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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138화 (138/250)
  • [제45장] 정의 1

    [제45장] 정의

    다음날 새벽.

    소림사 주위를 감싸고 있던 금빛 안개가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바로 소림삼신승의 계획대로 달마수호진법이 공격진으로 변화하는 순간이었다.

    “진이 변화한다!”

    혈교와 사사천교 무사들이 일제히 변화를 직감하고 소리쳤다.

    하지만 금빛 안개의 움직임이 갑자기 빨라지며 혈사맹 무사들을 완전히 감싸버렸다.

    비록 서쪽과 남쪽을 사사천교가, 동쪽과 북쪽을 혈교가 각각 포위하고 있었지만, 그 전체를 모두 공격진법으로 오히려 감싸버린 것이었다.

    그 위력은 곧바로 나타났다.

    혈사맹 무사들의 내공 운용에 막대한 제한이 생겨난 것이었다.

    대부분의 무사가 최소 절반 이상의 내공 발현 제한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마수호진법 밖으로 나오는 것도 어려웠다.

    금빛 안개가 마치 쇠사슬처럼 혈사맹 무사들을 옥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사천교주 사사노야가 소리쳤다.

    “혈교 쪽에 연락을 취해 모두 한곳에 모이도록 하시오. 혈사맹 무사 전원을 이곳 서문 쪽으로 집결시키시오. 그렇게 해야 진을 파괴할 수 있소.”

    “존명!”

    만뇌서생이 대답 후 수하들로 하여금 나팔을 불게 했다.

    뿌우우.

    이 나팔은 혈사맹 무사들이 모두 모여야 할 필요가 있을 때의 비상 연락 수단이었다.

    비록 전공의 확실한 구별을 위해 무사들을 나누었으나, 뜻하지 않은 진법을 맞이해 힘을 결집할 필요가 있어 총소집령을 내린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혈교주 광세혈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진법의 변화를 보고 전력의 분산을 걱정했다.

    그러던 차에 사사천교에서 집합 나팔을 불자 적극 이에 응했다.

    “소림사 서문 쪽으로 모든 무사를 집결하라!”

    “존명!”

    명을 전달받은 혈군자, 살인혈객 등이 혈교 무사들에게 재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그 모든 상황을 소림사 내부에 있던 중원무맹 오십만 무사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진법을 운용하고 있는 소림삼신승을 필두로 모든 무사가 병장기를 들고 공격 준비를 했다.

    전면전 직전이었다.

    일단 전면전이 벌어지면 소림삼신승 역시 진의 지휘를 중단하고 싸움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사실 진의 변화는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라 삼신승의 도움이 필요 없었다.

    남은 것은 내공 제한으로 전력이 약화한 혈사맹 무사들을 공격하는 것뿐이었다.

    “일각 후에 바로 총공격을 개시하겠습니다. 지금 놈들이 안개 때문에 우리를 보지 못하지만, 일단 우리 역시 소림사 밖으로 나가게 되면 시야는 서로 제한이 없게 됩니다. 다만 놈들은 내공 발현이 한 시진 동안 절반으로 줄어들 겁니다.”

    만박서생의 말에 장대선생이 물었다.

    “이미 진이 변화한 후 반시진이나 지났는데, 그 시간은 빼야 하지 않습니까?”

    “아미타불! 그 점에 대해 미처 설명해 드리지 못했군요. 우리 중원무맹 무사들이 공격을 개시하는 순간부터 한 시진입니다. 군자산 안개가 놈들에게 스며드는 시간이 걸리는데, 예상대로 놈들이 총집결하고 있으니 오히려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입니다. 군자산 안개의 밀집도가 강해지니까요.”

    “군자산 안개가 우리 무사들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까?”

    “그 점을 우려해 공격과 동시에 안개가 흩어지도록 해두었습니다. 하지만 놈들은 이미 몸속에 스며들었기 때문에 한시진 동안 그 영향을 받게 되지요.”

    천승의 말에 중원무맹 무사들이 눈을 빛냈다.

    우려가 컸지만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고 있었다.

    하지만 다들 이번 싸움에 엄청난 희생이 뒤따를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강시부대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컸다.

    “공격이 개시되면 빈승들이 즉시 항마사자후를 터뜨려 강시들의 움직임을 제어하겠습니다. 여러 영웅께서는 강시 걱정은 하지 말고 놈들을 무찔러주시길 바랍니다. 이번 싸움에 무림의 운명이 달려있으니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천승의 말에 무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이제 곧 생사를 가를 전투가 시작될 것이었다.

    설사 승리를 거둔다고 해도 동료 무사 중 절반 이상이 전사하게 될 것은 확실해 보였다.

    “놈들이 모두 모인 것 같습니다. 진격의 북을 울려라!”

    만박서생이 소리쳤다.

    둥둥둥.

    북소리와 함께 중원무맹 무사 오십만이 일제히 서문을 열고 소림사 밖으로 나왔다.

    동시에 혈사맹 무사들을 감싸던 금빛 안개는 사라졌다.

    불과 백장도 안 되는 거리를 두고 양 진영이 정면으로 대치하는 형국이 된 것이었다.

    만박서생, 공무대사 등 중원무맹 무사들이 혈사맹 진영을 보니 사사노야, 광세혈신 등 혈교와 사사천교 무사들이 밀집대형으로 모여 있었다.

    그들은 군자산 안개의 독을 풀기 위해 집단으로 그 해독을 시도하고 있었다.

    사사노야가 소리쳤다.

    “네놈들이 드디어 밖으로 나왔구나. 이미 진이 사라졌으니 다시 들어갈 수도 없을 것이다.”

    “하하하! 군자산 안개에 중독되어 내공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놈들이 입만 살았구나. 오늘 이곳이 네놈들이 무덤이 될 것이다!”

    만박서생이 맞받아치며 소리쳤다.

    그러면서 삼신승을 쳐다봤다.

    항마사자후가 늦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데 삼신승 모두가 진땀을 흘리며 안색이 창백해져 있지 않은가.

    “으으······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중독되어 사자후를 터뜨릴 공력이 모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각오하고 한번 시도를 하겠습니다.”

    천승이 힘든 표정으로 옆에 있는 지승과 인승을 쳐다봤다.

    두 노승 역시 중독이 되었는지 안색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살신성인의 마음으로 사자후를 터뜨렸다.

    우우우우!

    소림삼신승이 합동으로 펼친 항마사자후였다.

    순간, 삼십만 강시들이 흠칫하는 모습이 보였다.

    군자산 안개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던 놈들이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혈사맹 무사들 진영 위에서 피리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삘리리리.

    그 피리 소리에 항마사자후는 급속도로 잦아들었다.

    급기야 소림삼신승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으윽!”

    “으윽!”

    비록 목숨을 잃지는 않았으나 중독과 심한 내상으로 전투력을 잃은 것으로 보였다.

    그때였다.

    혈사맹 무사들 진영 위에서 붉은 광채가 아래로 쏟아졌다.

    그 광채는 혈사맹 무사들의 전신을 비췄다. 그 순간 내공 발현을 제한하던 군자산의 위력이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아!”

    만박서생 등 중원무맹 지휘부 고수들이 탄식했다.

    어렵게 진을 변화시키고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었는데 모든 게 허사가 된 것이었다.

    혈사맹 무사들의 내공은 원래대로 회복되었다. 강시부대 역시 건재했다.

    반면 아군 측은 핵심 고수라 할 수 있는 소림삼신승이 심한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때 혈사맹 진영 위 허공에 구름 한 조각이 나타났다.

    구름 위에는 다섯 명의 노인이 타고 있었다.

    한데 그들은 중원삼성과 오행반선, 그리고 무심반선이 아닌가.

    그들 중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백의반선이 말했다.

    “허허허. 싸움은 공평해야 하는 법이오. 편법은 절대 용납할 수 없소. 다만 혈교주와 사사천교주 두 분이 전공에 욕심을 내어 무사들을 나누었던 것은 유감이었소. 하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힘을 모아 중원무맹 무사들을 대적하도록 하시오. 무사들이 섞여 있더라도 그 공적을 판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까. 우리 반선들은 싸움에 관여하지 않고 열심히 관전하도록 하겠소. 이 말은 중원무맹 측이 승리해도 상관없다는 말이오.”

    만박서생이 물었다.

    “그대들이 바로 정심회 반선들이오?”

    “그렇소.”

    백의반선이 미소를 지은 후 다른 반선들을 소개해 주었다.

    만박서생으로서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 질문을 던졌는데, 더는 어려워 보였다.

    그가 내심 바라는 것은 소림삼신승의 회복이었지만, 그 역시 난망했다.

    심후한 공력을 이용해 몸속에 있던 독을 몰아내려 필사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신승들을 중독시킨 것이 그대들 정심회 반선들이오?”

    “그렇소. 내가 하독했소.”

    무심반선이 대답했다.

    그 말은 소림삼신승이 당한 독이 무심독이라는 말이었다.

    무심반선은 소림삼신승의 의도를 간파하고 달마수호진법 내에 무심독을 살포했었다. 소림삼신승이 그것도 모르고 당한 것이었다.

    “그럼 아까 그 피리는?”

    “허허허. 피리는 내 작품이오.”

    중원삼성 중 한 명인 청의반선의 말이었다.

    사사노야가 말했다.

    “만박서생! 네놈이 시간을 끌려 한다는 것을 잘 안다. 설마 백자안 그놈을 기다리는 것이냐?”

    “맹주님은 반드시 돌아오실 것이오.”

    만박서생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후후후! 백자안 그놈이 신선계에 들어온 것은 맞다. 하지만 악미미 그 계집을 구하고 숨어버렸지.”

    “내 딸이 신선계에 있느냐?”

    중원무맹 지휘부 고수 중 화산파 장문인 매화검선이 물었다.

    그는 악미미를 찾아 방방곡곡을 헤매다가 뒤늦게 소림사로 온 바 있었다.

    “하하하. 누군가 했더니 매화검선이었군. 그렇다. 악가 계집은 우리가 데려왔었다. 하지만 백자안 그놈이 구출해갔지.”

    오행반선의 말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래도 백자안의 등장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이는 무심반선이나 중원삼성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중원무맹과 혈사맹의 싸움보다 오히려 백자안의 출현에 더욱더 관심이 있었다.

    지존검과 천마검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그때였다.

    양 진영이 대치하고 있는 중간 지대 숲속에서 두 사람이 나타났다.

    한데 그들은 바로 백자안과 악미미가 아닌가.

    “맹주님!”

    “미미야!”

    중원무맹 무사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속에는 매화검선이 자신의 딸을 부르는 소리도 섞여 있었다.

    백자안과 악미미는 천천히 중원무맹 무사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백자안은 말없이 우수를 들어 소림삼신승부터 치료해주었다.

    무심독을 완전히 제거해주고 내공을 넣어주자, 소림삼신승의 안색이 회복되었다.

    완전히 그 힘을 되찾으려면 시일이 필요하겠지만 그런대로 싸울 힘은 찾은 것이었다.

    “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백 맹주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영광입니다. 이제 제가 왔으니 다들 안심하십시오.”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옆에서는 악미미와 매화검선이 서로 손을 잡고 부녀상봉을 기뻐했다.

    백자안이 그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와 악미미는 지난 밤 여러 방도를 생각하며 고민했었다.

    하지만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면서 백자안은 반선들이 나타날 경우를 대비해 다시 한번 무공 점검에 들어갔다.

    경험상 어떤 변수에도 통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실력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의반선이 말했다.

    “허허허. 백자안. 네놈이 나타났군. 지금이라도 지존검과 천마검을 우리에게 바쳐라. 그러면 오늘 혈사맹 무사들을 철수하도록 권하겠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거절하겠소.”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것 같군. 이미 우리는 네놈을 최종대리자로 선정하려는 마음을 접었다. 하지만 지존검과 천마검을 내놓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다. 우리 제의를 수락하지 않으면 우리 역시 혈사맹 편에 서겠다. 어떻게 하겠느냐?”

    “나의 마음은 변함이 없소. 지존검과 천마검이 아깝기 때문이 아니오. 두 검을 가지고 마신들의 봉인을 풀게 되면 그 재앙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이오.”

    “마신들은 무림에 큰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천계에 대한 복수심이 크지. 설마 네가 천족의 후예일 가능성이 커서 그러는 것이냐? 그렇다면 그것 역시 너의 오해다. 천족의 후예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지 그게 확정된 것은 아니니까. 설사 천족의 후예라 한들 네놈이 죽고 난 후에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네놈이 설사 천족의 후예라 해도 지금 우리 손에 죽게 되면 다시 천계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천계로 돌아가려면 무림인으로서 천수를 누려야 하기 때문이지.”

    “상관없소. 지금 내가 그대들의 제의를 거절하는 것은 천족의 후예 이야기와는 전혀 관련이 없소. 이것은 정의 대 불의의 문제요. 더는 할 말이 없으니 바로 시작합시다. 그대들의 행태를 두고만 보기 힘드오.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을 바로 잡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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