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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158화 (158/250)
  • [제51장] 서불마신 2

    서장무맹 태상장로 환희대불(歡喜大佛).

    그는 십만 선발대의 대장직을 맡고 있었다.

    두두두.

    십만 무사가 말을 타고 청성벌을 지나가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뒤따라 달려가는 성성이 부대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딱히 경공술을 발휘하지 않고 뛰어가는데도 전혀 선발대 무사들에게 뒤처지지 않았다.

    환희대불을 보필하기 위해 함께 출정한 서장무맹 부군사 칠뇌서생(七腦書生)이 말했다.

    “태상장로님. 맹주님이 선발대로 하여금 성도 공격을 명하신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옆에서 함께 말을 달리던 환희대불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난들 알겠소? 아마도 성도 점령 정도는 우리 선발대에 맡기시려는 게 아니겠소? 물론 성곽에 도착하면 성성이 부대부터 침투시켜야 하겠지만 말이오.”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성이 부대의 지휘권을 태상장로께 맡긴 것은 괴수들만으로 성도를 점령하라는 뜻이지요. 따라서 굳이 무사들을 앞에 세울 필요가 없을 겁니다. 지금은 진군 도중이라 성성이들을 뒤로 배치했지만 말입니다.”

    “알고 있소. 성도에 도착하면 칠뇌서생이 작전을 짜서 공격 명령을 내리도록 하시오. 나는 단지 사전 승인만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한데 성성이들이 말을 잘 들을까 걱정입니다. 워낙 포악한 놈들이라, 서불마신께서 우리 서장무맹 지휘부의 명을 철저히 듣도록 특수 대법을 펼쳐두었다고는 하지만 불안한 게 사실입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이미 무림맹 십만 무사를 궤멸시키면서 입증이 되었으니까. 나름 고수라 할 수 있는 천수노인과 영호광 두 놈이 성성이 십여 마리의 포위 공격에 제대로 저항도 못 하고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을 우리 모두 목격하지 않았소?”

    “그렇긴 합니다. 사실 당금 무림에서 우리 서장무맹이 경계해야 할 사람은 단 한 명뿐이지요. 그게 바로 누구인지 아십니까?”

    “물론이오. 삼의맹주 백자안이 아니오? 놈은 혼자서 반선 다섯 명을 죽인 놈이오. 만약 놈이 나타난다면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될 것이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놈이 나타나려면 앞으로 최소한 사흘은 더 있어야 할 겁니다. 그동안 성도를 점령하면 설사 놈이 나타나도 양민들을 인질 삼아 방어할 수 있을 겁니다.”

    “어찌 방어만 할 수 있겠소? 성성이 괴수들로 하여금 놈을 찢어 죽이게 하면 될 것이오. 아니면 그때쯤이면 맹주께서도 성도에 오실 것이니, 직접 놈을 처단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오.”

    “옳은 판단이십니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서불마신께서 직접 놈을 제거하는 겁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있겠소? 하지만 신선계 문이 닫히는 바람에 서불마신께서도 아직 다시 나오지 못하고 있어 그게 아쉬울 뿐이오.”

    “하지만 일시 현신할 방법이 있을 겁니다. 이번에 봉인이 풀린 백대마신 중 가장 이동이 자유로운 분이 서불마신님이시니까요. 분명 지금 상황을 주시하고 있으실 테니, 위기의 순간 나타나 백자안 그놈을 제거하실 겁니다.”

    “하하하! 그렇다면 지금 내가 죽여야 할 놈들은 사천당문 문주와 아미파 장문인, 그리고 청성파 장문인 정도가 되겠군.”

    “네. 성성이들이 고수들만을 꼭 집어 공격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니, 태상장로께서 그자들을 제거해 주시는 게 성도 점령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수장들이 제거되면 그 수하들은 오합지졸이 될 게 분명하니까요. 아! 저기 한 사람이 서 있군요.”

    칠뇌서생이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청성벌 끝부분에 한 사람이 담담히 서 있었다.

    손에는 검을 들고 있어 적대적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십만 무사와 십만 괴수 도합 이십만 병력을 막아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숫자였다.

    단 한 사람.

    먼지와도 같아 무시하고 그냥 밟고 지나가도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그를 본 환희대불이 안색을 굳혔다.

    포달랍궁 출신인 그는 무공도 막강하지만 안목이 대단한 것으로 유명했다.

    상대가 고수인지 직감적으로 알아차리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멈춰라!”

    환희대불이 철퇴를 높이 들자, 선발대 무사들이 일제히 속력을 줄였다.

    그 바람에 거대한 먼지가 다시 피어올라 청성벌을 가득 메웠다.

    그들을 가로막은 사람은 바로 백자안이었다.

    그는 모든 내공을 끌어올린 상태였다.

    일반 사람들이 볼 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지금 단 일검에 이십만 병력을 몰살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그게 실제 가능할지는 그 역시 확신이 없었다.

    특히 수중에 지존검이 없는 것이 변수였다.

    천마검도 없어 대량살상에 큰 도움이 되는 천마룡도 만들 수 없었다.

    다만 지난 석 달간 깨달음으로 인해 무공의 발산 방법에도 큰 진보가 있었다.

    그 덕분에 상황에 맞게 가장 효율적인 공격 방법을 임기응변식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백자안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바로 독술이었다.

    무저곡을 빠져나오면서 흡수한 독 기운이 아직 그의 몸속에 있었다.

    물론 내공으로 변환이 된 상태지만, 언제든 다시 독 기운으로 되돌릴 수 있었다.

    백자안은 내공 소모를 감수하고 그 독 기운을 마치 안개처럼 뿌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독 안개의 양은 청성벌을 가득 채우고도 남음이 있어서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방법이었다.

    다만 독 안개를 광범위하게 살포하는 그 자체에 막대한 내공이 필요했다.

    ‘조금만 더 다가오면 그때 살포한다.’

    백자안이 독 기운을 오른손 장심에 모은 후 곧바로 검에 담았다.

    이제 검기를 뿌리면 독 안개로 변해 서장무맹 무사와 괴수들을 휩쓸 것이었다.

    한데 그 바로 직전 서장무맹 무사들이 진군을 멈췄다.

    단 한 번에 몰살시키기 위해서는 좀 더 백자안 쪽으로 와야 했다.

    아니면 자칫 살아남은 서장무맹 무사나 괴수들에게 오히려 자신이 당할 수도 있었다.

    전력을 다해 독 기운을 발산한 후 백자안이 정신을 잃는다면 단 한 명의 적이라도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웬 놈이냐?”

    칠뇌서생이 소리쳤다.

    그 역시 이제는 백자안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백자안 역시 서두르지 않았다.

    “본인은 중원 무림인이오. 무명소졸이라 따로 별호도 없소.”

    “하하하! 별 미친놈 다 보겠네. 태상장로님. 별것 아닌 놈 같습니다.”

    “그런 것 같소. 딱 봐도 기가 느껴지지 않으니. 하기야 어딜 가나 저런 미친놈이 한두 명씩은 꼭 있게 마련이지.”

    환희대불이 껄껄 웃었다.

    혹시 상대가 백자안이 아닌가 싶어 급히 진격을 멈추게 한 것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무명소졸이 아닌가.

    게다가 들고 있는 검도 볼품이 없었다.

    “칠뇌서생. 그래도 용기 있는 놈이니 우리도 무사 한 명을 보내 죽이도록 하시오. 떼로 공격했다가 자칫 소문이라도 나면 곤란하니까.”

    “좋은 생각이십니다. 향후 중원 무림이 정복되면 태상장로께서 다스리게 될 테니, 지금부터는 체면도 생각하셔야지요.”

    “하하하. 아직은 먼 이야기요. 사실 나는 중원보다 동방 쪽을 생각하고 있소. 그곳이 살기 좋다고 들어서 말이오.”

    “하기야 지금 동방 무사 대부분이 삼의맹에 소속되어 이곳 중원에 있으니, 놈들을 몰살시킨 후 곧바로 동방에 들어가면 무혈입성이 가능할 겁니다. 태상장로께서는 벌써 큰 그림을 그리고 계셨군요.”

    “계획은 세웠으나 앞으로 칠뇌서생의 도움이 필요하오. 중원, 동방을 정복한 후 왜국까지 접수할 것이니, 맹주께 잘 말씀드리면 칠뇌서생이 왜국을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오.”

    “제가 그럴만한 역량이 되겠습니까?”

    “무슨 소리요? 내 이미 칠뇌서생 그대의 무공이 경지에 달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맹주께서 그대를 내게 붙여준 것 역시 그 높은 무공 때문이 아니오?”

    “과찬이십니다. 일단 저 미친놈부터 처리하겠습니다.”

    칠뇌서생이 옆에 있는 수하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그 수하가 다시 수하에게 눈짓하고 그렇게 계속 눈짓이 이어졌다.

    그렇게 해서 최종 선택된 사람이 서장무맹의 말단무사였다.

    다만 덩치가 보통 사람보다 배는 컸다.

    “놈을 죽여라!”

    “존명!”

    말단무사가 고개를 숙인 후 기다란 창을 들었다.

    그는 창술을 익힌 자로 사실 말단무사로 있기에는 아까운 인재였다.

    직속상관이 그 점을 잘 알고 변수를 줄이기 위해 선택한 것이었다.

    “죽어라!”

    말단무사가 빠르게 다가오며 창을 그대로 앞으로 내질렀다.

    말을 탄 채였기 때문에 그 속도가 매우 빨랐다.

    백자안은 검을 수직으로 세운 채 기다렸다.

    곧이어 말단무사의 창이 그의 복부에 다가오자, 그대로 검을 내리쳤다.

    쩍.

    마치 대나무처럼 창이 두 쪽으로 나뉘며 동시에 말단무사의 몸뚱이 역시 둘로 양단됐다.

    “크윽!”

    창을 자른 검에서 검기가 뻗어 나와 무사의 몸뚱이를 자른 결과였다.

    쿵쿵.

    두 쪽으로 나뉜 몸이 각각 시차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저놈이!”

    죽은 자가 속해 있던 조의 조장이 검을 들고 빠르게 나아갔다.

    백자안이 이번에는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순간, 반원형의 검기가 원반처럼 날아가 조장의 몸을 두 동강 냈다.

    피하기에는 너무 날아오는 검기의 속도가 빨랐다.

    결과만 보면 조금 전 죽은 자신의 수하와 큰 차이가 없었다.

    “제법 하는 놈이군. 뭣들 하느냐? 놈을 죽여라!”

    칠뇌서생이 소리쳤다.

    아직 큰 걱정은 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백자안의 무공이 대단해봤자 합공을 막아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빗나갔다.

    십여 명이 일제히 병장기를 들고 백자안을 공격했으나, 이번에도 검기에 의해 두 쪽이 나 모두 절명했다.

    조금 전과 다른 점은 반원형의 검기가 좀 더 커졌다는 것뿐이었다.

    “네놈이! 정말!”

    칠뇌서생이 분노하며 옆에 있는 서장무맹 장로 한 명에게 말했다.

    “만살노인(萬殺老人)!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소.”

    만살노인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서장무맹 장로 출신으로 이번에 태상장로 환희대불을 보좌하기 위해 특별히 함께 출정했다.

    물론 만살노인 말고도 선발대에는 장로급 고수가 수십 명 있었으나, 그의 무공이 가장 높다고 알려져 있었다.

    다시 말해 선발대를 이끄는 환희대불 다음가는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다른 무사들과 달리 서두르지 않았다.

    “중원에도 고수가 있었군. 그 정도면 중소문파 장문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시 우리 서장무맹 무사들 때문에 멸문된 문파의 장문인인가?”

    “그렇지는 않소. 하지만 그대들에 의해 희생된 무사들의 복수를 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소.”

    “그랬군. 하지만 조금 전 네놈 손에 죽은 무사들은 무공이 변변찮은 놈들이다. 나는 네놈이 나까지 죽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살노인이 우수를 들었다.

    “네놈이 용기가 있다면 나와 장력 대결을 벌이지 않겠느냐? 장력 대결이야말로 가장 공평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말이 너무 많은 것 같소. 수락할 테니 어서 시작합시다.”

    “거만한 놈! 박살을 내주마.”

    만살노인이 자신의 독문장법인 만살장(萬殺掌)을 날렸다.

    쏴아아.

    백자안 역시 담담히 일장을 날렸다.

    꽈앙.

    폭발음과 함께 먼지가 일었다.

    그리고 이내 터지는 비명.

    “크윽!”

    서장무맹 무사들이 놀라서 보니 만살노인이 배에 큰 구멍이 난 채 죽어 있었다.

    환희대불이 안색을 굳혔다.

    “보통 놈이 아니다. 안 되겠군. 성성이 부대를 출동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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