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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123화 (123/250)
  • [제40장] 주화입마 2

    다음 날 아침 백자안은 취의청에서 동방무맹과 마교 지휘부 고수들을 모아두고 작전 회의를 개최했다.

    마침 새벽에 중원에서 도착한 소식이 하나 있었다.

    그 때문에 불패마왕은 좌불안석이었다.

    “혈교 그놈들이 본교 총단을 점령했다고 하네. 백 맹주. 어떻게 하면 좋겠나?”

    “속히 신강 총단으로 무사들을 보내 총단 탈환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잠잠하던 혈교가 기습을 가해 마교 총단을 장악하리라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

    “태상교주께서 이곳 동방에 온 이십만 본교 무사를 이끌고 신강 총단으로 먼저 출발하십시오.”

    “맹주는?”

    “저는 대인자문 놈들의 동태를 좀 더 살핀 후 뒤따라가겠습니다. 저까지 떠나면 대인자문 놈들이 다시 나타나 공격을 가해올 수 있으니까요.”

    “으음, 하기야 이번 기회에 놈들을 반드시 뿌리 뽑아야 뒤탈이 없을 것이네. 혈교 놈들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네.”

    “네. 언제 출발하시겠습니까?”

    “한시가 급하니 바로 출발하겠네. 요요야. 너도 이 아비를 따라가야 한다. 나 혼자는 무리다.”

    “알겠어요. 아버지.”

    임요요가 아쉬워했다.

    그녀는 백자안과 떨어지는 것이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얼마 후 불패마왕과 임요요 등이 마교 무사 이십만을 데리고 동방무맹 총단을 떠났다.

    백자안, 풍류도인 등이 성문 밖까지 나가 그들을 배웅했다.

    마교 무사들 대부분이 백자안이 함께 가지 않는 것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백자안은 마교주만이 아니라 동방무맹과 중원무맹의 맹주였다.

    특히 마교의 경우는 아직 불패마왕이 건재했기 때문에 굳이 백자안까지 나설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신강까지는 매우 먼 거리였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나중에 보세.”

    “다음에 다시 보기로 해요.”

    불패마왕, 임요요 등과 작별 인사를 한 백자안은 동방무맹 지휘부 고수들과 함께 다시 총단으로 돌아왔다.

    “아직 대인자문 놈들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습니까? 왜국에서의 소식도 없습니까?”

    “왜국에 잠입한 정탐무사들로부터 소식이 올 때가 되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시지요.”

    풍류도인의 말에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요. 하여간 이번 기회에 놈들을 궤멸시키지 못하면 영원한 화근이 될 겁니다.”

    “맞는 말씀이에요. 맹주님께서 중원으로 돌아가시면 대인자문 놈들이 다시 나타나 공격을 가해올 가능성이 커요. 지금 놈들이 인근에 숨어 맹주님이 중원으로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요?”

    김지혜의 의견이었다.

    백자안이 말했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오. 총군사 말씀대로 좀 더 기다려보는 게 좋겠소.”

    “네.”

    김지혜가 말한 그때였다.

    다급한 표정의 무사 한 명이 취의청 안으로 들어왔다.

    “왜국 대인자문 총단에 잠입한 정탐무사로부터 전서구가 날아왔습니다.”

    무사가 밀봉한 서신 한 통을 풍류도인에게 바쳤다.

    비합전서는 원래 총군사가 먼저 보는 게 관례였다.

    풍류도인이 보고서를 읽어본 후 말했다.

    “사라졌던 대인자문 무사 백만이 대인자문 총단에 복귀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새로운 문주를 뽑고 있다고 합니다.”

    “아!”

    “아!”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모르겠지만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었다.

    “아무래도 오행반선이란 그자가 대인자문주의 죽음을 알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인자문 무사들의 총단 복귀까지 도와준 것 같습니다. 정심회 반선들의 힘을 빌려 그 특수 이동대법을 펼쳤던 걸까요?”

    풍류도인이 굳은 안색으로 말했다.

    백자안 역시 무거운 표정이었다.

    “놈들이 다시 침공을 가해올 가능성은 어느 정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놈들은 수장을 잃었습니다. 장례와 동시에 새 수장을 뽑는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새로운 문주는 율법에 따라 반드시 복수해야 합니다. 곧바로 다시 공격을 가해올 것 같습니다.”

    “으음, 차라리 잘되었습니다. 놈들의 공격을 기다리느니 차라리 선제공격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왜국으로 쳐들어가자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왜국의 대인자성에 있는 놈들의 총단을 공격해 궤멸을 시켜야 후환을 없앨 수 있을 겁니다. 안 그러면 저 역시 중원으로 복귀도 못 하고 시간만 헛되이 보내게 될 겁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언제 출정을 떠나시겠습니까?”

    “열흘 후가 좋겠습니다. 그동안 함선을 준비해주십시오. 어쩌면 놈들과 해전을 펼칠 수도 있으니까요.”

    “네.”

    풍류도인과 부채도사, 백록공자 등 동방무맹 고수들이 일제히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함선을 준비한다고는 하지만 열흘이라는 시간은 제법 길다고 다들 생각했다.

    동방성에서 부산성까지 내려가는 시간이 또 있어서 바로 출발해도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백자안으로서는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열흘 정도면 무공을 다시 회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 새벽부터 천력이 주화입마를 조금씩 완화하기 시작했으니까.’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그랬다.

    어젯밤까지는 절망적이었으나, 묵상을 통해 큰 가능성을 맛본 그였다.

    그것은 몸속에 있던 천력의 기운이 막힌 혈맥을 조금씩 뚫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자연 치유였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천력의 운용 방법을 알 수만 있다면 열흘이란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단숨에 이전 몸 상태로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나친 욕심은 금물이다. 주화입마 상태가 길어졌으면 결국 목숨까지도 위험해졌을 것이다. 앞으로 열흘 동안 천력에 대한 연구를 좀 더 해야겠구나. 천력을 다스릴 수 있는 심법을 창안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 * *

    열흘이란 시간은 물 흐르듯 흘러갔다.

    그동안 백자안은 주화입마 치유에 힘썼다.

    천력을 이용해 몸속 모든 혈맥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 결과 이전 공력을 모두 찾을 수 있었다.

    아직 큰 성과는 없지만, 천력의 이용 방법에 대한 연구도 깊어졌다.

    깊은 밤.

    백자안은 집무실 안에 홀로 앉아 운공 중이었다.

    내일이면 마침내 출정을 떠나게 될 것이었다.

    회의 결과 일단 부산항에서 모든 무사를 집결시키기로 했다.

    함선을 이끌고 바다 건너 왜국까지 갈 것인지는 그때 가서 다시 한번 결정하기로 했다.

    놈들이 모든 무사를 이끌고 재침공을 가해온다면 굳이 적지에 가서 싸울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부산성에는 이미 구축해놓은 진지들이 있었다.

    백자안이 지금 운공하고 있는 심법은 무명심법이었다.

    총 12단계인 무명심법 중 백자안이 지금 머물고 있는 것은 바로 8단계.

    8단계부터 무형검 단계이기 때문에 그는 이미 무형검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었다.

    이후 많은 진보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는 못했다.

    백자안은 실망하지 않았다.

    무형검 경지 자체가 이미 너무나 대단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너무 빠른 진보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형검의 경지에 올랐다고는 하나 즉각 그 위력이 발휘되지는 않았다.

    백자안은 그 이유를 설익음으로 분석했다.

    아직 체득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었다.

    ‘아직 진정한 무형검의 경지에 올랐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구나. 무형검의 강에 발만 잠시 담갔다고나 할까.’

    백자안이 잠시 지난 일들을 떠올렸다.

    특히 적들과의 싸움에서 잠시나마 위기에 처했을 때를 떠올렸다.

    중원반선과 독심반선, 그리고 오행반선.

    그가 부담스러워했던 고수들이었다.

    그 중 독심반선은 이미 그의 손에 죽었지만, 나머지는 아직 건재했다.

    게다가 반선들이 그들만이 아니었다.

    백자안으로서는 신선계 정심회라는 존재가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내가 진정으로 무형검의 경지에 올랐다면 그들 모두를 쉽게 제압할 수 있어야 했다. 점혈종에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놈들에 의해 상황을 끌려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백자안이 마음을 비워갔다.

    팔대무공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 열흘간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으나 이번에는 절대 들뜨지 않았다.

    상대해야 할 반선들의 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정심회 반선들의 수가 최소 수백 명은 될 것이다. 지금 실력으로는 절대 열 명 이상의 반선을 상대할 수 없다. 한 가지 의문은 반선들의 무공 경지다. 과연 그들이 무형검에 올랐는지 궁금하구나.’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그가 직접 죽인 독심반선의 경우 그 무공이 대단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무형검에 오른 것 같지가 않았다.

    ‘으음, 지금 그 생각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팔대무공을 오성 정도까지 연마한 것도 기적이다. 특히 천마대장경 상의 무공들 역시 대성했으니, 이제 본격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겠구나. 하지만 결국 최종 승패를 좌우할 변수는 천력이다. 천력은 또 다른 차원의 무공 경지를 가져다줄 것이다. 그 경지야말로 진정한 무형검의 경지가 아닐까.’

    백자안이 무형검에 대한 깊은 묵상에 잠겼다.

    ‘무형검의 27단계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단계로 나뉘는 게 사실이지만 실은 단계별로 그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이는 깨달음의 경지를 등급 매기는 것이 어려운 것과 같다. 그렇다면 내가 최후의 경지라는 지성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끝까지 잡고 있어야 할 화두가 무엇일까.’

    묵상의 경지는 더욱더 깊어갔다.

    백자안이 잡고 있는 화두는 바로 무아(無我)였다.

    ‘내가 없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허망한 분별이 없다는 것. 상념(想念) 속에 있으면서도 상념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무형검 또한 마찬가지다. 무공이면서 무공이 아니다. 단지 그 이름이 무공일 뿐이다. 무형검의 강에 발만 담그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를 담가야 진정한 무형검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백자안의 몸이 천천히 떠올랐다.

    이전에 봤던 무형법문의 내용을 다시금 되새겼다.

    그러자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순간, 무명심법의 경지가 갑자기 한 단계 뛰어올랐다.

    바로 구단계 경지였다.

    구단계는 무형검의 초보 상태를 뛰어넘은 것으로, 본격적인 무형검의 경지라 할 수 있었다.

    ‘이제야 무형검의 고수라 할 수 있겠군. 팔대무공 역시 덩달아 그 경지가 높아졌다. 오성에서 단숨에 구성에 달했구나. 무명심법이 십이성 대성하게 되면 팔대무공 역시 십이성 대성하게 되는 것인가. 과연 그때의 경지는 어느 정도일까.’

    무형검 최후의 경지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백자안은 이제야 비로소 한번 도전해볼 만하다고 느꼈다.

    ‘정리하자면 지금까지 내가 익힌 무공들 중 팔대무공이 구성이고, 나머지는 모두 대성을 한 셈이로군. 무형검 역시 완전히 궤도에 올랐다. 사실 이미 이러한 경지에 오른 지 제법 되었는데 각성을 하지 못해 실제 경지와 차이가 있었지.’

    백자안의 몸이 다시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의 안색은 평온했다.

    ‘주화입마가 오히려 득이 되었구나. 천력으로 혈맥을 다시 풀면서 바른 순서를 만들었다. 무형법문에 가장 많이 나오던 반복(反覆)과 왕래(往來), 상하(上下)의 진정한 의미 또한 지금 어렴풋이 느껴지는구나.’

    백자안이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맹주 처소인 동방각(東邦閣)에서 나온 그는 인근 연무장으로 향했다.

    이곳은 동방무맹주 전용 연무장으로 맹주 외에는 절대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백자안이 가장 먼저 연습을 한 것은 바로 팔대무공이었다.

    지존검법부터 시작해 지존장, 지존비,지존권, 지존지, 지존보, 지존도법, 지존금광까지.

    구성에 오른 팔대무공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하지만 음파를 차단해두었기 때문에 동방각 주위에 있는 경계 무사들은 전혀 알 수 없었다.

    팔대무공을 마친 백자안은 천마대장경 상의 무공을 연마했다.

    이미 대성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다시 펼쳐보니 새로운 위력이 드러났다.

    그리고 나머지 무공과 비술들.

    새벽이 점점 밝아오고 있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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