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108화 (108/250)
  • [제35장] 중원삼성 2

    백자안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중원군자의 말이 이어졌다.

    그 내용은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오늘 비무는 독고승과 백자안 두 사람의 대결 한 번으로 끝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백자안을 비롯한 본선 진출자 여덟 명에게는 이미 전달되었지만, 아직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중원군자의 말에 군웅들이 웅성거렸다.

    은밀히 소문이 퍼지고 있긴 했다. 하지만 정말 한 번의 대결로 맹주를 뽑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사실 백자안을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고수들 역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회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대회 주최 측에 있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한 가닥 희망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군웅들의 마음을 자신들 편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그 때문일까.

    마침 그들 일곱 명은 단상 밑에 함께 모여 있었다.

    그들 중 대표 격인 사람 한 명이 단상 위로 올라왔다.

    “은자림에서 온 칠성자(七星者)라고 합니다. 대회 주최 측의 독단적인 결정에 우리 본선 진출자 일곱 명을 대표해 나왔습니다.”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 즉 칠성자의 등장에 군웅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칠성자는 전대 고수로 강호에 명성이 자자한 자였다.

    나이가 많아 죽은 줄 알고 있었다. 한데 알고 보니 이번 대회에 참가한 것이었다.

    참고로 은자림에서은 이번 대회에 대략 천여 명의 고수가 참석했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칠성자는 은자림에서 맹주로 밀기 위해 대회에 참석시킨 고수라 할 수 있었다.

    한데 대회 직전에 백자안 한 사람만 빼놓고 탈락을 시켰으니, 은자림 내부에서도 말이 많은 상황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참가자들을 탈락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주최 측에 재고를 요구합니다.”

    칠성자의 말에 단상 밑에 있던 여섯 명의 고수가 일제히 올라왔다.

    그들 중에는 누구나 다 아는 고수도 있었다. 은거고수도 있었다.

    군웅들이 동요한 것은 물론이었다.

    사실 깨끗하게 처음부터 합의추대를 했으면 큰 문제가 안 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기껏 예선까지 진행해놓고 그것도 한 사람만 꼭 집어 독고승과 대결을 벌이게 한 것 자체가 군웅들의 지지를 받기 어려웠다.

    우우우.

    군웅들이 야유가 이어지자, 중원군자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총관인 그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모두의 시선이 단상에 앉아 있는 독고승에 모였다.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소림방장 공무대사가 말했다.

    “아미타불. 그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전 총관께서 말씀한 바와 같습니다. 사실 우리 지휘부 고수들은 독고 가주를 합의 추대하려고 했었지요. 하지만 풍운회 측에서 반발해 예외적으로 한 사람 정도만 도전을 받기로 한 겁니다. 사실 독고 가주 입장에서는 본선 진출자 여덟 명이 모두 겨룬 후 그중 일등과 겨루는 것이 훨씬 유리합니다. 세 번의 대결을 거치고 올라오는 과정에서 도전자가 많이 지쳐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오해가 없었으면 합니다.”

    공무대사의 말에 군웅들이 다시 웅성거렸다.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독고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적세가주 독고승입니다. 제 입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차라리 풍운회주에게 맡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목을 받은 백자안이 단상 앞으로 나왔다.

    “영웅 여러분! 풍운회주 풍운검객입니다. 좋습니다. 다들 정당한 절차를 거치기를 원하시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실 저 개인적으로도 그러기를 원했습니다. 특히 풍운회주 자격으로 예선을 거치지 않고 올라왔기에 마음에 걸렸지요.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당금 상황은 위급합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맹주를 뽑기 위해 저 혼자 본선 진출자 일곱 분을 한꺼번에 상대하겠습니다.”

    와아아.

    짝짝짝.

    군웅들의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백자안의 배포에 다들 놀랐기 때문이었다.

    반면 칠성자를 비롯한 일곱 명의 고수들은 하나같이 불쾌한 표정이었다.

    칠성자가 잠시 나머지 고수들과 상의한 후 말했다.

    “좋습니다. 풍운회주께서 그렇게 하기로 원하시니 받아들이지요.”

    “감사합니다.”

    백자안이 경공을 펼쳐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칠성자를 비롯한 일곱 명의 고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백자안의 제의를 받아들인 것은 사실 의외였다.

    하지만 칠성자의 설득이 주효했다.

    백자안의 무공이 매우 높아 개별로 싸우면 승리가 힘들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한 것이었다.

    둥둥둥.

    “시작하십시오! 비무 방식은 비무대 밑으로 먼저 떨어지는 쪽이 패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중원군자의 말이 떨어지자, 칠성자 등 일곱 고수가 백자안을 부채꼴로 포위했다.

    백자안이 무적세가의 구룡객을 이긴 사실을 그들 모두 알고 있었다.

    칠성자를 제외하고는 개인적으로 구룡객을 이길 자신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비무대 위로 오른 순간부터 백자안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압박.

    무형의 기세가 옥죄어오고 있었다. 일곱 고수가 안색을 굳히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최대 위력의 합공을 처음부터 펼치기로 서로 마음이 통한 것 같았다.

    백자안은 천천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새벽에 있었던 중원삼성의 방문은 그에게 경각심을 갖게 했다.

    자신도 모르게 갖고 있었던 자만심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이 큰일을 할 수는 없다. 언제 어디서나 방심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백자안이 펼칠 무공은 바로 팔대무공 중 하나인 지존금광이었다.

    팔대무공 중 최고 수준의 무공이었다. 아직 초보적 단계이긴 하나, 어느 정도 펼칠 수준은 되었다.

    그가 선뜻 다수 대 일의 시합을 제의한 것도 내심 이 지존금광을 믿기 때문이었다.

    “하압!”

    칠성자가 기합과 함께 장풍을 날렸다.

    동시에 나머지 여섯 고수 역시 장풍을 날렸다.

    하나 같이 강력한 경력이었다.

    그야말로 거대한 해일과도 같았다.

    백자안이 지존금광을 펼친 것은 그 직후였다.

    그의 몸에서 금빛 기운이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 나왔다.

    지존금광은 상대의 공격 형태에 따라 그 방향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었다.

    꽈앙 하는 폭음과 함께 칠성자를 비롯한 일곱 고수가 뒤로 튕겨 나갔다.

    마치 달려오다가 거대한 투명막에 부딪힌 것처럼 한 차례 몸을 출렁거린 후 뒤로 밀려 나간 것이었다.

    “아니! 저럴 수가!”

    “아!”

    군웅들의 탄성이 끝나기도 전에 일곱 고수들이 비무대 밑으로 떨어졌다.

    백자안의 배려로 다행히 내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승부의 결과는 명백했다.

    칠성자가 말했다.

    “우리의 패배요. 비록 우리가 패했지만 풍운검객 귀하의 무공에 탄복하는 바이오. 우리는 노선이 불명한 독고 가주보다 귀하를 지지하겠소.”

    칠성자가 포권했다.

    나머지 고수들 역시 포권하며 뜻을 같이했다.

    그것은 일종의 경외심이었다.

    그들 모두 백자안이 배려를 해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릇 사람은 상대방과 실력이 비슷할 때 경쟁심이 높아지는 법이다.

    패배해도 방심해서 졌다고 생각하며 인정하는 것을 꺼린다.

    하지만 그 격차가 크다면 반응이 달라진다.

    백자안과의 무공 격차가 현격하다 못해 아예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그들이 진심으로 패배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과찬입니다. 제가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백자안이 포권으로 답례했다.

    와아아.

    짝짝짝.

    군웅들의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백자안의 실력을 직접 본 후 인기가 폭발한 것 같았다.

    반면 독고승의 안색은 굳어져 있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백자안의 무공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내 비록 신선단을 복용한 후 무공이 백배 이상 높아졌지만, 실제 대결에 있어 그 상승 정도가 반영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특히 고수들을 상대할 때는 내공보다 깨달음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실제 두 세배 정도의 위력 상승효과밖에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 이대로 싸우게 되면 내가 패배할 가능성이 조금 크다.’

    독고승이 생각에 잠겼다.

    빠른 결단이 필요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그의 아들 독고준이 급히 그에게 전음을 보냈다.

    「아버지. 굳이 모험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공무대사에게 전음을 보내 구대문파의 집단지도체제를 인정하십시오. 아버지는 형식적인 맹주 자리를 맡으면서 중요한 일은 구파회의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약속하면 될 겁니다. 물론 맹주 임기도 삼년으로 줄인다고 약속해야 할 겁니다. 그러면 반드시 아버지를 합의 추대할 겁니다.」

    「그들과 권력을 나누라는 뜻이냐?」

    「그건 아닙니다. 일단 맹주가 되신 후 하나하나 권한을 회수하시면 될 겁니다. 예를 들어 적당한 구실을 대어 구대문파 수장들을 교체한다면 자연스럽게 맹주 임기 또한 늘어날 겁니다. 아, 물론 그 과정에 어느 정도의 비열한 수법을 사용해야겠지만, 대의를 위해 어느 정도의 편법은 허용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네 말도 일리가 있구나.」

    독고승이 다시 한번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중원삼성의 제의를 받아들인 사실은 아직 아무도 몰랐다.

    그의 아들인 독고준조차 모르는 일이었다.

    몇 번이고 아들에게 그 일을 이야기하고 의논을 구하려 했지만, 항상 머리가 아파오며 왠지 모르게 주저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아직 말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중원삼성의 의도에 말리지 않기 위해 방법을 구하려 하면 그때 역시 머리가 아파오며 더는 생각이 진전되지 않았다.

    그 증상은 매우 심했다. 지금은 아예 중원삼성에 대한 반감을 일절 갖지 않으려 노력 중이었다.

    그들에 관한 생각은 천하무림을 일통한 후에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신선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스스로 만독불침이라 자부했기 때문에 독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중원삼성을 처음 만나 혈도를 제압당했을 때도 주저 없이 신선단을 복용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 결과도 아직은 좋았다.

    신선단은 내공을 백배 이상 강하게 해주었다. 다만 아직 그 흡수를 다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그의 생각은 한 가지로 귀결되고 있었다.

    중원삼성의 제의를 믿는 것.

    반면 그와 경쟁해야 할 다른 세력은 예외였다.

    특히 삼혈맹과 마교는 반드시 척결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기 위해 일단 중원무맹주가 되어야 했다.

    한데 막판에 백자안이 변수로 나타난 것이었다.

    ‘풍운검객 저자의 진짜 정체가 무엇일까. 일단은 준이의 조언대로 합의추대로 맹주가 되는 게 우선이겠구나.’

    독고승이 급히 공무대사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 내용은 조금 전 독고준이 말한 그대로였다.

    공무대사의 반응은 빨랐다.

    급히 구대문파 장문인들을 모아 의견 교환에 들어갔다.

    그 결과 이번에도 다시 화산파를 제외하고 모두 찬성을 했다.

    이미 맹의 장로원과 원로원 과반수를 장악한 그들이었다.

    빠르게 의견을 결집한 그들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만박서생과 단목수련, 천수노인 등이 급히 저지하려 했으나 이미 늦은 후였다.

    백자안은 영문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금세 분위기를 눈치챘다.

    휴식 시간을 핑계로 합의 추대가 재추진되는 것을 간파한 것이었다.

    얼마 후 공무대사가 군웅들을 향해 말했다.

    “영웅 여러분. 장로원과 원로원 연석회의를 통해 중대한 결정을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무적세가 독고승 가주를 맹주로 합의 추대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분열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대로 풍운검객과 독고 가주가 겨루게 되면 무림은 분열될 겁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결과로 인해 동방무맹 쪽에서 무사들을 철수시킨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사실 풍운회주와 독고 가주의 대결을 추진했던 것도 동방무맹 측의 압박 때문이었습니다. 아마도 동방무맹과 풍운회 두 곳이 서로 모종의 합의가 있었겠지요. 하지만 이는 두 맹 간의 상호 불간섭 원칙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이제 그 모든 불의를 바로잡겠습니다. 독고 가주님을 우리 맹주님으로 합의 추대함을 선언합니다.”

    둥둥둥.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식적인 맹주 취임식의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였다.

    “다음 절차로 맹주 신물인 지존령기(至尊令旗) 전달식이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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