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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150화 (150/250)

[제48장] 평화협정 4

둥둥둥!

“천산노인과 풍파객 두 분은 비무대 위로 오르시오. 일반 무림인 중 최종 우승자를 가르는 마지막 시합이오.”

와아아.

군웅들의 함성과 함께 백자안과 천산노인이 천천히 비무대 위로 올랐다.

두 사람 모두 담담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백자안은 속으로 매우 놀라고 있었다.

‘기세가 다시 달라졌다. 이 정도 기세라면 최소한 반선급 고수가 아닌가. 설마 이자 역시 정심회 반선이란 말인가.’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직접 반선들과 겨뤄봤던 그였다.

반선 특유의 느낌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천산노인은 이전까지 철저한 무명이었다.

아무도 그의 과거를 알지 못했다.

다만 천산에서 오래도록 폐관 수련을 했으며 최근 산에서 내려왔다는 이야기만 전해졌다.

‘상대가 누구든 여기서 내가 패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저 최선을 다하면 될 것이다.’

백자안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위기를 헤쳐 온 그였다.

그 가운데 그가 확실히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력(人力)을 다하고 천명을 기다리는 자세였다.

남의 힘을 바라지 말고 자신의 신념을 믿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신념은 무한한 힘이다. 특히 무형검에 있어서는 내공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을 하나로 모으면 내상 역시 나에게 한계가 되지 못한다. 한계 역시 마음의 작용일 뿐,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면 장애는 없게 된다.’

천산노인의 기세는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백자안의 무공이 만만치 않음을 깨달았는지 숨겨둔 실력을 모두 드러내고 있었다.

백자안은 오히려 좀 더 평범해지고 있었다.

지극히 평범한 상태.

순간적인 깨달음으로 인해 아직 남아 있던 내상이 회복됨에 따라 생긴 현상이었다.

‘내상이 완전히 회복되었다.’

백자안이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패배할 가능성이 크다는 위기감이 오히려 행운으로 작용한 것이었다.

“시작하시오!”

중원군자의 말이 있자, 먼저 일장을 날린 사람은 바로 백자안이었다.

매우 단순한 장풍이었다.

쏴아아아.

부드러운 미풍 속에서도 견고한 무엇인가가 담겨 있긴 했으나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천산노인이 장세가 지척까지 다가왔음에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역시 두 팔을 들어 장력을 날렸다.

꽈앙.

가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신형 하나가 날아가 비무대 밑으로 떨어졌다.

“으윽!”

사람들이 놀라서 보니 그는 바로 천산노인이 아닌가.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는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으으······ 어찌 이런 일이······.”

“귀하는 혹시 정심회 반선이 아니오?”

백자안의 물음에 천산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하지만 이번 출전은 나 개인적인 판단이었다. 변수를 없애기 위해 회주님의 허락도 받지 않고 대회에 참석했지. 하지만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구나. 그나마 네가 배려를 해줘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 점은 고맙게 생각한다.”

천산노인이 허탈해했다.

바로 그때였다.

번쩍하는 소리와 함께 벼락이 떨어져 그의 머리를 강타했다.

쩍.

“크윽!”

천산노인의 몸이 그대로 타며 숱으로 변해 즉사하고 말았다.

군웅들이 매우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백자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급히 허공을 쳐다보니 구름 하나가 떠 있었다.

바로 신선운이었다.

신선운 위에 누가 있는지는 안개에 가려 잘 보이지 않다. 하지만 조금 전 벼락을 날린 장소가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허공에서 한 노인의 음성이 들렸다.

“그자는 우리 정심회의 회칙을 어겨 어차피 죽여야 할 자였으니 늦게나마 처단을 했소. 이제 놈이 죽었으니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대회를 계속하시오. 새로운 삼의맹주가 선출되면 그때 바로 평화협정을 체결하도록 합시다.”

담담한 목소리였으나 군웅들 귀에 너무나 잘 들렸다.

그의 내공이 얼마나 강력한지 잘 알 수 있었다.

그때였다.

구름이 흐릿해지더니 순간적으로 흩어져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아무래도 자신들이 계속 모습을 보이는 것이 대회 진행에 부담을 줄 것을 우려한 것 같았다.

중원군자가 말했다.

“다들 너무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사실 정심회 측에서 대표단을 보내기로 사전 연락이 있었습니다. 일단 일반 무림인 대회의 우승자는 풍파객으로 정해졌음을 알립니다.”

짝짝짝.

절대황녀를 시작으로 군웅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와아아.

함성 역시 거대해졌다.

이는 바로 풍파객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조금 전 벼락은 군웅들에게 큰 공포심을 주었다.

설마 했던 정심회 반선들의 위력을 실감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정심회 반선을 일장에 쓰러트린 사람이 그들 앞에 있었다.

바로 백자안이었다.

“수고가 많았어요.”

절대황녀가 대기석으로 돌아온 백자안을 반겼다.

“운이 좋았습니다.”

“아니에요. 상대는 반선이었어요. 그런 자를 이겼으니 정말 대단해요.”

“공주님의 무공 역시 대단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반선 몇 명 정도는 충분히 상대하실 수 있을 겁니다.”

백자안의 칭찬에 절대황녀가 미소를 지었다.

사실 아직 강호에 자신의 실력을 완전히 발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백자안처럼 반선들의 수에 걱정이 컸다.

세상에 알려진 정심회 반선의 수는 일만 정도.

백 명이 되어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인데, 만 명이라니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얼마 후 중원군자의 말이 들렸다.

“반시진 후 오늘 대회의 최종 시합이 진행될 겁니다. 일단 삼의맹주에 도전하게 될 네 분께서는 단상 위로 올라와 주십시오.”

“회복할 시간도 제대로 주지 않는군요.”

어느새 다가온 황룡선생이 투덜댔다.

“괜찮습니다. 사실 내상 역시 완전히 회복된 상태라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백자안의 말에 절대황녀와 황룡선생이 반색했다.

백자안이 단상 위로 올라가자, 경쟁 상대인 단목군과 불패마왕, 태극검선 역시 올라왔다.

중원군자가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대결 방식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총 네 분이니 두 명씩 조를 이뤄 각 조의 승자끼리 최종 승부를 보게 될 겁니다. 최종 승리자께서는 삼의맹주가 되시며 동시에 중원무맹과 마교, 동방무맹의 수장도 겸임하게 됩니다. 다만 생사불명인 백자안 맹주님이 돌아오시면 모든 자리를 내놓아야 하는 조건입니다. 다들 이 조건에 승복하십니까?”

“승복합니다.”

“물론이오.”

백자안 등 네 명이 일제히 대답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삼의맹주가 되시면 정심회 반선들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실 겁니까?”

중원군자의 물음에 단목군이 재빨리 대답했다.

“그렇소이다. 무림의 평화를 위해 평화협정 체결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오. 본인이 삼의맹주가 되면 즉시 정심회 측과 협정을 체결하겠소. 이미 정심회 쪽에서 반선들이 도착해있으니 오늘 중으로 모든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오.”

단목군의 말에 군웅들이 술렁였다.

단목군이 협정체결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은 널리 퍼졌으나, 오늘 당장 체결이 이루어지리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 정심회 반선들이 타고 온 구름을 본 군웅들은 단목군의 말이 허풍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중원군자가 말했다.

“다른 세분의 의견은 어떠합니까?”

“우리가 굳이 의견을 밝히 필요가 있소? 어차피 삼의맹주가 평화협정에 관한 전권을 행사하기로 한 것이 아니오?”

불패마왕이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중원군자가 말했다.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정심회 쪽에서 대결이 시작되기 전에 꼭 확인해달라고 해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정심회 반선들이 우리에게 강요를 하고 있는 것이오?”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대답을 먼저 듣지 않으면 전면전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정심회 쪽의 입장입니다.”

“좋소. 나는 삼의맹주가 되면 협정을 체결할지 숙고를 다시 한번 할 것이오.”

“미정이란 말씀이군요. 알겠습니다. 태극검선께서는?”

“나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오. 우리는 아직 정심회 반선들과 그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했소. 그 때문에 심사숙고할 시간이 꼭 필요하오.”

“으음, 알겠습니다. 두 분 모두 반대하지는 않으시군요. 그 정도면 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오?”

“정심회 쪽에서는 협정 체결에 처음부터 반대하는 사람만 아니면 된다고 했으니까요. 자, 그럼 마지막으로 풍파객님의 대답을 들어볼 차례군요.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지금 눈에 보이지 않으나 정심회 반선들이 은잠술을 펼친 재 허공에 떠 있다는 겁니다.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알아서 말씀해주십시오.”

“대세를 따르라는 말씀입니까?”

백자안의 물음에 중원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백자안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 역시 아직 실력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정심회 쪽과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불패마왕과 태극검선이 반대가 아니라 유보를 취해 위장협정이라도 체결할 여지를 남긴 것도 그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를 반감이 생기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반대하면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볼까?’

오기가 생긴 것일까.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저는 평화협정에 반대합니다. 제가 삼의맹주가 되면 정심회를 없앨 겁니다. 정심회 반선들은 이미 무림을 어지럽혔으며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늘의 벌을 받아야 할 그자들과 무슨 협정을 벌인다는 말씀입니까? 협정은 절대 불가입니다.”

“으음······.”

중원군자가 안색을 굳혔다.

당황한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중원무맹 지휘부 고수들 상당수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백자안이 껄껄 웃었다.

“설마 제가 협정을 반대한다고 정심회 쪽에서 벼락을 내려 시합 전에 저를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백자안이 하늘을 쳐다봤다.

군웅들이 긴장했으나 아무런 변화는 없었다.

만박서생이 말했다.

“총관께서는 이제 시합을 개시하십시오. 풍파객 역시 말씀은 저렇게 하지만 자세한 사정을 듣게 되면 결정을 달리할 겁니다. 무엇보다 풍파객 저분이 삼의맹주가 된다는 보장 역시 전혀 없으니 일단 시합부터 마무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좀 더 쉬었다가 바로 시합을 하겠습니다. 첫 번째 대결은 단목군 대협과 불패마왕입니다. 북이 울리면 비무대 위로 올라오십시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북이 울리며 단목군과 불패마왕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접전을 벌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단 일장에 불패마왕이 패한 것이었다.

비무대 밑으로 떨어진 불패마왕이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꽤 오래도록 천하제일인으로 불리던 그가 공식적으로 망신을 당한 셈이었다.

하지만 반선들의 등장으로 무림의 판도가 달라진 것 역시 사실이었다.

“내가 졌소.”

이미 탈락이 확정되었지만 불패마왕이 다시 한번 패배를 시인했다.

다음 대결은 백자안과 태극검선이었다.

결과는 조금 전 대결과 동일했다.

백자안의 일장에 태극검선이 비무대 밑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태극검선은 조금의 상처도 입지 않았다.

백자안의 배려 덕분이었다.

“반시진 후 이번 대회의 마지막 시합을 시작하겠습니다. 여기서 승리하는 분이 삼의맹의 맹주가 되실 겁니다.”

중원군자의 말에 백자안이 대기실로 돌아왔다.

절대황녀과 황룡선생이 그를 반겼다.

“이제 단목군만 이기면 삼의맹주가 되시는 겁니다.”

“네. 공주님.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백자안이 회복운공에 들어갔다.

마지막 대결을 앞두고 내기를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일말의 불안감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조금 전 잠시 단목군을 쳐다봤는데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문제는 내상을 회복했다지만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이 없는 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반시진의 휴식 시간은 그에게 매우 긴요했다.

‘깨달음은 찰나의 순간에도 이룰 수 있다. 여기서 한 단계만 더 오를 수만 있어도 훨씬 편해질 것이다.’

백자안이 눈을 감고 깊은 묵상에 잠겼다.

운기조식은 그대로 진행하고 깨달음을 위해 깊은 생각에 잠긴 것이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그것을 알기 위해 마음의 눈을 떠야 한다. 그러면 내 속에 전 세계가 있음을 알 수 있으리라. 무수한 가능성이 그 속에 있다.’

어느 순간 군웅들이 떠들어대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무아지경이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제6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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