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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125화 (125/250)
  • [제40장] 주화입마 4

    백자안이 대인자문 함대를 발견한 것은 다음날 정오 무렵이었다.

    물살을 가르며 천천히 부산성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배는 무려 만 척 정도였다.

    대인자문 무사의 수가 백만이라는 것이 실감 났다.

    그에 반면 백자안은 여전히 작은 배 위에 몸을 싣고 있었다.

    대인자문 측에서는 발견하기도 용이하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드디어 만났군. 혹시나 잘못된 정보가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백자안이 천마력을 끌어모아 천마룡을 만들었다.

    강력한 화염을 내뿜는 천마룡.

    비록 환영이라고는 하지만 그 불만큼은 환영이 아니었다.

    허공 위에 천마룡이 만들어지자, 백자안이 신형을 날려 그 위에 올라탔다.

    그제야 백자안을 발견한 대인자문 측에서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휙휙휙.

    수십만 발의 화살.

    천마룡의 덩치가 웬만한 배 한 척 보다 커 표적으로 삼기가 용이했다.

    하지만 화살은 모두 천마룡의 기운에 막혀 녹아버리고 말았다.

    천마룡의 몸에서 뿜어내는 붉은 기운.

    그것 역시 화염과 다를 바 없었다.

    백자안은 여유 있게 대인자문 함대 위를 선회하며 상황을 살폈다.

    그가 주목표로 삼은 곳은 바로 대장선이었다.

    여전히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오는 상황.

    대장선 갑판 위에도 고수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백자안이 주목한 것은 그들 중 귀면탈을 쓴 자였다.

    ‘저자가 바로 이번에 새로 대인자문주가 된 자인가.’

    그랬다.

    백자안의 추측대로 귀면탈을 쓴 자가 대인자문주였다.

    그가 소리쳤다.

    “백자안! 네놈이구나. 감히 네놈 혼자서 온 것이냐?”

    “그렇다. 네놈이 바로 이번에 새로 뽑힌 대인자문주냐?”

    “그렇다. 안 그래도 네놈을 가장 먼저 죽여 전대 문주님의 복수를 하려고 했다. 전대 문주님을 네놈이 죽인 것이 확실하겠지?”

    “그렇다. 놈이 죽은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오행반선 그자가 가르쳐 주었느냐?”

    “그렇다. 반선께서 가르쳐주셨지. 네놈이 용기가 있다면 어서 내려와 나와 단둘이 대결하자. 그럴만한 배짱이 있는지 모르겠구나. 어차피 동방 놈들은 하나같이 비겁한 놈들이니, 네놈 역시 마찬가지겠지. 후후후!”

    대인자문주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백자안이 잠시 생각했다.

    ‘일단 저놈부터 죽여 기세를 꺾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천마룡의 위력 또한 한계가 있으니까 힘을 아껴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백자안이 소리쳤다.

    “좋다. 하지만 배 위에서 싸우는 것은 내가 불리하니 네놈이 올라와라. 나 역시 천마룡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

    백자안이 천마룡 위에서 내려와 허공에 섰다.

    마치 허공답보를 시전하듯 허공에 떠 있는 그였다.

    대인자문 무사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경신술 하나만 봐도 백자안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백자안은 혼자였다.

    천마룡이 있다고는 하지만 백만 무사를 상대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그 때문에 백자안이 대인자문주와의 대결을 수락한 것이었지만.

    바로 그때였다.

    대장선 선실 안에서 한 사람이 나와 은빛 그물을 던졌다.

    한데 그는 바로 신선계로 돌아간 것으로 알았던 오행반선이 아닌가.

    휙휙휙.

    은빛 그물이 갑자기 확대되며 천마룡을 감쌌다.

    “쿠워웍!”

    천마룡이 괴로워하며 불을 내뿜었으나 은빛 그물을 통과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물에 갇혀 그대로 바다로 추락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풍덩.

    천마룡 자체가 환영이라 죽은 것은 아니지만, 이럴 때 최소 하루 동안 천마룡을 만들 수가 없는 게 보통이었다.

    백자안이 흠칫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오행반선이 껄껄 웃었다.

    “백자안. 너무 놀라지 마라. 나는 공정한 대결을 보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한다. 나를 죽이면 네놈의 정혼녀 또한 죽는다. 목숨을 연동시켜 두었기 때문이지. 아, 물론 나는 이번 싸움에 더는 관여하지 않겠다. 나는 다만 네놈이 천마룡을 이용해 화공을 펼칠 것을 우려해 미리 차단한 것이다.”

    “오행반선. 신선계로 돌아가지 않았소?”

    “후후후! 왜 내가 있는 것이 부담스러우냐? 좋다. 이번에는 진짜로 사라져주지. 공평한 대결을 펼쳐야 하니까 말이야. 하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신임 대인자문주는 우리 반선들이 길러낸 고수 중 한 명이니까. 일종의 공동제자라 할 수 있지. 그럼 나는 먼저 간다.”

    오행반선이 말을 마친 후 바로 사라져버렸다.

    놀라운 신법이었다.

    백자안은 그저 담담할 뿐이었다.

    천마룡을 잃었지만, 그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일단 대인자문주와의 대결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모든 것은 실력으로 결정된다. 천마룡이 일시 무력화된 것은 오행반선 그자가 날린 법보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정작 그자는 나를 두려워하고 있다. 내가 위축될 필요는 여전히 없는 것이다.’

    백자안이 눈을 빛내며 대장선 갑판 위로 내려왔다.

    허공으로 몸을 솟구치려던 대인자문주가 흠칫했다.

    백자안이 위축되지 않고 수천 명의 무사가 승선해 있는 대장선 위로 직접 온 때문이었다.

    “대담하구나. 백자안. 역시 소문대로구나. 하지만 나 역시 반선님들로부터 오래도록 사사한 몸이다. 반드시 네놈을 죽여 내가 그분들의 최종대리자가 될 것이다.”

    “실력이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백자안이 내공을 끌어올렸다.

    대인자문주 역시 두 팔을 벌리며 기를 모았다.

    순간 그의 양팔에서 날개 모양의 붉은 기운이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후후후! 악마강기라고 하지. 네놈이 아무리 무형검을 익혔어도 절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보아하니 너 역시 정심회 반선들의 꼭두각시에 불과하구나. 나를 이길 자신이 없으니 너를 내세워 나와 동귀어진시키려 하다니.”

    “미친놈. 감히 반선 사부님들을 모욕하다니.”

    대인자문주가 내공을 폭발시켰다.

    순간, 그의 양팔에서 우러난 붉은 날개가 펄럭거리며 거대한 기운이 백자안에게 쏟아졌다.

    바로 악마강기였다.

    백자안이 지존금광으로 응수하는 동시에 지존검을 뽑아 앞으로 나아갔다.

    꽈아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비명 하나가 터졌다.

    바로 대인자문주의 것이었다.

    놀랍게도 백자안이 충돌의 와중에 빠르게 다가와 그의 목을 잘라버린 것이었다.

    그가 쓰고 있던 귀면탈 역시 벗겨져 있었다. 한데 놀랍게도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원래는 사람이었을지 모르겠으나 그 얼굴은 바로 늑대를 닮은 괴수였다.

    ‘역시 예상대로 괴수를 조련한 것이었구나. 놀랍다. 괴수를 조련해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게 만들다니.’

    백자안 역시 대인자문주의 얼굴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러한 괴수들의 등장이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반선들이 만년서약이란 것에 구속되어 활동을 못 한다 해도 이런 괴수들을 만들어 무림에 퍼뜨리면 그 혼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걱정을 할 때가 아니었다.

    문주를 잃은 대인자문 무사들이 빠르게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었다.

    그들을 지휘하고 있는 사람은 대인자문의 부문주 마사야란 자였다.

    “백자안! 감히 문주님을 시해하다니! 네놈을 죽여 복수하겠다.”

    “지금 이자의 얼굴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하는가? 이자는 인간이 아니라 괴수다. 내 몸에 묻은 피가 그걸 증명하고 있다.”

    백자안이 자신의 얼굴에 묻은 녹색 피를 손으로 가리켰다.

    물론 그 피는 대인자문의 목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었다.

    원래 백자안의 몸 주위에는 무형의 보호막 같은 것이 있어 절대 피가 묻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전에는 악마강기와의 충돌로 그 틈이 생겨 묻은 것이었다.

    물론 내색하지 않고 있지만 백자안이 당한 내상도 가볍지 않았다.

    오행반선이 그 결과를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로 악마강기의 위력은 대단했다.

    백자안이 최근 무명심법 구성에 달하지 않았다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후후후! 내가 말하는 것은 전대 문주님에 대한 복수다. 전대 문주님과 그 아드님이신 키요토 소문주님을 네놈이 살해한 것이 사실이냐?”

    “그렇다. 하지만 그들은 수많은 양민을 죽였다. 그 죗값을 받은 셈이지.”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어차피 이대로 물러갈 생각은 없었다.

    백만이라는 대인자문 무사들의 수가 부담되긴 했으나, 이미 그 수장을 제거한 상태였다.

    최대한 놈들의 전력을 약화한 후 정 안 되면 도주하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오행반선 그자다. 지금 그자와 싸우게 되면 내가 매우 불리하다. 악 소저 때문에 놈을 죽일 수도 없고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백자안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대장선에 있는 대인자문 무사들의 수는 오천 명 정도.

    그들 대부분은 대인자문 무사 중에서도 상급 고수들이었다.

    백자안으로서는 이들만 모두 제거해도 놈들의 전력을 상당히 약화할 수 있었다.

    “독화살!”

    마사야가 소리치자, 백여 명의 대인자문 무사들이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그들은 궁수대원들이었다.

    그들이 쏜 화살은 특수 독이 묻혀 있는 것으로 상대의 호신강기를 뚫을 수 있는 위력이 있었다.

    휙휙휙.

    빗살 같은 화살이 백여 발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백자안의 호신강기가 저절로 발동되어 이를 막았다.

    그때였다.

    백자안이 인상을 찡그렸다.

    호신강기 발동에는 당연히 내공이 수반된다. 그 연결은 매우 자연스러워 절차가 따로 없었다.

    공격을 받으면 자동으로 반응하게 되어있었다.

    한데 내공 발현의 순간 극심한 통증이 단전에서 느껴지는 게 아닌가.

    하지만 완전히 끊어진 게 아니라 억지로 호신강기 발동이 되었다.

    투투툭.

    화살들이 백자안의 지척에서 갑판 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백자안의 상태는 더욱 나빠져 있었다.

    “우웩!”

    백자안이 피를 한 모금 토했다.

    한데 그 피가 녹색이 아닌가.

    백자안이 당황했다.

    원래 피는 붉은 색이어야 했다.

    한데 갑자기 녹색으로 변했다는 것은 중독되었음을 의미했다.

    ‘아차! 대인자문주 저놈에게 당했구나!’

    백자안이 급히 얼굴에 묻은 녹색 피를 삼매진화로 태워 없앴다.

    하지만 이미 몸속으로 침투한 녹색 피는 바로 제거할 수 없었다.

    녹색 피가 바로 극독이라는 것을 안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하지만 독은 빠르게 그의 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더욱더 곤란한 것은 그 독이 몸속에서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죽은 대인자문주를 가르쳤다는 반선들이 노린 것이 바로 이것이었던가. 이대로는 안 된다.’

    백자안이 무명심법을 운공해 급히 독을 제거하려 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 안정이 필요했다.

    그것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한데 수많은 적에게 포위당한 지금 상황은 독이 더 빠른 속도로 퍼질 위험이 컸다.

    ‘보통 독이 아니다. 괴수들의 피가 이렇게 무섭다니. 독이 심장까지 침투하면 죽게 될 것이다.’

    백자안이 무명점혈술을 통해 심장 주위 혈도를 막았다.

    임시방편이지만 중독으로 인해 급사하는 것을 방지한 것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내공의 흐름이 수십 배 이상 약화하였다.

    일반적으로 내공은 자유롭게 막힘없이 일주천을 해야 회복된다.

    한 군데라도 막혀 있으면 외부에 발현되는 힘 또한 약해지기 마련이었다.

    심장은 피를 보내고 들이는 역할은 하는 곳으로, 그곳 주위를 막아두었기에 필연적으로 힘의 약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당할 수준은 아니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공력이 대단해 백자안의 무공은 여전히 강한 편이었다.

    ‘반선들만 오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 최대한 놈들을 제거한 후 기회를 봐서 이곳을 탈출한다.’

    백자안이 이를 악물었다.

    그때였다.

    대인자문 무사 십여 명이 일제히 병장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검, 도, 창 등 병장기는 가지각색이었다.

    백자안의 몸이 정상이 아님을 간파하고 이를 시험하기 위해 선봉대 격으로 공격을 가해온 것이었다.

    백자안이 흠칫하며 지존검으로 지존검법을 펼쳤다.

    쉬이익.

    가볍게 호선을 그린 지존검이 번뜩였다.

    순간, 비명과 함께 대인자문 무사 십여 명의 목이 떨어졌다.

    백자안의 숨소리는 더욱더 거칠어져 있었다.

    이전 같으면 한 번에 수백 명의 목을 베어도 끄떡없을 그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경공을 펼쳐 도주하려고도 했으나 두 다리 역시 무거웠다.

    차라리 조금씩 지존보법으로 움직이면서 공격을 가하는 것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자안은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스스슷.

    지존보법을 펼치며 백자안의 신형이 대인자문 무사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존검이 번뜩였다.

    다른 손에는 천마검까지 쥐어져 쌍검을 구사했다.

    대인자문 무사들의 수급 수십 개가 우수수 떨어졌다.

    마치 양 떼 속의 호랑이처럼 백자안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쌍검을 뿌렸다.

    “놈을 죽여라!”

    “공격하라!”

    대장선에 달린 돛 위에 올라선 마사야가 소리를 쳤다.

    백자안은 마치 검무를 추듯 절제된 움직임으로 지존보를 밟으며 검을 휘둘렀다.

    ‘지존보법으로 독을 제거한다. 하지만 성공한다고 해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겠구나.’

    무아지경으로 검무를 추는 백자안의 신형이 갈수록 빨라졌다.

    스스슷.

    검광 역시 강해졌다.

    하지만 마치 부나방처럼 몰려든 대인자문 무사들이었다.

    이미 대장선 주위로 다른 함선들도 모여든 상황.

    여력은 충분했다.

    무려 백만이었다.

    그에 반면 백자안이 제거한 대인자문 무사는 이제 겨우 천 명 정도였다.

    비록 보법을 통해 독을 제거한다고 하지만 그 전에 기의 소모가 심해 쓰러질 가능성이 더욱더 컸다.

    해독을 위해 보법의 속도가 빨라지면 반대로 그만큼 탈진할 가능성 또한 높아지는 것이다.

    ‘그저 최선을 다할 수밖에······.’

    백자안의 신형이 마치 회오리바람처럼 돌아갔다.

    그 영향권에 든 무사들의 목이 수도 없이 떨어졌다.

    물론 개중에는 몸이 양단되어 즉사하는 무사들도 많았다.

    피분수와 사방으로 날려가는 팔다리가 난무했다.

    하지만 여전히 절대적인 중과부적 상태.

    아무리 천하제일고수라도 일대 천의 싸움은 무림사 이래 극히 드물었다.

    한데 무려 백만이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백자안이 한계를 느끼며 순간적으로 무명폭잠공을 일으켰다.

    동시에 지존금광을 펼쳤다.

    콰콰콰쾅.

    대장선이 그대로 두 동강 났다.

    불이 붙은 대장선이 침몰하며 아수라장이 되었다.

    배에 있던 대인자문 무사들이 몰살당한 것은 물론이었다.

    그 와중에 백자안 역시 바닷물에 빠져 끝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백자안은 의식을 놓지 않으려 했으나 눈이 감기는 것을 막기는 어려웠다.

    콰콰쾅.

    다시 한번 거대한 폭발과 함께 대장선이 완전히 침몰하며 자취를 감췄다.

    <제5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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