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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121화 (121/250)
  • [제39장] 출정 3

    “폭발장치는 따로 없다. 기관을 내공으로 작동시켜야 하는데 너의 내공으로는 무리다. 나 말고 작동시킬 사람이 없지. 네 마음은 알겠지만, 그 일은 내게 맡겨라.”

    “그럼 기관이 있는 곳이라도 가르쳐 주십시오. 그 작동 방법도 알았으면 합니다. 만에 하나 아버지께서 실패하시거나 기관을 작동할 여유가 없으실 때 제가 마지막으로 시도하겠습니다.”

    “으음, 그것도 일리가 있구나. 나를 따라오너라.”

    “네.”

    백자안이 대답 후 대인자문주를 따라갔다.

    백자안의 역용술이 완벽했는지 대인자문주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잘됐다. 지금 바로 이자를 죽이고 폭발을 시키면 되겠군.’

    백자안이 들뜬 마음을 달랬다.

    대인자문주가 백자안을 데려간 곳은 지하 광장이었다.

    원래 이곳은 동방무맹 총단이 비상 대피 장소로 만들어둔 곳이었다. 한데 대인자문 측에서 비상통로를 뚫어 외부와 통하게 만들어두었다.

    “이 통로를 통해 우리 대인자문 무사 백만을 총단 밖으로 보낸 후 마지막에 기관을 작동하면 화약이 폭발할 것이다. 그러면 총단 내부에 있는 자들이 몰살당할 것이다.”

    “놈들이 우리를 따라 지하 광장으로 내려오면 어떻게 합니까?”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내가 여러 번 말하지 않았느냐? 우리 무사들이 모두 지하 광장으로 들어오게 되면 자동으로 봉쇄진법이 가동된다. 놈들은 단 한 명도 이곳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 물론 총단 주위도 봉쇄되어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되지. 그런 후에 내가 폭발 장치를 작동시키면 깨끗하게 궤멸시킬 수 있는 것이다. 기관은 저기에 있다.”

    대인자문주가 지하 광장 한쪽 벽면을 가리켰다.

    비상출구로 보이는 동굴 옆이었는데, 벽에 볼록한 부분이 보였다.

    “저곳을 십갑자 이상의 내공으로 누르면 일각 후에 총단 전체가 날아간다. 아직 너는 내공이 십갑자가 되지 못하지만, 잠력을 발동하면 한 번쯤은 가능할지도 모르겠구나. 이제 이해가 되느냐?”

    “네.”

    백자안이 볼록한 부분을 만져보았다.

    예상대로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으음, 이제 대인자문주 이자를 제거할 때가 되었구나.’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인 후 대인자문주를 바라봤다.

    “왜 그러느냐? 키요토.”

    “키요토는 이미 죽었소.”

    백자안이 역용을 풀고 본 모습을 보였다.

    기습을 가하지 않은 것은 정정당당하게 대인자문주를 죽이기 위해서였다.

    “네놈은?”

    “나는 백자안이라 하오.”

    “백자안! 네놈이 나를 속였구나. 어서 말해라. 네놈이 정말 내 아들을 죽였느냐?”

    “그렇소. 그자는 수많은 부녀자를 간살했으니 죽어 마땅했소.”

    “내 아들의 복수를 하겠다.”

    대인자문주가 우수를 높이 들었다.

    그의 우수가 붉게 물들면서 엄청난 강기 다발이 쏟아져 나왔다.

    그 힘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수십 배로 불어난 내공에 아들에 대한 복수심과 맞물려 가히 불가사의한 힘이 담긴 것이다.

    백자안이 피하지 않고 지존금광으로 응수했다.

    금빛 광채가 그의 전신에서 우러나오며 다가오는 강기와 부딪혔다.

    꽈앙.

    지하 광장 전체가 흔들리는 폭음이 터졌다.

    “크윽!”

    대인자문주가 처절한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그의 가슴에는 큰 구멍이 하나 뚫려있었다.

    “으으······ 이런 개 같은······ 신선단······ 중원삼성 그놈들에게······.”

    대인자문주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죽기 전에 남긴 말을 들어보니 그 역시 중원삼성을 통해 복용한 신선단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휴우······ 지난 한 달간 깨달음에 진전이 없었다면 내가 당할 뻔했다.”

    백자안이 내기를 다스렸다.

    조금 전 충돌로 그 역시 가볍지 않은 내상을 입은 것이다.

    ‘이 상태로는 화약 폭발장치를 가동할 내공이 부족하다. 운공요상을 통해 내기를 끌어올려야겠다. 다행히 이곳에 아무도 없으니 호법은 필요 없겠군.’

    백자안이 그 자리에 앉아 운공요상에 들어갔다.

    하지만 생각보다 회복이 더뎠다.

    대인자문주의 공격이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운공요상을 마치고 일어나려던 그 순간.

    그의 앞에 백의노인 한 명이 나타났다.

    백자안이 깜짝 놀랄 때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얇은 실 같은 것을 던졌다.

    마치 포승줄과도 같은 그 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올가미처럼 백자안을 묶어 버렸다.

    백자안이 빠져나오려 했지만 그만 늦어 그대로 당하고 말았다.

    동시에 내공 역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백자안은 그제야 그 실이 보통 실이 아님을 깨달았다.

    “신선천잠사라고 무형검의 고수라 해도 절대 끊을 수 없지. 군자산 역할까지 해서 내공도 사용할 수 없고 말이야. 네가 혈도를 잘 푼다고 해서 특별히 준비한 것이다. 점혈종보다 더욱 위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지.”

    “누구냐?”

    백자안이 소리치며 힘을 주었으나 오히려 더욱 포승줄이 죄어 왔다.

    “후후후! 나 말이냐? 네가 죽인 독심반선의 도반이다. 오행반선(五行半仙)이라고 하지. 정심회를 대표해 네놈을 체포하러 왔다. 감히 살반선(殺半仙)의 죄를 짓다니.”

    “나를 신선계로 데려갈 셈이냐?”

    “그렇다. 신선재판을 통해 네놈을 처단할 것이다. 분명 중원반선을 통해서 경고했을 텐데······.”

    오행반선이 노한 표정을 지었다.

    당장에라도 백자안을 죽이고 싶은 모습이었다.

    백자안으로서는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갑자기 정심회 반선이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운공요상의 막바지 단계라 반응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무방비도 아니었다. 다만 신선천잠사라는 것의 효능이 너무나 대단했다.

    ‘법보라는 것에 처음에 당할 때 속수무책일 가능성이 크구나.’

    백자안이 내심 탄식했다.

    다시 한번 내공을 끌어올려 봤으나 오히려 조금 전보다 더한 고통이 느껴졌다.

    내공 발현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 쉽게 풀릴 것 같지가 않았다.

    “헛수고하지 마라. 신선천잠사는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 자, 이제 그만 가자.”

    “잠깐!”

    “왜 그러느냐? 혹시 이곳 동방무맹의 상황이 걱정되는 것이냐?”

    “그렇다. 내게 시간을 다오.”

    “후후후! 이미 늦었다. 네놈이 끌고 온 동방무맹과 마교 무사들은 대인자문 무사들과 양패구상할 것이다. 두 곳 모두 수장을 잃은 셈이니 실력대로 승부가 나겠지.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내 어찌 신경을 쓰지 않겠느냐? 싸움이 끝난 후에 자진해서 따라갈 것을 약속한다.”

    “어리석은 놈. 너는 이미 결박을 당해 조금도 힘을 쓰지 못한다. 내가 네 말을 들을 이유가 없지. 혹시 화약을 폭발시키려는 것이냐?”

    “그걸 어떻게 아느냐?”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독심반선의 부탁으로 뒤에서 대인자문을 감시하고 있었지. 놈들이 화약을 매설한 것도 다 알고 있다.”

    “그래서?”

    “화약은 내가 모두 제거했다. 공정한 대결이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이제 되었나?”

    “믿기 어렵군.”

    “어리석은 놈.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하다니.”

    오행반선이 일장을 날려 화약폭발 기관이 있는 곳을 타격했다.

    콰콰쾅.

    폭발과 함께 볼록한 부분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하지만 이대로 신선계로 끌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야벌에 주둔해 있는 무사들의 안위가 걱정이었다.

    대인자문주와 그의 아들이 죽었다고 해도 지휘권 승계자가 나타날 것은 분명했다.

    아니 지금 상황으로는 대인자문주가 실종된 것으로 생각하고 전면전이 발발할 것이었다.

    ‘전면전이 벌어지면 아군이 몰살당할 수 있다.’

    백자안이 결단을 내려 무명폭잠공을 일으켰다.

    이 무명폭잠공은 그를 여러 번 위기에서 구해준 비술이었다.

    “후후후! 마지막 발악이냐? 네놈이 비록 잠력을 폭발시켜도 신선천잠사는 끊을 수 없다. 네놈이 무슨 천족이라도 된다는 말이냐?”

    투투툭.

    오행반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신선천잠사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오행반선이 매우 놀라며 오른 주먹을 들어 백자안의 턱을 후려쳤다.

    무명폭잠공의 기운을 신선천잠사를 끊는데 모두 사용했기에 백자안은 피할 여력이 없었다.

    퍽.

    백자안이 십여 장이나 날려가 건너편 광장 벽에 부딪혔다.

    쿵.

    바닥에 떨어진 백자안이 연신 피를 토했다.

    오행반선이 끊어진 신선천잠사를 들고 안타까워했다.

    “어찌 이런 일이······ 네놈 정체가 의심스럽구나. 하지만 탈출을 시도했기 때문에 이제 내 손에 죽어도 아무 문제가 없게 되었다. 신선재판정까지 데리고 갈 필요가 없게 된 것이지. 바로 죽여주마.”

    오행반선이 빠르게 다가와 다시 주먹을 뻗었다.

    퍽퍽퍽.

    얼굴을 얻어맞은 백자안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하지만 전혀 반항할 수 없었다.

    이는 이전처럼 무명폭잠공의 후유증 때문이었다.

    물론 이제는 무공이 높아져 후유증을 겪지 않아도 무명폭잠공을 펼칠 수 있는 수준에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신선천잠사는 다시 무리하게 만들었고 필연적으로 후유증을 가져온 것이었다.

    퍽퍽퍽.

    일방적인 주먹질은 계속되었다.

    백자안은 이제 고통마저 못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육체적 고통일 뿐이었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상황이 되자 오히려 마음은 편해졌다.

    ‘죽음이 없다면 병 또한 없는 법. 고통 역시 그러한 것이 아닐까. 독심반선 그자를 이겼다면 이자 역시 내 실력으로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아니 이기고 지는 것을 초월한다면 승패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고, 누구에게도 영원히 패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 아닐까.’

    백자안은 순간 지극한 마음의 평정을 느꼈다.

    사실 그는 죽음 직전이었다.

    얼굴은 만신창이가 된 지 오래.

    오행반선 역시 모든 힘을 다해 백자안을 치느라 힘이 달린 표정이었다.

    ‘금강불괴에 가까운 몸을 지닌 놈이다. 오직 누적된 타격으로만 이놈을 죽일 수 있다. 대인자문주 그놈이 먼저 힘을 빼놓지 않았다면 제압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오행반선이 이제 축 늘어진 백자안을 쳐다봤다.

    마무리가 필요했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이놈을 죽인 후 독심반선과 마찬가지로 삼의맹주 행세를 해야겠군. 그런 후 중원삼성 그자들과 달리 내가 직접 무림을 일통한다. 다른 반선들은 만년서약을 두려워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최종 대리자를 세울 필요 없이 무림에 이상향을 세우면 내가 바라는 우화등선을 할 수 있으리라.’

    오행반선이 득의한 미소를 지으며 소매 속에서 비수 하나를 꺼냈다.

    백자안이 완전히 기진했다고 생각하고 마무리를 지으려는 것이다.

    “후후후. 신선비수는 모든 것을 자르지. 네놈 목도 이제는 금강불괴력을 잃은 것 같구나.”

    스윽.

    신선비수가 백자안의 목을 그었다.

    푸화확.

    피가 솟구치며 백자안의 목이 그대로 잘렸다.

    데구르르.

    목이 떨어져 구르자, 오행반선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생각보다 쉽구나. 신선천잠사를 끊어 혹시 진짜 천족이 아닌가 했는데, 나의 착각이었군.”

    오행반선이 품속에서 병 하나를 꺼내 그 안에 든 액체를 백자안의 시신에 뿌렸다.

    순간, 시신이 타들어 가며 한 줌 고름으로 변해버렸다.

    그때였다.

    오행반선의 뒤에서 한 줄기 담담한 음성이 들렸다.

    “천족이라. 천족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구려. 아닐 수도 있고. 맞고 아니고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오행반선이 매우 놀라 뒤를 돌아봤다.

    한데 죽어 완전히 사라진 백자안이 담담히 서 있는 게 아닌가.

    더욱더 놀라운 것은 백자안의 얼굴이 멀쩡하다는 점이었다.

    “분신술?”

    “그렇소. 이제 그대는 나를 이길 수 없소.”

    “나를 죽일 셈이냐?”

    “그렇소.”

    “나를 죽이면 네놈의 정혼녀도 죽게 될 것이다. 악미미 그 계집은 지금 정심회 신선감옥에 있다. 내 말은 사실이다. 그래도 나를 죽이겠느냐?”

    “그 말을 믿으라는 것이오?”

    “이거면 되겠냐?”

    오행반선이 품속에서 옥비녀 하나를 꺼냈다.

    그것은 악미미의 것이었다.

    백자안이 처음으로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옥비녀를 받아본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겠군. 좋소. 지금 신선계로 돌아가면 이번 한 번은 쫓지 않겠소. 그리고 전하시오. 악 소저를 건드리면 용서치 않겠다고. 무림의 일이 마무리되면 내 반드시 찾아갈 테니 그때까지 기다리시오.”

    “좋다. 하지만 방심하지 마라. 아무리 네놈의 능력이 뛰어나도 반선 여러 명이 합공하면 필패일 테니까. 사실 내 무공이 약해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네놈이 천족일 수도 있어 그 사실을 반선들에게 알리러 가는 것이다.”

    “나는 천족이 아니오. 하지만 그렇게 오인하는 데는 무슨 이유가 있을 것 같구려. 어서 가시오. 마음 변하기 전에.”

    “알겠다. 이곳은 네가 알아서 해라. 하지만 혈교와 사사천교 쪽은 다른 반선들이 또 있을 가능성이 크니 참고해라. 그럼.”

    오행반선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스스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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