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장] 신선술 1
[제44장] 신선술
“천미호가 이곳에 나타났다고 했소?”
“네. 천음반선님.”
“으음, 어쩐지 요기가 계속 느껴지더라니······.”
천음반선이 안색을 굳혔다.
천미호가 죽고 난 후 얼마 안 있어 천음동으로 돌아온 그는 백자안과 악미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천미호가 나타난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 증거로 녹색 피고름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처리된 상황.
천음반선은 이내 여유를 찾고 정식으로 백자안과 통성명을 했다.
또한 백자안과 악미미 두 사람의 의문에 대해 답해주었다.
한데 놀랍게도 그 내용은 죽은 천미호가 말한 것과 똑같았다.
최소한 천미호가 신선계 내부 상황에 대해 말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은둔회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알고 싶습니다. 출타를 나가신 것은 다른 은둔회 반선분들을 만나기 위하였습니까?”
“허허허. 그러하오. 하지만 정심회 쪽의 감시가 심해 많이 만나보지 못했소. 원래는 백 명 정도 가입을 했는데, 실제 지금 활동할 수 있는 반선은 나를 포함해 열 명 정도요.”
“은둔회에 가입하지 않은 은둔반선들의 수는 어느 정도 됩니까?”
“그건 나도 모르오. 정심회에 가입하지 않은 반선들 모두를 은둔반선이라 부르기 때문이오.”
“그럼 정심회 반선들의 수는 어느 정도 됩니까?”
“대략 일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소. 외부 활동이 활발한 반선들 대부분이 가입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오. 그에 반해 우리 은둔회 세력은 미미하오. 백 명 정도이니 그 수만 따지면 백 배 차이가 나오.”
“아!”
악미미가 탄식했다.
은둔회 반선들의 세력이 기대 이하였기 때문이었다.
천음반선이 말했다.
“너무 상심하지 마시오. 천족의 후예인 백 공자가 기치를 세우면 은거해 있던 은둔반선들이 대거 나타날 테니까. 사실 외부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수도에만 전념하는 반선들의 수는 정심회 반선들에 비할 바 없이 많다오.”
“신선계 반선 전체 수는 어느 정도 됩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반선들의 규모는 아무도 알지 못하오. 하지만 최소한 십만은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소. 그중 오천 정도만 백 공자가 불러낼 수 있다면 정심회 반선들과 한번 자웅을 겨뤄볼 수 있을 것이오.”
“그렇군요. 하지만 어떻게 그분들을 부를 수 있겠습니까? 저보고 천족의 후예라고 하셨지만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지존검 때문이오. 지존검의 주인이 되었다는 자체가 천족의 후예임을 증명하는 것이라오.”
천음반선이 눈을 빛냈다.
그는 천미호처럼 지존검을 보자고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백자안은 주저 없이 지존검을 꺼냈다.
“이 검이 정말 지존검입니까?”
일단 검의 진위를 물어보는 척하며 지존검을 건네자, 천음반선이 매우 기뻐하며 받았다.
“아! 역시 지존검이구나.”
천음반선이 지존검을 이리저리 살폈다.
얼마 후 지존검을 돌려준 천음반선이 말했다.
“내가 보기에 지존검이 틀림없소. 다만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검의 각성이 필요하오.”
“각성이라 하심은?”
“지존검으로 서약의 돌을 내리치면 검이 각성하게 될 것이오. 그렇게만 되면 은둔반선들이 대거 백 공자를 도울 것이오.”
“서약의 돌이란 만년서약이란 것과 관계있는 것입니까?”
“그러하오. 반선이 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만년서약이 바로 그 서약의 돌에 의해 이루어지오. 하지만 만년서약뿐만 아니라 다른 서약 역시 가능하오. 서약의 돌은 천계의 법보로 지존검과 관련이 있소. 지존검은 사실 함부로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봉인이 되어 있는데, 지금은 일반적인 위력만 발휘할 수 있을 뿐이오. 하지만 천족의 후예는 그 봉인을 풀 수 있소. 다만 봉인을 푸는 데 서약의 돌이 필요해 마지막 절차가 남아 있는 셈이오.”“그러니까 천족의 후예가 지존검으로 서약의 돌을 내리쳐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한데 그 돌은 언제 생겨난 것입니까?”
“상고 시대 천계와 마계의 대전쟁이 있었소. 그 결과 마계가 크게 패하여 마신들이 대거 봉인되었소. 그때 만들어진 것이 서약의 돌이오. 이후 반선들은 그 서약의 돌에 손을 대고 맹세를 해야 했소. 외부 일에 절대 관여하지 않고 오직 개인 수도에만 전념하겠다고.”
“그럼 정심회 반선들은 그 서약을 어기고 있는 겁니까?”
“그렇소. 그들은 우화등선을 위해 무림인들을 다스려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개발해 신선계 내부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소. 게다가 이에 반대하는 반선들을 제거하기 위해 괴수와 요괴 무리와도 손을 잡고 있고, 간접적으로 마계의 지원도 받고 있소.”
“으음, 역시 그랬었군요. 하기야 늑대 괴수들의 말을 들어보니 놈들이 정심회 쪽과 관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아직 명쾌히 이해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신선계의 일은 반선인 우리 역시 모두 이해하기 힘드오. 특히 신선계의 외곽 지대인 미개척지는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요. 하지만 정심회 반선들이 우화등선을 핑계로 죄 없는 무림인들을 괴롭히는 것은 우리 역시 좌시할 수 없소. 그래서 우리가 은둔회를 조직하게 된 것이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일단은 백 공자를 우리의 대리자로 삼고자 하오. 신선계 내부에서는 어느 정도 활동이 자유로우나 외부에서 우리 은둔반선들은 서약 때문에 활동이 거의 불가능하오. 그 점에서 마계의 지원을 받아 일부 무림 활동이 가능한 정심회 반선들과 차이가 있소. 그래서 백 공자를 대리자로 세워 먼저 무림을 평정하고자 하오.”
“그럼 서약의 돌로 지존검을 각성시키는 일은 언제 추진하실 생각입니까?”
“서약의 돌이 있는 서약봉(誓約峰)은 정심회 측에서 장악하고 있소. 또한,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 기관과 진법이 설치되어 있어 뚫고 가기가 힘드오. 아쉽지만 지금은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하오.”
“그럼 먼저 무림부터 평정하란 말씀이군요. 저 또한 한시라도 빨리 낙양으로 가고 싶긴 합니다. 저희를 무림으로 돌아가게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오. 다만 무림으로 돌아가려면 신선술(神仙術)을 익혀야 하오.”
천음반선이 품속에서 한 권의 책자를 꺼냈다.
“받으시오. 우리 은둔반선 백 명이 공동 저술한 신선비급이오.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비급에는 우리 반선들이 알고 있는 각종 신선술이 수록되어 있소. 특히 무림과 신선계를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는 특수 이동대법도 적혀 있으니, 그것을 연마하면 자신의 힘으로 무림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오.”
“하지만 그 모두를 연마할 시간이 있겠습니까?”
“천족의 후예는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신선진기(神仙眞氣)를 타고 나기 때문에 신선술을 익히는데 사흘이면 충분할 것이오.”
“신선진기?”
백자안이 의아해했다.
‘혹시 천력을 말하는 것인가?’
“일단 연마해보시오. 사흘 정도 동굴 밖에서 호법을 서줄 테니까. 석실 안에 물과 벽곡단은 충분하니 수련을 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오.”
“알겠습니다. 아직 많은 것이 의문스러우나 반선님을 믿고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허허허. 모두가 인연인 것을. 그럼 지금부터 바로 시작하오. 악 소저도 함께 운공요상을 하면 좋을 것 같소.”
“네. 감사합니다.”
“허허허. 그럼 수고하시오. 사흘 후에 봅시다.”
천음반선이 석실을 나갔다.
이제 그는 자신의 말대로 동굴 밖에서 호법을 설 것이었다.
“저분은 믿어도 되겠지요?”
천음반선이 사라진 후 악미미가 말했다.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소. 일단 신선술을 연마해야 할 듯하오. 아무래도 이곳 신선계와 무림을 오갈 필요가 많을 것 같으니까.”
“특수 이동대법부터 연마하실 건가요?”
“그렇소. 기본적인 것은 스스로 터득했으니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오. 악 소저 역시 회복운공이 더 필요하니 잘 된 것 같소.”
“네. 이런 시간이 나중에 없을지도 모르니 우리 함께 최선을 다하도록 해요.”
악미미가 미소를 지었다.
백자안 역시 미소를 지은 후 신선비급 연마에 들어갔다.
그가 먼저 연마를 시작한 것은 조금 전 말한 대로 특수 이동대법이었다.
아무리 신선술을 익혀도 무림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속수무책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금 무림 상황은 매우 위급했다.
혈교와 사사천교 연합 세력이 낙양에 있는 중원무맹 총단을 공략 중이었다.
하루빨리 돌아가서 급한 불을 꺼야 했다.
‘사흘도 너무 길다. 하루 만에 모두 익힌다.’
백자안이 일단 신선비급의 전체 내용을 암기한 후 가장 먼저 특수 이동대법 연마에 들어갔다.
악미미 역시 회복운공을 하며 옥녀심공 연마에 들어갔다.
이미 대성을 이루었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무형검 단계까지 도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것은 확실히 무리였다.
그래도 악미미는 실망하지 않았다.
‘일단 목표는 높게 잡는 게 좋다. 무형검 초입이라도 도달해야 정심회 반선들을 상대할 수 있을 테니까 과감히 도전해야 한다.’
시간이 점점 흘러갔다.
* * *
사흘 후.
백자안은 신선비급에 수록된 신선술을 모두 연마하는 데 성공하고 한숨을 쉬었다.
“휴우!”
아쉬움과 기쁨이 함께 들어간 한숨이었다.
“모두 연마하는 데 성공하셨어요?”
악미미의 물음에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아직 그 성취가 높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반선들 흉내는 낼 수 있을 것 같소. 그나저나 너무 시간을 허비한 것 같소. 원래는 하루 만에 모두 익히려 했는데, 특수 이동대법이 다른 신선술과 연결이 되는 것도 모르고······.”
백자안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랬다.
신선비급에 수록된 특수 이동대법은 그냥 공간을 이동하는 비술이 아니었다.
엄연히 신선술의 일종이었다.
그것도 가장 연마하기 어려운 신선술 중 하나였다.
특히 신선계와 무림을 이동하는 경우에는 다른 신선술이 바탕이 되어야 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운운술(運雲術)이었다.
운운술은 신선계에 떠다니는 구름인 신선운을 타고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특수 이동대법 역시 이 운운술이 바탕이 되었다.
물론 극성에 이르면 운운술 역시 필요 없지만, 그때까지는 필수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외 연마한 신선술도 수십 가지가 넘었는데,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매우 기초적이었다.
신선술이란 것도 사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게 되면 스스로 창안이 가능하므로 일단 기초부터 배우게 하려는 의도 같았다.
“허허허! 역시 내 예상대로군. 보통 사람이라면 수백 년이 걸려도 배울 수 없는 신선술을 불과 사흘 만에 터득하다니. 역시 천족의 후예요. 이제 나머지 신선술은 본인 스스로 창안하면 될 것이오.”
약속된 사흘이 지나자 석실 안으로 들어온 천음반선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한 손에 퉁소를 갖고 있었다. 지난 사흘간 이 퉁소로 괴수와 요괴들의 침입을 막아낸 바 있었다.
“모두가 반선님 덕분인 것 같습니다. 밖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먼저 우리 은둔반선들의 생활은 큰 변화가 없소. 백 명의 은둔회 반선 중 구할은 여전히 감시를 받으며 개인 수련에 매진하고 있고, 나머지는 잠행하며 정보를 수집하고 있소.”
“정심회 쪽 상황은 어떻습니까? 놈들이 아직 이곳을 파악하지 못한 겁니까?”
“그런 것 같소. 하지만 조금 의아한 것도 사실이오. 정심회 반선 한두 명 정도는 나타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튼 잘된 일이오. 사실 지금 당장 그들과 맞서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이오.”
“무림 쪽 상황은 어떻습니까?”
“동료 반선이 천리전음술로 가르쳐준 바에 의하면 중원무맹 측이 또다시 총단을 빼앗긴 것 같소.”
“아! 벌써 말입니까?”
“그러하오. 혈교와 사사천교 무리가 크게 불어나 그 병력이 백만에 가깝다고 하니, 아마도 중과부적을 느낀 것 같소. 그래서 보호진법이 막강한 소림사로 모든 병력을 다시 한번 철수했다고 하오.”
“달마수호진법 말입니까?”
“그렇소. 소림삼신승의 주도로 대략 오십만 정도의 병력이 소림사에 있다고 하오. 하지만 그 두 배인 백만의 병력이 포위하고 있으니, 며칠 내로 달마수호진법이 깨어질 수도 있을 것 같소.”
“달마수호진법은 이전에도 한 번 무너진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오. 하지만 이번에 소림삼심승이 보완을 해 이전보다 두 배 강해졌다고 하오.”
“그렇군요. 그나저나 무림의 정보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알고 계시군요. 무림에 은둔회 반선분이 나가 계시는 겁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아직 우리 은둔회 반선들은 무림에 갈 수 없소. 다만 무림 상황을 알 수 있는 법보를 가진 반선이 있소. 예를 들어 정심회주가 가지고 있는 신선경 같은 것이오.”
“신선경이라면?”
“정심회주가 가지고 있는 법보로 도력에 비례해 보고자 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소. 사실 우리 은둔회가 가장 꺼리는 법보이기도 하오. 감시 역시 신선경으로 하고 있다는 게 정확할 것이오.”
“그럼 이곳도 감시를 당하고 있을 수도 있겠군요.”
“이곳 천음봉(天音峰)은 주위에 강한 보호 안개가 퍼져 있어 신선경으로도 보는 게 쉽지 않을 것이오.”
“그렇군요. 하지만 반선님이 저와 악 소저를 데려간 사실이 벌써 정심회 측에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늑대 괴수들이 목격했으니까요.”
“아,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퉁소로 놈들을 제압할 때 순간 기억마저 제거했으니까. 다만 내가 우려하는 것은 오직 신선경이오. 그나저나 언제 무림으로 갈 생각이오?”
“지금입니다. 무림이 풍전등화같이 위급한데 맹주인 제가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 이미 많이 늦었다고 생각합니다.”
“좋소. 바로 가보시오. 아마도 지금쯤이면 정심회 측에서도 백 공자가 우리 은둔회의 대리자가 된 것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리고 지금까지 정심회 측에서 잠자코 있는 것도 무림에서 정식 대리전쟁을 벌여보자는 의도도 있을 것이오. 다만 정심회 측에서는 일부라도 직접 개입이 가능하므로 백 공자에게는 매우 불리할 것이오.”
“복잡하군요. 그게 다 만년서약 때문입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소. 아무튼 하루빨리 무림을 평정한 후 이곳 신선계로 돌아와 정심회를 제거하도록 했으면 좋겠소. 놈들이 자칫 마신들의 봉인을 풀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아무도 막을 수 없을 테니까.”
“마신들의 힘이 그렇게 강합니까?”
“그렇소. 그 때문에 절대 지존검과 천마검을 놈들에게 빼앗겨서는 안 될 것이오.”
“명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