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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124화 (124/250)
  • [제40장] 주화입마 3

    한 달 후. 부산성.

    바다가 보이는 포구에 거대한 진지가 구축되어 있었다.

    바로 백자안이 이끄는 동방무맹 무사 오십만이 주둔하는 곳이었다.

    원래 사십만이었던 병력이 지난 한 달간 다시 십만 정도 불어난 것이었다.

    선착장에는 수천 개의 막사가 설치되어 있었다.

    포구 역시 수천 척의 함선이 정박해 있었다.

    언제라도 배를 타고 출정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휘막사.

    백자안 주재로 작전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풍류도인, 태극검선, 김지혜, 부채도사, 백록공자 등 동방무맹 지휘부 고수 백여 명이 자리해 있었다.

    “대인자문 놈들이 출정 준비를 마치고 곧 바다를 건너 이곳 부산성으로 올 것 같습니다.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놈들과 어디에서 싸워야 할 것인지 말입니다.”

    풍류도인의 말에 백자안이 담담히 물었다.

    “먼저 해전과 육전의 장단점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원래는 함선을 이끌고 놈들의 소굴로 직접 쳐들어가려 했으나, 여러분의 권유를 받아들여 이곳에서 며칠간 대기 중인 게 사실입니다.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네.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놈들의 본거지인 대인자성으로 진격하는 것은 계속 보류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낯선 땅에 대군을 이끌고 가는 것은 많은 점에서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병력에 있어서도 우리가 반밖에 안 되는 점도 고려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그 작전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풍류도인이 잠시 말을 끊었다.

    이와 같은 논의는 지난 며칠간 계속됐다.

    이제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할 때라 그 역시 신중히 처리하려는 것이다.

    사실 열흘 전 동방무맹 무사들이 부산성에 도착했을 때 백자안은 곧바로 왜국 대인자문 총단을 공격하려고 했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함선이 있어야 했는데, 함선 역시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풍류도인과 태극검선 등 많은 사람이 그러한 작전에 우려를 표시했다.

    어차피 놈들이 재공격을 가해올 것이 분명한 이상 좀 더 상황을 지켜보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백자안 역시 고집을 버리고 의견을 수용해 오늘까지 기다린 것이었다.

    “이제 남은 작전은 두 가지입니다. 놈들을 바다 위에서 섬멸하느냐, 아니면 이곳 부산성에서 섬멸할 것인가 입니다. 먼저 해전의 경우 놈들을 완전히 섬멸할 가능성이 더욱더 커질 겁니다. 작전만 잘 세우면 놈들의 퇴로를 차단하고 모두 수장시킬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날씨 등 여러 가지 변수가 있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우려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이곳 부산성에서 지상전을 펼쳐 놈들을 섬멸하는 겁니다. 성곽과 진지가 구축되어 있으므로 지형적으로 매우 유리한 위치에서 싸움을 벌일 수 있습니다. 다만 양민들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단점도 있습니다. 맹주님께서 최종 결정을 해주십시오. 제가 사전에 조사한 바로는 지휘부 의견은 반반입니다.”

    “으음, 좋습니다.”

    백자안이 안색을 조금 굳혔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일단 기본적으로 해전을 선택하겠습니다. 다만 너무 멀리 나가면 우리에게 불리할 것이니 부산성에서 좀 더 기다리다가 놈들이 인근 바다까지 오면 그때 출동하겠습니다.”

    “현명하신 결정입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대로 절충안을 제시했는데 대체로 찬성하는 편이었다.

    “놈들이 인근 바다까지 오려면 며칠 정도 걸릴 것 같습니까?”

    “사흘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그전에 미리 무사들을 함선에 배치해 언제든 출항할 준비를 하면 될 겁니다.”

    “좋습니다. 그럼 바로 무사들에게 승선하도록 명령을 내리십시오. 앞으로 작전 회의 역시 대장선에서 열겠습니다.”

    “네.”

    풍류도인이 대답한 바로 그때였다.

    무사 한 명이 급히 지휘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불패마왕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전서구말이냐?”

    “네.”

    무사가 서찰 한 통을 풍류도인에게 건넸다.

    다들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그 내용 발표를 기다렸다.

    이는 백자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마교와 혈교 두 세력의 싸움 결과가 궁금했던 것이다.

    서찰을 본 풍류도인의 안색이 굳어졌다.

    “큰일 났습니다. 마교 무사들이 신강으로 가던 도중 사사천교의 공격을 받아 대패했다고 합니다. 이십만 무사가 거의 몰살 수준으로 당해 남은 무사들이 만 명도 채 되지 않는다고······.”

    풍류도인이 급히 서찰을 백자안에게 보여주었다.

    백자안이 다시 읽어보니 조금 전 풍류도인이 말한 그대로였다.

    대패를 당한 불패마왕은 그의 딸인 임요요와 함께 중원무맹 총단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이십만 무사가 불과 일만만 남았다니······ 그것도 일방적으로 당했다고 하는군요.”

    “네. 사사천교의 특수 강시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 같습니다.”

    “으음······.”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자신이 직접 가지 못한 데 대한 책임감을 느낀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 마교주가 바로 그였다.

    비록 마교 교도들이 천하에 산재해 있어 다시 무사들을 모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게 분명했다.

    “모두 저의 불찰입니다. 혈교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서찰의 내용을 보니 사사천교과 혈교 두 곳이 합세하여 다시 중원무맹 총단을 노리려 하는 것 같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대인자문 놈들을 소탕한 후 다시 중원으로 지원을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네.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지나간 일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그때였다.

    다시 한 명의 무사가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대인자문 놈들의 함대가 출발했다고 합니다.”

    “놈들 병력의 규모는?”

    “함선만 일만 척이라고 합니다. 병력은 백만 정도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새로 뽑힌 대인자문주에 대한 정보는 있느냐?”

    “아직은. 귀면탈을 쓰고 있어 대인자문 무사들 또한 그 정체를 모른다고 합니다. 다만 그 무공이 신의 경지에 달해 다들 우러러본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으음, 드디어 출발했군요. 조금 전 지시한 대로 전 무사들로 하여금 승선하게 하십시오. 출정은 이틀 뒤로 하겠습니다. 그러면 인근 바다에서 놈들과 싸울 수 있을 겁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 * *

    깊은 밤.

    대장선에 올라탄 백자안은 종일 무사들의 전투태세를 점검한 후 자신의 처소로 돌아와 있었다.

    그가 머무는 곳은 지휘 선실이었다.

    지휘 선실을 집무실로 삼아 오십만 동방무맹 무사들을 총지휘하게 될 것이었다.

    똑똑똑.

    “총군사입니다.”

    “들어오십시오.”

    백자안이 대답하자 문이 열리며 풍류도인이 들어왔다.

    백자안의 부름을 받고 급히 온 그였다.

    “부르셨습니까?”

    “네. 출항 준비는 다 되었습니까?”

    “네. 모레 새벽 함대가 출발할 겁니다. 부산성과 대마도 사이 해역이 이번 전투의 현장이 될 겁니다.”

    “놈들의 함대가 대마도 쪽으로 접근하고 있습니까?”

    “네. 모레 새벽 도착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첩보에 의하면 대마도에서 전열을 정비한 후 곧장 이곳 부산성으로 상륙을 시도할 겁니다. 모레 새벽에 우리 역시 함대를 출발시키면 인근 해역에서 충돌하게 되지요.”

    “놈들도 우리 계획을 알고 있을 가능성은?”

    “예상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해전에 자신들이 강하다고 자부하는 놈들이라 속으로는 기뻐할 겁니다. 한데 정말 놈들 배를 모두 불태우실 생각입니까?”

    “네. 천마룡을 이용해 화공을 가한다면 놈들을 섬멸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만 척이나 되는 배를 모두 불태울 수 있겠습니까? 천마룡을 만들고 유지를 하는데 막대한 내공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만.”

    “모험해야겠지요. 하지만 숙고한 결과 계획을 조금 바꿔야겠습니다.”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모레까지 기다리지 않고 선제공격을 가할 생각입니다. 분명 놈들 역시 우리 계획을 간파하고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따라서 전면전이 발발하면 우리 역시 큰 피해를 볼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병력을 아껴야 할 때입니다. 중원으로 지원을 다시 나가라면 병력 손실을 최대로 줄여야 합니다.”

    “그 말씀은?”

    “지금 바로 저 혼자서 놈들의 함대가 있는 곳으로 가서 기습 공격을 가하겠습니다. 새벽쯤 도착해 천마룡을 이용해 놈들의 배를 모두 불태우겠습니다. 바다 위에 있을 것이니 피하지 못할 겁니다. 우리 측 피해도 없을 것이고요.”

    “그건······.”

    풍류도인이 난감해했다.

    계획대로 성공만 한다면 최상의 방법이겠지만, 백자안 혼자서는 무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놈들을 완전히 소탕하기 위해서 우리 함대 역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떠난 후 그러니까 내일 새벽에 함대를 출발시키십시오. 일정보다 하루빨리 움직여 놈들의 허점을 파고드는 것이지요. 우리 함대가 올 때까지 제가 놈들 배를 불태우겠습니다. 총군사께서는 달아나는 놈들을 공격해 완벽하게 섬멸시키도록 하십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네. 놈들의 간자가 우리 쪽에 있을 수 있으니 이번 계획은 극비로 해주십시오. 저와 총군사님만 아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하실 겁니까?”

    “네. 이미 작은 배 한 척을 준비해두었습니다. 아, 그리고 만에 하나 제가 보이지 않더라도 총공격을 하셔야 합니다. 사실 놈들 배가 너무 많아 제가 모든 배를 불태우기 힘들 수 있습니다. 특히 신임 대인자문주의 무공이 매우 뛰어나다고 하니 얼마든지 변수가 발생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놈들에게 상당한 타격을 줄 자신이 있으니 그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만약 놈들이 왜국으로 철수한다면 추격을 해서라도 반드시 섬멸해야 할 겁니다.”

    “상황에 따라서 대인자성에 들어가 전투를 벌일 수도 있겠군요. 명심하겠습니다.”

    풍류도인이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상황에 따라서 백자안이 전사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인자문에는 고수들이 즐비하고, 또 어떤 반선들이 뒤에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백자안의 결심이 확고해 보여 말릴 상황도 아니었다.

    “맹주님을 믿겠습니다.”

    “네. 저도 총군사님을 믿겠습니다. 그럼 바로 가보겠습니다. 놈들과 전투를 벌일 곳은 아마도 대마도 동쪽 해역이 될 겁니다. 첩보로 얻은 공격 행로를 참조해 쫓아오면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백자안이 말을 마친 후 지휘선실 밖으로 나와 대장선 뒤편으로 갔다.

    풍류도인이 경계 무사들로 하여금 접근을 금지한 후 따라갔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서 배웅을 하려는 것 같았다.

    백자안은 미소를 지은 후 돛단배 한 척이 묶여 있는 곳으로 갔다.

    묶인 줄을 푼 그가 배를 바다 위에 띄웠다.

    “조심하십시오.”

    풍류도인이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그럼. 나중에 다시 보도록 하지요.”

    백자안이 고개를 조금 숙여 답례한 후 배를 출발시켰다.

    돛단배였지만 돛은 펼치지 않았다.

    다만 내공의 힘으로 배가 천천히 움직이며 포구에서 멀어졌다.

    백자안은 앞을 바라보며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하나의 매듭을 지어야 한다. 그 어떤 변수도 용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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