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102화 (102/250)

[제33장] 풍운회 2

둥둥둥.

“지금부터 풍운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

이만 명가량의 무림인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풍운장원 대연무장에서 거행되는 이번 풍운대회에는 예상보다 많은 무림인이 모였다.

원래는 낙양무관연합회가 주최하는 모임으로만 알려졌으나 참석자격을 대폭 완화한 때문이었다.

천하 각지 무관 출신 무사들은 물론이고 뜻을 같이하는 무림인은 소속 문파를 가리지 않고 환영했다.

그 때문에 대회 당일 오늘 아침에 그 인원이 배로 늘어난 것이었다.

백자안은 낭인무사들이 서 있는 곳에 섞여 단상 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곳에 그의 가족들이 앉아 있었다.

백청, 유씨부인, 백소영, 백자룡 이렇게 네 사람이었다.

얼마 전 동방무맹주 신분으로 그들을 본 적이 있었지만, 지금 이렇게 다시 보니 역시 감개가 무량했다.

특히 그들은 지금 무림인으로서라기보다 자신을 대신해 앉아 있는 셈이었다.

백자안의 가족으로, 그리고 주인 된 도리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나 때문에 부모님께서 고생이 많으신 것 같구나. 아직 나에게 연락을 못 받아 근심이 크시겠지.’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사실 어젯밤 몰래 부모님을 만나 뵙고 인사를 드리려고도 했다.

물론 본 얼굴을 하고서 말이다.

하지만 고심 끝에 미루기로 했다.

신분을 드러내는 것은 쉬운 일이나 아직 그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일단 풍운회주가 되면 기회가 있을 것이다. 지금 내 신분을 드러내면 오히려 혼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차라리 그보다 실력으로 회주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후 적당한 때에 신분을 밝히는 게 순리일 터.’

백자안이 마음을 편히 하며 역시 단상 위에 있는 사람들을 살폈다.

단상 위에는 낯익은 사람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사람은 바로 영웅무관 관장 위지경덕과 김지혜, 철혈객이었다.

그중 김지혜가 영웅무관 사범으로 참석한 것이 눈에 띄었다.

안 그래도 동방무맹 총순찰이기도 한 그녀에게 여러 가지를 보고받아야 했기에 반가웠다.

하지만 그 역시 풍운회주가 된 이후의 문제였다.

그 밖에 단상 위에는 예상대로 각 무관의 대표들이 앉아 있었다.

그때였다.

한 무리가 다시 나타나 단상 위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한데 그들은 바로 백리설아, 백풍 등 대륙표국 사람들이 아닌가.

오랜만에 백리설아를 본 백자안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들어온 중년인 한 명을 쳐다봤다.

곧바로 곽휘의 소개가 있었다.

“대륙표국의 백리관(百里寬) 국주님과 소국주 백리설아 소저께서 오셨습니다.”

와아아.

군웅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 발족할 풍운회에 대륙표국이 전격적으로 합류하게 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백자안 역시 어제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통해 그 사실을 알고 기뻐했다.

대륙표국의 가세는 부족한 자금력을 보완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곧이어 단상 위 주요 인사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한 명씩 호명될 때마다 함성이 터져 나왔다.

특히 자신이 몸담은 무관의 관장 소개가 있을 때는 목이 터지라 소리를 질렀다.

군웅 중 상당수가 각 무관의 관원들이었다.

낙양무관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위지경덕이 단상 앞으로 나왔다.

“오늘 풍운대회를 통해 우리는 하나가 될 겁니다. 천하 각지의 무관을 비롯하여 오늘 모이신 여러 영웅 중 가입을 원하는 모든 분을 받아들여 한 단체를 만들려고 합니다. 물론 중원무맹 소속의 단체가 될 것이나,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때로는 우리 의사를 관철할 수 있는 의지를 보여줄 것입니다. 그 단체를 풍운회라 부르려 하는데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합니까?”

와아아.

짝짝짝.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둥둥둥.

“풍운회가 결성되었음을 선언합니다. 다음으로 회주를 선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전시 상황을 고려해 풍운회의 모든 조직은 선출되실 회주께서 결정하실 겁니다.”

와아아.

짝짝짝.

“회주 선출은 강호의 관례에 따라 비무로 결정하겠습니다. 누구든 좋습니다. 회주가 되고 싶은 분은 도전하실 수 있습니다.”

위지경덕의 말에 군웅들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자세한 설명이 아직 없었다.

그런 의문은 백자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일단 들어보고 꼭 자신이 나서야 할 상황이 아니면 풍운회주가 되는 것을 포기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대회를 마치고 곧바로 무림맹 총단으로 가서 영웅대회 예선을 치러야 할 것이었다.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한 사람이 단상 앞으로 나왔다.

그는 바로 백자안도 잘 알고 있는 영웅무관 총집사 영웅객이었다.

“오늘 대회 사회를 보게 된 영웅무관 총집사 영웅객입니다. 지금부터 회주님을 뽑는 비무 방식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다들 잘 알다시피 현 상황은 위급해 정상적인 비무 절차를 거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 모두 한 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바로 백자안 대협입니다. 백 대협이 오신다면 우리 모두 그분을 회주로 합의 추대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와아아.

“옳소!”

“당연합니다!”

군웅들의 열띤 호응이 이어졌다.

백자안의 얼굴이 조금 붉어질 정도였다.

뭔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부끄러움 같은 것이 느껴진 것이다.

영웅객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백 대협은 아직 오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살아계신다는 소식이 최근 있었고, 조만간 복귀하시리라는 것을 모두 믿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회주 자리를 비워둘 수는 없는지라 부득이 이 자리에서 회주를 뽑기로 했습니다. 그 방식은 바로 합의추대입니다. 아, 물론 관례에 의해 도전자를 세 분 정도 받을 생각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와아아.

짝짝짝.

군웅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내며 찬성했다.

무림맹주를 뽑는 것도 아니고 이미 어느 정도 논의된 회주를 뽑는 자리였다.

사실 백자안이 오늘 복귀하리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회주를 정해놓은 것 같았다.

다만 관례에 의해 도전자를 세 명 정도 받게 되는데, 만약 도전자가 이기면 그 역시 세 사람의 도전을 받아 이겨야 했다.

물론 도전자 세 명이 너무 적다는 반론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한정 도전자를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규칙에 반대하는 사람은 표면적으로는 없었다.

“좋습니다. 그럼 바로 낙양무관연합회 내부적으로 정한 예비 회주님을 발표하겠습니다. 그분은 바로 영웅무관장님입니다.”

와아아.

함성과 함께 지목을 받은 위지경덕이 앞으로 나왔다.

“위지경덕입니다. 다시 한번 인사드립니다. 먼저 확실히 밝힐 것이 있습니다. 제가 회주가 되더라도 그것은 임시적일 겁니다. 내일이라도 백 대협께서 돌아오시면 회주 자리를 넘길 것을 약속드립니다.”

와아아.

함성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위지경덕의 선언은 다들 내심 바라는 바였다.

하지만 규칙대로 도전자를 받긴 해야 했다.

“위지 관장님께 도전하실 분은 단상 위로 오르십시오. 소속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열을 살릴 때까지 올라오지 않으면 바로 위지 관장님이 회주가 되실 겁니다.”

둥둥.

숫자 대신 북소리가 울렸다.

북이 열 번 울리면 위지경덕이 풍운회주가 될 것이었다.

풍운회의 주된 목적은 이미 어느 정도 드러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삼혈맹과의 화친을 막겠다는 것이었다.

회주가 직접 독고승과 독대를 하고 그의 의사를 확인할 계획도 이미 세워두었다.

그 때문일까.

도전자는 나오지 않았다.

백자안 역시 위지경덕이 회주로 추대되자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공식적으로 복귀하면 회주 자리를 넘긴다고 선언까지 하지 않았는가.

굳이 지금 그가 나서야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세상의 일은 모두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인가.

열 번째 북소리가 울리기 직전.

한 사람이 단상 위로 올라왔다.

“도전하겠소.”

사십 대로 보이는 무사였다.

평범해 보이는 그는 낡은 검 한 자루를 허리에 차고 있었다.

“귀하는?”

“무적세가 수석호법 구룡객(九龍客)이라 하오.”

구룡객이 별호를 밝히자 군웅들이 매우 놀랐다.

구룡객이 누구던가.

무적세가주 독고승을 그림자처럼 따르며 호위를 하는 호위무사였다.

직책은 무적세가의 수석호법.

정의련에서도 수석호법 자리를 맡고 있었다. 그가 유명한 것은 독고승이 이전에 한 말 때문이었다.

<무적세가에 나를 능가하는 무공을 지닌 자가 있다. 그가 나를 늘 보호해주기 때문에 늘 안심이다.>

물론 독고승이 일부러 치켜세워준 느낌은 있었다. 그날 이후 구룡객의 명성은 엄청나게 올라갔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다만 이번에 무적세가를 중심으로 한 정의련 무사 이십만이 대거 냑양으로 들어오면서 그 역시 도착했을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귀하는 무적세가 소속인데 어찌 회주가 되려는 것이오?”

“회주가 되는 데 소속은 상관이 없다고 하지 않았소?”

“그야 그렇지만······.”

영웅객이 안색을 굳혔다.

이미 뱉은 말이니 소속 문파 문제로 구룡객을 쫓아낼 수는 없었다.

영웅객이 위지경덕을 쳐다봤다.

위지경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룡객의 명성이 비록 높지만 따지고 보면 일개 호위무사에 불과했다.

위지경덕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최근 심득을 얻어 무공이 급상승한 바 있었다.

낙양무관의 여러 관장 중에서 그가 회주로 합의 추대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좋소. 두 분은 비무대 위로 오르십시오. 북이 세 번 울린 후 바로 시작하면 됩니다. 어느 분이더라도 먼저 비무대 밑으로 떨어지면 패배한 것으로 간주할 겁니다.”

“알겠소.”

구룡객이 미소를 한번 지은 후 미리 마련된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위지경덕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천히 비무대 위로 오른 그는 여유가 있었다.

와아아.

군웅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삼혈맹에 의해 사면초가 상태에 빠진 위급 상황도 잊은 듯 다들 대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둥둥둥.

북소리가 울리며 비무가 시작되었다.

특별히 제한이 없었기에 상황에 따라 생사결도 가능한 상황.

보검을 빼들은 위지경덕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것은 바로 구룡객에게 느껴지는 무형의 기세 때문이었다.

위지경덕이 펼칠 검법은 영웅검법(英雄劍法).

태극문 절기를 토대로 직접 창안한 상승검법이었다.

사실 그의 무공 실력은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최근 수년간 더욱 그랬다.

그 때문에 그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이 많았다.

만약 그가 구룡객을 꺾게 된다면 풍운회의 명성 또한 높아질 것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독고승과의 한판 승부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었다.

가능성은 적지만 위지경덕이 직접 중원무맹주가 되면 삼혈맹과의 화친을 막을 수 있어 더욱 기대가 컸다.

“흥! 솔직히 말해보시오. 무적세가주 독고승이 시켜서 온 것이오?”

위지경덕이 물었다.

무형의 기세 때문에 압박을 받고 있어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구룡객은 태연했다.

“마음대로 생각해도 좋소. 다만 분명한 것은 모레 선출될 새 맹주님의 명에 모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오. 한데 그대들은 벌써 독립적으로 움직일 생각을 하고 있으니 어찌 단합이 되겠소?”

“하하하. 독고 가주가 보낸 게 확실하구려. 정말 소문대로 독고 가주가 맹주가 되어 삼혈맹과 화친을 맺으려는 것이오? 말이 화친이지 놈들에게 굴복하려는 것이 아니오?”

“나는 모르오. 다만 그대들의 일탈을 막기 위해 온 것뿐이오. 무림의 힘이 하나가 되어야 이 난국을 타개해나갈 수 있지 않겠소?”

“말은 그럴듯하오. 독고 가주가 정녕 삼혈맹과 화친을 맺으려는 생각이 없다면 그럴 의사가 없다고 지금이라도 선언하면 되지 않겠소?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내 뜻을 전하시오.”

“위지경덕. 귀하는 생각보다 약하구려. 내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으니까 시간을 벌려는 것이 아니오?”

구룡객이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순간, 검강이 기둥처럼 뻗어 나왔다.

위지경덕이 흠칫하며 역시 검강으로 응수했다.

바로 영웅검법이었다.

검강의 대결.

사실 검강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은 극히 어려웠다.

하지만 검강의 위력 역시 천차만별이었다.

일단 부딪히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승부가 나게 되어있었다.

꽈앙.

폭음과 함께 한 사람이 비무대 밑으로 떨어졌다.

한데 그는 바로 위지경덕이 아닌가.

“으으······.”

김지혜가 급히 가서 그를 부축했으나, 이미 적지 않는 내상을 입은 후였다.

영웅객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구룡객의 승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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