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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100화 (100/250)
  • [제32장] 마혈존자 4

    “낙양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인가?”

    “네. 영웅대회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교주께서는 계획대로 혈교를 공격해주십시오.”

    “그건 걱정하지 말게.”

    불패마왕이 미소를 지었다.

    백자안 역시 미소를 지었다.

    마혈존자와 그 추종세력을 제거한 후 지난 며칠간은 교를 재정비하는 시간이었다.

    의외로 마교 일반무사 중에도 마혈존자의 핵심 수하들이 많았다. 대부분 조장급 무사들이었다.

    그들을 색출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무사히 가려낼 수 있었다.

    천여 명에 달하는 그들은 모두 무공 폐쇄를 당했다.

    원래는 불패마왕이 모두 죽이려 했으나, 백자안의 권유를 받아들여 목숨만은 살려준 것이었다.

    문제는 앞으로의 계획이었다.

    이미 무림에는 불패마왕이 다시 권력을 장악한 사실이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입단속을 통해 백자안의 존재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무정공자로 행세를 하고 있었지만, 그 존재조차 극비에 부쳐진 것이었다.

    백자안이 다시 낙양으로 복귀해 활동하는데 제약이 될 우려가 있어 이루어진 조치였다.

    “중원삼성 쪽 움직임이 수상합니다. 원래 제가 이곳에 계속 머물고 있었던 것도 그들 때문이었지요. 아무래도 당장은 중원무맹이 주최하는 영웅대회 쪽에 주력하는 것 같습니다.”

    백자안의 말에 임요요가 물었다.

    “놈들이 중원무맹주 자리를 노린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렇소. 임 소저께서는 총명하시군요.”

    “과찬이세요.”

    임요요가 얼굴을 조금 붉혔다.

    이전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불패마왕마저 적응이 안 되는 모습이었다.

    “요요야. 이제 정말 현숙한 여자가 되었구나. 무정공자에게 일부러 잘 보이려고 그러는 것이냐?”

    “그게 아니에요. 아버지. 저 원래 이런 성격이었어요. 그동안 일부러 괴이하게 행동했는데, 이제 본래 성격대로 살 거예요.”

    “네 말이 맞기를 바란다. 흠흠.”

    “아버지!”

    임요요가 눈을 흘겼다.

    “하하하. 아니다. 네 마음대로 해라.”

    “정말이에요?”

    “그렇다.”

    “그럼 저 무정공자님을 따라 낙양으로 들어갈래요. 중원삼성 그놈들이 음모를 꾸민다면 무정 사범님 혼자서 적하기는 힘들 거예요.”

    “그건 안 된다. 너는 나를 도와 혈교를 공격해야 한다. 게다가 중원삼성 그놈들이 만약 이곳으로 쳐들어오면 나 혼자서는 역부족이다.”

    “그래도······.”

    임요요가 아쉬워했다.

    하지만 불패마왕의 말에 일리가 있었기 때문에 더는 고집을 피우지 못했다.

    “교주님 말씀대로 임 소저는 이곳에 있는 곳이 좋을 것이오. 전황에 따라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다시 찾아오겠소.”

    “네. 알겠어요. 몸조심하세요.”

    임요요가 미소를 지었다.

    백자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교의 재정비는 이제 완료되었고 안정적이었기에 곧바로 떠나려는 것이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나중에 낙양에서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알겠네. 혈교 놈들을 박살 낸 후 낙양으로 가서 중원무맹 측과 힘을 합치겠네. 동맹을 맺는 문제에 대해 자네 도움이 필요할 것이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혈교를 공격하게 되면 교주님의 진심을 알고 의심하지 않을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네. 하지만 선대로부터 맺힌 원한이 워낙 많아 쉽지는 않을 것이네. 동맹 체결을 위해서라도 새롭게 뽑힐 중원무맹주의 성향이 중요하네.”

    “무적세가주은 어떻습니까? 지금 보면 그분이 새 맹주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큰 것 같은데······.”

    “독고승 그자는 본교와 동맹을 맺으려 하지 않을 것이네. 그 점이 우려스럽네. 그리고 우리가 선공을 가하지는 않겠지만, 중원무맹 측에서 먼저 공격해오면 우리 역시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네. 물론 그렇다고 혈교나 사사천교, 대인자문, 중원삼성 측과 동맹을 맺는 경우는 없을 것이네.”

    “알겠습니다.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요. 아무쪼록 제가 가서 잘 살펴보겠습니다.”

    “나는 차라리 자네가 중원무맹주가 되었으면 하네.”

    “제가 말입니까?”

    백자안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제게 그럴만한 능력이 없지만, 의사가 있어도 따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어 어려울 듯합니다.”

    “비상한 상황이네. 직책이야 여러 개 맡아도 상관이 없지. 지금은 대국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네. 하지만 강요는 할 수 없겠지. 그럼 잘 가게. 계속 연락하세.”

    “네. 그럼.”

    백자안이 지휘막사를 떠났다.

    불패마왕과 임요요가 천지곡 입구까지 나와 배웅을 해주었다.

    임요요가 아쉬워했으나, 백자안은 미소를 지은 후 준비된 말을 타고 낙양으로 향했다.

    두두두.

    * * *

    영웅대회가 사흘 앞으로 다가온 낙양의 거리는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천하 각지에서 몰려든 수십만 군웅들이 바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사실 이번 영웅대회는 이전의 대회들과는 성격이 매우 달랐다.

    단순히 맹주를 뽑는 축제 성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큰 싸움을 앞두고 장수를 뽑는 그런 성격이 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중원무맹은 사면초가였다.

    낙양을 포위하고 있는 세력들의 포위망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물론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낙양 인근 서쪽 천지곡에서 주둔을 하고 있던 마교가 돌연 사혈맹에서 탈퇴한 것이었다.

    그 이면에는 불패마왕의 교주 복귀 소식이 있었다.

    하지만 자세한 소식은 알 수 없어 불안감은 여전했다.

    혹자는 마교가 천하를 분할통치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독립적으로 행동하려 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불패마왕의 성격상 다른 세력과 동맹을 맺는 것을 싫어할 것이기에, 단독으로 중원무맹을 공격하려 한다는 설명이었다.

    물론 반박도 만만치 않았다.

    불패마왕이 자신을 가둔 중원삼성에 대한 복수를 선언했고 앞으로의 행보가 중원무맹에게 불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하지만 그런 전망과 분석을 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했다.

    사혈맹에서 마교가 빠져, 이제는 혈교, 사사천교, 대인자문으로 구성된 삼혈맹이 되었지만 그 세력은 무시 못 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중원무맹에게는 우군이 부족했다.

    동방무맹 총단에서 추가로 파견한 이십만 무사들이 돌연 동방으로 돌아간 것이 그 한 예였다.

    전하는 바로는 이십만 동방무사들이 배를 타고 중원으로 오는 도중 본토에 대한 공격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그 후 즉각 복귀했다는 내용이었다.

    ‘으음, 대인자문 놈들이 숨은 병력으로 동방무맹을 공격할 줄은 몰랐구나. 그렇다면 놈들의 병력이 삼십만 아니라 오십만이란 말인가.’

    죽립을 쓴 사내 한 명이 막 낙양성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바로 백자안이었다.

    서둘러 낙양으로 돌아온 그는 대인자문의 동방 무림 총공격 사실을 듣고 매우 놀랐다.

    대인자문의 삼십만 무사들이 중원에 있었기 때문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다행히 지금은 부산성에서 대치 중으로 전면전으로 확대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추가 병력을 통해 중원에 있는 대인자문 무사들을 상대하려는 그의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마교를 우군으로 돌리는 데 성공해서 한시름 놓을 줄 알았는데, 상황이 오히려 더 불리해졌구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무사들이 주축이 된 삼만 명이 사사천교에게 대패한 것도 뼈아픈 일이다. 기선제압에 실패했으니 그 후유증이 클 것이다.’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무사들이 만박서생의 명을 어기고 단독으로 싸움을 벌인 것은 사흘 전이었다.

    차기 맹주 선출을 앞두고 지지를 받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

    물론 사망자는 본산 제자들보다 속가 제자들이 많았지만, 그 피해는 막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중원무맹의 핵심 문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집단 지도체제를 주장하며 독자적 출병을 한 셈이었다. 물론 승리를 했다면 좋았겠지만, 대패를 한 게 문제였다.

    무엇보다 사사천교가 보유한 삼만 생강시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천하에서 낙양으로 모여든 군웅들의 수는 오십만에 달해 아직 병력은 부족하지 않았다.

    다만 맹주 자리를 두고 세력 간 다툼이 많아 잘못하면 내분으로 맹이 해체될 지경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무적세가주 독고승의 합의 추대 주장이었다.

    이번에 전격적으로 중원무맹에 합류한 정의련 무사들이 비무 없이 독고승을 합의 추대할 것을 요구한 것이었다.

    하지만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여전히 반대였다.

    사사천교와의 싸움에서 대패한 이후 집단지도체제 주장은 접었지만, 합의 추대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맹주가 되기 위해 천하 각지에서 몰려든 고수들 역시 합의추대를 반대했다.

    독고승은 합의추대가 여의치 않자, 어제 전격적으로 비무 방식을 수용한다고 선언했다.

    다만 원래대로 자신은 결승에서 단 한 번의 비무만 벌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는 곧바로 만박서생 등 지휘부 고수들에 의해 수용되었다. 지금은 막바지 대회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다행히 삼혈맹은 오늘 아침 특사를 보내 영웅대회에서 중원무맹주가 선출될 때까지 휴전을 제의했다.

    이유는 따로 밝히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마교의 변화 때문으로 추측했다.

    중원무맹 측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 때문에 안정적인 대회 운영이 어느 정도 보장되고 있어 그 열기가 더욱 뜨거워지고 있었다.

    낙양 포위 문제도 마교 쪽에서 포위망을 실질적으로 풀어 숨통이 트인 것도 한몫했다.

    남쪽의 사사천교, 북쪽의 혈교, 그리고 동쪽의 대인자문을 피해 많은 무림인이 오늘도 서쪽 길을 통해 낙양으로 오고 있었다.

    ‘일단 식사부터 해야겠구나.’

    백자안이 인근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객잔 안에는 무림인들로 가득했다.

    예상대로 다들 비장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객잔의 특성상 현 무림 정세에 대한 토론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백자안은 마침 자리가 난 한 구석 탁자에 앉았다.

    합석을 했지만, 탁자에 있던 사람들은 한 노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는 비파노인이었다. 손녀인 비파소녀와 함께 강호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었다.

    “오늘도 정말 사람이 많이 모였군요. 뭐든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십시오.”

    “불패마왕이 다시 교주가 되었다는 게 사실이오?”

    “네. 벌써 제법 시간이 흘렀지요. 마혈존자와 그 추종세력을 제거한 그는 천지곡에 마교 십만 무사와 함께 계속 주둔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정말 사혈맹에서 탈퇴한 것이오?”

    “그러합니다. 탈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변화라 함은?”

    “그것은 모르겠습니다. 다만 중원무맹과 동맹을 맺으려 한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아!”

    “동맹!”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즉시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전 같았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치부하며 오히려 화를 냈을 사람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동방무맹 이십만 추가 지원 병력이 되돌아갔다는 소식이 전해진 터라 기대감이 엿보였다.

    “하기야 불패마왕이 개인적으로 우리 정파와 척을 진 것은 없지. 나는 마교와 동맹을 맺는 것에 찬성하네.”

    “나도 마찬가지네. 그들이 합류하면 큰 힘이 될 것이야.”

    사람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찬성 의사를 표시했다.

    백자안은 여론이 나쁘지 않음을 깨닫고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일단은 사흘 후 있을 영웅대회가 문제였다.

    그리고 부채도사와 김지혜를 만나 현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그들을 만날 생각이 없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어쩌면 불패마왕의 권유대로 내가 중원무맹주가 되어야 할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 차라리 지금처럼 무정공자로 행세하는 것이 나을 수 있겠구나. 나중에는 모르겠지만 동방무맹주인 내가 중원무맹주까지 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질 사람도 있을 테니까.’

    백자안이 곰곰이 생각에 잠기며 식사를 했다.

    비파노인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손님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말에 집중했다.

    백자안 역시 세심히 들었다.

    그 결과 중원무맹 내부 상황이 생각보다 복잡한 것을 알았다.

    ‘일단 독고승의 생각을 정확하게 아는 게 급선무일 것 같다. 그가 정말 대의를 안다면 굳이 내가 나설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영웅무관으로 가서 내 존재를 알리는 것이 필요하겠군. 영웅대회 예선은 내일까지 열린다고 하니까 시간적 여유는 있을 것이다.’

    <제4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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