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111화 (111/250)
  • [제36장] 천혈곡 2

    스스슷.

    동굴 안으로 들어간 백자안이 속도를 높였다.

    통로가 갈수록 넓어져 수십만 인원이 빠져나가는 것도 충분해 보였다.

    혈교와 대인자문 무사들이 이곳을 통해 계곡 밖으로 나갔을 거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하지만 동굴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통로만 길게 이어지고 있었을 뿐.

    ‘구렁이가 있었던 것은 놈을 미처 데려가지 못했기 때문인가.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 이 길을 통해 계곡 밖까지 나가야겠다.’

    백자안이 생각하기에 혈교와 대인자문 무사들이 계곡 밖으로 빠져나간 것은 최소한 이틀은 넘어 보였다.

    그 시간이라면 다른 길을 통해 낙양 무림맹 총단까지 먼저 갈 수 있었다.

    물론 총단 공격은 백자안의 직감으로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불확실성이었다.

    특히 계곡 안에 적이 없다는 것을 이제야 확인했다는 점은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정보력 면에서 삼혈맹보다 뒤처진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반시진 가량 지났을 무렵.

    드디어 동굴의 끝이 보였다.

    한데 거대한 철문이 가로막혀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래도 혈교와 대인자문 무사들이 계곡을 빠져나간 후 그 문을 잠가둔 것 같았다.

    백자안이 장풍을 날린 것은 그 직후였다.

    콰콰쾅.

    철문이 그대로 박살 나며 밖의 풍경이 보였다.

    숲속이었다.

    천혈곡이 있는 천혈산(天血山)으로 보였다.

    백자안이 동굴에서 나와 숲에 나온 그 순간.

    거대한 굉음과 함께 동굴이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다.

    콰르르릉.

    “아차!”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철문이 파괴되면 기관이 발동해 동굴 전체가 무너지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만약 무사들을 전부 데리고 왔다면 그대로 몰살당할 뻔했다.

    ‘놈들이 노린 것이 바로 이것이었던가. 바위를 굴러 협로를 막은 것도 이 길을 통해 바깥으로 나가도록 유인했던 것이로군.’

    백자안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단순하지만 매우 무서운 함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어서 무사들이 기다리고 있는 천혈곡 입구로 돌아가 낙양으로 회군해야 했다.

    백자안이 경공을 펼쳐 무사들이 있는 쪽으로 날아가려 할 바로 그때였다.

    스스슷 하는 소리와 함께 백여 명의 무사들이 나타났다.

    기형도를 든 그자들은 아무 말도 없이 백자안을 포위했다.

    백자안은 단번에 그들이 대인자문의 살수들임을 깨달았다.

    그것도 고도로 훈련된 고수였다.

    “후후후! 네놈 혼자 빠져나온 것이냐?”

    수장으로 보이는 중년 사내의 말이었다.

    “그렇소. 그대들은 대인자문 소속이오?”

    “그렇다. 우리는 이곳에서 생존자를 기다리고 있었지. 어서 말해라. 안에 있던 놈들이 얼마나 되느냐?”

    “아무도 없소. 나 혼자 왔소.”

    “뭐라고?”

    우두머리 무사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최소한 십만 이상의 병력을 몰살시킬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놈은 누구냐? 누구기에 혼자서 이곳까지 온 것이냐?”

    “나는 나요. 그보다 천혈곡에 있던 혈교와 대인자문 무사들은 모두 어디로 갔소? 혹시 낙양 총단으로 간 것이오?”

    “후후후. 그렇다. 지금쯤은 중원무맹 총단을 점령했을 것이다. 이게 다 네놈들이 우리 유인작전에 당했기 때문이지. 그보다 어서 네놈 정체를 말하지 못하겠느냐?”

    “낙양으로 가지 않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대들뿐이오?”

    “그렇다. 철문을 여는 순간 동굴이 무너지게 되어있는데, 많은 병력이 필요할 이유가 없지. 다만 가장 먼저 나올 몇 명마저 제거하기 위해 우리가 남은 것이다. 결과보고도 해야 하고 말이야. 그나저나 정말 네 정체를 밝히지 않을 것이냐?”

    “나는 풍운검객이라고 하오.”

    “헉! 네놈이 바로 이번에 중원무맹주가 된 그 풍운검객?”

    “그렇소.”

    백자안이 내공을 끌어올렸다.

    더는 이자들과 입씨름할 시간이 없었다.

    “모두 공격하라!”

    “존명!”

    대인자문 무사들이 일제히 도를 빼 들어 공격을 가해왔다.

    쐐애액.

    백자안은 피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지존금광을 발출했다.

    금빛 섬광이 대인자문 무사들을 감쌌다. 남은 것은 비명과 시체뿐이었다.

    놀랍게도 백 명 모두 몰살당한 것이었다.

    백자안이 신형을 솟구쳐 원래 천혈곡 입구 방향으로 날아갔다.

    휙휙휙.

    * * *

    천혈곡 입구로 다시 돌아온 백자안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원무맹과 동방무맹, 그리고 마교 무사 삼십만 병력이 모두 사라진 것이었다.

    아니 백여 명 정도 남아 있긴 했다.

    그들은 모두 혈도를 찍힌 채 쓰러져 있었다. 대부분 백자안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매화검선, 악미미, 백소영, 백리설아, 백리관, 백풍, 김지혜, 부채도사, 백록공자, 불패마왕, 임요요 등이 바로 그들이었다.

    하지만 삼십만 병력에 비한다면 그들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백자안은 한눈에 전 병력이 당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항거하기 힘든 무언가에 제대로 대적도 못 하고 당한 것 같았다.

    하지만 시신은 보이지 않았다.

    진실을 알기 위해선 수혈까지 찍혀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깨워야 했다.

    백자안이 놀란 마음을 다스리며 사람들의 혈도를 풀었다.

    그러자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백자안의 물음에 매화검선이 대답했다.

    “아, 맹주님. 돌아오셨군요. 한데 무사들이 대체 어디로?”

    매화검선이 어리둥절해 했다.

    그 역시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불패마왕이 말했다.

    “풍운 맹주가 계곡 안으로 들어가고 얼마 후였네. 굉음이 크게 들리더군. 그 때문에 무사들이 동요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눈을 뜨기 힘든 빛과 함께 회오리바람이 불어왔네. 믿기 어렵겠지만 대부분의 무사가 그 회오리바람에 날려 사라졌네.”

    “회오리바람 말입니까?”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그 역시 지난날 그런 비슷한 바람에 날려 무저곡에 떨어지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때는 자신 혼자였다.

    삼십만이 되는 무사들을 날려 보낼 바람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불패마왕이 다시 말했다.

    “모두 사실이네. 아마도 끝까지 그 광경을 본 사람은 나뿐일 걸세. 그나마 백여 명 정도 바람에 날려가지 않은 것도 천운이었지. 한데 순식간에 혈도까지 찍힐 줄이야. 아마도 그놈들 짓 같네.”

    “그놈들이라 하면 혹시 중원삼성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러하네. 하지만 이번에 나타난 놈들은 중원삼성보다 더한 놈들 같네.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중원삼성 그놈들이 살고 있다는 그 신선계에서 온 고수들 같네. 허공 속에서 수백 명이 넘는 고수들의 가공할 기운을 느꼈네.”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 많은 사람을 어떻게?”

    “단순히 바람에 날려간 것은 아니었네. 공간의 틈이 벌어져 그곳으로 사라졌다고나 할까. 아마도 거대한 진법의 소용돌이에 빠져 무사들이 신선계로 잡혀간 것 같네. 일종의 인질이 된 것이지.”

    불패마왕이 한탄했다.

    그 역시 중원삼성으로부터 회유를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중원삼성이 그를 회유하고 위협할 때 여러 번 경고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마교 무사 전부를 신선계로 데려갈 수 있다고.

    특수 진법을 활용하면 그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고 했다.

    당시에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한데 이번에 직접 보고 단번에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이쯤 되자 백자안 역시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불패마왕 다음으로 무공이 강한 임요요 역시 비슷한 증언을 했다.

    불패마왕보다 빨리 수혈을 찍혔지만, 그전까지 사람들이 벌어진 공간 사이로 사라지는 것을 봤다고 했다.

    “공간이동 진법이란 게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저도 있습니다.”

    부채도사의 말이었다.

    백자안이 침통해 했다.

    모두가 자신의 잘못처럼 느껴졌다.

    그때였다.

    그의 귓전에 한줄기 전음이 들렸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삼십만 무사들은 모두 안전하니까. 그들은 신선계 안전지대에서 편히 지낼 걸세. 천하를 평정한 후 그들을 찾으러 오게. 그 방법은 따로 나중에 가르쳐주겠네.」

    「중원삼성이오?」

    백자안이 전음이 들려온 방향으로 전음을 날렸다.

    위치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방향을 알 수 있게 되면 전음으로 답을 할 수는 있었다.

    「그러하네. 자네와 헤어지고 신선계로 돌아가려다가 아무래도 확실한 담보가 필요한 것 같아 신선계에 있던 동료 반선(半仙)들의 힘을 빌렸네. 물론 삼혈맹 수장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기 위한 의도도 컸네. 따지고 보면 자네는 우리 덕분에 중원무맹주가 되지 않았나?」

    「독고승이 주화입마된 것은 역시 당신들의 소행이었군.」

    「그러하네. 독고승 그자와 자네 두 사람 중 자네를 선택한 것이지. 그래서 쉽게 제거를 했네. 그나마 무공 폐쇄에 그치게 한 것은 우리 역시 미안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렇게 되자 삼혈맹과 삼의맹 두 세력 간에 힘의 균형이 생기고 말았네. 그래서 부득이 자네 힘을 약화시킨 것이네. 삼십만 무사를 우리가 데려가야 자네의 진정한 능력을 알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지. 아울러 우리 신선계의 힘이 얼마나 거대한지 증명도 하고 말이냐. 무슨 뜻인지 이제 알겠나?」

    「모르겠소. 알 생각도 없소. 미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소? 지금이라도 모습들 드러내시오. 이 자리에서 무공을 겨뤄 결판을 냅시다.」

    「점혈종에 두 번 당하지는 않을 자신이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아직 때가 아니네. 더는 간섭을 하지 않을 테니 남은 병력으로 삼혈맹을 제압하게. 그때 우리가 정식으로 자네를 초청하겠네. 그때가 되면 진정한 우리의 의도를 알 수 있을 것이네.」

    「아마도 신선계에 있는 모든 분이 그대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오. 그대들의 계획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오.」

    「어리석지는 않군. 사실 자네는 오래전부터 선택된 인물이네. 그럼 무운을 비네. 삼혈맹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을 걸세. 어쩌면 우리 말고도 직접 그들을 지원할 반선들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조심하게. 그럼.」

    전음이 끊겼다.

    백자안이 다시금 들려온 방향을 쳐다봤으나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혹시 신선계에서 보낸 전음인가.’

    백자안은 답답한 마음이 들었으나 곧바로 마음을 정리했다.

    신선계로 강제 이동된 무사들을 당장 데리고 올 방법은 없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인질로 잡고 있겠다는 중원삼성의 말이 거짓으로 들리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단 그자들의 의도대로 따라주는 것이 지금으로선 최선일 것 같구나. 여기서 계속 있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으니, 어서 낙양으로 돌아가야겠다. 늦지 않아야 할 텐데······.’

    백자안이 남아 있는 백여 명의 사람들에게 간단히 현 상황에 대해 설명을 했다.

    보안을 유지해야 할 내용도 있어 필수적인 사항만 이야기해 주었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놀라며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조금 전 불패마왕과 임요요의 증언도 있어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다만 문제는 백여 명밖에 남지 않은 병력이었다. 이 병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어 보였다.

    “이제 어떻게 할 건가요?”

    악미미의 물음이었다.

    백자안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낙양 총단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신선계로 끌려간 무사들은 제가 최대한 이른 시간 안에 구출할 것입니다. 일단은 총단 수호가 중요하니 서둘러 복귀하도록 하지요. 모두 저를 믿고 따라주십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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