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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148화 (148/250)

[제48장] 평화협정 2

단목군 등 중원무맹 고수들과 마교, 동방무맹 고수들의 회의는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풍운장원 취의청 안의 열기 또한 더욱더 뜨거워졌다.

하지만 밤이 깊어 이제는 결론을 내려야 할 때였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대략 단목군의 해명과 설득에 마교와 동방무맹 고수들이 수긍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직 군웅들에게 절대적인 확신은 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잠자코 듣기만 하고 있던 백자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목 대협의 말씀은 합리적이고 뭐라 반박할 여지가 없다. 굳이 당장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예감이 좋지 못하구나. 뭐라 딱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이대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좋지 못한 결과를 낼 것 같다.’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사실 지금 상황은 그에게 있어서도 어려움을 주고 있었다.

단목군의 독단이 군웅들의 반감을 사게 되면 그때 자신이 나서려고 했었다.

아직 내상 회복이 덜 되었지만, 무리해서라도 본 얼굴을 보이고 사태 수습게 나서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단목군의 해명이 먹혀들어 가고 있었다.

삼의맹 무사들이 그를 중심으로 일치단결해서 정심회 반선들을 상대하려는 대세가 형성된 것이었다.

‘지금 내가 나서는 것은 좋지 못하다. 사실 내가 다시 세상에 나타난 것이 정심회 반선들에게 알려지면 분명 그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지존검과 천마검 때문이라도 싸움을 걸어올 터. 그렇게 되면 단목 대협의 말대로 무림은 큰 위기에 처할 것이다. 게다가 아직 내상 회복이 덜 되었으니, 전면전이 벌어지면 나 역시 패할 가능성이 크다.’

백자안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정체를 완전히 밝히려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애써 만든 계획을 자신이 망가뜨릴 위험이 큰 것 같아 주저하는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어쩔 수가 없구나. 아직 대회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좀 더 지켜봐야겠다. 지금으로서는 어떤 상황에도 대비할 수 있게 내상 회복이 우선인 것 같구나. 원래는 석 달 정도의 운공요상이 필요하나 최대한 앞당겨 영웅대회 전까지 회복해야겠다.’

백자안이 결단을 내리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왠지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 무렵 회의는 점점 마무리되고 있었다.

만박서생이 말했다.

“여러 영웅 분들의 의견은 잘 들었습니다. 이제 결론을 내려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만박서생께서 정리를 해주시겠소?”

불패마왕의 말에 만박서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결론은 간단합니다. 시간을 벌기 위해 정심회 반선들과 평화협정을 맺는 게 여러모로 나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는 위장협정입니다. 따라서 오늘 이 말은 절대 외부에 흘러나가서는 안 될 겁니다.”

“그건 염려할 필요가 없소. 다만 평화협정 체결을 누가 할 것인지 미리 정해야 할 것 같소. 일단 단목군 귀하가 단독으로 체결하는 것은 반대하오.”

“그 말씀은 본인의 삼의맹주 취임을 반대하는 것이오?”

“그렇소. 아무리 위장 전술이라 하나 귀하가 중원무맹주 자리와 삼의맹주 자리를 동시에 가지는 것은 곤란하오. 특히 백 맹주가 아닌 그대에게 본교와 동방무맹 무사들이 충성을 바치는 것은 불가하다고 생각하오.”

“하지만 단목 대협께서 삼의맹주가 되지 않으면 대표성을 가지기 힘들 겁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이번 영웅대회 때 단목 대협께서 중원무맹주 외에 삼의맹주 자리까지 차지해야 반선들과 협정을 체결할 수 있을 겁니다.”

만박서생의 말에 불패마왕이 코웃음을 쳤다.

“흥! 그렇게도 놈들의 꼭두각시가 되고 싶은 것인가? 단목군 그대가 말해보시오.”

단목군이 말했다.

“무림의 평화를 위한 일이오. 오해를 받겠지만 그것이 대의라고 생각하오.”

“하지만 그대가 삼의맹주가 되는 것은 반대하오. 다만 평화협정 체결은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고 하니까 알아서 하시오. 본교와 동방무맹은 협정에 구속되지 않을 것이오.”

“불패마왕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동방무맹 부맹주 태극검선의 말이었다.

만박서생이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지요. 어차피 영웅대회 때 새 중원무맹주가 선출될 겁니다. 무림 관례상 비무로 결정지어질 것인데, 단목 대협께서 정식으로 무공을 겨뤄 중원무맹주 지위로 복귀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다만 삼의맹주 자리는 우리 마음대로 정할 것이 아니니, 마교와 동방무맹 두 곳에서 대표를 뽑아 단목군 대협과 시합을 벌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긴 쪽이 삼의맹주 자리를 가져가게 되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물론 명분을 쌓기 위해 일반 무림인들의 도전도 받아줄 겁니다. 이전처럼 예선전을 펼쳐 그 우승자를 일반 무림인의 대표로 인정해주는 것이지요.”

“그럼 결승에 네 명이 올라가는 건가요?”

임요요의 물음이었다.

“그렇습니다. 요컨대 처음에는 중원무맹주를 뽑고, 이후에는 중원무맹, 마교, 동방무맹, 일반 무림인 이렇게 네 곳에서 각각 한 명씩 대표를 출전시켜 삼의맹주를 뽑는 겁니다.”

만박서생의 말에 군웅들이 술렁였다.

무림 관례상 어려운 선택의 순간에는 늘 무공 실력으로 판가름내는 게 대다수였다.

이번에도 그렇게 진행될 것 같았다.풍류도인이 물었다.

“단목 대협께 여쭤보겠습니다. 만약 삼의맹주가 되시면 정심회 반선들의 요구를 어떻게 할 겁니까?”

“일단은 받아들이는 흉내는 내야겠지요. 놈들의 지시를 따르는 척하면서 확실한 대비책을 강구할 생각입니다. 여차하면 강시들을 다시 소환해 우리 편으로 싸우게 하는 방법도 생각 중입니다.”

단목군의 발언에 군웅들이 술렁였다.

듣기만 해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강시 이야기가 다시 나왔기 때문이었다.

“단목 대협께선 여전히 강시를 부릴 수 있는군요. 하지만 대인자문 강시 백만 구는 이미 소림사 전투 때 제거되었습니다. 한데 놈들을 다시 살릴 수 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정심회 반선들의 강시술은 매우 특이해 온몸이 가루가 되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되살릴 수 있습니다. 저는 우두머리 강시가 되어봤기 때문에 그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훗날을 위해 강시들의 최후 진기까지는 끊지 않았습니다.”

“강시들로 반선들을 상대하실 생각입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는 최악의 순간에 시행해야 할 일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강시들이 명을 받지 않고 제멋대로 다닐 수 있으니까요. 사실 지금으로서는 정심회와 대립하고 있는 은둔회 소속 반선들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볼 수 있지요.”

단목군이 안색을 굳혔다.

“은둔회 반선들의 도움은 당분간 받기 힘들 겁니다. 아마 지금쯤 정심회 반선들의 공격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클 겁니다.”

풍류도인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단목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하지요.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면 다시 이번처럼 만나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하면 좋겠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여러분께 약속할 일이 있습니다. 만약 제가 다시 중원무맹주 나아가 삼의맹주가 되더라도 백 맹주가 복귀하면 즉시 모든 자리를 내놓겠습니다.”

“오!”

“역시 대협이군!”

탄성이 터져 나오며 단목군의 결단에 군웅들이 박수를 보냈다.

짝짝짝.

지금까지 단목군을 의심했던 마교와 동방무맹 무사들조차 부끄러운 표정을 지을 정도였다.

단목군이 말했다.

“평화협정은 새롭게 뽑힐 삼의맹주가 체결하도록 합시다. 물론 위장 체결입니다. 놈들의 약점이 간파되거나 우리 쪽 힘이 더 강해지면 즉시 협정을 파기할 겁니다. 질문이 있으신 분은 해주십시오.”

군웅들이 다시 술렁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 회의를 연 덕분인지 질문은 따로 없었다.

“그럼 우리는 돌아가겠습니다. 삼의맹 해체는 일단 막게 되어 다행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백 맹주의 생사불명입니다. 지금이라도 나타나 준다면 한시름 놓을 텐데. 아무래도 여러분 중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중에 맹주님이 계시면 벌써 신분을 드러내셨겠지요.”

풍류도인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백자안의 복귀를 바라는 그는 오늘 회의 결과가 그렇게 탐탁지 않은 것 같았다.

위장체결인데다가 백자안이 복귀하면 즉시 물러난다고 약속했지만, 결국은 단목군이 중원무맹주와 삼의맹주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당금 천하에 선선계 반선들을 제외하고 그와 겨룰 수 있는 사람은 백자안이 유일하다고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단목군이 말했다.

“우리 바람대로 백 맹주가 복귀했다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커지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지존검과 천마검을 백 맹주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반선들은 두 보검을 찾느라고 혈안이 되어 있을 겁니다. 우리에게 평화협정 체결을 강요하는 것 역시 당분간 두 보검의 행방을 찾는 데 힘을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하기야 맹주님께서 복귀하시면 정심회 반선들의 공격을 받으실 것이고, 무력에서 절대 열세인 우리가 대패할 가능성이 크긴 합니다. 게다가 설사 살아계신다고 하더라도 내상 회복이 덜 되었을 가능성이 크니, 만약 그렇다면 오히려 지금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회복에 전념하는 게 무림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겠군요.”

만박서생의 말에 군웅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완전히 몸 상태를 회복한 백자안의 귀환이었지, 내상이 심한 그는 아니었다.

‘역시 내 생각과 같구나. 섣불리 나서지 않기를 잘했다. 하지만 찜찜함은 여전하구나.’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하지만 이미 회의는 종료된 상태였다.

단목군을 비롯한 중원무맹 고수들이 서둘러 총단으로 돌아갔다.

마교와 동방무맹 지휘부 고수들도 내일 다시 의논하기로 하고 모두 거처로 돌아갔다.

백자안 역시 절대황녀와 황룡선생과 함께 방을 배정받았다.

풍운장원 관리를 임시로 맡은 무사들은 대부분 동방무맹 소속으로 다들 친절했다.

백자안은 절대황녀의 배려로 작은 독방 하나를 받아 휴식을 취했다.

잠시 쉰 그는 곧바로 가부좌를 틀고 운공요상에 들어갔다.

하지만 일단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바로 단목군에 대한 느낌 때문이었다.

‘세밀하게 살폈지만 절대 역용이 아니었다. 하지만 강시를 부활시켜 부릴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 뭔가 이상한 점이 많다. 아무래도 조처를 해야겠구나. 지금 상황에서 어떤 것이 최고의 방법일까?’

백자안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실 그는 삼의맹주 자리에는 그다지 미련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무림이 잘못되는 것은 막아야 했다.

‘아무래도 내가 영웅대회에 참석해 비무를 통해 다시 맹주가 되는 것이 좋겠구나. 어차피 본 얼굴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지존검과 천마검을 사용하지 않으면 나를 알아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 설사 평화협정이란 것을 체결한다고 해도 내가 해야 상황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일반 무림인도 도전할 수 있다고 하니 그 방법이 최선일 것 같군. 문제는 내상 회복인데 무리해서라도 최대한 앞당길 수밖에 없겠군.’

결단을 내리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것은 그가 다시 주도권을 쥐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때였다.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두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한데 그들은 절대황녀와 황룡선생이 아닌가.

“어쩐 일이십니까?”

“황룡선생님과 상의를 하다가 풍파객님을 뵈러 왔어요.”

“무슨 문제입니까?”

“풍파객께서 영웅대회에 참가해주실 수 있나요?”

“제가 말입니까?”

“네. 아무래도 단목군 그자의 행태가 수상해 계속 감시가 필요할 것 같은데, 명분이 부족해요. 하지만 우리 쪽에서 도전자가 출전한다면 저 역시 보다 수월하게 개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물론 최소 본선에는 진출하셔야 합니다. 가능할까요?”

“처음 해주시는 부탁인데 들어드려야지요. 사실 모종의 이유로 대회 참가를 고민 중이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내상이 완전히 회복되려면 석 달은 되어야 할 것 같아 그게 걱정입니다.”

“호호. 그럴 줄 알고 단약을 가져왔어요. 황궁비고에 있는 몇 안 되는 단약인데, 어떤 내상이라도 단기간에 회복시켜주는 효능이 있지요.”

절대황녀가 품속에서 병을 꺼내 단약 하나를 꺼냈다.

금빛이 은은하게 나는 것이 보통 단약이 아니었다.

“혹시 이건 불로금환(不老金丸)?”

“네. 맞아요. 삼백 년 전 황궁 법사 한 분이 만든 것으로, 천하에 열 알도 채 남아 있지 않지요. 어서 드세요.”

“이 귀한 것을?”

“천하 창생을 위한 것이니 사양하지 마세요. 욕심 같아서는 풍파객께서 삼의맹주가 되시면 제일 좋겠는데, 그건 무리이겠지요?”

“당연합니다. 한데 저를 어떻게 믿고?”

“느낌이란 것이 있잖아요? 풍파객님은 눈빛만으로도 신뢰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서 드세요.”

“감사합니다.”

백자안이 불로금환을 받아 입에 넣었다.

즉시 뜨거운 기운이 단전에 느껴졌다.

“우리는 이만 가볼게요. 일주천을 한 번만 해도 약효가 퍼질 거예요. 그럼.”

절대황녀가 미소를 지은 후 황룡선생과 함께 방에서 나갔다.

홀로 남게 된 백자안이 다시 회복운공에 전념했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지금 내 몸 상태에서 최적의 효과를 볼 수 있는 단약이라 할 수 있겠군.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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