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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144화 (144/250)

[제47장] 절대황녀 1

[제47장] 절대황녀

“그러니까 죽은 줄 알았던 단목군이 살아 돌아와 무림을 평정했다는 건가요?”

“네. 공주님.”

“의외로군요.”

황의소녀, 즉 절대황녀가 아미를 찌푸렸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소림사 인근에 황군 십만 명을 잠복시켜둔 그녀였다.

부친인 황제의 명을 받아 대인자문 무리를 완전히 소탕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섣불리 소림사로 향하지는 못했다.

혈사맹 무사들이 소림사를 포위하고 있었으나, 아직은 어디까지나 무림의 일이었다.

무림과 관부는 불간섭이 원칙.

다만 대인자문은 왜구와 관련이 깊어 조정에서 척결하기로 결정이 난 바 있었다.

“대인자문 놈들이 강시로 만들어졌다고 들었고, 반드시 이번에 출몰할 것으로 예상되어 준비했건만. 어이없게도 모두 자진을 했다니······.”

절대황녀가 허탈해했다.

그녀를 보좌하는 책사 황룡선생(黃龍先生)이 말했다.

“우리로서는 잘된 일입니다. 지난번 해남도 해전에서 격파했던 왜구들과 달리 대인자문 정예의 무공은 무시 못 할 수준이니까요. 비록 강시로 변했다고는 하나 우리 황군과 정면으로 격돌했다면 아군의 피해 역시 만만찮았을 겁니다.”

“하기야 그건 그러네요. 하지만 이제 이백만이 훌쩍 넘었던 혈사맹과 대인자문 무리가 완전히 소탕된 셈이니, 천하를 위해 잘된 일은 맞는 것 같아요. 한데 삼의맹주 백자안 그 사람은 정말 죽었나요?”

“네. 정심회 반선 다섯 명과 동귀어진했다고 들었습니다. 엄청난 폭발로 인해 그 시신조차 완전히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지요.”

“아쉽군요. 한번 꼭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는데······ 그때 해남도 전투 때 불에 타서 바다에 빠졌던 그 사람이 바로 백자안이라고 했던가요?”

“네. 백 맹주는 짧은 기간에 많은 신분으로 활동을 했었지요. 그랬기 때문에 중원무맹과 마교, 동방무맹 세 곳의 수장 자리까지 맡게 되었지요. 하지만 이제 그가 죽었으니,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질 겁니다.”

“문제라면? 맹주 자리 말인가요?”

“네. 벌써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중심으로 단목군이 다시 중원무맹주로 복귀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고 합니다. 백 맹주가 죽은 지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황룡선생이 탄식했다.

절대황녀 역시 안색을 굳혔다.

“지금은 자리다툼을 할 때가 아니지 않나요? 듣자 하니 정심회 반선들이 아직 건재하다고 하던데, 그들에 대한 방비는 되어 있다고 하던가요?”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전혀 대비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열흘 후 낙양에 있는 중원무맹 총단에서 영웅대회를 열어 새 맹주를 뽑는 문제를 결정하고 정심회 반선들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기로 했으니까요. 아마도 오늘 중 소림사에 있는 삼의맹 무사들이 대거 낙양으로 갈 겁니다.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정심회 반선들이 직접 무림을 장악하려 한다면 황궁 역시 개입할 수밖에 없어요. 이미 대인자문 강시들을 만들어 천하를 어지럽히려 했으니, 우리가 개입할 명분은 충분하지요. 하지만 여전히 불간섭이 원칙이니 일단 상황을 지켜보고 새 맹주가 선출되면 그 사람과 의논을 해봐야 할 거예요. 정심회 반선들의 무공이 소문대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다면, 우리 황궁의 힘이 꼭 필요할 것이니까요. 일단 병력을 낙양 인근으로 옮기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공주님은?”

“저는 역용을 한 후 홀로 낙양으로 들어가겠어요.”

“낙양 어디로 가시게요? 무림맹 총단으로 가실 겁니까?”

“네. 하지만 그 전에 들를 곳이 있어요.”

“어디 말입니까?”

“풍운장원에 가볼 생각이에요. 제 생각에는 아마도 백자안 그 사람이 아직 살아 있을 것 같아요. 이전에도 여러 번 죽었다고 소문난 적이 있었지만 결국 살아 돌아온 전력이 있으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군요. 저는 무사들을 이동시킨 후 다시 공주님을 찾아뵙겠습니다.”

“알겠어요. 지금 바로 부대를 이동시키세요. 저는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다가 낙양으로 갈 테니까.”

“명을 받들겠습니다.”

* * *

황군이 철수한 후 절대황녀는 일단 주위를 살폈다.

뭔가 수상한 것이 없는가 해서였다.

하지만 별다른 것은 없었다.

사실 황군이 주둔했던 곳은 황실 고유의 진법이 주위에 펼쳐져 있어 아무도 군대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황군의 출현은 늘 조심스러웠다.

백만 황군으로 대표되는 그들은 황도가 위험에 처했을 때만 움직이는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왜구 토벌 등 황궁 차원에서도 보고만 있을 수 없는 경우에는 예외도 인정되었다.

이번의 황군 병력 십만의 차출 역시 그러했다.

이들 십만 황군은 그 무공이 뛰어난 자들로 선발된 것으로, 병력은 그다지 많다고 할 수 없으나 그 힘은 매우 강력했다.

하지만 느닷없는 전쟁의 마무리가 발생해 그 위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다.

다만 지난날 해남도 전투에서 황군은 이미 그 힘을 충분히 보여준 적이 있어 누구도 이를 경시하지 않았다.

“휴우! 별 이상은 없군. 곧 소림사에서 무림인들이 대거 내려올 것이니 나 역시 미리 떠나는 게 좋겠다.”

절대황녀가 숲속에서 나와 큰 산길로 나왔다.

이미 평범한 여인의 얼굴로 역용한 그녀였다.

무림인들이 그녀를 발견해도 공주 신분이 드러날 위험은 전혀 없었다.

곧이어 막 경공을 펼쳐 산 아래로 내려가려던 절대황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선가 신음이 들려왔던 것이다.

‘근처에 부상자가 있는 것 같군.’

절대황녀가 신음이 나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황군이 주둔했던 곳과 정 반대편이었다.

얼마 후 그녀가 발견한 것은 바위 옆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한 사내였다.

한데 그는 백자안이 아닌가.

반선들과 함께 폭사한 것으로 알려진 그가 이곳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상처는 매우 깊었다.

특히 화상으로 인해 얼굴 가죽이 모두 벗겨져 있었다.

‘끔찍하군. 저 정도 상처라면 무형검의 고수가 아닌 한 본 얼굴을 회복할 수 없겠구나.’

절대황녀가 안타까워하며 백자안 옆으로 다가갔다.

백자안은 신음만 내뱉을 뿐 여전히 의식은 없었다.

절대황녀가 지혈한 후 금창약을 뿌려 주었다.

그런 후 백자안을 일으켜 앉힌 후 명문혈에 내공을 넣어주기 시작했다.

상승고수만이 할 수 있는 내공 치료였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특이한 체질이군. 내공이 전혀 파악되지 않는다. 내공이 없는 것도 같고 어쩌면 나와 비교할 수 없이 많은 내공을 가지고 있는 것도 같구나. 보아하니 며칠간 이곳에 쓰러져 있다가 자연 치유를 통해 조금씩 깨어나려는 같은데, 그 속도가 너무 빠르구나.’

절대황녀가 의아해하면서도 계속해서 백자안에게 내공을 주입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백자안이 천천히 눈을 떴다.

절대황녀는 매우 기뻐하며 물었다.

“어때요? 정신이 좀 드세요?”

“으으······ 이곳은?”

“소림사 아래예요. 중원무맹 무사이신가요?”

“아, 저는······.”

백자안이 몸을 일으키다가 인상을 찡그렸다.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던 것이다.

곧이어 그는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기억 역시 떠올리고 있었다.

중원삼성과 오행반선, 그리고 무심반선과의 격돌.

산공비술을 펼친 탓에 의식이 흐려지던 그가 최후의 공격을 가했었다.

반선들 역시 필사적인 반격을 가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백자안의 승리였다.

백자안이 지존검과 천마검으로 날린 막대한 검강에 중원반선, 오행반선, 무심반선이 그대로 가루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때 발생했다.

반선들의 시체가 어떤 압력을 받아 그대로 폭발했다.

동시에 공간의 틈이 생겨나며 한줄기 경력이 발출되어 백자안을 강타했다.

말은 길었지만, 이 모든 것이 한순간이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대폭발로 인해 모든 것이 사라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중원삼성과 오행반선, 무심반선의 시체였다.

백자안 역시 암수를 당해 의식을 잃고 육신이 가루가 될 뻔했다. 하지만 천우신조로 천마룡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가루가 되기 직전 천마룡이 그를 폭발 속에서 빼내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백자안이 내상과 함께 의식을 잃게 되자 천마룡의 위력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천마룡은 포기하지 않았고, 최후 힘을 가해 백자룡을 인적이 드문 이곳에 데려다 놓아 주었던 것이다.

이후 천마룡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었다.

여전히 본체는 환영이었기 때문이었다.

백자안은 자신의 얼굴이 완전히 망가진 것을 확인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내상이 회복되면 무형공력으로 본 얼굴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그때가 요원했다.

‘최소 석 달간의 운공요상이 필요하다. 전황이 궁금하구나.’

백자안이 그제야 전황을 물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소저께서는 소림사에서 벌어진 전투의 결과를 알고 있습니까?”

“네. 하지만 그전에 물어볼 게 있어요. 소속이 어딘가요?”

“저는······ 일개 이름 없는 무사입니다. 소림사에 영웅들이 포위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다가 그만 전장에 휩쓸려 크게 다쳤지요.”

“폭발이 난 곳 근처에 있었던가요?”

“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상처가 그렇게 보였어요. 하지만 특수체질이라 그런지 자연치유가 되었네요.”

“아닙니다. 이게 다 소저께서 치료해주신 덕분이지요. 그보다 전투 결과에 대해 어서 알고 싶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대승을 거두었으니까.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져 무림의 평화가 다시 찾아왔어요. 물론 정심회 반선들이 다시 공격을 가해올 가능성이 크지만, 전대 맹주인 단목군 대협의 말에 따르면 정심회 반선들과 곧 평화협상을 할 계획이라고 하더군요.”

절대황녀가 찬찬히 설명해주었다.

백자안이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가장 놀란 것은 단목군의 복귀였다.

그가 정심회 반선들의 꼭두각시가 되었다가 오히려 절대각성을 하여 혈사맹과 강시들을 모조리 제거했다는 말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단목 맹주가 죽지 않고 정말로 복귀했다면 당분간 내가 나서지 않는 게 더 좋을 수 있겠구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곧 다시 맹주로 복귀할 것 같은데, 지금 내가 나타나면 큰 분란이 일어날 것이다. 차라리 정심회 쪽에서 공격이 없다면 영웅대회가 열리는 열흘 후까지 조용히 운공요상이나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세요?”

절대황녀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녀는 눈앞에 있는 사내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 수 있었다.

특히 백자안이 자신의 얼굴이 망가진 것을 알고도 담담해 하던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 평정심을 찾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저는 봉황선자(鳳凰仙者)라고 해요. 실례가 안 된다면 별호라도 알 수 있을까요? 보아하니 보통 분이 아닌 것 같은데······.”

“하하하. 풍파객(風波客)이라고 합니다. 무명소졸이라 처음 들어보실 겁니다.”

백자안이 미소를 지었다.

어찌 되었든 삼의맹이 대승을 거두었다. 특히 혈교와 사사천교, 대인자문 병력이 전멸해 후환을 없앤 것은 큰 기쁨이었다.

정심회 반선들 문제가 남았지만, 그들 역시 당장은 섣불리 공격을 가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지존검과 천마검은 여전히 내 몸속에 있으니, 보검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당분간 내 존재를 숨기는 것이 좋겠다. 반선들이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면 당장 무림에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낙양으로 돌아가 전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면서 향후 행보를 결정해야겠구나.’

백자안이 생각에 잠겼을 때.

절대황녀가 물었다.

“정말 몸은 괜찮으세요?”

“네. 가벼운 무공 정도는 가능합니다. 다만 얼굴이 망가졌으나 사실 큰 문제는 아닙니다. 일전에 한 고인으로부터 의술을 배워 내상이 회복되는 대로 본 얼굴을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아! 그런가요? 어쩐지 침착하시더군요. 하지만 그때까지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그 얼굴로 다니기에는 불편하실 텐데······.”

“인피면구를 하나 구해서 쓰고 다니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방법이 있군요. 마침 제가 인피면구 한 장이 있는데 드릴까요?”

“하하하. 그래 주시면 감사하지요. 하지만 은혜가 더욱더 깊어지는데 이를 어찌 갚을지 걱정입니다. 혹시 제가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습니까?”

“으음, 있긴 있어요. 혹시 낙양 지리에 대해서 잘 아세요?”

“네. 잘 압니다.”

“그럼 영웅대회가 끝날 때까지만 저의 길 안내를 해주세요. 가능하겠어요?”

“물론입니다. 어차피 저 역시 낙양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으니까요.”

“호호. 감사해요.”

절대황녀가 눈을 빛내며 품속에서 인피면구 한 장을 꺼내주었다.

백자안이 인피면구를 쓰고 평범한 삼십 대 남자로 변하는 것을 보며 그녀가 눈을 빛냈다.

‘무명소졸이라고는 하지만 분명 아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함께 다니면 내 신분 역시 감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무공 역시 내상만 회복되면 매우 강할 것도 같고, 무엇보다 왠지 모르게 자꾸 끌리는 사람이구나. 사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동행할 상황은 아닌데,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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