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101화 (101/250)

[제33장] 풍운회 1

[제33장] 풍운회

백자안이 영웅무관에 도착했을 때는 정오 무렵이었다.

어떤 상황인지 몰라 아직 죽립을 쓰고 있는 그였다.

하지만 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웅무관의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문에는 영웅무관의 임시폐관을 알리는 공고문이 붙어 있었다.

그 내용은 다름 아니라 다가올 전쟁에 힘을 보태기 위해 당분간 무관의 문을 닫고 본거지를 풍운장원으로 옮긴다는 내용이었다.

아울러 낙양무관연합회 소속 다른 무관들도 관원들을 선발해 풍운장원에 집결시키고 있으니 뜻있는 자는 모두 그곳으로 오라는 내용도 있었다.

싸울 수 있는 사람은 굳이 무관 소속이 아니라도 누구나 환영한다는 말도 적혀 있었다.

“으음······.”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혈교와의 전쟁 때가 문득 떠올랐다.

그 당시도 낙양성 내 무관들이 힘을 합쳐 전쟁에 참여했었다.

당시 무관의 무사들은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했다. 이는 구속을 싫어하는 무관 무사들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었다.

다시 말해 무림맹의 일원이 아니라 자발적인 의병의 성격이었다.

혈교와의 전쟁 후에도 그 조직은 이어져 오고 있었다.

낙양 무관에 소속된 관원들은 그 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특히 선배 관원들이 무척 많았다.

그 때문에 기치를 한번 세우면 모여들 무사들이 매우 많았다.

특히 무림맹과 약간 거리를 두고 자유롭게 활동하고 싶어 하는 무림인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낙양무관연합회 차원에서 힘을 집결시키고 있구나. 한데 하필이면 풍운장원이라니. 부모님과 소영이, 자룡이가 고생이 많겠구나.’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풍운장원은 자신의 집이었다.

규모가 매우 커서 수만 명의 무사도 능히 수용이 가능했다.

하지만 풍운장원이 거점이 된 것은 규모보다는 백자안의 명성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백자안이 살아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던지라 이런 위급한 시기에 반드시 나타나리라는 기대가 컸다.

그런 의미에서 다들 백자안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이제 본 모습으로 활동해야 한단 말인가.’

백자안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원래는 무정공자로 행세하며 상황을 살필 생각이었다.

하지만 풍운장원에 모인 사람들은 백자안을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 일단 무정공자로 움직이는 것은 보류하는 게 좋겠군. 무관연합회 성격상 한 무관이 너무 특출하게 돋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힘을 모으기 위해서는 중립적인 인사이거나 차라리 무소속이 낫지. 으음, 그럼 면에서 본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도 문제가 있겠군. 따지고 보면 나 역시 영웅무관 출신이니까.’

백자안이 고민 끝에 완전히 새로운 얼굴로 역용했다.

사실 무정공자로 계속 활동하는 것에는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다.

입단속을 시켰으나 마교 무사들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노출한 때문이었다.

마교와 중원무맹 사이 동맹이 체결되기 전까지 그 사실이 알려지면 행보에 제약이 따를 가능성이 컸다.

반면 백자안으로 다시 복귀하는 것은 고려할만했다. 하지만 그 역시 영웅무관 출신이라는 제약이 있었기에 일단 유보하는 것으로 결정한 것이다.

‘일정 시기가 되면 내 여러 신분을 밝힐 때가 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완전히 다른 신분으로 활동하는 것이 잡음이 없을 것이다. 똑같은 의미에서 영웅대회가 끝날 때까지는 동방무맹 측과도 연락을 잠시 보류하는 게 좋겠군. 물론 위기 상황이 되면 직접 나서야겠지만 아직은 모든 것이 가변적인 상황이니까. 특히 중원삼성이라는 그자들의 진정한 의도를 하루빨리 파악해야 한다.’

백자안이 마음을 정리한 후 발길을 돌려 풍운장원으로 향했다.

* * *

풍운장원 앞은 지금 많은 무림인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장원 안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십대 중반의 평범한 사내로 역용한 백자안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원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간단한 신원 검사가 필요했다.

하지만 무림맹 총단도 아니고 비상시국이라 방문록에 이름이나 별호 정도만 기록하면 되었다.

신원 검사의 주된 목적이 간자 색출이 아니었다. 그보다 명성 높은 고수들을 선별해 접대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고수들이 계속 몰려들고 있기 때문일까.

이미 풍운장원에 모인 군웅들의 모임은 낙양무관연합회 성격을 뛰어넘고 있었다.

낙양뿐만 아니라 천하 각지의 무관들에서 온 무사들도 상당했다.

중도 성향 무사들도 많았다.

특히 오래도록 은거한 고수들도 예상보다 훨씬 많이 모이고 있었다.

물론 그중 상당수는 영웅대회를 앞두고 머물 곳을 찾다가 소식을 듣고 이곳 풍운장원으로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백자안이 곧 장원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도 무척 컸다.

그 이면에는 무적세가주 독고승의 맹주 합의추대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 외 여러 가지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런 이유로 인해 오히려 풍운장원은 화제의 중심지가 되고 있었다.

‘곽 선생님이군.’

백자안이 대문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보았다.

바로 섬전검객 곽휘였다.

고향에서부터 백자안의 가족들과 함께 이곳 풍운장원으로 온 그는 지금 장원의 총관을 맡고 있었다.

그동안 고된 수련을 통해 무공이 더욱 높아졌는지 그 기도가 범상치 않았다.

‘기연을 만나셨는가. 볼 때마다 무공이 높아지는군.’

백자안이 미소를 지었다.

가족을 지켜주는 최일선에 선 곽휘였다.

어느덧 백자안의 차례가 되자, 곽휘가 물었다.

“어디서 온 누구시오?”

“무명소졸입니다.”

백자안이 방명록에 별호를 적었다.

<풍운검객(風雲劍客)>

풍운장원의 이름을 본 따 즉석에서 지은 별호였다.

“낙양 무관과는 관계없는 낭인무사인데 출입이 가능하겠습니까?”

“물론이오. 무림의 평화를 지키는데 어찌 소속이 중요하겠소? 어서 들어가시오.”

곽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보기에 백자안에게는 전혀 사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는 무명심법 때문이었다.

천마대장경 등 천마의 무공을 연마했지만 무명심법 때문에 그 기세는 조화로웠고 안정감이 있었다.

한편 그의 허리에는 지존검 한 자루만 걸려 있었다.

천마검은 무영신투술을 펼쳐 피부 속에 감춰두었다.

무자천서, 천상여의주와 달리 천마검은 부피도 크고 날카로워 가능할지 처음에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아무 문제도 없었다.

어떤 물건이든지 그 부피를 줄여 피부밑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었다.

‘하기야 산더미 같은 황금이나 보물도 무영신투술로 보관할 수 있다고 했으니, 생각보다 유용하구나.’

풍운장원에 마련된 숙소로 향하며 백자안이 미소를 지었다.

일만이 넘는 무림인들이 대거 모여들고 있어 숙소도 모자라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인원이 많은 무관 무사들이 전각 옆 공터에 막사를 쳐 그곳에서 지내는 수고를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휘소는 풍운각에 있었으며 낙양무관연합회 지휘부 고수들을 비롯해 유명 인사들이 거주했다.

백자안이 숙소로 배정받은 전각은 청심각(淸心閣)으로 낭인무사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다만 한 방에 열 명 정도 지내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영웅대회 때문에 지금 성내 객잔이 포화상태로 방을 구하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백자안이 안내무사의 인도에 따라 청심각 한 방에 들어가자, 열 명가량의 사내들이 떠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현 시국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백자안이 들어오자 대부분 인상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방이 비좁아 불편한 상태였다.

물론 겉으로 불평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더는 사람이 들어오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무너진 표정이었다.

이를 느꼈기 때문일까.

안내무사가 말했다.

“이분이 마지막이니 불편하시더라도 조금만 양해해주십시오. 내일 풍운대회(風雲大會)가 열리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될 겁니다.”

‘풍운대회?’

백자안이 의아해하며 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정확하게 열 명의 사내들이 백자안을 한번 쳐다본 후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따로 통성명은 하지 않는 게 불문율인 것 같았다.

백자안으로서도 그게 편했기 때문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낭인무사들의 떠드는 소리가 시끄러웠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내용이라 해봤자 뻔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실제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누가 중원무맹의 새맹주가 될 것인가였다.

중원무맹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바 있던 백자안은 무심히 들으며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당장 급한 것은 내일이 마지막이라는 영웅대회 예선 참가 여부였다.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이곳 풍운장원으로 돌아왔지만 사실 이렇게 방에서 기다릴 여유는 없었다.

‘풍운대회라고 했던가. 내일 아침 대회가 열린다고 하니까 대회에 참가한 후 여의치 않으면 중원무맹 총단으로 가서 예선에 참여하는 게 좋겠구나. 오늘은 이미 해가 저물었으니 운공을 하며 쉬는 게 좋겠다.’

백자안이 가부좌를 틀고 묵상에 잠겼다.

그러는 동안 낭인무사들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점차 그 내용 중에도 들을만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백자안의 청력은 매우 좋아 그중 쓸 만한 이야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중 가장 관심을 끈 것은 바로 내일 있을 풍운대회였다.

단순히 낙양무관연합회 주최 모임인 줄 알았다.

백자안으로서는 가족을 비롯해 친분이 있는 영웅무관 사람들을 만나보고 앞으로의 행보를 결정할 생각이었다.

한데 가만히 들어보니 보통 대회가 아니었다.

영웅대회처럼 비무를 벌여 수장을 뽑는다고 했다. 그렇게 뽑힌 수장에게는 영웅대회 결선에 바로 나갈 수 있는 특전이 부여된다고 했다.

바로 그 점이 백자안의 관심을 끈 것이었다.

결선에 바로 나갈 수 있다면 굳이 예선에 참여할 필요가 없었다.

마침 백자안 옆에 대한 한 명이 자리를 잡자 그에게 슬쩍 물었다.

“풍운대회에서 우승하면 정말 영웅대회 결선에 나갈 수 있는 것이오?”

“그렇소. 내일 우승자는 풍운회(風雲會)의 회주 자격으로 팔 인이 겨루는 결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되오. 거기서 일등을 하면 최종적으로 맹주 자리를 두고 무적세가주와 겨루게 되는 것이오. 이미 맹의 지휘부와 협의한 결과라고 하니 거짓은 아닐 것이오.”

“풍운회라 함은?”

“하하하. 아직도 모르고 있었소? 풍운회는 낙양무관연합회를 주축으로 결성될 영웅들의 모임이오. 아시다시피 무림맹은 구파일방와 오대세가 등 기득권 세력의 힘이 막강하오. 그래서 무관 제자들이나 우리 같은 낭인무사 등 중립성향 무인들이 주축이 된 모임을 결성하게 된 것이오.”

“으음, 그렇구려. 하지만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무사들이 이번에 사사천교와의 싸움에서 대패해 그 힘이 약화하였다던데······.”

“그렇기는 하지만 여전히 맹의 주축은 그들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소. 그 때문에 우리가 맹의 일원으로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자체 조직을 갖춰 적들을 상대하자는 계획이오.”

“새 맹주로 강력하게 거론되는 무적세가주 쪽은 어떻소? 풍운회가 그를 맹주로 합의 추대할 수도 있지 않겠소?”

“그것은 모르는 소리요. 무적세가주가 수장으로 있는 정의련은 사실 매우 배타적이오. 일단 정의련에 가입하면 무적세가주의 명을 들어야 하는데, 항간의 소문에 의하면 그가 맹주가 되면 삼혈맹과 화친할 계획이라고 하오. 그 때문에 놈들이 공격을 가해오지 않고 있다고도 전해지오.”

“그게 정말이오?”

“그렇소이다. 원래는 헛소문으로 생각했는데, 이번에 마교가 혈맹에서 탈퇴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고 하오. 하지만 어찌 놈들과 화친을 맺을 수 있겠소? 차라리 소문대로 마교와 동맹을 맺으면 맺었지 믿을 수 없는 혈교나 사사천교, 그리고 대인자문과는 양립이 불가능하오.”

대한이 언성을 조금 높였다.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정이 있었구려. 하지만 영웅대회 참가 전에 모든 세력이 중원무맹에 가입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소? 그 부분은 해결이 되었소?”

“그렇소. 만박서생이 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전해지오. 아마도 영웅대회가 시작되면 그 전에 정의련의 해산이 선언될 것이오. 그 뜻은 정의련 역시 무림맹의 일원이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겠소?”

“낙양무관연합회 역시 마찬가지구려.”

“그렇소. 총명하구려. 비단 낙양무관연합회만이 아니라 천하 모든 무관 제자들 역시 이번에 무림맹에 가입하기로 했소. 그 대가로 풍운회주가 결선에 자동 진출할 권한을 얻게 된 것이오.”

“풍운회주가 무림맹주가 될 수 있겠소? 아니 독고승과 싸워 이길 수 있겠소? 물론 아직 누가 풍운회주가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오.”

“물론 어려울 것이오. 하지만 독고승이 맹주가 된 후 실제 화친을 맺으면 그때 회주가 중심이 되어 탈퇴할 수 있지 않겠소? 그때를 대비해 내일 풍운회를 결성하고 그 회주까지 뽑는 것이오. 만약 내일 백 대협이 돌아오셔서 회주가 된다면 정말로 무림맹주가 되실 수도 있으니, 그 점에 대해서 다들 기대가 크오.”

“내일 대회에 백자안 공자가 돌아올 가능성이 큰 것이오?”

“그렇소. 그리고 앞으로는 백 공자보다는 백 대협으로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오.”

“알겠소.”

백자안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에 대한 평가가 이전부터 조금 과대한 느낌이 있었는데, 그 점은 여전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능력 또한 계속 발전해온 것 또한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내일 내가 풍운회주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해야 무적세가주의 진의를 더 자세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