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156화 (156/250)
  • [제50장] 서장무맹 3

    사천성 성도.

    갑작스러운 서장무맹의 침공 때문인지 관도에는 바쁘게 움직이는 무림인들로 가득했다.

    단 하루 만에 사천성 서쪽 문파들이 대부분 멸문된 상황.

    백만에 달하는 서장무맹 무사들의 기세는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곧바로 사천성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당문과 아미파, 청성파 세 곳을 중심으로 사천무림연합이 결성되었다.

    사천무림연합의 총단은 성도에 있는 당문으로 결정되었다.

    당문 취의청.

    백여 명의 지휘부 고수들이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회의를 열고 있었다.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사람은 당문의 문주인 당길중(唐吉中)이었다.

    그의 옆에는 아미파 장문인 의천사태(義天師太), 청성파 장문인 무극진인(無極眞人)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서장무맹 놈들의 기세가 엄청납니다. 도저히 우리 병력으로 막아낼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씀해주십시오.”

    당길중의 말에 좌중이 술렁였다.

    서장무맹 침공 이틀째인 오늘 들리는 것이라고는 패전 소식뿐이었다.

    물론 지난 석 달간 서장무맹 침공에 대비해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유사시를 대비해 아미파와 청성파 무사들이 한 달 전 대거 당문에 모여 힘을 합친 것이 그 예였다.

    그 때문일까.

    침공이 현실화하자 즉각 사천무림연합이 결성되었다.

    그에 따라 이십 만에 달하는 무사들이 현재 당문에 집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최전선에 있는 문파들의 상태였다.

    기습 공격을 당해 미처 당문으로 집결할 수 없었던 중소문파 수백 곳이 대거 멸문하고 만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비상 상황을 대비해 미리 사천성에 와 있었던 무림맹 무사 십만 병력입니다. 맹의 태상장로이신 천수노인께서 총지휘를 맡고 계시지요. 참고로 총순찰 영호광과 동방무맹 총군사 풍류도인도 함께 있지요. 총단 지원 병력 백삼십만이 도착하려면 최소 열흘은 필요하니, 그때까지 천수노인께서 놈들을 막아내 주시면 그나마 숨통이 트일 겁니다.”

    “무림맹 무사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어젯밤 급히 청성산으로 갔습니다. 놈들의 동진을 막기 위해서이지요.”

    청성파 장문인 무극진인의 말이었다.

    청성파 무사들이 대거 당문에 와 있지만, 본산을 방어할 기본 병력은 여전히 청성산에 있었다.

    침공 소식을 들은 천수노인이 일차방어선으로 청성산을 선택했고, 청성산에 남아 있던 청성파 무사들이 돕게 될 것은 물론이었다.

    “서장무맹 놈들의 병력이 언제 청성산에 도착하겠습니까?”

    “하루 이틀이면 가능할 겁니다. 이르면 오늘 밤 청성산에서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겠지요.”

    무극진인이 안색을 굳혔다.

    전략상 청성파 무사들을 대부분 이곳 당문에 데려왔으나, 마음은 청성산에 있었다.

    본산 방어를 위해 장문인인 자신이 청성산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전략상 그러지 못하고 있어 자책하는 표정이었다.

    그 때문일까.

    무극진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모든 병력을 이끌고 청성산으로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곳 성도에서 청성산까지는 하루 거리밖에 되지 않으니, 서두르면 오늘 밤이라도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미 일차방어선을 청성산, 이차방어선을 이곳 성도로 하기로 결정 난 사항입니다.”

    “꼭 그렇게 해야 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제 생각에 청성산이 방어하기에 더 좋을 것 같은데······.”

    “물론 청성산은 천혜의 요새입니다. 하지만 놈들이 목표로 하는 것은 바로 이곳 성도입니다. 만약 우리가 모든 병력을 청성산에 결집했는데, 놈들이 우회로를 택해 이곳 성도를 친다면 그 결과는 참혹할 겁니다. 게다가 사천성 내의 많은 문파에서 지원무사들을 이곳으로 보내주고 있습니다. 한데 성도가 함락되면 힘을 결집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렇다면 놈들이 청성산을 치지 않고 곧바로 이곳 성도를 공격할 수도 있겠군요.”

    아미파 의천사태의 말에 당길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놈들이 청성산 대신 남쪽으로 우회해 들어올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되면 본파가 있는 아미산에 다시 방어선을 쳐야 하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금 놈들의 공격로를 보면 청성산 쪽으로 올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만약 놈들이 청성산에 온다면 아마도 무림맹 십만 무사와 전면전이 벌어질 겁니다. 놈들로서도 청성산을 우회해 이곳으로 오면 배후가 위험해질 수 있으니 처리를 하려 할 겁니다.”

    “으음, 그렇군요. 당 문주의 혜안에 탄복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만일 놈들이 아미산을 통과하려 한다면 우리 아미파 무사들이 가장 먼저 달려가 방어선을 지켜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염두에 두고 있겠습니다.”

    당길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들 표정이 무거웠다.

    그것은 서장무맹 무사들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무사 개개인의 무공 역시 놀라웠다.

    사천성 서부 무림문파 무사들이 별다른 저항도 못 하고 궤멸된 것이 그 단적인 예였다.

    “지금으로서는 무사들을 계속 집결시키면서 청성산에서 낭보가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풍류도인이 진법에 정통하다고 하니까 아무리 병력이 열세에 있다고 해도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설사 일차방어선이 무너져도 우리가 있지 않습니까? 비록 아직은 이십만 정도에 불과하지만, 사천성 각 지역의 무사들이 모두 모이면 며칠 내에 삼십만도 가능할 겁니다.”

    무극진인의 말이었다.

    낙관적인 그의 말에 처음으로 지휘부 고수들이 안색을 폈다.

    그때였다.

    무사 한 명이 급히 취의청 안으로 들어왔다.

    당문 무사였는데 손에는 서신 한 통이 들려있었다.

    “어디서 온 서신이냐?”

    “청성산에서 전서구로 보낸 겁니다.”

    무사가 말을 하며 안색을 굳혔다.

    이미 그 내용을 보고 급히 달려온 것에서부터 예감이 좋지 못했다.

    “무슨 내용이냐?

    “그게······ 천수노인께서 이끌고 가신 무림맹 무사 십만이 오늘 새벽 매복에 걸려 몰살당했다고 합니다. 생존자는 불과 백여 명으로, 지금 풍류도인께서 그들을 데리고 복귀 중입니다. 서신 역시 풍류도인께서 보내신 겁니다.”

    “아!”

    “아니! 그럴 수가!”

    지휘부 고수들이 탄식했다.

    내심 기대가 컸는데 불과 하루도 못 되어 전멸했다고 하니 다들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대체······.”

    당길중이 서신을 빼앗듯 받아 그 내용을 읽었다.

    이후 의천사태, 무극진인 등에게 서신을 보여주었다.

    “문주님. 무림맹 무사들이 전멸당한 게 사실입니까?”

    사천성 내 명성이 높은 조령검객(操靈劍客)이란 자의 질문이었다.

    그는 낭인무사 출신으로 은연중 당문과 아미파, 청성파 외의 다른 문파 고수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당길중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청성산에 적의 매복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데 그게 서장무맹 무사들이 부리는 괴수라고 합니다. 성성이 괴수들인데, 수만 마리가 넘는다고 하네요. 놈들의 공격이 너무 강해 천수노인과 총순찰 영호광 소협을 비롯해 무림맹 무사 십만이 손도 못 쓰고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백여 명의 생존자는 풍류도인이 급히 진법을 펼쳐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찌 그런 일이······.”

    “허억!”

    사람들이 다시 한번 놀라워했다.

    서장무맹 무사들이 아닌 괴수들의 공격을 받았다니.

    하나같이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혹시 그 괴수 놈들이 신선계와 관련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군요. 신선계에 괴수와 요괴들이 득실거린다는 이야기를 저도 들은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신선계로 통하는 모든 문이 닫혀 있다는 게 정설이라 확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일단 그 성성이 괴수들 역시 서장무맹의 전력으로 생각하고, 목전의 위기를 타개할 방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당길중이 말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의천사태가 말했다.

    “그럼 이제 우리에게 남은 선택이 어떻게 됩니까?”

    “크게 두 가지 정도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원래 계획대로 무사들을 보충하면서 놈들을 기다리는 겁니다. 관부의 협조를 받아 성곽을 지킨다면 놈들의 입성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이미 일차방어선이 무너진 상황이지만, 어쩌면 오히려 더 단결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두 번째는 뭡니까?”

    “무사들을 모아 청성산으로 가는 겁니다. 조만간 놈들의 본대가 도착할 때 우리가 기습을 가한다면 승산이 충분할 겁니다. 우리가 기습할 것이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울 것이니까요.”

    “그게 정말입니까?”

    “네.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첫 번째입니다. 선제공격이 필요한 시기이긴 하나 전력의 열세가 너무 큽니다. 성곽의 도움을 받아야 할 시기입니다.”

    “저도 첫 번째입니다. 사천성 각지의 무사들이 가장 빨리 모일 수 있는 곳이 이곳이니까요. 청성산 방어선은 이미 무너졌으니 미련을 버려야 합니다.”

    참석자 대다수가 성도를 사수하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당길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성도 사수를 목표로 해 열흘만 버티면 분명 지원군이 올 겁니다. 백삼십만 병력이라고 하니, 도착만 하면 놈들과 자웅을 겨뤄볼 수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절대고수이신 백자안 맹주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혼자서도 충분히 백만 무사를 상대하실 수 있지요. 그러니 용기를 잃지 맙시다.”

    짝짝짝.

    열렬한 박수가 쏟아지며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 * *

    당문 취의청에서 회의가 열리는 그 시각.

    사천성 성도 안으로 막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평범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실제는 바로 백자안이었다.

    새벽에 특수 이동대법을 펼쳐 이곳 사천성에 온 그는 약간의 실수가 있어 성도 외곽에 떨어졌다.

    하지만 가까운 거리라 이렇게 아침이 되어서 성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가 역용한 이유는 혹시라도 성도가 이미 서장무맹에게 넘어갔을 경우를 대비해서였다.

    하지만 아직 성도는 무사해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객잔에 들러 아침을 먹은 그는 그곳에서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바로 천수노인이 이끄는 무림맹 십만 무사의 전멸이었다.

    백여 명이 살아남았다고는 하지만 전멸이라 부르기에 어색함이 없었다.

    ‘아! 천수노인과 영호광이 전사하다니. 무사 십만이 모두 성성이 괴수에게 당한 것도 믿기 어렵구나. 그 괴수들이 신선계와 관련 있는지 아니면 서장무맹 자체 병력인지도 아직 알 수 없구나. 서장무맹주만 죽이면 놈들이 철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혹여 서장무맹의 배후에 정심회가 있다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 같구나.’

    백자안이 식사하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원래는 사천무림연합 무사들이 모여 있다는 당문으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다른 방도가 없는지 생각 중이었다.

    ‘아마도 사천무림연합 쪽에서는 이곳 성도를 사수하려 할 것이다.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살리려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양민들의 피해가 극심해진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가도 큰 도움이 안 된다. 차라리 비밀리에 내가 먼저 놈들을 막아내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겠구나. 특히 그 성성이 괴수라는 놈들은 반드시 내 손으로 제거해야 한다.’

    백자안이 눈을 빛내며 허리춤을 만졌다.

    아무런 병장기도 없어 허전한 느낌이었다.

    그제야 지존검과 천마검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검을 한 자루 장만해야겠구나. 보검이 있다면 좋겠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위력이 약해지겠지만, 이제는 지존검이 없어도 지존검법을 펼쳐낼 수 있으니······ 식사를 마치고 혼자 청성산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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