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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114화 (114/250)
  • [제37장] 분노 2

    금마옥과 연결된 지하 광장은 실로 거대했다.

    비상시를 대비해 무림맹 무사 전원을 대피시킬 용도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백자안은 만박서생이 알려준 비밀통로를 통해 이곳으로 들어왔다.

    지하 광장은 텅 비어 있었다.

    삼혈맹 무사들의 추적은 따로 없었다.

    하기야 금마옥 입구가 무너져 들어올 공간도 없었다.

    원래 지하 광장으로 들어오는 입구 역시 금마옥과 연결되어 있어 출입구는 단 하나였다.

    추적을 따돌릴 수 있어 좋았지만, 삼혈맹 무사들을 유인해 몰살시키려는 계획은 실행되기 어려웠다.

    게다가 이제는 이곳을 나갈 방법도 요원했다.

    원래대로라면 삼혈맹 무사 수십만을 지하 광장으로 유인한 후 지존령기로 기관을 작동해야 했다.

    기관이 작동되어 매설된 화약이 폭발하면 지하 광장은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백자안은 광장이 무너지기 전에 빠른 속도로 금마옥을 통해 탈출해야 하는 것이다.

    이 점은 만박서생 역시 우려했다.

    기관 작동 후 폭발 때까지의 여유 시간은 일각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백자안은 빠른 경공 실력이 있었고 호신강기 또한 강력했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황만 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화약 폭발을 실행할 계획을 머릿속에 두고 있었다.

    한데 예상보다 빨리 이 지하 광장에 오게 되었지만, 삼혈맹 무사들이 없어 계획을 실천할 상황이 되지 못했다.

    ‘부모님과 자룡이는 어디에 있을까? 놈들이 해쳤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일단 여기서 나가 알아봐야겠구나.’

    백자안이 주위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유인작전을 펼치기 어려울 것 같다면 최대한 빨리 이곳에서 나가야 했다.

    지체하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백소영과 임요요도 위험했다.

    ‘내가 너무 서둘렀다. 삼혈맹 지휘부 동태부터 살폈어야 했는데······.’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사실 가족들이 붙잡혀갔다는 말에 침착하지 못했다.

    원래 그가 삼혈맹이 장악한 총단에 들어가 보려 했던 것은 놈들의 지휘부를 소탕하기 위해서였다.

    혈교주와 사사천교주, 그리고 대인자문주 이 세 명만 제거하면 삼혈맹 무사들의 조직이 크게 흔들릴 것은 자명했다.

    ‘지나간 것에 미련을 두지 말자. 지금도 늦지 않았다.’

    백자안이 수색을 계속했다.

    하지만 다른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 출입구 자체가 없었다.

    유일한 곳이 금마옥과의 연결통로였는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 역시 극소수였다.

    ‘놈들이 금마옥 입구를 붕괴시킨 것은 나를 가둘 목적이었을 것이다. 이곳 지하 광장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백자안이 잠시 쉬며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든 출구를 발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출구는 전혀 없었다.

    차라리 금마옥 입구 쪽으로 다시 가보려는 순간.

    굉음과 함께 다시 한번 통로가 붕괴되는 소리가 났다.

    백자안이 급히 가보니 금마옥과 지하 광장과의 연결 부위마저 완전히 붕괴되어 있었다.

    “아, 정말 이곳에 갇힌 것이란 말인가.”

    백자안이 탄식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수색이 계속되었다.

    * * *

    어떤 상황에도 시간은 흐른다.

    좋든 싫든 시간은 계속 흐르게 마련인 것이다.

    백자안이 지하 광장에 갇힌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하루도 참지 못할 것 같았지만,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것이다.

    수색은 보름 전에 중단했다.

    그 대신 백자안은 그동안 익힌 무공들을 정리했다.

    이는 두려움에 맞닥뜨려 당황하지 않고 담담히 지켜보기 위한 것으로 무공 연마가 제격이었다.

    무공을 정리하고 연마함으로써 그동안의 삶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원래 무저곡에 떨어져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생사에 대한 미련은 그리 없었던 그였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시간의 회귀로 인해 또 다른 집착이 생겨났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바로 그것이었다.

    백자안은 보름 전 반은 포기한 심정이 되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져 수색 대신 무공 연마를 택했다.

    그동안 배웠던 무공의 종류는 매우 많았다. 그 성질 또한 여러 가지였다.

    특히 팔대무공의 연마는 여전히 초보 수준이었다.

    그래서 이참에 팔대무공을 중심으로 다시금 연마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그런 시도에는 한 가닥 희망도 있었다.

    출구가 없다면 아예 지하 광장을 무너뜨리는 방법을 생각한 것이다.

    지존령기를 이용해 화약을 폭발할 수 있는 기관은 지하 광장에 있었다.

    그 기관은 이미 확인했었다.

    문제는 탈출이었다. 금마옥을 통해 나가는 출구는 막혀있으므로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것은 바로 지하 광장이 붕괴할 때 생기는 균열을 통해 탈출하는 방법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거대한 호신강기가 필요했다.

    ‘그 방법밖에 없다. 이제 어느 정도 준비가 된 것 같구나. 완벽하게 하려면 무형검의 최고봉인 지성에 도달해야겠지만,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니 어느 정도 모험이 필요하겠구나.’

    백자안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놀랍게도 그는 한 달간 물밖에 먹지 않았다.

    광장 한구석에 흐르고 있는 물이 없었다면 어쩌면 죽었을지도 몰랐다.

    폭발 장치가 있는 곳은 지하 광장 중앙에 있는 바위였다.

    평평한 바위.

    그 바위 밑에 기관이 설치되어 있었다.

    백자안이 바위를 번쩍 들어 올려 옆에 내려놓았다.

    몇 번 확인해본 터라 주저함이 없었다.

    바위가 있던 곳에는 홈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 지존령기를 한번 꽂고 돌리게 되면 일각 후 화약이 폭발하게 되어 있었다.

    ‘생사에 대한 미련은 버린 지 오래다. 다만 놈들을 이곳으로 유인해 몰살시킬 수단이 없어지는 것이 아쉽군.’

    백자안이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이곳에 있었던 한 달 동안 무림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는 생각만 해도 두려웠다.

    무고한 생명이 사라졌을 거라는 생각에 죄책감마저 느껴졌다.

    ‘지금쯤이면 동방에 있던 동방무맹과 대인자문 무사 사십만이 모두 중원에 도착했을 것이다. 소림사 역시 어떻게 되었을지 걱정이 크다. 과연 잘 버티고 있을까?’

    백자안이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명경지수처럼 맑아졌던 마음이 다시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이는 당연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달라져야 했다.

    ‘최악의 상황이 되었다고 해도 다시 되돌릴 것이다. 나의 능력 또한 이전보다 강해졌으니까.’

    백자안이 품속에서 지존령기를 꺼내 바닥에 팬 홈에 넣었다.

    이제 오른쪽으로 세 번 돌리기만 하면 되었다.

    백자안이 거침없이 지존령기를 오른쪽으로 세 번 돌렸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절차는 지존령기를 뽑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일각 후 지하 광장 전체가 무너지게 될 것이었다.

    백자안으로서는 생명을 건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비록 그의 무공이 다시 한번 비약적으로 진보했다고는 하나 위험한 것은 물론이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어차피 덤으로 사는 삶이라 큰 미련은 없다. 하지만 큰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점이 아쉽구나.’

    동방무맹과 중원무맹 양 맹의 맹주 신분인 그로서는 여러모로 아쉬운 게 사실이었다.

    그때 문득 몸속에 지니고 있던 천상여의주 생각이 났다.

    혹시 몰라 그동안 출구가 어디 있는지 몇 번이고 물어봤던 그였다.

    하지만 대답이 없었다.

    사실 천상여의주는 무슨 이유인지 언제부터 대답이 일절 없었다.

    하지만 막판에 달하자 다시 한번 시도를 해보는 그였다.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묻지 않고 막연히 도움을 청했다.

    이 상황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언을 달라는 내용을 의념으로 생각했다.

    그때였다.

    한 줄기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반대로 돌리세요.>

    ‘반대?’

    백자안이 깜짝 놀라면서도 반가운 마음에 지존령기를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반대 방향으로 세 바퀴 돌려 원점에 놓은 것이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백자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왼쪽으로 세 번 돌렸다.

    처음 위치에서 오른쪽이 아닌 왼쪽으로 세 바퀴 돌린 것이다.

    그때였다.

    그그긍 소리와 함께 바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백자안이 지존령기를 뽑고 뒤로 물러났다.

    혹시 폭발이 있지 않을까 긴장했지만, 폭발 대신 다시 지하로 통하는 통로가 하나 생겨났다.

    ‘비상출구다!’

    백자안이 반색하며 계단을 밟고 안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얼마나 내려갔을까.

    어느 지점에 이르자 통로의 방향이 바뀌었다.

    경사가 느껴지는 것이 비상 출구와 연결된 것 같았다.

    그 순간.

    지나왔던 통로 위쪽에는 또다시 굉음이 들렸다.

    백자안이 그것이 자신이 내려온 비상 출구가 닫히는 소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기묘한 기관이군.’

    백자안이 서둘러 통로를 따라 올라갔다.

    조금씩 올라가는 경사를 지닌 통로의 길이는 매우 길었다.

    느낌상으로도 총단이 있던 장소를 완전히 벗어난 것 같았다.

    백자안으로서는 아무래도 좋았다.

    멀쩡한 몸으로 나가는 것이 더욱더 중요했다.

    사실 무리해서 폭발을 뚫고 탈출했다면 설령 목숨을 건졌다 해도 중상이 불가피했다.

    ‘일단 나가고 나서 생각한다.’

    백자안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무려 두 시진이나 지났을 무렵.

    길을 막고 있는 바위 하나가 보였다.

    백자안으로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문을 발견한 셈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신중했다.

    천혈곡에서도 동굴에서 나가자마자 동굴 전체가 무너지지 않았던가.

    최대한 기감을 퍼뜨려 기관이 있는지 살폈다.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백자안이 천천히 바위를 밀었다.

    제법 컸지만, 내공이 일갑자 이상 되는 사람이면 충분히 밀어낼 수 있는 무게였다.

    끼이익.

    바위가 굴러가며 틈이 드러났다.

    순간, 강렬한 햇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백자안이 잠시 눈을 감은 후 곧바로 틈을 이용해 밖으로 나왔다.

    “이곳은?”

    백자안이 의아해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주위는 온통 숲이었다.

    하지만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고 낙양성 안에 있는 야산 중 한 곳 같았다.

    다만 수풀이 우거져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 같았다.

    백자안이 주위 지형을 잘 살펴본 후 다시 바위를 밀어 통로 입구를 막았다.

    ‘으음, 일단 전혀 다른 얼굴로 역용할 필요가 있겠구나, 지난 한 달간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백자안이 평범한 이십 대 중반의 사내 모습으로 역용한 후 빠르게 산 아래로 내려갔다.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관도가 보였다.

    ‘성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지만 거의 성벽 가까이 왔구나. 일단 인근 객잔을 찾아봐야겠다. 한 달간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더니 배가 매우 고프군.’

    백자안이 경공을 펼쳐 속도를 냈다.

    휙휙.

    얼마 후 도착한 관도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다니고 있었다.

    대부분 병장기를 찬 무림인이었다.

    백자안은 태연하게 그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섣불리 말을 걸지 않았다. 성내 중심부 쪽으로 가자, 점차 행인들이 많아졌다.

    한데 생각보다 사람들 표정이 밝은 게 아닌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무림인으로 보이는 한 사람에게 물었다.

    “산속에 한 달 정도 지내다가 나왔는데 현 무림의 상황이 어떠하오? 삼의맹과 삼혈맹 중 어느 쪽이 승리했소?”

    “하하하. 아직도 모르고 있었소? 열흘 전에 소림사에서 대전투가 벌어져 삼의맹 쪽이 대승을 거두었소. 삼혈맹은 대패 후 이곳 낙양 총단마저 버려두고 본거지로 퇴각을 했지요. 어제부터 총단에서 총단 탈환을 축하하는 잔치가 벌어지고 있으니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함께 갑시다. 다들 이번에 대승을 거두는 데 큰 공을 세우신 백자안 대협을 뵈러 가고 있으니,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그분을 뵙겠소? 역사상 처음으로 동방무맹과 중원무맹의 맹주 직을 겸한 데 이어 이번에는 마교 교주 자리까지 차지했으니 말이오. 명실상부 삼의맹의 통합맹주가 되신 것이지.”

    “백자안?”

    백자안이 매우 놀랐다.

    삼의맹이 승리를 거뒀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누군가 자신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게 아닌가.

    백자안이 안색을 굳힌 채 사람들을 따라 중원무맹 총단으로 향했다.

    ‘가보면 알겠지. 어쩌면 누군가 내 이름으로 무림을 통합해 삼혈맹을 무찔렀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렇다면 다행이긴 하나 왠지 마음에 걸리는구나. 혹여 이번에도 중원삼성 그자들의 농간이라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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