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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129화 (129/250)
  • [제42장] 신선재판 1

    [제42장] 신선재판

    정심봉.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높이 솟아나 있는 이 봉우리 주위에는 구름이 가득했다.

    그 구름 속으로 거대한 전각 하나가 우뚝 솟아나 있었다.

    바로 정심회 총단에서 회주 처소로 사용하고 있는 정심각(正心閣)이었다.

    정심봉 전체를 총단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회원 대부분은 봉우리 전체에 뚫려 있는 동굴 속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 때문에 모든 의사 결정은 이곳 정심각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정심각 자체의 규모 또한 상상을 초월했다.

    무려 백 층 규모였다.

    봉우리 위에는 정심각 말고도 널찍한 공터도 있었다. 그 넓이 역시 족히 수백만 명도 거뜬히 수용할 정도였다.

    따라서 봉우리라기보다 거대한 하나의 산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봉우리로 불리는 것은 신선계 전체에 이런 봉우리가 수십만 개 이상이기 때문이었다.

    봉우리 위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구름 사이로 보이는 수많은 봉우리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봉우리 사이의 간격 또한 상당히 넓었다. 각 봉우리 주위에는 신비한 금빛 안개가 사시사철 끼어 있었다.

    그 안개는 요괴나 괴수들이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무심반선이 신선운을 타고 정심각에 도착하자, 경계를 서고 있던 반선 십여 명이 그들을 맞이했다.

    “무심반선, 수고가 많았소.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소. 자루 안에 그 백자안이 있소?”

    “그렇소이다. 백자안 뿐만 아니라 오행반선도 있소이다.”

    “으음, 그렇게 되었군. 회주님을 비롯해 지휘반선들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어서 들어가시오.”

    “수석호법께서도 함께 들어갑시다.”

    “아니오. 내 임무는 이곳을 지키는 것이니 여기에 있겠소. 호법반선들이 안내할 것이오.”

    수석호법반선이 눈짓하자 호법반선 두 명이 앞장을 섰다.

    무심반선이 자루들을 들고 그들을 따라갔다.

    정심회 총단의 취의청은 정심각 일 층에 있었다.

    정심각 각 층에는 여러 명의 반선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정심회의 지휘부 고수들인 지휘반선들이었다.

    그 지위는 높은 층에 있는 반선들일수록 높았다.

    이는 정심회주가 가장 꼭대기 층에 혼자 사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었다.

    참고로 지휘반선이 아닌 다른 반선들은 정심봉 표면에 뚫려 있는 무수히 많은 동굴 속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긴급한 경우 회주의 명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외에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수도에 전념했다.

    물론 신선계에 있는 다른 봉우리에서 수도하는 반선들도 무척 많았으나, 그들의 수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

    다만 일반적으로 모습을 보이는 반선들의 수는 대략 일만 명 정도.

    하지만 그 수 역시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추측이었다.

    신선계의 넓이는 끝이 없었다. 그 일만이라는 숫자도 정심봉 인근에 있는 반선들만 그것도 대외활동을 하는 자들만 파악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전체 반선들의 수나 거처를 파악하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각 반선들의 독립적 수도 방식이었다.

    우화등선을 목표로 끝없이 수도하는 반선들에게 사실 모임 같은 것은 필요가 없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예외가 생겨났다.

    수백 수천 년이 넘는 수도 생활에 지친 수도자들이 모임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정심회처럼 이렇게 조직적인 단체를 만든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일단 단체가 만들어지자 그 규모는 계속 늘어났다.

    나름대로 반선들이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신선계 전체에 널리 퍼져 있는 괴수와 요괴들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원래 신선봉 주위에 펼쳐진 안개 때문에 놈들이 침범을 못 하지만, 간혹 그 경계를 뚫는 놈들이 있었다.

    그때 놈들을 처리하는 것이 정심회의 주 임무였다.

    물론 그 밖에 수도 방식에 관한 토론과 지원 등 여러 가지 일도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반선들의 최고 목표는 우화등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최근 발생한 문제가 바로 무림에 대한 대리 통치였다.

    원래 반선들은 신선계에서 수도하기 전에 만년서약을 통해 무림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금지되게 된다.

    그것은 불문율이었다.

    하지만 우화등선의 한 방편으로서 대리 통치 개념이 등장했다.

    가장 먼저 시도한 반선들은 바로 중원삼성이었다.

    그들의 이름은 따로 알려진 바가 없었다. 다만 옷 색깔에 따라 각각 백의반선(白衣半仙), 흑의반선(黑衣半仙), 청의반선(靑衣半仙)으로 불렸다.

    세 사람은 도반으로 의형제이기도 했다.

    대형이 백의반선, 둘째가 흑의반선, 셋째가 바로 청의반선이었다.

    물론 이후 그들 외에도 대리 통치 계획에 뛰어든 반선들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독심반선, 오행반선이었다.

    한데 두 사람 중 독심반선이 백자안에게 죽는 일이 발생했다. 그 일은 정심회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도대체 백자안이 누구기에 반선을 죽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논란거리였다.

    그 와중에 또 불거진 것이 천족의 후예 문제였다.

    백자안이 천족의 후예이기 때문에 그렇게 높은 무공을 지니게 되었다는 주장이 바로 그 근거였다.

    그 때문일까.

    그때부터 백자안을 소환할 필요 없이 바로 죽여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무심반선이 그러한 주장을 한 반선 중 한 명임은 물론이었다.

    털썩.

    자루에서 꺼내어진 백자안이 의자에 앉혔다.

    백자안이 주위를 둘러보니 그가 앉은 의자를 둘러싸고 수백 명의 반선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백자안을 주시하고 있었다.

    무심반선이 남은 자루에서 오행반선을 끄집어냈다.

    그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백자안에게 수혈을 찍힌 게 아직 덜 풀려 있었다.

    아니 수혈 이전에 백자안에게 찍힌 혈도가 문제였다.

    하루가 지나야 풀릴 혈도였다.

    “점혈술이 대단하군.”

    담담한 한 목소리와 함께 태사의에 앉은 반선 한 명이 지풍을 날렸다.

    “으윽!”

    오행반선이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

    태사의에 앉은 반선, 즉 정심회주가 다시 지풍을 날리자 막힌 혈도가 완전히 풀렸다.

    백자안이 그 모습을 보고 매우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다른 사람의 혈도를 풀 수 있다는 것은 사실 무공 수준을 알 수 있는 척도 중 하나였다.

    ‘나보다 무공이 몇 수 위다. 큰일 났구나. 악 소저를 구하려고 일부러 잡혀 오긴 했으나 경거망동해서는 절대 안 되겠다.’

    백자안이 애써 침착하려 했다.

    그랬다.

    무심반선에게 당한 것은 그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었다.

    신선운이란 것 때문에 이곳 정심봉까지 오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을 간파하고 모험을 한 것이었다.

    다행히 무심반선은 그것도 모르고 속고 말았다.

    확신이 들지 않아 독약까지 먹였지만 백자안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백자안의 몸 상태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무심반선이 자랑하는 무심독 역시 통하지 않았고, 당연히 지금 혈도도 풀려 있었다.

    다만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움직이지 못하는 척했다.

    이게 모두 정심회의 정체를 직접 눈으로 보고 악미미를 구출하기 위해서였다.

    한데 정심회주로 추측되는 자의 무공이 너무나 높은 것을 발견한 것이다.

    “회주님. 감사드립니다.”

    오행반선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정심회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된 일이오?”

    “백자안 저놈에게 당했습니다. 한데 어떻게 저놈을 잡아 온 겁니까?”

    오행반선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무심반선이 비릿한 미소를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다.

    다른 반선들도 모두 들으라고 상세히 말해주었다.

    오행반선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럼 나 몰래 악미미 그 계집을 이곳으로 데려왔단 말이오?”

    “그렇소. 안 그랬으면 백자안 이놈을 잡아 오지 못했을 것이오. 원래는 바로 죽이려 했으나 회주님께 데려오는 것이 옳을 것 같아 데려온 것이오. 회주님께서는 모두 알고 계셨겠지요?”

    “그렇소. 신선경(神仙鏡)을 통해 모두 보고 있었소. 악미미라는 소녀를 신선대감옥에 가둬두었더군.”

    “역시 회주님께서는 무불통지이시군요. 탄복했습니다. 지금부터 백자안 이놈에 대한 처리는 회주님께 맡기겠습니다.”

    “고맙소. 그보다 무림에 대한 일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소? 오행반선에게 묻겠소? 대인자문 무사 백만을 신선계로 데려왔다고 하던데, 그들을 어디에 두었소?”

    “동료 반선들의 도움으로 정심봉 지하 광장에 두었습니다. 이미 모두 죽은 놈들이라 활강시로 만들면 될 겁니다. 그들 활강시 모두 회주님의 처분에 맡기겠습니다. 하지만 그 모두가 회주님의 묵인하에 벌어진 일이 아닙니까?”

    “그렇소. 사실 그 역시 신선경을 통해 모두 보고 있었소. 혹여 그대가 나를 속일까 싶어 물어본 것이오.”

    “제가 어찌 회주님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이제 대리 통치에 대한 모든 일 또한 회주님께 일임하겠습니다.”

    “고맙소. 사실 이제 본인이 정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오. 원래는 무림 대리 통치라는 계획이 좋은 의견이라 생각해서 어떻게 되나 방임했으나 일이 너무 커져 버렸소. 어찌 우리 중 한 명이 무림인에 의해 죽을 수 있다는 말이오? 중원삼성은 말해보시오.”

    정심회주가 엄한 표정을 지었다.

    중원삼성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그들 중 대표인 백의반선이 말했다.

    “모두가 저희 형제의 불찰입니다. 저희 또한 회주님의 결정에 모든 것을 맡기겠습니다. 명을 내려주십시오.”

    “으음, 알겠소. 지나간 일은 없던 것으로 하겠소. 하지만 우리 정심회 반선이 살해당한 일은 절대 묵과할 수 없소. 대리 통치를 위한 우화등선 이론 역시 아직 검증이 더 필요하오. 일단 백자안 저자에 대한 재판부터 행할 것을 명하는 바이오. 집법반선은 들으시오.”

    “네. 말씀하십시오.”

    부채를 든 집법반선이 고개를 숙였다.

    반선들은 거의 나이를 추측하기 힘든 노인들이었기에 그 역시 백발이 성성했다.

    “신선재판을 개시하시오. 의견을 듣고 내가 최종적으로 결정하겠소.”

    “명을 따르겠습니다.”

    집법반선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 후 백자안에게 다가갔다.

    백자안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몰라 잠자코 있었다.

    물론 대강의 상황은 간파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선계 내부 상황에 대해 여전히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그래도 내가 멀쩡하다는 것은 모르는 것 같구나. 침착하자. 최소한 악 소저만 구출해도 성공이다.’

    백자안이 마음을 다스렸다.

    호랑이굴 속에 자진해서 들어온 그였다.

    집법반선이 말했다.

    “백자안 너에게 묻겠다. 사실대로 말해라.”

    “······.”

    백자안이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재판이 시작된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응할 의무는 없는 것이다.

    “대답하지 않겠느냐? 좋다. 질문부터 하지. 네가 바로 삼의맹주 백자안이 맞느냐?”

    “대답하기 전에 한 가지 조건이 있소. 그렇지 않으면 대답을 거부하겠소.”

    “그게 무엇이냐? 너는 선택권이 없다. 독심반선을 살해한 죄로 지금 재판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지. 곧바로 소멸하고 싶은 것이냐?”

    집법반선이 노한 표정을 지었다.

    정심회주를 비롯한 지휘반선들 대다수가 참여한 자리였다.

    재판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집법반선이 혼자서 진행해야 했다.

    “악 소저를 보게 해주시오. 그녀는 아무런 죄가 없소. 그녀를 옆에 데려다주면 대답하겠소.”

    “이놈이!”

    집법반선이 들고 있던 부채로 백자안의 머리를 부수려 했다.

    간혹 요괴나 괴수를 잡아 왔을 때 그 배후를 캐다가 화가 나면 이런 식으로 머리를 박살 내는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정심회주가 말했다.

    “함께 처리해야 할 것 같으니 어서 그녀를 데려오시오.”

    “네.”

    대문 근처에 있던 반선 한 명이 급히 나갔다.

    집법반선이 말했다.

    “악가 계집을 데려올 때까지 몇 가지 질문을 하겠다. 네가 정말 백자안이냐?”

    “그렇소.”

    “독심반선을 죽인 게 사실이냐?”

    “그렇소. 하지만 정당한 대결이었소. 다음 질문은 악 소저가 온 후에 받겠소.”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집법장로가 다시 분노했다.

    “회주님. 이놈이 거만하기 짝이 없습니다. 바로 죽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니오.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아 있소. 악미미 그녀가 올 때까지 기다려봅시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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