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133화 (133/250)

[제43장] 이동대법 2

“후후후!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하기야 짧은 시간에 막대한 공력을 소비했으니 지칠 때가 되었지.”

백랑대주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흥! 터무니없는 소리!”

악미미가 주저하지 않고 옥녀신장을 날렸다.

백랑대주 역시 피하지 않고 전신의 공력을 모아 경력을 발출했다.

그야말로 정면대결이었다.

꽈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백랑대주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가슴에 구멍이 크게 하나 뚫린 놈은 이미 즉사해있었다.

악미미 또한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백랑대주의 공력이 상당했는지 피를 한 모금 뱉어냈다.

울컥.

악미미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직 그녀의 등에는 백자안이 업혀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렸으나 쉴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늑대 괴수들이 다시 몰려들 것이 분명했다. 어서 조용한 곳을 찾아 요상을 해야 했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악미미가 남쪽으로 급히 향했다.

다른 방위보다 상대적으로 봉우리들이 적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각 봉우리에는 반선들이 있을 것이고, 지금은 최대한 반선들의 영향권 밖으로 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만사는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일까.

따돌리려고 했던 늑대 괴수들이 어느 순간 무더기로 나타났다.

게다가 그 수는 무려 천여 마리였다.

아까 악미미 손에 죽은 백랑대주가 열 마리나 나타난 셈이었다.

한데 정작 그녀를 긴장시키는 것은 바로 천랑대주였다.

늑대 괴수 천 마리를 이끄는 우두머리 괴수.

천랑대주의 기도는 역시 달랐다.

모습 또한 인간과 같이 서 있는 자세였다.

이전에 백자안의 손에 죽은 신임 대인자문주와 흡사하다고나 할까.

게다가 천랑대주는 허리에 검까지 차고 있었다.

“아! 이런!”

악미미가 탈출로를 찾아 도주하려 했으나 이내 포위를 당하고 말았다.

천랑대주가 껄껄 웃었다.

“하하하. 어딜 도망가려고. 네년이 우리 동료들을 백 명이나 죽였으니, 그 복수를 하겠다.”

“어쩔 수가 없었다. 다짜고짜 우리를 죽이려 하니 어찌 그대로 당할 수 있겠느냐?”

악미미가 입술을 깨물었다.

직감적으로 최대의 위기에 처했음을 깨달았다.

늑대 괴수 이삼백 마리 정도는 아직 더 처치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상대의 수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우두머리인 천랑대주의 무위가 범상치 않았다.

“하하하. 이미 느꼈겠지만 나는 천랑대주라고 한다. 조금 전 정심회 측에서 발표한 내용을 들으니, 신선대감옥에서 탈출했다고?”

“그것까지 알고 있느냐? 우리는 중원에서 온 무림인이다. 신선계와는 원래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니 순순히 보내주길 바란다.”

“그럴 수는 없지. 네놈들을 잡아서 정심회 측에 보내주면 우리 역시 큰 보답을 받게 될 테니까.”

“정심회 측과 적대관계이지 않으냐?”

“하하하. 잘 못 알고 있구나. 다른 반선들과 달리 정심회 반선들은 우리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마계에 계시는 마신들을 숭배하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지. 그동안 여러모로 정심회 측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는데, 이제야 보답할 수 있게 되었군.”

“우리를 잡아가서 정심회 측에 넘길 생각이냐?”

“그렇다. 네놈들이 반항하면 그 시체를 넘길 생각이니 순순히 포박을 받아라.”

천랑대주가 허리에 찬 검을 풀었다.

“후후후! 네년은 내가 직접 잡는다. 모두 비켜라.”

천랑대주가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악미미가 눈을 빛냈다.

‘잘 되었다. 우두머리인 저놈을 사로잡으면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다.’

일대일 대결.

악미미는 은근히 자신감이 있었다.

그때였다.

천랑대주가 검을 반원형으로 휘둘렀다.

순간 부채꼴 모양의 강기가 빠르게 날아왔다.

쉭쉭 하는 파공성과 함께 마치 해일처럼 밀려오는 그 무게감이 남달랐다.

“흥!”

악미미가 코웃음을 친 후 옥녀신장으로 응수했다.

꽝, 하는 폭음과 함께 두 경력이 부딪혔다.

“으윽!”

천랑대주가 신음과 함께 대여섯 걸음 물러났다.

내공에 있어 악미미에게 밀린 것이었다.

그때였다.

천랑대주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늑대 괴수 열 마리가 일제히 장풍을 날렸다.

악미미가 기선을 제압했지만 원래 자리에서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고 총공격을 가한 셈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일반 늑대 괴수가 아니라 백랑대주들이었다.

열 명의 백랑대주의 합공.

그뿐만이 아니었다.

밀려났던 천랑대주가 가지고 있던 검을 그대로 던져버렸다.

악미미가 흠칫했다.

혼자 몸이라면 어떻게든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백자안까지 보호해야 했다.

쏴아아.

급히 옥녀신장을 날렸다.

동시에 우수를 들어 날아오는 검을 잡았다.

꽈아앙.

폭음과 함께 악미미가 피를 한 모금 다시 토해냈다.

백랑대주들의 합공을 막아내느라 진기가 더욱더 흔들린 것이다.

하지만 옥녀심공을 대성한 그녀였다.

곧바로 자세를 바로 한 그녀가 날아오는 검을 가로챈 후 옥녀검법을 펼쳤다.

휙휙휙.

옥녀검법은 모두 12 초식으로, 그 변화는 무궁무진했다.

그녀의 검이 한번 번뜩일 때마다 어김없이 백랑대주 한 마리의 목이 떨어졌다.

“이년이!”

천랑대주가 대로하며 장풍을 날렸다. 악미미는 마치 군무를 추듯 이리저리 움직이며 빠르게 백랑대주들을 제거했다.

“케엑!”

“크윽!”

순식간에 백랑대주 열 마리의 목이 떨어졌다.

천랑대주가 괴성을 지르며 다가가 악미미의 어깨를 후려쳤다.

악미미가 신형을 비틀어 이를 피하려 했으나, 그만 왼쪽 어깨를 다치고 말았다.

천랑대주의 손톱에 살점이 일부 떨어지며 피 분수가 솟구쳤다.

“하하하! 네년은 이미 중독됐다.”

천랑대주가 껄껄 웃었다.

하지만 그 역시 악미미의 무공에 놀란 듯 더는 다가오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백랑대주 열 명이 모두 죽었으나, 그에게는 천 마리의 늑대 괴수 수하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뭣들 하느냐? 저년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라. 등에 업힌 놈 역시 죽여도 좋다.”

“존명!”

“존명!”

늑대 괴수들이 일제히 복창한 후 악미미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미 중독이 된 악미미로서는 절체절명의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기진하여 검만 겨우 들 수 있었다.

‘아! 이렇게 끝나야 한단 말인가.’

악미미가 순간 죽음을 직감했다.

고개를 돌려 잠시 백자안의 얼굴을 보았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려는 것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될 운명이었단 말인가.’

악미미가 내심 탄식했다.

그때였다.

퉁소 소리가 갑자기 들리기 시작했다.

은은하면서도 모든 이의 귀에 확실하게 들리는 음향이었다.

한데 늑대 괴수들의 움직임이 그대로 굳어버리는 게 아닌가.

마치 혈도를 찍힌 듯 늑대 괴수들이 망부석이 되어 버렸다.

이는 천랑대주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만 놈은 수하들과 달리 말은 할 수 있었다.

“으으······ 천음반선(天音半仙)! 네놈이!”

천랑대주가 숲속 공터 한쪽을 바라봤다.

그곳에서 흰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 한 명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한 손에 퉁소를 들고 있어 그런지 여유로워 보였다.

“한낱 괴수들이 감히 천족의 후예를 해치려 하다니! 이번 한 번만 특히 봐주겠다. 다음에 또 백 공자를 건드리면 모두 소멸시킬 것이다.”

흰 수염 노인, 즉 천음반선이 경고를 날린 후 악미미에게 다가왔다.

“괴수 독에 당했구려. 악 소저라고 했소?”

“네. 어르신께서는?”

“나는 천음반선이라 하오. 정심회 소속은 아니니 안심해도 좋소. 일단 해독을 해주겠소.”

천음반선이 우수를 흔들자, 그의 손에서 금빛 기운이 우러나와 악미미의 전신을 감쌌다.

이미 괴수 독이 빠르게 전신으로 퍼져나가고 있어 전체 해독을 한 것이었다.

“조금만 내가 늦게 왔어도 큰일 날 뻔했소. 어서 내 거처로 갑시다.”

천음반선이 우수를 들자 신선운 하나가 내려왔다.

“어서 타시오. 놈들의 총수괴인 십만랑이 오면 나 역시 감당하기 힘드니까.”

“네.”

악미미가 신선운 위에 백자안을 올려놓았다.

곧이어 그녀 역시 신선운 위에 올라탔다.

이전에 신선계로 잡혀 올 때 한번 신선운을 타본 경험이 있는 그녀였다.

천음반선이 신선운에 오른 후 천랑대주에게 말했다.

“십만랑에게 전해라. 네놈들이 정심회 반선들과 작당하여 다른 반선들을 은밀히 해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물론 네놈들 늑대 괴수들만의 문제는 아니긴 하다. 신선계 내부에 있는 거의 모든 괴수와 요괴가 정심회 반선들과 작당을 했지. 이는 신선계 내부 질서를 크게 어지럽히는 것으로, 나를 비롯해 많은 은둔반선(隱遁半仙)들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을 십만랑에게 알려 이 경고가 다른 괴수왕들에게도 퍼지도록 해라. 이것은 우리 은둔회(隱遁會) 반선들의 마지막 경고이니, 소멸을 피하고 싶으면 알아서 해라.”

“은둔회라니? 벌써 은둔반선들이 모임을 결성했다는 말이냐?”

“그렇다. 정심회의 횡포가 극에 달하니 어찌 그것을 보고 있을 수 있겠느냐?”

“으으······ 고작 백 명도 안 되는 은둔반선들이 모여서 뭘 하겠다고. 소멸할 놈들은 바로 네놈들이다.”

“은둔회에 가입하게 될 은둔반선들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흥! 그래 봤자 네놈들은 직접 활동을 하지 않기로 서약한 놈들이 아니냐? 만년서약을 어기면 우화등선은 절대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네놈이 걱정할 게 못 된다. 물론 만년서약이 문제가 되겠지만, 우리 역시 대리자를 세우면 해결될 수 있지.”

“백자안 저놈을 내세우려는 것이냐?”

“그렇다. 천랑대주 주제에 많은 것을 알고 있군. 하지만 너무 말이 많아.”

천음반선이 퉁소를 앞으로 내밀었다.

순간, 무형의 기운이 퉁소에서 발출되어 천랑대주의 아혈을 찍었다.

그때였다.

거대한 사자후가 들렸다.

우우우!

천음반선이 흠칫했다.

“십만랑이군. 악 소저. 어서 갑시다.”

“네. 반선님.”

악미미가 고개를 숙이자, 세 사람을 태운 신선운이 허공에 떠올라 남쪽으로 사라졌다.

* * *

“으으······ 이곳은?”

“백 공자. 정신이 드세요?”

악미미가 미소를 지었다.

천음반선을 따라 이곳 천음동(天音洞)에 온 지 사흘 만에 백자안이 비로소 깨어난 것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신선대감옥에서 탈출할 때 오행반선 그자에게 일장을 맞고 정신을 잃은 것 같은데······.”

“말씀 그대로예요. 이후에도 위급한 상황이 계속되었었지요.”

악미미가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늑대 괴수 떼를 만나 위기에 몰린 일과 천음반선의 도움으로 이곳까지 오게 된 일까지.

“아, 그럼 이곳이?”

“네. 천음동이란 곳으로 천음반선 그분이 수도에 전념하시는 수련동이에요. 봉우리 중턱에 나 있는 동굴인 것 같은데, 봉우리 이름은 모르겠어요.”

“천음반선이란 분은 지금 어디에 있소?”

“밖으로 나가셨어요. 어제까지 백 공자를 계속 치료해주셨는데, 이제 안심해도 되겠다며 볼일을 보러 가셨어요. 아마 아까 말씀드린 은둔회 반선들과 만나시려는 것 같았어요.”

“으음, 정심회에 맞서는 세력이 이곳 신선계에도 있었다니······.”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반선들 개개인의 무공 수위를 생각할 때 우군이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되었다.

“일단 몸 상태부터 점검하세요. 천음반선님 말씀에 의하면 백 공자의 회복력이 놀라워 깨어났을 때는 거의 완쾌되었을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런 것 같소.”

백자안이 몸을 일으켜 가부좌 자세를 취했다.

그와 악미미가 있는 곳은 석실이었다.

백자안은 무명심법을 운기하며 조식을 취했다.

‘몸이 이전보다 더 가벼워진 것 같다. 어쩌면 전화위복이 되었는지도 모르겠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