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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160화 (160/250)

[제52장] 천축무맹 1

[제52장] 천축무맹

“으으······.”

신음과 함께 깨어난 사람은 바로 백자안이었다.

청성벌에서 서장무맹 선발대 십만무사와 성성이 십만 마리를 제거하고 은신할 곳을 찾던 그였다.

하지만 너무 기력이 소진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숲속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백자안은 정신을 잃기 직전을 떠올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가 누워있었던 곳은 아담한 한 방안이었다.

방안에는 백자안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옆에 수건과 물이 있는 것으로 봐서 얼마 전까지 자신을 보살핀 사람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백자안이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기운은 여전히 없었다. 하지만 거동은 가능해 보였다.

힘겹게 가부좌를 틀고 운공요상을 하려던 찰나.

방문이 열리며 노인 한 명과 소녀 한 명이 들어왔다.

“오! 깨어났구려.”

흰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 매우 기뻐했다.

옆에 있던 백의소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어디입니까? 어떻게 제가 이곳에?”

백자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몸은 괜찮은가? 자네가 깨어나지 않아 이대로 죽는 줄 알았네.”

“네. 거동은 가능합니다.”

“다행이군. 이곳은 청성산 인근에 있는 산골 마을로 청성촌(靑城村)이라고 하네. 숲속에서 정신을 잃고 있던 자네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바로 여기 있는 내 손녀딸이지.”

백의소녀가 얼굴을 조금 붉혔다.

십칠 팔세 정도로 보이는 그녀는 뛰어난 미색을 지니고 있었다.

산골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순수한 면이 돋보였다.

조금만 꾸미면 가히 악미미, 단목수련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아!”

백자안이 탄성과 함께 두 사람에게 감사를 표했다.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한데 제가 얼마나 누워있었습니까? 어제 저를 데리고 오신 겁니까?”

백자안이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그는 전황이 궁금해 가장 먼저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만약 하루가 지났다면 그사이 성도가 함락될 수도 있으므로 그 부분은 매우 중요했다.

“하루면 얼마나 좋겠나? 놀라지 말게. 자네가 정신을 잃고 깨어나지 못한 게 오늘로 딱 한 달이네.”

“네? 한 달이라고요?”

백자안이 깜짝 놀랐다.

하루, 이틀 길어야 사흘 정도로 생각했는데 무려 한 달이라니.

그동안 서장무맹과의 싸움이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이 앞섰다.

“어르신. 몇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서장무맹이 사천성을 침공한 사실을 아시지요?”

“물론이네. 놈들 때문에 지금 마을 사람들이 산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고 있네. 하지만 가끔 소식을 전해 듣고 있지.”

“아, 그럼 지금 전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현재 사천성은 서장무맹의 지배하에 들어갔네. 성도는 놈들에 의해 일찌감치 함락되었고 말이야.”

“아!”

백자안이 탄식했다.

우려했던 일이 기어코 터지고 만 것이었다.

하기야 자신이 정신을 잃은 기간이 너무 오래된 게 사실이었다.

“혹시 자네도 삼의맹 무사인가?”

노인이 긴장하는 표정을 지었다.

백자안은 노인의 표정에서 이번 전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음을 느꼈다.

하지만 굳이 숨길 필요도 없었다.

“네. 삼의맹 무사가 맞습니다. 청성산에 주둔하고 있던 서장무맹 놈들을 정탐하다가 공격을 받는 바람에······.”

“으음, 정말 무사였군. 나는 자네가 병장기를 차고 있지 않아 일반인인 줄 알았네. 하지만 상처가 깊어 무림인일 가능성도 생각했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게.”

노인이 전후 사정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한 달 전 손녀딸이 백자안을 발견하자 조부이자 마을 촌장인 자신에게 알린 것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그를 보살펴왔다는 것까지.

산 아래의 상황은 아까 말한 대로 서장무맹의 사천성 점령이었다.

비록 백자안에 의해 선발대와 괴수부대 이십만을 잃었지만, 아직 주력인 팔십만 무사들이 건재한 서장무맹이었다.

물론 그들 역시 처음에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선발대와 성성이들을 제거한 적이 보이지 않음을 깨달은 그들은 전격적인 성도 공격을 개시했다.

그 결과 불과 하루 만에 성도가 점령되고 만 것이었다.

그 과정에 아미파와 청성파, 사천당문 네 곳의 무사들은 거의 전멸에 가까운 참화를 당하고 말았다.

특히 아미파 장문인 의천사태, 청성파 장문인 무극진인, 사천당문 문주 당길중 세 사람이 서장무맹주 불사대불의 일장을 맞아 즉사했다는 사실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었다.

당시 불사대불은 의천사태, 무극진인, 당길중 세 사람의 합공을 받았는데, 단 일장으로 그들의 목숨을 끊어 승패의 분수령이 되고 말았다.

견고하기로 소문난 성도의 성문 역시 불사대불의 일장에 산산조각이 나고 만 것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성도를 장악한 서장무맹 본진 무사들은 빠르게 사천성 전 지역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사천성은 거의 완벽하게 서장무맹의 통치하에 들어가 있었다.

예외가 있다면 청성촌 같은 깊은 산골 마을 정도였다. 하기야 모두 합해야 백호도 안 되는 작은 마을까지는 아직 서장무맹의 힘이 전부 닿지는 않고 있었다.

물론 많은 마을이 노략질을 당한 것도 사실이었다.

따라서 약탈할 곳이 부족해지면 청성촌 같은 작은 마을도 그 대상이 될 가능성이 매우 컸다.

“혹시 낙양 총단에서 삼의맹 무사들이 지원을 왔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까? 성성이 괴수들에게 희생된 무사들 말고 2차로 파견된 백삼십만 무사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말도 말게. 나도 이야기만 들었는데 낙양을 떠난 백삼십만 무사들이 출정하자마자 대패를 당해 뿔뿔이 흩어졌다고 하네.”

“대패를 당하다니요? 서장무맹 놈들은 이곳 사천성에 있었는데 그 많은 무사를 누가 이길 수 있단 말입니까?”

백자안이 흥분했다.

서장무맹에 의해 사천무림이 점령된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자신이 정신을 잃었던 동안 별다른 지원 병력을 받지 못한 사천무림 세력이 열세에 빠지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2차로 지원을 온 삼의맹 무사들은 달랐다.

원래 자신이 이끌고 올 무사들로 현 무림세력의 절반 이상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한데 대패를 당해 뿔뿔이 흩어졌다니.

백자안은 믿기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나도 확실히는 모르네. 하지만 낙양을 떠나자마자 천축무맹 무사들의 공격을 받았다고 하더군. 서장보다 훨씬 떨어져 있는 천축 무림인들이 어떻게 낙양 인근까지 갔는지 모르겠으나, 출정하고 얼마 안 되어 공격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고 하네.”

“그럼 지금 낙양 삼의맹 총단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천축무맹 놈들이 장악했다고 하네. 이후 놈들은 서장무맹처럼 빠르게 하남성 전 지역을 자신들의 관할 하에 두었다고 하네. 쉽게 말해 서장무맹은 이곳 사천성을, 천축무맹은 하남성을 얻은 것이지. 이제 두 곳 모두 교두보 확보에 성공했으니 서서히 그 세력권을 넓혀 갈 것이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일단 서장무맹이 강남을 천축무맹이 강북을 맡기로 합의가 되었다고 하네.”

“어찌 그런 일이······.”

백자안이 탄식했다.

천축무맹의 등장은 실로 의외였다.

하지만 촌장이 거짓말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사실 아무리 이곳이 산골마을이라고 해도 모두의 관심사에 해당하기 때문에 소식이 전해졌을 가능성이 컸다.

“촌장님. 좀 더 구체적이고 많은 정보를 듣고 싶습니다. 계속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내가 아는 것은 이것이 전부네. 산 아래로 내려가 필수품을 사고 돌아올 젊은이들이 조금 있다가 올 것이니 그때 직접 물어보게. 나 또한 그들에게 정보를 얻고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그의 안색은 다시 평온해지고 있었다.

‘이미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회복을 어느 정도 한 후 산에서 내려간다. 그래야 어떤 경우에도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 결국,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실력이니까.’

촌장과 함께 있던 백의소녀 방일화(方一花)가 말했다.

“시장하시죠? 식사부터 내올게요.”

“감사합니다.”

백자안이 미소 지었다.

산골 소녀의 순수함에 조급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졌다.

한 달간의 공백 때문에 다시 한번 무림 상황이 엉망이 되었지만, 이전에도 여러 번 겪었던 일이었다.

걱정되는 것은 가족들과 친분 있는 사람들의 생사였다.

‘초조해하지 말자. 하지만 아무래도 사흘 안에는 산에서 내려가야겠구나. 그동안 최대한 많이 회복해야 한다.’

얼마 후 방일화가 밥을 차려오자 백자안은 맛있게 먹었다.

역시 식사를 하니 기운이 생기는 것 같았다.

촌장이 물었다.

“무림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말고 완쾌될 때까지 우리 집에서 쉬도록 하게.”

“네.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닐세. 사실 자네를 처음 봤을 때 느낌이 달랐네. 서장무맹이 청성산까지 장악했을 때라 당연히 자네도 무림인으로 생각했어야 했는데, 기이하게도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네. 몸에 병장기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지만, 지금 다시 보니 역시 자네는 특별함이 있는 것 같네. 내 비록 지금은 낙향하여 이런 산골에 있지만 젊었을 적에는 역술을 공부한 적이 있었네. 내가 보기에 자네는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네.”

“과찬이십니다. 저는 무명소졸일 뿐입니다. 하지만 할 일이 있어 이곳에서 계속 있을 수는 없을 듯합니다. 사흘 후 산에서 내려갈 생각이니 그렇게 알고 계십시오.”

“알겠네. 자네가 무림인이라니 해야 할 일도 무림을 위한 일이겠지. 떠나기 전에 우리 마을 젊은이들의 무공이나 지도해주게.”

“무공 말입니까?”

“그러하네.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지금도 청성산에는 놈들의 거점이 있네. 비록 본진 무사 대부분이 성도에 있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천 명 정도 청성산에 남겨두었다고 하더군. 그래서 그놈들이 청성산 일대를 관리하고 있지. 혹시라도 놈들 중 한두 명이라도 우리 마을로 올라온다면 그거야말로 큰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마을 자체적으로 호위대를 만들었네. 스무 명에 불과하지만, 힘을 합치면 놈들 중 한두 명 정도는 상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혜를 일부라도 갚고 갈 수 있어 그 역시 마음이 편한 것 같았다.

하지만 완전히 마음이 평온하지는 않았다.

특히 낙양 총단 함락 소식을 듣고 가족들의 생사가 걱정되었다.

그리고 삼의맹 무사들이 대패를 당했다면 과연 어느 정도 병력 희생이 있었는지도 우려가 컸다.

얼마 후 식사를 마쳤을 때.

방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촌장님! 큰일 났습니다.”

덜컹.

촌장이 방문을 열자, 청년 한 명이 급히 들어왔다.

아무래도 산 아래로 가서 생활필수품을 사 오면서 무림 소식도 전해준다는 그 청년 같았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네. 마을로 돌아올 때 서장무맹 놈들이 산 위로 올라오는 것을 봤습니다.”

“뭣이라고? 그게 정말인가?”

“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총 몇 명이던가? 호위대 대장에게는 보고했나?”

“네. 바로 보고했습니다. 놈들의 수는 대략 봐도 백 명은 넘어 보였습니다. 아마도 탐문을 통해 산 위에 우리 마을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습니다.”

“놈들이 찾는 것은 이번에도 한 달 전 있었던 청성벌 전투 때문이겠지?”

“놈들이 유일하게 대패한 전투인지라 그 조사를 철저히 하려는 것 같습니다.”

“큰일 났군. 어서 호위대장을 불러오게.”

“네. 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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