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장] 서장무맹 2
회의를 마치고 집무실로 돌아온 백자안은 서둘러 특수 이동대법을 펼칠 준비를 했다.
아직 숙달되지 못해 그 성공 가능성은 미지수였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충분했다.
취의청에서 만박서생, 불패마왕 등에게 당부할 말은 충분히 했기 때문에 이제 사천성으로 가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상당히 먼 거리라 백자안의 경공 속도라 해도 최소한 사흘은 걸릴 가능성이 컸다.
물론 백삼십만에 달하는 지원 병력이 사천성까지 가는 데는 열흘 정도 걸리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빠른 속도이긴 했다.
하지만 그 사흘이란 기간 역시 무시 못 했다.
그동안 사천무림 전체가 초토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내상 회복에 전념하느라 특수 이동대법을 제대로 연습해보지 않아 걱정이구나.’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막상 대법을 펼치려 하니 왠지 자신이 없어졌다.
애초 그가 특수 이동대법을 연마하며 바랐던 것은 신선계 안팎으로 자유롭게 출입하는 것이었다.
한데 뜻밖에도 신선계 밖의 이동 수단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었다.
“휴우!”
백자안이 심호흡을 한번 한 후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제 대법을 펼쳐 사천성으로 가기만 하면 되었다.
‘차라리 신선운을 부릴 수 있다면 한나절도 안 되어 안전하게 갈 수 있을 텐데······.’
백자안이 소림사 전투 때 중원삼성 등이 구름을 타고 있던 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들이 타고 있던 구름은 신선계에 있던 구름, 즉 신선운으로 중원의 구름과는 달랐다.
다시 말해 신선계 내부에서 신선운을 타고 중원을 넘어올 수는 있지만, 원칙적으로 그 반대는 안 되는 것이다.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지금 내 수준에서 일단 운운술을 이곳에서 펼칠 수 없는 것은 확실하다. 그 부분은 몇 번 시도를 해봤으니 미련을 갖지 않는 게 좋겠군. 이제 시작해보자.’
백자안이 내공을 끌어올려 곧바로 특수 이동대법을 펼치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몸속에 있던 천상여의주가 반응을 보였다.
떨림이 느껴진 것이다.
백자안이 급히 천상여의주를 꺼냈다.
한데 지난 석 달 동안 한 번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던 천음반선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가.
백자안이 매우 기뻐한 것은 물론이었다.
그동안 신선계 소식을 전혀 알 수 없어 매우 답답해하던 차였다.
특히 서장무맹의 침공으로 인해 더욱더 신선계 소식이 궁금했다.
정심회 반선들의 움직임이 정확하게 간파되어야 그 역시 큰 부담 없이 사천성으로 가서 서장무맹을 막을 수 있었다.
“천음반선님!”
“아! 백 공자!”
천상여의주에 비친 천음반선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왠지 기운이 빠진 목소리였다.
얼굴 역시 초췌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지금 그곳 상황은 어떠합니까?”
“심각한 상황이오. 마신들이 대거 봉인을 풀었소. 봉인된 백대마신 중 오직 천마신 한 명만 남은 상태요.”
“아! 어찌 그런 일이······.”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상고시대 천신과 마신의 전쟁, 즉 신마대전(神魔大戰) 당시 봉인된 대표마신들의 수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대체로 백 명 정도라고 들은 바 있었다.
한데 마신들의 총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천마신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마신이 봉인을 풀었다고 하니 놀랄 만도 했다.
“지존검도 없이 그게 가능했습니까?”
“모두 천마신 때문이오. 그가 다른 마신들을 묶고 있던 봉인력을 자신에게로 옮긴 때문이오. 애초 그럴만한 힘이 놈에게 없었는데, 저번에 천상여의주가 일시 빛을 잃었을 때 놈이 도박을 했고 성공을 거둔 것 같소.”
“아!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존검을 각성시키는 수밖에 없을 듯하오. 지금 상태가 지속하면 봉인이 풀린 마신들이 힘을 합쳐 천마신의 봉인까지 풀 가능성이 크오. 그러면 천마신의 봉인을 풀 수 있는 두 보검, 즉 지존검과 천마검 역시 천마신에게 필요가 없어지게 되오.”
“지존검을 각성시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겁니까?”
“그것 역시 장담할 수는 없소. 하지만 지금이라도 지존검을 각성시켜 은둔반선들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하오. 무엇보다 각성된 지존검으로 천마신의 원영까지 파괴할 수 있다면, 나머지 백대마신까지 자동으로 제거할 수 있을 것이오. 이미 천마신이 마신들에 가해진 봉인력을 자신의 몸에 모두 모았기 때문에, 놈을 제거하면 연동력이 발생해 나머지 마신들 역시 소멸할 가능성이 크오.”
“마신들이 천마신에 종속되어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소. 그런 종속 서약을 하지 않았다면 절대 마신들의 봉인력이 천마신에게 옮겨가지 않았을 것이오. 그래서 하루빨리 천마신을 제거해야 하오. 시간이 없소. 천마신마저 봉인을 풀게 되면 그때는 놈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오.”
“하지만 지존검을 갖고 있는 제가 신선계에 들어갈 수 없는데 어떻게 각성을 시킬 수 있겠습니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오. 그리고 천마신을 완전히 소멸시키려면 지존검외에도 천마검까지 있어야 하오. 자세한 것은 지금 말할 수 없으나 천마룡을 이용해 천마신의 원영을 파괴하는 방법이라고 알고 있으면 될 것이오.”
“천마룡을 만든 후 각성한 지존검을 통해 그 녀석에게 힘을 넣어주는 방법이군요.”
“그러하오. 그걸 어떻게 알았소?”
“추측했을 뿐입니다. 한데 그렇게 되면 천마룡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 같은데······.”
“맞소. 천마룡을 자폭시켜 천마신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방법이라 할 수 있소. 다르게 말하면 천마룡을 통해 천마신에게 있는 악성을 제거한다고나 할까. 천마신의 악성이 제거되면 놈의 원영 역시 영구히 소멸되어 다시는 부활할 수 없게 되오. 다만 아까도 말했지만 각성된 지존검의 힘이 꼭 필요하오.”
“지존검의 힘이란 지존력의 근원이 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군요.”
“지존력? 지존검에서 흘러나와 조금씩 흡수되는 힘을 말하는 것이오?”
“네. 천마검에서 얻은 천마력과 달리 지존검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제 몸에 조금씩 쌓이는 것 같았습니다.”
“역시 백 공자는 의심의 여지 없이 천족의 후예가 맞구려. 비록 일부이긴 하나 각성도 없이 지존검의 힘을 흡수할 수 있었다니······.”
천음반선이 감탄했다.
하지만 금세 안색이 어두워졌다.
“지존검의 힘, 아니 백 공자 말대로 이제 지존력이라 부르도록 하겠소. 아무튼 그 지존력은 지존검이 각성할 때 그 주인에게 모든 힘을 주게 되어 있소. 지존력은 천신들이 안배한 것으로, 쉽게 말해 천신들의 내공이 모인 것이라 할 수 있소. 신마대전에서 천신들이 승리했지만, 향후 마신들의 봉인이 풀릴 것을 우려해 지존검에 자신들의 힘을 남겨둔 것이오. 하지만 이는 오직 천족의 후예만 흡수할 수 있도록 해 변수를 없앴소. 이제 마신들의 봉인이 대거 풀렸고, 백 공자가 나서야 할 때가 된 것 같소.”
“전 아직 제가 천족의 후예라는 확신이 없습니다.”
“그건 당연하오. 천족의 후예를 증명할 수단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하지만 지존검에서 지존력을 흡수했으니, 그게 바로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오. 아니면 혹시 몸속에 있는 천력을 발견했소?”
“아! 반선님도 천력을 아시는군요. 말씀대로 제가 천력이란 기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천상여의주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천력을 기본내기로 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백 공자는 천족의 후예가 확실하오. 천상여의주는 영험을 가진 법보라 어떤 질문에도 대답해줄 수 있소. 그런 대답을 들었다면 천력이 확실할 것이오. 아! 백 공자가 직접 신선계로 들어와야 하는데······.”
천음반선이 안타까워했다.
백자안이 의아해했다.
“혹시 지존검과 천마검이 필요하신 겁니까? 제가 직접 가지 않고 두 보검을 신선계로 보낼 방법을 알고 계신 것 같군요.”
“그렇소. 백 공자는 갈수록 총명해지는구려. 사실 한 쌍의 천상여의주는 사람을 제외하고 어떤 물건도 서로 전달할 수 있는 효력이 있소. 다만 같은 물건을 두 번 이동시킬 수 없는 한계가 있소.”
“그 말씀은 제가 지존검과 천마검을 그쪽에 보내도 신선계 문이 다시 열리지 않는 한 돌려받을 수 없다는 뜻이군요.”
“그렇소. 하지만 상황이 너무 급박하오. 백 공자의 도움이 절실하오. 다행히도 그동안 뜻을 같이하는 은둔반선 백 명 정도를 다시 모을 수 있었소. 원래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마신들의 봉인이 대거 풀리자 직접 나의 처소로 찾아와 은둔회에 가입한 분들이오.”
“그동안 은둔회에 가입을 망설이던 분들 같군요. 좋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지존검과 천마검을 보내드리면 계획대로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 역시 장담할 수 없소. 성공 확률은 삼할 정도로 생각하고 있소. 하지만 천마신마저 부활하게 되면 그때는 우리 쪽에 절대각성을 이룬 지성자(至聖者)가 탄생하지 않는 한 마신들을 이길 수 없을 것이오. 내키지 않는다면 보검들을 주지 않아도 좋소.”
“아닙니다. 삼할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시도를 해봐야지요. 사실 이곳에서 보검들이 꼭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으니 지금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고맙소. 방법은 간단하오. 지존검과 천마검을 차례대로 천상여의주 속으로 찔러 넣으면 되오. 보검들을 내가 받게 되면 내 얼굴 또한 사라지게 되어 다시 연락이 끊길 것이오. 이후 상황은 나 역시 모르겠소. 아마도 천운이 따라야 할 것 같소.”
“알겠습니다.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합니다.”
“백 공자 역시 마찬가지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비록 이번에 천마신을 제거하지 못한다 해도 영원히 신선계의 폐쇄진법이 풀리지 않았으면 하오. 그래야 무림이 평화로워질 테니까. 사실 신선계의 일은 신선계에 있는 우리 반선들이 풀 문제였소. 공연히 광기에 휩싸인 정심회 반선들 때문에 애꿎은 무림인들만 피해를 본 것 같소. 사실 백 공자 한 사람 정도를 제외하고 힘의 격차가 너무 큰 게 사실이 아니오?”
“그렇기는 합니다. 일단 폐쇄진법이 풀리지 않으면 차선은 될 것 같군요. 하지만 앞날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백자안이 말을 마친 후 지존검과 천마검을 차례대로 천상여의주에 찔러 넣었다.
사실 두 보검 모두 그의 무공과 관련이 깊어서 이대로 주기에는 아까운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그런 한계를 벗어났고 무엇보다 대의를 위해 과감히 결단을 내린 셈이었다.
얼마 후 예상대로 지존검과 천마검은 천상여의주가 내뿜는 금빛 속으로 빨려들어 사라지고 말았다.
천음반선과의 연결이 끊어진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내가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지존검과 천마검 모두 내게 종속이 되어 있는데, 제대로 위력을 발휘할지 걱정이 크구나.’
백자안이 한숨을 쉬며 천상여의주를 다시 몸속으로 넣으려 했다.
그때였다.
금빛이 발하던 천상여의주가 다시 어두워지더니 빛이 바래졌다.
“아! 어찌······.”
한번 겪었던 일이었지만, 이번 역시 충격이 컸다.
특히 사전에 천음반선의 말이 없었던 터라 더욱더 그랬다.
백자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문득, 천상여의주의 빛과 마신들의 봉인과의 관계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천상여의주가 빛을 잃은 사흘간 마신 일부가 봉인을 풀었다고 했다. 한데 다시 빛을 잃었으니, 그 결과가 걱정되는구나.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마음을 편히 하는 게 좋겠다. 당장은 서장무맹을 물리치는 것이 중요하다.’
백자안이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특수 이동대법을 펼칠 준비를 했다.
하지만 곧바로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던가. 이미 지나간 일에 연연하는 것은 무턱대고 미리 불안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다. 지금이 항상 기회라 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