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장] 서불마신 3
“존명!”
칠뇌서생이 품속에서 검은 깃발을 높이 든 후 성성이 부대를 향해 소리쳤다.
“놈을 죽여라!”
“클클클!”
“클클클!”
십만에 달하는 성성이들이 단숨에 서장무맹 무사들 앞으로 나왔다.
자연스럽게 서장무맹 무사들은 뒤로 빠졌다. 그 동작이 매끄러운 것이 아무래도 많은 연습이 있었던 것 같았다.
백자안은 여전히 태연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복수심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중원무맹 무사 십만 명이 놈들에게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한낱 괴수 따위에 그렇게 많은 목숨이 희생되다니. 모두가 내 잘못이다. 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저놈들을 모조리 제거해야 한다.’
백자안이 검에 내공을 담았다.
일단 최대한 성성이들을 제거하다가 때를 봐서 독 기운을 살포해 서장무맹 무사들까지 제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단 성성이 괴수의 개별적 능력부터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마침 가장 먼저 뛰어나온 성성이 한 명이 앞발을 높이 들어 백자안을 후려치고 있었다.
쐐애액.
백자안이 흠칫했다.
그것은 속도 때문이었다.
곰 같은 덩치와 달리 그 빠르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백자안이 좌장으로 장풍을 날렸다.
파앙.
가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공격을 가했던 성성이가 뒤로 십여 장이나 날려갔다.
한데 죽지 않고 곧바로 일어나는 게 아닌가.
백자안이 깜짝 놀랐다.
물론 전력을 다한 공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되겠다고 생각해 날린 장력이었다.
한데 크게 다치지 않고 일어나는 것을 보고 위기감을 느낀 것이었다.
‘놀라운 방어력이다. 저 정도면 대량살상을 장담할 수 없다. 검을 사용해 지구전을 펼쳐야 내공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다.’
백자안이 검을 고쳐 잡았다.
한 번의 공격으로 몰살시키려는 계획을 버리고 지구전 전략으로 급선회한 그였다.
사실 그가 익힌 무명심법은 약간의 내공 소모는 즉시 회복할 수 있는 특성이 있었다.
백자안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장기전을 택한 것이었다.
“클클클!”
성성이 십여 마리가 동시에 경력을 발출했다.
그들이 날린 경력은 장력과 비슷한 것으로 따로 괴수력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는 괴수 역시 내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괴수력을 지닌 괴수 자체가 중원에서는 극히 드물었다.
“흥!”
백자안이 검을 휘둘러 반원형의 검기를 날렸다.
파파파!
검기가 괴수력을 막아내며 그대로 나아가 성성이들의 가슴을 강타했다.
“크윽!”
“케엑!”
성성이들의 가슴에 녹색 피가 솟구치며 썩은 짚단처럼 쓰러졌다.
공격이 통하는 것을 본 백자안이 신형을 날려 성성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검은 마치 풍차처럼 회전하고 있었다.
검에서 나온 검기가 보호막을 형성함과 동시에 날카로운 공격수단이 되었다.
검기막에 성성이들이 닿을 때마다 몸이 그대로 터져버렸다.
“케엑!”
“크윽!”
성성이 수십 마리가 비명과 함께 쓰러져 즉사했다.
환희대불과 칠뇌서생이 안색을 굳혔다.
“역시 보통 놈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성성이들의 몸은 도검불침인데 속절없이 당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놈이 가진 검이 보검도 아닌데 말입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칠뇌서생의 물음에 환희대불이 대답했다.
“일단 지켜본다. 놈이 아무리 무공이 높아도 십만 괴수를 혼자서 상대할 수는 없다. 고작해야 천 마리 정도일 것이다. 내공이 모두 소모되면 그때 내가 직접 놈의 수급을 취한다.”
“하기야 놈은 지금 독 안에 든 쥐입니다. 혼자서 성성이 십만 마리를 모두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하지만 놈의 공격에 당하는 성성이들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기 보십시오.”
칠뇌서생이 앞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원형 검기막에 휩싸인 백자안의 움직임에 따라 성성이 수십 마리가 빠르게 쓰러지고 있었다.
쓰러진 성성이는 하나같이 몸뚱이가 터져 있거나 목이 날아가 있었다.
하지만 성성이들의 공격은 계속되고 있었다.
동료들의 피를 봐서일까.
청성벌은 놈들이 지르는 괴성으로 떠나갈 듯했다.
서장무맹 무사들 역시 백자안의 무공에 적잖이 놀라워하는 표정이었다.
이미 성성이들의 괴력을 직접 목격했었기에 더욱더 그랬다.
그러는 동안 성성이들의 사체는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
처음 한계치로 생각했던 천여 마리가 이미 제거된 상황.
반면 백자안의 기도는 처음과 크게 다름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탄력을 받았는지 보호막의 크기가 두 배로 커져 있었다.
원형 보호막은 마치 공처럼 대지를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그것에 부딪히는 성성이들은 어김없이 터져나갔다.
“이대로 계속 두고 봐도 되겠습니까? 자칫하면 성성이 부대 전력이 매우 약화할 것 같습니다.”
“놈을 죽인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오. 지금 보니 저놈은 절대 무명소졸이 아니오. 어쩌면 백자안 그놈이 역용했을지도 모르오.”
“하기야 백자안 그놈이 아니라면 저 정도 무위를 가졌을 리가 없겠지요. 한데 진짜 백자안이라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계속 두고 봅시다. 놈이 백자안이라면 오히려 더 잘된 일이오. 놈이 한 번에 성성이들을 죽일 수 없는 것이 입증되었으니, 설사 일만 마리의 성성이들이 희생되더라도 놈은 반드시 지칠 것이오. 그때를 노려 총공격을 가한다면 놈을 죽일 수 있소. 다만 낙양에 있던 놈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올 수 있었는지 그게 궁금할 뿐이오.”
“어쩌면 특수 이동대법을 익혔을지도 모르지요. 은둔회 반선들과 교류가 있던 놈이라고 서불마신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군. 시간은 우리 편이니 계속 지켜봅시다. 놈은 반드시 한계에 달할 것이오.”
“알겠습니다.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칠뇌서생이 고개를 숙인 후 다시 백자안을 봤다.
상대가 백자안이라고 생각하니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한편 백자안은 지금 거의 무아지경이 되어 성성이들을 제거하고 있었다.
소모된 내공은 즉시 회복되었다.
그 양이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천력이었다.
천력의 특성상 그 회복력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계속 간다. 시간 역시 내게 불리하지 않다. 다만 조금 더 속도를 낼 필요는 있겠군.’
백자안이 검기막 바깥으로 검기를 날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보호막에서 떨어져 있던 성성이들 역시 머리가 터지며 즉사하기 시작했다.
가히 살인검기였다.
퍼퍼퍽!
성성이들의 머리가 박살 나며 이제는 한 번에 수백 마리가 쓰러졌다.
“벌써 일만 마리가 죽었습니다. 하지만 놈은 지칠 줄을 모르는군요.”
칠뇌서생이 안색을 굳혔다.
“다른 방도가 있겠소?”
환희대불 역시 긴장된 표정이었다.
백자안을 죽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괴수부대의 전력 유지 또한 매우 중요했다.
앞으로 중원과 동방, 왜국 무림을 정복하고 다스리기 위해서는 성성이들의 도움이 절실한 것이다.
한데 벌써 그 일할 이상의 병력이 소모되었기에 초조해지는 게 당연했다.
“제 생각에는 일단 철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청성산으로 돌아가 맹주님께 이 사실을 보고하고 다시 놈을 공격하는 겁니다. 이대로 두면 성성이들을 모두 잃게 될 겁니다. 괴수 부대가 사라지면 설사 나중에 백자안 저놈을 죽여도 우리 서장무맹의 대업에 큰 지장을 초래할 겁니다. 삼의맹 총단을 장악해도 천하 각지에 있는 잔당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괴수부대가 꼭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소. 어차피 괴수는 신선계에 많이 있소. 서불마신께서도 이해를 해주시고 또 다른 괴수들을 보내주실 것이오. 괴수가 어려우면 요괴들도 괜찮을 것이고 말이오.”
환희대불이 눈을 빛냈다.
아직은 이상이 없어 보이지만 곧 백자안의 움직임이 둔해지리라 확신하는 그였다.
‘놈이 완전히 기진맥진했을 때 직접 목을 벤다면 나의 명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다. 어찌 이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
환희대불이 소리쳤다.
“놈이 도망가지 못하게 우리도 전진해서 포위망을 구축한다!”
“존명!”
서장무맹 선발대 무사 십만이 일제히 앞으로 나갔다.
이미 성성이들에게 포위를 당한 백자안이 도주하지 못하도록 이중으로 포위망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후후후! 다 잡은 고기를 막판에 놓칠 수 없지.’
환희대불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백자안을 쳐다봤다.
검기막 안에 있어 자세히 볼 수는 없었으나 그 움직임이 조금 둔화한 것처럼 느껴졌다.
“좀 더 앞으로 가라. 놈이 흔들리고 있다. 절대 도주하지 못하도록 하라!”
기세가 오른 환희대불이 다시 소리쳤다.
백자안의 가공할 무위 때문에 약간 주눅이 들어있던 서장무맹 무사들이 다시 다가갔다.
백자안이 그 모습을 보고 눈을 빛냈다.
‘독 기운을 발산할 수 있는 충분한 거리다. 성성이들이 너무 많아 이대로 계속 지구전을 펼치는 것도 무리가 올 수 있으니, 모험을 해야겠다.’
백자안이 검봉을 통해 독 기운을 뿜어냈다.
독 기운은 금세 안개가 되어 청성벌 전체로 퍼져나갔다.
워낙 광범위하게 퍼져나가 서장무맹 무사들이나 성성이들이 피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아니! 저것은?”
환희대불이 놀라자, 칠뇌서생이 급히 소리쳤다.
“심상치 않습니다. 혹시 독이 아닐까요?”
“독?”
환희대불이 놀라며 자신의 몸을 살폈다.
이미 독 안개는 청성벌을 가득 메워 그 역시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별 이상은 없었다.
이는 환희대불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서장무맹 무사들과 성성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놈이 속임수를 쓰려는 것인가? 괜히 놀랐군.”
“저놈이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이제 한계에 달한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제 한시진도 더 버티지 못할 겁니다.”
칠뇌서생의 말에 환희대불이 고개를 저었다.
“한시진은 너무 긴 것 같소. 반시진 안에 놈이 쓰러지길 기대하고 있소.”
“그럴 수도 있겠네요.”
칠뇌서생이 불안한 표정으로 백자안을 쳐다봤다.
조금 동작이 느려졌던 백자안은 이제 공격을 멈추고 그대로 서 있었다.
벌써 이만에 가까운 사망자를 냈던 성성이들도 이제는 두려운지 공격을 가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였다.
백자안이 온몸에서 금빛을 뿜어냈다.
바로 팔대무공 중 가장 위력이 강한 지존금광이었다.
번쩍.
금광이 독 안개와 섞이면서 엄청난 빛을 발산했다.
동시에 서장무맹 무사들과 성성이들의 몸에 들어가 있던 독이 발작하기 시작했다.
“크윽!”
“켁!”
서장무맹 무사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성성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십만에 가까운 병력 모두 큰 타격을 입고 쓰러지고 있었다.
환희대불의 안색이 굳어졌다.
“어찌 이런 일이······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으으······ 놈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지독한 독······.”
칠뇌서생이 말을 다 잇지 못하고 피를 한 사발 정도 토한 후 쓰러졌다.
환희대불이 놀라서 보니 이미 칠뇌서생은 숨져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무사들 대다수 역시 쓰러지고 있었다.
마치 둑이 무너지듯 한번 시작된 죽음은 끝이 없었다.
각자 공력에 따라 시차가 조금 있었지만, 독에 당한 무사들과 성성이들이 썩은 짚단처럼 쓰러졌다.
“이런 개 같은 일이······.”
환희대불이 분노하며 백자안을 향해 다가갔다.
환희대불 자신은 워낙 공력이 심후해 아직 독이 심장에 침투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쓰러지기 전에 백자안을 죽이려는 것이었다.
물론 운이 좋으면 백자안의 품속에서 해약을 발견할 생각도 있었다.
백자안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환희대불을 쳐다봤다.
환희대불을 제외한 서장무맹 선발대 무사들과 성성이들은 이제 모두 쓰러져 숨을 거둔 상태였다.
백자안 자신이 생각해도 놀라운 결과였다.
사실 그가 독 기운에 이어 지존금광까지 펼친 것은 큰 모험이었다.
독 기운을 발산할 때 순간적으로 그 위력을 강화할 방법이 떠올라 즉흥적으로 한 것이었다.
사실 원래는 독 기운 발산의 방법으로 지존금광을 펼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독 기운의 영향권 밖으로 도주할 사람이 생길 것을 우려해, 일부러 시차를 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제대로 적중했다.
사실 많은 무사와 성성이들이 독 안개를 대하고 경계를 했었다. 하지만 별 이상이 없어 그 영향권 밖으로 도망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강력한 지존금광을 펼침과 동시에 독의 발작까지 초래하니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공격이 된 것이었다.
다만 백자안이 아쉬워한 부분이 바로 환희대불이었다.
어떻게든 적을 전멸시키려다 보니 만만치 않은 고수인 환희대불을 고려하지 못했다.
원래는 힘을 안배해 놈에게 부분적이지만 공격을 집중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결과 독이 퍼지는 속도가 다른 자에 비해 매우 느려진 것이다.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지금 그의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내상을 입은 것은 아니지만 짧은 시간에 내공을 극한으로 발산한 때문이었다.
무려 이십만 병력이었다.
그들을 한 번의 공격으로 제거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비례하여 엄청난 내공 소모가 있게 마련이었다.
이는 천력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아직 지성에 도달하지 못한 백자안으로서는 천력 역시 무궁무진한 힘이 아니었다.
‘일장! 일장으로 놈을 죽여야 한다. 하지만 이후에 나는 정신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언제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 아직 서장무맹 본진 무사들이 남아 있는데 걱정이 크구나.’
백자안이 들고 있던 검에 내공을 다시 실었다.
장력 대결을 하기에는 몸의 상태가 너무 좋지 못했다.
차라리 검을 날려 환희대불을 죽일 생각이었다.
마침 환희대불 역시 아직 겁이 나는지 주춤하며 철퇴를 들고 있었다.
“백자안! 나는 다 알고 있다. 네놈이 이미 기진했다는 것을. 머리통을 날려주마. 이 많은 수하와 성성이들이 네놈 손에 죽었으니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목숨을 취한 것은 그대들이 먼저였소.”
“잔말 말고 내 철퇴나 막아봐라.”
환희대불이 철퇴를 빙빙 돌리더니 그대로 백자안을 향해 던졌다.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파공성으로 인해 귀가 따가울 정도로 대단한 위력이었다.
백자안 역시 최후의 힘으로 검을 날렸다.
꽈아앙.
폭음과 함께 검이 철퇴를 산산조각내며 환희대불의 목까지 꿰뚫어 버렸다.
쿵.
환희대불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져 절명했다.
이제 청성벌에 남은 생존자는 백자안 한 명뿐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아직 정신을 잃지 않고 있었다.
백자안이 비틀거리며 청성벌 옆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안색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져 있었다.
‘정신을 잃기 전에 아무도 발견할 수 없는 곳으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