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장] 생사결 2
“그렇게 해야지.”
사사노야가 쓰러져 있는 백자안을 향해 다가갔다.
백자안이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고 있던 삼의맹 무사들이 긴장한 것은 물론이었다.
벌써 불패마왕과 부채도사 등은 손을 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사결 규정상 외부인의 도움을 받게 되면 그 승리를 인정받을 수 없었다.
“후후후! 이미 죽은 것 같군.”
사사노야가 껄껄 웃으며 손을 들었다.
지풍을 날려 백자안의 머리를 박살 내려는 것으로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불패마왕 등이 손을 쓰려던 찰나.
거짓말같이 백자안이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네놈이! 어떻게?”
사사노야가 깜짝 놀랐다.
그가 공격을 주저했던 것은 지금과 같은 상황 때문이었다.
한데 정말로 백자안이 다시 일어나고 말았다.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소. 한데 그대는 이미 합공을 했던 동료를 죽였구려.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오.”
“어떻게 된 것이냐? 분명 죽은 줄 알았는데······.”
“그대를 시험한 것이오. 내가 죽게 되면 반드시 그대가 광세혈신을 죽일 줄 알았소.”
“흥! 거짓말 마라. 아마 최후 잠력을 사용한 모양인데, 그래 봤자 마지막 발악일 뿐이다.”
사사노야가 지풍을 날렸다.
사실 백 마디 말보다 이러한 한 번의 공격이 백자안의 상태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법이었다.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사실 그의 내상이 심한 것은 사실이었다.
아까 사사노야와 광세혈신 두 사람과의 대결 때를 돌이켜 본다면, 그는 격돌직전 암수에 당하고 말았다.
허공에서 날아온 한 가닥 경력에 당해 기혈이 흔들린 것이었다.
그 결과 무기력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백자안은 그 암수가 바로 지금 허공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정심회 반선 중 한 명의 짓이라 판단했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면 중원삼성 중 첫째인 백의반선의 공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사노야와 사전 약속이 없었음에도 자신의 판단에 따라 암수공격을 가한 것이었다.
물론 백자안 역시 가만있지 않았다.
반탄지기를 이용해 암수가 날아온 곳으로 반격을 가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사노야와 광세혈신 두 사람의 공격에 대비하지 못해 내상을 입고 만 것이었다.
만약 그때 사사노야가 쓰러진 백자안을 향해 곧바로 공격을 가했다면 회복이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사사노야는 권력 독점을 위해 탐욕을 부려 광세혈신을 죽였다.
그 덕분에 백자안은 회복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물론 사사노야가 광세혈신을 제거할 것이라는 느낌 역시 받고는 있었다.
하지만 확신은 없었는데 결과가 나타나자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해 심리전을 펼친 셈이었다.
팡.
백자안이 지존검으로 지풍을 막아냈다.
사사노야가 빠르게 다가와 사사검법으로 백자안의 목을 후려쳤다.
쐐액.
단순해 보였지만 이번 일검에는 사사노야의 필생 공력이 담겨 있었다.
백자안 역시 물러나지 않았다.
지존검으로 사사노야의 검을 막은 후 천마검으로 상대의 목을 베었다.
“크윽!”
사사노야가 눈을 부릅떴다.
그의 목이 몸뚱이에서 분리되고 있었다.
애초 그는 백자안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정심회 반선 중 한 명의 암수가 아니었다면 일검에 죽었을 운명이었다.
와아아.
삼의맹 무사들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백자안이 생사결에서 최종 승리했기 때문이었다.
만박서생이 급히 소리쳤다.
“우리가 이겼다. 약속대로 혈사맹 네놈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순순히 처분을 받아라.”
“흥! 개소리! 비록 교주님께서 돌아가셨지만, 여전히 우리 전력이 강하다. 그까짓 약속은 애초에 효력이 없었지. 어차피 네놈들 역시 지키지 않았을 것이 아니냐?”
만뇌서생이 소리쳤다.
혈군자 역시 동조했다.
“네놈들이 우리의 분열을 꾀했다면 오산이다. 우리는 하나로 뭉쳤다. 이번 전투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고맙소. 혈군자. 교주끼리의 은원은 잊어버리고, 지금부터 우리 두 사람이 혈사맹의 맹주 대행을 공동으로 맡기로 합시다.”
만뇌서생의 말에 혈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지난 일은 묻지 않겠소. 다만 우리 혈교 출신 무사들을 동등하게 대우해주길 바랄 뿐이오.”
“여부가 있겠소? 다만 지금 상황을 더욱더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반선분들의 도움이 필요하오.”
만뇌서생이 허공을 쳐다봤다.
중원삼성 등이 모습을 드러내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의 염원이 통한 것일까.
구름이 다시 나타나며 그 위에 있던 중원삼성과 오행반선, 그리고 무심반선 다섯 명의 얼굴이 보였다.
한데 그중 백의반선이 가부좌를 한 채 운기조식을 하고 있지 않은가.
백자안 역시 그 모습을 보고 자신에게 암수를 가한 사람이 백의반선임을 이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백자안이 소리쳤다.
“백의반선! 비겁하게 암수를 펼치다니 부끄럽지 않소?”
백의반선이 조식을 마치고 천천히 일어섰다.
“백자안 네놈의 실력을 시험해봤을 뿐이다. 예상대로 역시 굉장하더군.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 다섯이 합공을 가하면 너는 반드시 죽고 만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지. 내 말을 부정하겠느냐?”
“으음······.”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백의반선의 말이 틀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중원삼성 중 둘째인 흑의반선이 말했다.
“다섯 명까지도 필요 없다. 네놈은 우리 중 두 명만 합공해도 충분히 죽일 수 있다. 사실 조금 전에도 네놈이 회복하기 전에 죽일 수도 있었지. 하지만 마지막 기회를 주기 위해서 참은 것이다.”
“무슨 기회를 말하는 것이오?”
백자안이 무심히 말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계속해서 조식을 했다.
아직 공력이 덜 회복되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끄는 게 중요했다.
“지금이라도 지존검과 천마검을 우리에게 넘겨라. 네가 직접 우리에게 넘겨주면 그만큼 우리 수고를 덜 수 있으니까.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이미 두 검이 내게 귀속되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오?”
“그렇다. 하지만 네놈이 직접 우리에게 양도하면 귀속력은 처음부터 사라지게 된다.”
“그럴 수도 있겠군. 내가 검을 버린 셈이 되니까. 어쩌면 내가 죽는 것보다 귀속력이 더 빨리 사라지겠군.”
“그렇다. 그래서 네게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거부하면 부득이 네놈을 죽일 수밖에 없다. 네놈이 죽게 되면 비록 시간이 걸리겠지만 귀속력 역시 지속적으로 약해지지. 이는 지존검과 천마검의 이전 주인들이 죽고 세월이 흘러 그 귀속력이 사라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게다가 회주께서 신공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지존검의 도움은 봉인 해제 때와는 달리 귀속력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이제 알겠느냐?”
“알고 모르고가 중요한 게 아니오. 무엇이 옳고 그르냐가 중요한 것이오. 지존검과 천마검이 그대들에게 넘어가면 두 검으로 마신들의 봉인을 풀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세상은 말세가 될 것이오. 내 어찌 그 사실을 알고 그렇게 내버려 둘 수 있겠소?”
“네놈이 정말 끝까지 죽음을 자초하는군. 설마 네놈들을 도와준 은둔회 반선들의 도움을 기다리는 것이냐?”
“······.”
백자안이 대답 대신 안색을 굳혔다.
사실 흑의반선의 말대로 내심 은둔회 반선들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은둔회 반선들이 마교와 동방무맹 무사들을 이곳으로 데려다주지 않았던가.
기대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였다.
잠자코 있던 청의반선이 말했다.
“은둔회 반선들은 신선계로 돌아갔다. 그들은 만년서약을 어길 수 없다. 마교와 동방무맹 무사들을 이곳으로 데려와 준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이지. 서약의 돌의 힘이 강해져 다시는 그들이 네놈들을 도와줄 일이 없을 것이다. 최소한 이곳 무림에서는 말이다.”
“그대들은 서약의 돌의 영향을 받지 않소? 마신들의 힘을 빌려 이렇게 나대는 것이오?”
“후후후! 그렇다. 마신들은 원래 만년서약을 하지 않았지. 우리 정심회 반선들은 서약의 돌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신들의 힘을 빌린 지 오래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으나 그대들의 제의를 거절하겠소. 실력이 있으면 빼앗아 가보시오.”
“어쩔 수가 없군. 큰형님. 명을 내려주십시오.”
청의반선이 백의반선을 쳐다봤다.
백의반선이 무심히 말했다.
“백자안 저놈이 정말 천족의 후예일 수도 있으니, 일단 이번 싸움의 결말을 보도록 하자. 만뇌서생. 혈군자. 두 분은 들으시오. 즉시 총공격을 가해 삼의맹 무사들을 몰살시키시오. 승리를 거두면 두 사람을 공동 최종대리자로 삼아 무림을 다스리도록 하겠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만뇌서생과 혈군자가 고개를 숙였다.
만박서생이 급히 백자안에게 말했다.
“맹주님. 전면전이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그 계획은 여전히 유효합니까?”
“그렇습니다.”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박서생이 말한 계획은 물론 산공비술로 적들의 내공을 일시 무력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백자안은 내심 큰 우려를 하고 있었다.
백의반선의 공격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당한 내상이 여전히 치명적이었다.
완전히 회복하려면 최소 한 달의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상태에서 산공비술을 펼치면 반드시 내가 의식을 잃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설사 혈사맹 무리를 전멸시키더라도 반선들의 공격을 피할 수 없다. 차라리 무리하더라도 천마룡을 같이 만드는 것이 좋겠구나.’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엄청난 후유증이 예상되고 어쩌면 동귀어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험이 필요한 시기였다.
‘산공비술로 혈사맹 놈들을 무력화하면 삼의맹 무사들이 알아서 제거할 것이다. 문제는 정심회 반선들이다. 하지만 천마룡으로 공격을 가하면서 의식을 잃기 전 최후 공격을 가한다면 그들 역시 어쩌면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백자안이 입술을 깨물었다.
승리를 거두더라도 자신은 죽음 아니면 주화입마가 거의 확실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결단이 필요했고 결단을 내렸다.
‘문제는 정심회주를 비롯해 신선계에 남아 있는 정심회 반선들인데, 그들을 대적하는 것은 은둔회 반선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겠구나. 지금으로선 이것이 최선이다. 천명이 있다면 나 역시 삶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몸속에 넣어둔 천상여의주에서 기이한 힘이 느껴졌다.
이전처럼 어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몸 전체에 활력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때 만뇌서생과 혈군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총공격하라!”
“총공격하라!”
와아아.
엄청난 함성과 함께 혈사맹 무사와 강시 백삼십만 명이 삼의맹 진영으로 몰려갔다.
그야말로 거대한 해일이 밀려드는 느낌이었다.
중원무맹만이 아니라 삼의맹 총군사 직도 겸임하고 있는 만박서생이 총공격 명령을 내리기 직전.
백자안이 천마검을 허공에 떠 있는 반선들이 타고 있는 구름을 향해 뻗었다.
순간 천마룡이 마치 환영처럼 생겨나며 반선들을 향해 화염을 내뿜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백자안이 지존검을 휘두르자 거대한 안개구름이 형성되었다.
안개구름은 무서운 속도로 밀려오고 있는 혈사맹 무사들과 강시들 머리 위에 형성되었다. 안개구름에서 곧바로 안개비가 내려 그들 몸을 적셨다.
순간, 혈사맹 무사들과 강시들이 일제히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산공비술 때문에 일시 내공 발현이 중지된 것이었다.
이때를 놓칠 만박서생이 아니었다.
“총공격하라!”
와아아.
중원무맹, 마교, 동방무맹 무사 백삼십만이 일제히 병장기를 들고 삼의맹 무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혈사맹 무사들 역시 그대로 당하지는 않았다.
백자안이 무리한 탓인지 무공이 높은 무사들은 내공 제한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반격에 나섰다.
특히 예상대로 사사천교 강시들의 움직임이 가장 빨랐다.
와아아아.
차차차창.
엄청난 함성과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처절한 비명.
백자안은 의식이 흐려지는 가운데 신형을 솟구쳐 천마룡 위에 올라탔다.
맞은편 구름 위에 천마룡이 뿜어낸 불길에 저항하고 있는 중원삼성과 오행반선, 무심반선이 보였다.
“백자안 네놈이!”
백의반선이 호신강기로 화염을 억제하며 소리쳤다.
내상 때문에 백자안이 천마룡을 만들 수 없다고 판단한 듯했다.
하지만 백자안은 정심회 반선들을 제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천마룡부터 만들었다.
이는 천상여의주의 도움이 컸다.
반선들이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자 백자안은 자신감이 생겼다.
잠시 아래를 보자 삼의맹 무사들이 승기를 잡았지만, 강시들 때문에 피해가 커지고 있었다.
‘저놈들이!’
백자안이 분노하며 천마룡으로 하여금 강시들에게 화염을 내뿜게 했다.
이미 반선들을 화염 속에 일시 가두었기 때문에 여유가 있었다.
화르르.
강시들이 화염에 당해 그대로 녹아내렸다.
내친김에 백자안은 천마룡으로 하여금 삼의맹 무사들을 돕게 했다. 자신은 단독으로 신선운을 만들어 그 위에 올라타고 반선들에게 다가갔다.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