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장] 평화협정 3
팔 일 후.
중원무맹 대연무장.
백만이 넘는 군웅이 참석한 가운데 영웅대회가 시작되었다.
와아아.
짝짝짝.
엄청난 박수와 함성이 대회장을 가득 메웠다.
그야말로 무서운 기세였다.
그도 그럴 것이 무림의 평화를 위협하던 혈교와 사사천교, 대인자문 세 곳이 궤멸된 후 처음 맞이하는 대회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직 신선계 정심회 반선들에 대한 우려가 있긴 했으나, 아직 그들이 전면에 나선 것은 아니었다.
“지금부터 영웅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사회를 맡은 중원무맹 총관 중원군자의 개회 선언이 있자, 군웅들이 다시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
“먼저 단상에 있는 삼의맹 지휘부 고수분들부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이번 대회에는 중원무맹, 마교, 동방무맹의 모든 무사들이 참석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중원군자가 말을 한 후 지휘부 고수들을 일일이 호명했다.
단목군, 불패마왕, 태극검선 등 유명 고수들이 호명될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온 것은 물론이었다.
그렇게 제법 긴 소개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대회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바로 무림대회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비무시합이었다.
한데 이번 비무는 정말 보통 비무가 아니었다.
우승자에게는 삼의맹주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었다.
중원군자가 말했다.
“아직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며칠간 삼의맹의 지휘부 고수들이 의논한 결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삼의맹주를 선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삼의맹 소속인 중원무맹과 마교, 동방무맹에서 자체적으로 대표 고수 한 명을 내고, 거기에 일반 무림인을 대표하는 한 명을 더해 총 네 명의 결선 진출자를 뽑는 겁니다. 이 네 분이 무공을 겨뤄 최종 승자가 되는 분이 삼의맹주가 되는 겁니다. 질문이 있는 분은 해주셔도 좋습니다.”
“그럼 현재 비어 있는 각 맹의 수장 자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낭인무사 한 명의 물음이었다.
그가 말한 수장 자리란 바로 중원무맹주, 마교주, 동방무맹주를 말했다.
“그 문제에 대해서 격론이 있었긴 합니다. 사실 처음에는 제가 몸담은 중원무맹의 신임 맹주부터 선출하고, 삼의맹주 자리까지 정하려 했었지요. 하지만 삼의맹의 성격상 각 맹의 수장 자리 모두 삼의맹주가 겸임해야한다는 중론이 형성되었습니다. 그 말씀은 바로 이번에 삼의맹주가 되는 분이 중원무맹주와 마교주, 동방무맹주 자리까지 맡게 된다는 뜻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쉽게 말해 아직 생사가 불명하신 백자안 맹주님이 이전에 맡았던 모든 지위를 전부 계승하게 되는 것이지요.”
“아!”
“오!”
군웅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미처 세세한 사정을 몰랐던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의 최종 승자가 가히 무림의 제일인자 자리에 오르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럼 신선계 정심회 반선들과의 평화협정 체결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협정 체결 권한은 신임 삼의맹주께 일임하기로 했습니다.”
“하기야 그게 가장 깨끗하겠군요. 무림의 단결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강호에서는 여전히 백 맹주님의 귀환을 믿고 있는 분이 많습니다. 만약 백 맹주님께서 돌아오시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때는 당연히 백 맹주님께서 모든 지위를 회복하시게 될 겁니다. 비록 오늘 신임 삼의맹주가 선출되나,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부분 역시 각 맹끼리 합의가 된 결론이니, 다들 그렇게 알고 계시면 되겠습니다.”
와아아.
짝짝짝.
엄청난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백자안이 복귀하면 오늘 대회 결과와 관계없이 다시 맹주 자리를 회복한다고 하니 다들 고무적인 표정이었다.
하지만 어딜 가나 예외는 있는 법이었다.
“그럼 오늘 선출된 신임 삼의맹주는 백 맹주님이 돌아오시면 바로 쫓겨나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마침 삼의맹 부맹주 자리가 비어 있으니, 아마도 그 자리를 맡게 될 겁니다. 아마 백 맹주님도 반대하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맹주님이 정말 살아계실까요? 소림사에서 다들 목격하지 않았습니까? 맹주님이 반선들과 함께 폭사하여 시신조차 찾지 못하게 된 것을 말입니다.”
“맹주님은 반드시 살아계실 겁니다. 여태까지 그래왔듯이 반드시 돌아오실 겁니다. 어쩌면 이미 이곳에 계실지도 모르지요.”
중원군자의 말에 군웅들이 함성을 질러 지지 의사를 표시했다.
“그럼 바로 일반 무림인 최종 결선을 진행하겠습니다. 수천 명이 참가한 예선을 통해 오늘 선발된 분은 모두 네 분입니다. 이중 최종 승자가 바로 삼의맹주 자리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결선에 진출한 도전자분들은 모두 단상 위로 올라와 주십시오.”
중원군자의 말에 한쪽에 설치된 막사 안에서 네 명의 무사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노인 세 명과 삼십 대로 보이는 평범한 사내 한 명이었다.
한데 삼십 대 사내는 바로 백자안이 아닌가.
비록 인피면구를 쓰고 있었지만, 그가 틀림없었다.
그랬다.
풍파객 신분으로 참가한 이번 대회 예선에서 승승장구해 오늘 최종 결선전에 오른 것이었다.
중원군자가 말했다.
“이분들은 엄청난 경쟁을 뚫고 올라온 무림의 고수들로서 모두 실력이 출중합니다.”
와아아.
짝짝짝.
함성과 박수 소리와 함께 결선진출자의 소개가 이어졌다.
결선 진출자의 명호는 백자안을 제외하고 각각 천산노인(天山老人), 우주검객(宇宙劍客), 폭풍객(暴風客)이라 했다.
“그럼 먼저 천산노인과 우주검객 두 분의 대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두 분은 비무대 위로 올라가 주십시오.”
와아아.
함성 속에서 백자안은 원래 대기하고 있던 막사로 향했다.
막사 앞에는 의자가 비치되어 있었다.
백자안은 빈 의자에 앉아 조용히 비무대 위를 쳐다봤다.
‘어찌 됐든 여기까지 왔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는 하나, 내가 내 자리를 두고 시합을 벌여야 한다니 어떻게 보면 우습군.’
백자안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절대황녀가 준 불로금환 덕분에 내상 회복은 순조로운 편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완쾌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 점이 백자안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이번에 삼의맹주 자리에 도전한 불패마왕과 태극검선 정도는 어떻게든 이길 수 있겠지만, 문제는 바로 단목군이었다.
그의 무공 수준은 도무지 가늠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원래 몸 상태라고 해도 힘겨울 가능성이 매우 크다. 만약 내가 패배한다면 그때 가서 내 신분을 밝혀도 아마 민심을 얻지 못할 것이다. 차라리 신분을 밝히려면 지금이 적기랄 할 수 있을 터.’
백자안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언제든 자신이 복귀하게 되면 지위를 회복할 수 있다는 대회 조건이 확정되자, 그의 단목군에 대한 우려도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물론 끝까지 안심할 수 없는 구석이 여전히 있었다. 하지만 많이 무뎌진 것은 사실이었다.
‘모든 것은 순리대로 흘러갈 것이다. 너무 초조해하지 말자.’
백자안이 마음을 비우고 비무대 위를 봤다.
천산노인과 우주검객 두 사람의 대결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예상대로 엄청난 실력의 소유자들이었다.
하지만 백자안이 위협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함성이 터졌다.
와아아.
백자안이 바라보니 천산노인의 승리였다.
천산노인의 일장에 우주검객이 내상을 입어 쓰러진 것이었다.
정신을 잃은 우주검객이 들것에 실려 비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천산노인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기석으로 갔다.
‘갈수록 강해지는 것 같군. 방심해서는 안 되겠다.’
백자안이 눈을 빛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대결이 바로 자신의 차례였기 때문이었다.
“폭풍객과 풍파객 두 분은 비무대 위로 올라오시오.”
“북이 울리면 시작하시오. 쓰러져 정신을 잃거나 비무대 밑으로 떨어지면 패배로 간주할 것이오. 다들 아시겠소?”
중원군자의 말에 백자안과 폭풍객이 고개를 숙였다.
폭풍객은 곧바로 자신의 애검인 폭풍검(暴風劍)을 뽑았다.
독문검법인 폭풍검법(暴風劍法)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폭풍검법은 오직 폭풍검으로만 펼칠 수 있는 상승검법이었다.
폭풍객은 수십 년이 넘는 폐관 수련을 통해 최근 이 검법을 완성한 바 있었다.
강호에 다시 나온 그는 여러 가지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고 숙고 끝에 대회에 참석했다.
그 결과 이전에는 무명에 가까웠던 그는 엄청난 무공을 보여주며 명성을 높였다.
젊었을 적에 무명을 떨치지 못했던 그가 말년에 이르러 성공하게 된 셈이었다.
둥둥둥!
“시작하시오!”
중원군자의 말과 함께 폭풍객이 검을 그대로 찔러왔다.
폭풍검법의 핵심은 쾌검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강할 때는 선공을 가해 반격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 핵심 요결이었다.
슈우우욱.
무심히 내지른 검이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공간을 접고 백자안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백자안이 차고 있던 지존검을 뽑았다.
지존검은 원래 겉으로 표가 나지 않는 검이라 이번 대회에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심회 반선들의 눈을 피하고자 한 번 더 특수 처리를 해 보검임을 알 수 없게 만들어 두었다.
차앙.
검들이 부딪히며 금속성을 냈다.
동시에 폭풍객이 엄청난 반탄력을 느끼며 뒤로 물러났다.
내공으로 버티려고 했지만 힘에 겨운 듯 그 속도를 조금 늦추는 데 불과했다.
폭풍객이 안 되겠는지 들고 있던 폭풍검을 비무대 바닥에 꽂았다.
치치치칙.
불꽃을 일으키며 밀려나는 속도가 훨씬 줄어들었다.
백자안이 장풍을 날린 것은 그때였다.
팡.
“으윽!”
신음과 함께 폭풍객이 포물선을 그리며 비무대 밑으로 떨어졌다.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은 듯 곧바로 일어났으나, 이미 패배한 이후였다.
“풍파객 승리!”
와아아.
짝짝짝.
백자안이 포권으로 답례했다.
“반시진 후 결승전이 시작될 겁니다. 그동안 음식과 술이 나갈 것이니 다들 즐겨주십시오.”
중원군자의 말에 군웅들이 함성을 질렀다.
지금까지 나온 함성중 가장 컸다.
백자안은 대기석에서 조용히 조식에 들어갔다.
예상되는 단목군과의 최종 대결에 대비해 최대한 내기를 안정시켜 두기 위해서였다.
그때 절대황녀가 그에게 다가왔다.
참관인 신분으로 온 그녀는 아까 소개 때 군웅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은 바 있었다.
“괜찮으세요?”
“네.”
백자안이 미소를 지었다.
황룡선생 역시 그에게 다가왔다.
대기석에는 도전자 한 명당 외부인 두 명까지만 들어올 수 있는데 정원이 찬 셈이었다.
“아까 보니 천산노인의 무공이 굉장한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아직 자신의 무공을 모두 다 드러낸 것 같지도 않고요.”
황룡선생의 우려에 백자안이 미소를 지었다.
“저도 그렇게 봤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풍파객께서 이 정도까지 고수이신 줄은 정말 몰랐어요. 하지만 이왕 여기까지 올라온 이상 꼭 최종 승리를 거둬 삼의맹주가 되셔야 해요. 그렇게 되어야 변수를 줄일 수 있어요.”
“변수라 하심은?”
“단목군 저자를 말하는 거예요. 많은 사람이 추켜세우고 좋게 말하고 있지만, 저는 제 느낌을 믿어요. 분명 삼의맹주가 되면 무림에 큰 화를 초래할 거예요.”
“참고하겠습니다. 공주님. 하지만 누가 삼의맹주가 되어도 백 맹주께서 복귀하면 물러나겠다는 데 합의가 되었으니 너무 큰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백자안의 말에 절대황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 말도 믿을 수 없어요. 마교와 동방무맹 쪽은 믿을 수 있겠지만, 단목군은 의문투성이에요. 어쩌면 오늘 그가 삼의맹주가 되는 순간 본색을 드러낼 가능성도 커요. 이는 그가 우리 황궁의 개입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알겠습니다.”
백자안이 미소를 지은 후 조식을 취했다.
절대황녀와 황룡선생이 운공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단상 위 귀빈석으로 돌아갔다.
백자안은 차분히 마음을 다스렸다.
오늘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그 역시 아직 알 수 없었다.
설사 단목군을 이겨 다시 삼의맹주가 된다고 해도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일만이 넘는 반선들이 소속되어 있는 정심회의 힘은 실로 가공하다. 고작 반선 다섯 명과 싸우다 동귀어진할 뻔했던 것이 좋은 예다.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은둔회 쪽인데, 마교와 동방무맹 무사들을 소림사로 이동시켜준 후 더는 소식이 없는 것 같구나. 정말로 정심회 쪽의 공격을 받은 것인가.’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영웅대회 준비로 신선계에 가볼 엄두도 못 냈던 그였다.
물론 내상 회복이 덜 되어 특수 이동대법을 펼치기 힘든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오늘 대회가 끝나고 어떤 식으로든 신선계로 다시 가서 천음반선님을 만나 뵈어야겠다. 나 혼자서 그 많은 정심회 반선들을 상대하는 것은 지성에 달해 절대경지에 오르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