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110화 (110/250)
  • [제36장] 천혈곡 1

    [제36장] 천혈곡

    낙양 북쪽에 자리한 천혈곡 입구에는 지금 수많은 무사가 운집해 있었다.

    바로 마교 무사 십만과 중원무맹 무사 십만, 그리고 동방무맹 무사 십만 모두 삼십만 무사들이었다.

    백자안의 계획대로 무사히 마교 무사들과 합류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백자안의 옆에는 지금 불패마왕과 임요요가 있었다.

    백자안은 동맹을 체결함에 앞서 자신의 신분을 두 사람에 밝혔다.

    바로 자신이 무정공자라는 것을.

    하기야 현 중원무맹주로서의 신분은 풍운검객이기 때문에 처음에 두 사람 모두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이전에 자신의 진짜 정체를 바로 알아차렸던 임요요가 이번에는 몰라봤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백자안의 무공 경지가 더욱 높아짐으로써 체취 같은 것도 숨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백자안은 가장 먼저 임요요의 반응을 봤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무정공자가 실은 백자안이란 사실을 알고 있어서 이제는 풍운검객이 백자안이란 사실까지 알게 된 것은 물론이었다.

    참고로 중원무맹과 동방무맹, 그리고 마교의 삼각동맹은 어제 전격적으로 체결되었다.

    어찌 된 일인지 천혈곡은 조용했다. 동맹 체결식을 거행할 시간이 충분했다.

    삼각동맹의 정식 이름은 삼의맹(三義盟).

    혈교, 사사천교, 대인자문의 삼혈맹에 대응한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었다.

    한편 중원무맹 십만 무사의 주력은 기존 풍운회 무사들과 화산파 무사들이었다.

    그 때문에 백소영과 백리설아, 백리관, 백풍, 매화검선, 악미미 등의 모습이 보였다.

    중원무맹 총단은 만박서생과 단목수련, 그리고 화산파를 제외한 나머지 구대문파와 개방, 오대세가, 은자림, 남해무림연합 등이 지키고 있었다.

    혈교와 달리 사사천교는 계속 북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든 총단을 공격할 수 있었다.

    물론 이는 마교의 공격 대상이 혈교에 한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사사천교 외에도 대인자문 이십만 무사들도 호시탐탐 총단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백자안으로서는 하루빨리 천혈곡을 공격한 후 낙양으로 복귀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하하하. 중원무맹과 동맹을 맺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소. 게다가 뜻하지 않게 동방무맹과도 동맹을 맺게 되다니 금상첨화라 할 것이오.”

    불패마왕이 껄껄 웃었다.

    “저도 동감입니다.”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동방무맹주 대행을 맡고 있는 부채도사 또한 웃으며 말했다.

    “우리 맹주님께서도 이번 삼각동맹을 체결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신다고 전서구를 보내오셨습니다. 그리고 사태의 위급성을 고려해 우리 동방무맹 무사들의 총지휘를 중원무맹주께 맡긴다고도 하셨지요.”

    “하하하, 그렇소? 좋소. 나 역시 총지휘권을 풍운 맹주가 갖는 것에 찬성하겠소. 지금부터 삼의맹의 통합맹주는 풍운검객 귀하요.”

    “감사합니다. 부족하지만 중임을 맡겠습니다.”

    백자안이 순순히 수락했다.

    이미 동방무맹은 자신이 맹주이니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마교는 솔직히 걱정되었다.

    전투 상황에 따라 삼의맹 무사들의 조직된 전체 행동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었다. 그때 각자 제멋대로 행동해 버리면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불패마왕이 그 사실을 간파하고 바로 양보한 것이었다.

    매화검선이 말했다.

    “맹주님. 천혈곡 안이 너무 조용합니다. 혈교를 지원하러 온 대인자문 무사 십만이 혈교 무사 이십만과 함께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요?”

    “글쎄요. 정탐 무사들 역시 파악을 못 했다고 하니, 아마도 천혈곡 전체에 어떤 기관이나 진법이 설치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사실 이곳 천혈곡까지 오는 도중 너무 평온했다.

    적들의 매복 공격도 없었고 아무 방해 없이 삼각동맹까지 체결한 것이다.

    최근 높은 무공으로 이름을 날린 대륙표국주 백리관이 말했다.

    “아무래도 소수로 구성된 선발대를 먼저 들여보내는 게 좋겠습니다. 전체 병력이 들어가는 것은 매우 위험할 듯합니다.”

    “나도 마찬가지 생각이오.”

    “우리 동방무맹 역시 똑같은 생각입니다.”

    불패마왕과 부채도사까지 동의하자, 백자안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어느 정도 인원이면 되겠습니까?”

    “백 명이면 좋겠습니다. 우리 화산파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매화검선의 말이었다.

    화산옥녀 악미미 역시 동조했다.

    “아버지와 제가 매화검수 백 명과 함께 정탐하겠어요.”

    “으음······.”

    백자안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필시 무서운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턱대고 선발대를 들여보내는 것은 불필요한 희생만 늘어나게 될 뿐이다.’

    백자안이 주위를 둘러봤다.

    계곡 바깥에는 별다른 위험이 느껴지지 않았다.

    문제는 계곡 안이었다.

    특히 계곡으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좁은 길이 문제였다.

    호리병처럼 좁아 보이는 길은 최소한 백장은 넘어 보였다. 양쪽에는 절벽이 있어 매복의 위험성이 컸다.

    “아무래도 제가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자후 소리가 들리면 모든 무사가 계곡 안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불패마왕께서 그 임무를 맡아주시겠습니까?”

    “하하하. 좋소. 하지만 풍운 맹주 혼자 들어가는 것은 너무 위험하오. 고수들을 데리고 가시오.”

    “아닙니다. 정탐만 하는 것이니 혼자 가는 것이 더 편합니다.”

    “안 돼요. 저도 함께하겠어요.”

    임요요가 나섰다.

    불패마왕이 흠칫했으나 말리지는 않았다.

    매화검선과 악미미 두 사람도 자원했다.

    “저와 제 딸아이도 함께하겠습니다. 짐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저도 들어가겠어요.”

    김지혜까지 나섰다.

    곧이어 백리관, 백록공자 등 십여 명이 자원하자, 백자안이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결론은 처음과 같았다.

    “마음은 감사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 혼자 들어가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위급 상황이 닥쳤을 때 다른 분들의 안전까지 신경 쓰게 되면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요. 통합맹주로서의 명입니다. 모두 이곳에서 제 명을 기다리십시오. 사자후가 어려운 상황이면 신호탄을 터뜨리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 * *

    천혈곡으로 들어가는 협로는 생각보다 길었다.

    삼의맹 무사 삼십만이 대기하고 있는 곳이 바다라면 이곳은 강의 한 줄기라고 할까.

    실질적인 계곡 입구라 할 수 있었다.

    백자안은 천천히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직 눈에 띄는 것이 없어 서둘지 않았다.

    오히려 기파 감지를 통해 주위에 기관이나 함정이 있는지 살폈다.

    만약 기관이 있다면 오히려 지금 파괴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아무래도 사자후보다는 신호탄을 쏘아 올려야겠군. 생각보다 협로가 길다.’

    백자안이 조금씩 속도를 높였다.

    스스슷.

    바로 그때였다.

    굉음과 함께 양옆 절벽 위에서 집채만 한 바위들이 굴러떨어졌다.

    ‘시작인가?’

    백자안이 신형을 솟구쳤다.

    수백 장이 넘는 높이였지만 백자안의 경공 속도는 매우 빨랐다.

    그러는 동안 바위는 길 위로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절벽 위로 올라온 백자안이 쏟아져 내리는 바위들 위를 다시 날아갔다.

    한데 예상과 달리 삼혈맹 무사들은 전혀 보이지 않는 게 아닌가.

    다만 어떤 기관이 발동되어 절벽 위에 있던 바위 수백 개가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백자안이 아래를 내려다보니 수백 개의 바위는 길을 완전히 막아버리고 있었다.

    대군이 그대로 진입했다면 막대한 타격을 입었을 가능성이 컸다. 한데 지금 보니 오히려 바위들이 거대한 장벽을 만든 셈이 되었다.

    상승고수들은 몰라도 일반 무사들의 계곡 진입이 매우 어려워진 것이다.

    ‘신호탄을 쏘아도 무사들이 진입하기 힘들겠구나. 그 점을 노린 것인가. 일단 좀 더 안으로 진입한다.’

    백자안이 팔대무공 중 절세경공인 지존비를 펼쳐 계곡 안으로 진입했다.

    이번에는 아예 협로 위로 날아가면서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들어갔을까.

    드디어 계곡 안이 보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십만 혈교 무사들이 본거지로 사용하던 곳이었다.

    게다가 대인자문 무사 십만 역시 이곳 천혈곡 안으로 진입한 것이 정탐무사들의 보고로 확인된 터였다.

    문제는 이후였다.

    천혈곡의 지형 특성상 출입구는 지금 백자안이 지나온 길 하나뿐으로 알려져 있었다.

    정탐 무사들이 입구만 지키고 있다가 삼의맹 무사들을 맞이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이럴 수가······.”

    백자안이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혈교 본거지였던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막사를 비롯하여 여러 시설이 있었다.

    하지만 황급히 철수했는지 남아 있는 막사는 몇 개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백자안이 계곡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갔다.

    출입로를 제외하고 사방이 절벽으로 막혀있는 분지 형태라 길은 없을 것으로 보였지만, 수풀이 우거져 있는 쪽으로 가보았다.

    “아!”

    백자안이 탄성을 터뜨렸다.

    절벽에 거대한 동굴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상출구였다.

    자연적인 것인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인지 모르지만 상황은 명백했다.

    삼의맹 무사들은 이곳까지 오게 한 후 자신들은 무사들을 빼돌려 다른 곳으로 간 것이다.

    ‘낙양 총단이 위험하다.’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낙양 총단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삼혈맹이 중원무맹 총단을 장악하는 데 성공하면 앞으로의 상황은 매우 어려워질 것이 자명했다.

    ‘중원삼성이 무적세가주와 달리 삼혈맹 수장들에게는 나름대로 공평한 기회를 준 것 같구나.’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그러면서 며칠 전 영웅대회 때 독고승이 주화입마된 광경을 떠올렸다.

    당시 그는 쓰러지면서 신선단이란 말을 내뱉었다.

    신선단은 중원삼성이 제공한 특수 단약.

    백자안은 지존령기로 지존풍을 만드는 과정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 신선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존령기는 전통적으로 사마의 기운을 몰아내는 특징이 있는 것으로, 신선단과 대립하는 측면이 있다고 본 것이었다.

    물론 이는 백자안과는 상관이 없는 문제였다.

    다만 독고승은 신선단 복용 때문에 충돌을 일으켰고 그 결과 무공 폐쇄까지 된 것이었다.

    ‘독고승이 그렇게 된 것은 아마도 중원삼성 그자들의 안배였을 것이다. 어쩌면 나를 돕는다는 명목이었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삼혈맹의 경우에는 그런 것을 전혀 기대할 수 없겠군. 중원삼성 그자들이 신선계로 일시 돌아간다는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구나.’

    백자안이 신형을 돌려 계곡을 빠져나가려 했다.

    어서 무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대군을 이끌고 낙양으로 복귀해야 하는 것이다.

    그때였다.

    동굴 안에서 괴성과 함께 거대한 괴수가 튀어나왔다.

    쿠워워.

    백자안이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곧이어 나타난 괴수는 엄청난 몸집의 구렁이였다.

    대가리 하나만 해도 집채만 했다.

    길이는 언뜻 봐도 수십 장이 넘었다.

    피부는 비늘과도 같은 붉은 껍질로 뒤덮여 있었다. 놀랍게도 움직일 때 별다른 소리가 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백자안이 눈치채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구렁이가 채찍과도 같이 긴 혓바닥을 내밀어 백자안의 몸을 휘감은 것은 그 직후였다.

    휘리리릭.

    너무나 빠른 속도라 백자안이 미처 피하지 못했다.

    쇠사슬처럼 백자안의 몸을 휘감은 혓바닥은 마치 포승줄과도 같았다.

    구렁이가 백자안을 자신의 입속으로 끌어당기자 그의 신형이 속절없이 끌려갔다.

    ‘제법이군.’

    백자안이 당황하지 않고 무형공력으로 지존검을 뽑아 구렁이의 입천장을 찔렀다.

    그 바람에 그의 신형이 멈췄다.

    대신 구렁이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백자안은 이에 멈추지 않고 구렁이 입안에서 지존금광을 발출했다.

    퍼퍼퍼퍽.

    마치 화약이 폭발하듯 구렁이 머리 부분이 터져버렸다.

    입에서 시작한 균열이 뇌까지 미친 것이었다.

    밖으로 나온 백자안은 지존검을 휘둘러 놈의 몸통을 다섯 가닥으로 잘라버렸다.

    쿵쿵.

    몇 차례 꿈틀대던 구렁이가 그대로 늘어지며 즉사했다.

    ‘지존검이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나는구나. 십 년 전 혈교와의 전쟁 때 혈교 측에서 기르던 괴수가 있다고 했었지. 구렁이 괴수라고 하더니 어쩌면 이놈이었을 지도 모르겠구나.’

    백자안이 동굴 안을 다시 바라봤다.

    비상출구일 가능성이 크지만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르는 공간이었다.

    굳이 들어가 수색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확인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혹시라도 혈교와 대인자문 무사들이 동굴 안에 숨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구렁이가 숨어 있다가 자신을 공격한 것이 수상했다.

    ‘지금으로선 우리를 유인하고 계곡을 몰래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래도 빠르게 확인하는 것이 좋겠구나. 차라리 총단을 공격하러 간 것이 아니고 이곳에 숨어 있었으면 좋겠군.’

    스스슷.

    백자안이 주저 없이 동굴 안으로 몸을 날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