음······ 사실이었단 말인가.’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섭혼술을 응용해 정보를 얻고 있었으나, 예상대로 촌장에게 들었던 말들이 대부분 사실이었다.

삼의맹이 해체되고 그 소속 무사들도 대부분 전사한 게 사실이라면 이 또한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서장무맹과 천축무맹에 대항해야 할 무림의 자산들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천하 각지에 여전히 무림인들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이전 삼의맹처럼 다시 거대한 세력으로 모이는 것은 당분간 힘들게 분명했다.

‘살아남은 사람이 그렇게 적을 리는 없다. 놈들이 과장했을 수도 있으니 미리 절망하지 말자.’

백자안이 안색을 회복했다.

“마지막으로 묻겠소. 혹시 삼의맹주 백자안 대협의 행방을 아시오? 맹주님의 가족 소식도 궁금하오.”

“백자안 그놈은 또다시 실종되었다. 마신들께서 체포령을 내리셨지. 본맹과 천축무맹 중 먼저 그놈을 잡는 쪽이 통합맹주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놈의 가족 소식은 나도 모른다. 낙양이 함락되었으니 그 가족들 역시 무사할 수 있겠느냐? 아마도 처참하게 죽었을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