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151화 (151/250)

[제49장] 강시왕 1

[제49장] 강시왕

둥둥둥!

“단목군 대협과 풍파객 두 분은 비무대 위로 올라오십시오. 이번 대결의 승자가 바로 삼의맹주가 되시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삼의맹주가 되면 중원무맹주, 마교주, 동방무맹주 직함도 겸임하게 됩니다. 다만 백자안 맹주님께서 살아 돌아오시면 즉시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두 분은 이 조건을 수락하십니까?”

중원군자의 물음에 단목군과 백자안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락합니다.”

“수락합니다.”

“그럼 대결을 시작하십시오!”

중원군자의 말이 있자, 백자안과 단목군 두 사람이 자세를 잡았다.

검을 먼저 뽑은 것은 단목군이었다.

절대검신이라는 별호처럼 그의 검법은 천하무적으로 알려져 있었다.

내공심법인 용상반야공을 기반으로 펼쳐지는 절대삼검(絶對三劍)은 그를 맹주 자리까지 올라가게 해주었었다.

하지만 절대삼검 삼초식 중 마지막 초식은 터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올 때 깨달음을 얻어 마침내 터득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게다가 들고 있던 검 역시 보통 검이 아니었다.

신선계로 끌려가 강시로 있을 때 우연히 발견한 이 검은 지옥검(地獄劍)이라 했다.

원래 아무 이름도 없는 검이었다. 하지만 지옥에서 돌아왔다는 의미에서 단목군 스스로 붙인 이름이었다.

스르릉.

백자안 역시 지존검을 뽑았다.

지옥검이 보검이란 것을 알고 그 역시 이에 상응하는 검을 뽑은 것이었다.

단목군이 말했다.

“본인의 절대삼검은 반드시 상대의 피를 보아야 끝나는 특징이 있소. 귀하 같은 무림의 인재를 잃고 싶지 않으니, 지금이라도 패배를 시인하는 것이 어떻겠소? 패배를 시인하면 비어 있는 부맹주 자리를 주겠소.”

“이미 삼의맹주가 된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물론이오. 귀하가 비록 반선 한 명을 이기긴 했으나, 그렇다고 내 적수는 아니오. 나는 반선 수십 명도 거뜬히 상대할 수 있으니까.”

“자신감이 대단하군요. 하지만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법이지요.”

“하하하. 역시 젊은 사람이라 용기가 대단하군. 좋소. 시작합시다.”

단목군이 지옥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절대삼검 중 마지막 초식인 절대무쌍(絶對無雙)을 펼치려는 것이었다.

백자안은 지존검법 중 제2초 지존만상을 펼칠 준비를 했다.

‘한 번의 검초 대결로 승부가 결정될 것이다. 다만 아직도 단목군 대협의 진짜 의도를 모르겠구나. 정말 진심으로 무림을 위해 행동하고 있는지, 아니면 놈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아예 가짜인지 도무지 파악이 안 되는구나.’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하지만 마음은 비교적 편안한 상태였다.

휴식 시간 동안 적지 않은 깨달음을 얻은 결과였다.

사실 깨달음이라고 해봤자 별것은 아니었다.

다만 최선을 다하는 마음을 더욱 공고히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욕심이 있게 마련.

정말로 어떤 결과에 대한 집착도 없이 과정에 충실한 사람은 극히 드문 법이었다.

백자안의 마음은 지금 순수한 상태였다.

상대의 강함에 주눅 들지 않았다.

반대로 자신의 힘을 모르고 만용을 부리지도 않았다.

‘어떤 경우에도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초조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백자안이 지존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단목군의 진위 여부를 모르는 상황에서 그를 죽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일까.

현실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살수를 가해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을 막기 위해 한 줌의 진기라도 유보해 두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백자안은 그런 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제한 역시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 모든 것을 포함해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이었다.

단목군이 지옥검을 통해 검강을 뿌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바로 절대무쌍이었다.

슈우우!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검강이었다.

검강 자체를 발출하는 것 자체가 상승고수만 가능한 것이지만, 검강의 모양과 겉으로 느껴지는 위력이 매우 평범했다.

마치 공같이 모인 경력이 검봉을 통해 발출되어 암기를 날린 것처럼 느껴지는 정도였다.

백자안 역시 지존만상을 펼쳐 이에 응숭했다.

지존검강이 발출된 것이었다.

꽈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대연무장 전체가 흔들렸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

검광 역시 장엄하게 일어났다. 그 때문에 백자안과 단목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

“역시!”

군웅들이 탄성을 내며 결과를 기다렸다.

곧이어 드러난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승리가 예상되었던 단목군이 비무대 밑으로 떨어져 있었다.

반면 백자안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으으······ 내가 지다니······.”

단목군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직접 겨뤄본 후 이제야 알았소. 그대는 단목군 대협이 아니오. 육신만 단 대협의 것이고, 혼백은 다른 사람의 것이오. 하지만 본인은 절대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없소. 특히 무공의 연마에 있어서는 오히려 더 효율적일 테니까. 하지만 중요 결정에 있어 외부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무서운 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오.”

“무,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내가 단목군이 아니라니······.”

단목군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미 백자안에 의해 내상을 입어 몸속에 있던 탁기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 탁기는 바로 단목군의 육신을 지배하고 있는 마기였다.

“단 대협의 육신에 마기를 넣은 사람은 바로 정심회주일 것이오. 그렇지 않소?”

백자안이 단목군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하늘을 쳐다봤다.

허공에 숨어 있을 정심회 반선들을 향해서 던진 질문 같았다.

그때였다.

갑작스러운 두통으로 괴로워하던 단목군이 녹색 피를 한 사발 토해냈다.

“우웩!”

“아버지!”

단목수련이 급히 단목군을 살폈으나 이미 정신을 잃은 후였다.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단목 대협께서는 이제 무사하십니다. 깨어나시면 원래의 정신을 찾게 되실 겁니다.”“아! 감사드려요.”

단목수련이 고개를 숙였다.

아닌 게 아니라 녹색 피를 토한 후 단목군의 안색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그때였다.

허공에서 목소리 하나가 들렸다.

“풍파객! 다른 사람은 속여도 우리는 못 속인다. 네놈은 바로 백자안이 아니냐? 회주께서 공을 들여 만든 강시왕을 파훼하다니 대단하군.”

순간, 군웅들이 술렁이며 탄성을 터뜨렸다.

강시왕이라는 말도 괴이했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풍파객의 정체였던 것이다.

백자안 역시 더는 정체를 숨길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고 역용을 풀었다.

“그렇소. 본인이 바로 백자안이오!”

와아아.

군웅들의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평소 백자안의 복귀를 기다리던 많은 사람이 반가워한 것은 물론이었다.

“맹주님!”

“맹주님!”

백자안의 본얼굴을 본 삼의맹 무사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쿵쿵쿵.

백만이 넘는 군웅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백자안의 귀환을 환영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하지만 이는 당연한 것이었다.

백자안의 대체자로 단목군이 빠르게 부상하고 있었지만 이미 그는 패한 상태였다.

게다가 단목군이 그동안 정심회의 음모에 휘말려 자신도 모르게 강시왕이란 존재가 되어 있었던 것도 밝혀졌다.

만약 백자안이 복귀하지 않고 단목군이 삼의맹주가 되었다면 이후의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워졌을 것은 자명했다.

평화협정이란 미명 하에 조직적으로 정심회 반선들의 개입이 노골화되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또한 한번 삼의맹주가 되면 백자안이 복귀해도 약속을 어기고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이제 모습을 드러내시오. 정심회에서 대표단을 보냈다는데 모두 몇 분이나 온 것이오?”

백자안의 물음에 허공에서 다시 대답이 들렸다.

“그건 네가 알 필요 없다. 다만 확실히 하기 위해 다시 묻겠다. 우리와 평화협정을 맺고 최종대리자로 활동하겠느냐?”

“거부하겠소.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알 필요도 없을 것 같소.”

백자안이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미 시합 전에 공표한 바 있었던 내용이었다.

이제 삼의맹주로 복귀한 마당에 다시 정심회 쪽에 끌려가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 보였다.

“후후후! 후회할 텐데······ 백자안 네 놈 한 사람의 고집 때문에 무림이 말살될 것이다. 그래도 괜찮겠냐?”

“이미 각오하고 있던 일이오. 그래 전면전이라도 벌이겠다는 것이오?”

“후후후! 그렇다. 우리가 여태까지 빈말을 했다고 생각했느냐? 사실 우리는 무림 말살작전을 펴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했었다. 단목군이 강시왕으로 계속 있으면서 삼의맹주가 되었다면 무림인들의 희생은 대폭 줄었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추진하는 일에 반대하는 자는 즉시 숙청했겠지만, 전면전을 피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오히려 그 반대겠지. 그대들은 사람 목숨을 하찮게 여기기 때문에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학살을 자행했을 것이오. 그렇게 되었으면 수많은 무림인이 영문도 모르고 살해되었을 것이오. 내 말이 틀렸소?”

“후후후! 역시 명성대로군. 어리석지 않아 마음에 든다. 하지만 네놈은 여전히 우리 회주님의 손아귀에 있다. 좋다. 네놈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소림사 전투에서의 상황과 비슷하다 할 수 있겠는데, 지금이라도 네가 들고 있는 지존검과 천마검을 넘겨라. 그러면 오늘은 일단 돌아가겠다.”

“오늘 하루만 말이오?”

“그건 아니다. 돌아가서 회주님께 부탁을 드려보겠다. 지존검과 천마검 두 보검을 드리면 회주님의 마음도 풀릴 것이다.”

“두 보검으로 정말 마신들의 부활을 꾀하려는 것이오?”

“그렇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마신들은 네놈들이 활동하고 있는 무림에는 관심이 없으시니까. 그분들은 천계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고 있는 분들이니, 향후 백 년 간 무림의 평화가 유지될 것이다.”

“그러면 정심회 반선들은 손해가 아니오? 대리자를 선정해 대리 통치를 해 우화등선에 도움을 받으려는 그 목표는 어떻게 할 것이오?”

“그건 네놈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마신들의 봉인이 풀려 부활을 하게 되면 그 마력으로 우화등선에 도움을 줄 수도 있으니까.”

“거절하겠소. 힘이 있으면 직접 가져가 보시오.”

백자안이 지존검 외에도 천마검까지 꺼내 들었다.

이는 일종의 유인작전이었다.

백자안은 허공에 숨어 있는 반선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들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외부로 유인하려는 것이었다.

“후후후! 총명하구나. 유인책도 쓰고 말이야. 하지만 정심회 총군사인 내가 그따위 유인술에 넘어갈 것 같으냐?”

“총군사? 그대가 정심회 총군사였소?”

“그렇다. 허허반선(虛虛半仙)이라고 하지. 마지막으로 경고하겠다. 지존검과 천마검을 즉시 넘겨라. 그러지 않으면 이 자리에 모인 무림인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죽이겠다.”

“무슨 힘으로? 함께 온 반선들의 수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구려.”

“보이지도 않을 텐데 대단하구나. 좋다. 우리가 모습을 드러내지.”

허허반선의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구름의 모습이 보였다.

구름 주위 안개도 걷혔다. 구름 위에는 백여 명의 반선이 서 있었다.

생각보다 적은 숫자였다. 협정체결을 위한 대표단 규모로는 적지 않은 수였다.

선풍도골의 허허반선 뒤로 서 있는 반선들은 하나같이 기세가 대단했다.

만 배 이상의 수를 자랑하는 군웅들이 오히려 주눅이 들 정도였다.

“백 명 정도의 반선이라. 하지만 우리 모두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소.”

만박서생의 말이었다.

그는 단목군이 그동안 이지를 상실해 정심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데 대해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 역시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고 있긴 있었다. 너무 평화협정에 집착하는 모습이 그 대표적 예였다.

그러던 차에 백자안이 복귀하자 그 역시 매우 기뻐하고 있었다.

“후후후! 만박서생. 네놈이구나. 네놈 말은 틀렸다. 우리만으로 네놈들 모두를 죽이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백자안 저놈 역시 절대 열 명 이상의 반선을 상대할 수 없지. 하지만 사실 우리가 나설 필요도 없다. 만약 끝내 백자안 저놈이 고집을 부려 전면전이 발발하면 우리 대신 먼저 강시들이 나설 것이다.”

“강시?”

백자안이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단목군의 육신에게 씌워져 있던 마기를 제거함으로써 그가 부릴 수 있었던 강시들도 모두 무력화시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후후후! 강시왕이 강시력을 잃게 되면 그 힘은 미리 지정된 자가 승계하게 된다. 그 승계자가 바로 나다. 우리는 항상 변수에 대비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허허반선이 말을 마친 후 사자후를 터뜨렸다.

우우우!

순간, 허공 한쪽의 공간이 허물어지며 강시들이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한데 그들은 모두 대인자문 강시들이 아닌가.

그 수 역시 이전처럼 백만이었다.

소림사 전투 때 단목군의 지시로 강시들이 모두 자진하던 모습을 봤던 사람들이 경악했다.

분명 머리가 터져 죽었는데, 강시들은 모두 멀쩡했다.

“후후후! 당시 네놈들이 본 것은 모두 환영이었다. 대인자문 백만 강시는 우리 정심회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핵심 전력 중 하나다. 괴수나 요괴보다 우리말을 잘 듣고 반선들과 달리 신선계 밖에서 행동하는데도 제약이 거의 없지. 어떻게 할 것이냐? 백자안 네놈이 이번에도 거절하면 강시들의 공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