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98화 (98/250)
  • [제32장] 마혈존자 2

    “아직도 불패마왕과 성녀를 찾지 못했단 말이냐?”

    “죄송합니다. 교주님. 천라지망을 쳐놓았으니 아직 빠져나가지는 못했을 겁니다. 산속 어딘가 숨어 있을 게 분명합니다. 어쩌면 지금쯤 죽었을 수도······.”

    “으음, 하기야 그들이 당한 독이 보통 독이 아니니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특히 불패마왕의 금제가 지금쯤 발동되었을 것이니 아마 십중팔구 죽었을 것이다. 임요요 그년은 천룡삭을 자르면 금제 역시 발동된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어찌 보면 제 손으로 아비를 죽인 셈이지. 후후후!”

    비릿한 미소를 짓는 흑의노인.

    바로 이번에 새로 마교 교주가 된 마혈존자였다.

    교주 직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주가 되지는 못했지만, 뛰어난 무공으로 인해 부교주 자리에 올랐던 그는 이번에 새 교주가 되었다.

    중원삼성의 제의를 불패마왕이 거절하자, 그 제의가 그에게 왔던 것이다.

    마혈존자는 곧바로 제의를 수락했다.

    중원삼성은 흐뭇해하며 특수 단약을 통해 그의 무공을 열 배 이상 높여주었다.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불패마왕이 특수 독과 금제에 당해 옥에 갇히자, 마혈존자는 피의 숙청을 단행했다.

    불패마왕을 따르는 충성파 고수들을 대거 제거하고, 자신의 수하들을 요직에 배치한 것이었다.

    지금도 피의 숙청은 계속되고 있었다.

    천지곡 마교 진영 지휘막사에 불패마왕과 함께 있는 사람은 마교 총군사였다.

    구뇌선생(九腦先生)으로 불리는 그는 불패마왕이 옥에 갇히자 곧바로 마혈존자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의 가담은 불패마왕에게 치명적이었다.

    평소 무공 연마 때문에 교의 상당수 업무를 구뇌선생에게 맡겨두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마교 내외의 업무는 구뇌선생이 상당 부분 처리하고 있었다.

    “문제는 중원무맹 공략입니다. 이제 보름 정도 후면 영웅대회가 열릴 겁니다. 그때까지 정말 이곳에서 기다리실 겁니까?”

    구뇌선생이 은밀한 목소리로 물었다.

    마혈존자가 안색을 조금 굳혔다.

    “중원삼성의 명이니 내 어찌 거부할 수 있겠소?”

    “교주께서는 정말 중원삼성의 약속을 믿습니까?”

    “무슨 약속 말이오?”

    “중원무맹을 제거한 후 교주님으로 하여금 중원무림을 다스리게 하겠다는 약속 말입니다.”

    “으음, 사실 나도 걱정이오. 그들이 대리자로 밀어주는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니 말이오.”

    “그렇습니다. 분명 중원삼성은 혈교주와 사사천교주에게도 똑같은 제의를 했을 겁니다.”

    “알고 있소. 하지만 어쩌겠소? 그들은 가공할 힘으로 불패마왕을 끌어내렸고, 나를 교주 자리에 올려주었소. 숙고한 결과 일단 중원무맹을 완전히 제거할 때까지는 그들 뜻에 따르기로 했던 것이오.”

    “그럼 중원무맹이 제거된 후 혈교와 사사천교와 함께 천하를 삼분하실 생각입니까?”

    “그렇소. 중원삼성이 약속을 지킨다면 일단은 그렇게 될 것이오. 물론 대인자문을 도와 동방무맹까지 제거한 후에 그렇게 되겠지만 말이오.”

    “동방무맹은 대인자문이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동방무맹주 무명객 그자가 대인자문주의 유인 작전에 걸려든 셈이지요. 본거지인 동방에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장점을 버리고 이곳 중원까지 왔으니, 결과는 볼 필요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무명객의 무공이 심상치 않소. 대인자문주가 평범서생이라는 가명으로 시험을 해봤는데, 그 기세에 눌러 싸움도 못 하고 패배를 인정했다고 하지 않소?”

    “하지만 대인자문주 역시 중원삼성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특수 단약을 먹었습니다. 이전보다 열 배 이상 무공이 높아졌지요. 무명객은 그의 적수가 못될 겁니다.”

    “알고 있소. 사실 내 걱정은 혈교주와 사사천교주요. 그들 역시 특수 단약을 먹고 무공이 열 배 이상 높아진 것으로 알고 있소. 만약 중원무맹과 동방무맹 무사들을 전멸시킨 후 혈교주와 사사천교주가 힘을 합쳐 나를 죽이려 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소.”

    “예리하시군요. 하지만 우리가 선수를 치면 됩니다. 지금이라도 사사천교주와 비밀리에 협정을 맺으십시오. 천하를 삼분하게 되면 힘을 합쳐 혈교주를 죽이자고.”

    “후후후! 역시 총군사답구려. 이후에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마혈존자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구뇌선생 역시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마혈존자는 불패마왕보다 다루기 쉬운 주군이었다.

    불패마왕은 교주 시절 고지식한 구석이 많았다.

    중원무맹에 대한 총공격 제의를 몇 번이나 거절한 것이 그 예였다.

    그 점이 바로 구뇌선생이 불패마왕을 배신하고 마혈존자를 따르게 된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혈교주가 죽게 되면 그 세력을 바로 흡수해야 합니다. 혈교는 원래 본교의 한 지류였으니, 교주님이 포용 의사를 비치면 충성을 바칠 겁니다. 원래 의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놈들이니까요. 이후에는 당연히 그 힘을 모아 사사천교주를 죽이고 그 세력마저 흡수하십시오.”

    “하하하.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구려. 하지만 중원삼성 그들이 가만있겠소?”

    “아직도 모르십니까? 그들은 대리자를 내세워 중원 무림을 다스리겠다고 했지, 무림을 삼분해서 다스리라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하기야 그 문제는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고 했지. 일단 중요한 것은 중원무맹 제거이니까.”

    “그렇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을 끝까지 믿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아직도 중원삼성 그자들의 진정한 의도를 간파하기 힘드니까요.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이 무림을 다스리는 데 큰 집착이 없다는 겁니다. 우리는 그저 그들의 말을 듣는 시늉만 하면서 힘을 더 키우고, 나중에 때를 봐서 그들마저 제거하면 됩니다. 그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하하하. 알겠소. 총군사가 이토록 현명하고 치밀하니 내 어찌 기쁘지 않겠소? 대업을 달성하게 되면 그대는 나를 제외하고 최고의 권력을 누리게 될 것이오.”

    “감사합니다.”

    구뇌선생이 고개를 숙였다.

    그때였다.

    스스슷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지휘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한데 그는 바로 백자안이 아닌가.

    동굴에서 나온 그가 마침내 이곳까지 잠입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지휘막사의 위치 파악은 임요요의 도움이 컸다.

    불패마왕을 구출해간 곳이 바로 이곳 천지곡이었다.

    원래 불패마왕은 마교 총단에 구금되어 있었다. 한데 그가 탈출할 것을 우려한 마혈존자가 이곳까지 데려온 것이었다.

    물론 그 경계는 철저했다.

    하지만 마교 총단에 있는 지하감옥에 비할 수는 없었다.

    특히 마혈존자는 불패마왕의 발을 묶고 있는 천룡삭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 천룡삭은 중원삼성이 직접 가져온 것으로, 그 효능을 마혈존자에게 알려준 바가 있었다.

    보검이 아니면 끊을 수가 없고, 설사 끊어지더라도 금제가 발동되어 보름 정도가 지나면 죽고 만다는 내용이었다.

    불패마왕이 내심 죽기를 바라는 마혈존자는 내심 누군가 그를 구출해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불패마왕을 살려두고 있는 중원삼성의 의도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자신이 직접 불패마왕을 죽이면 중원삼성의 분노를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누구냐?”

    구뇌선생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반면 마혈존자는 허둥대지 않았다.

    “고수구나. 날 죽이러 온 것이냐?”

    마혈존자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백자안의 기도가 물처럼 부드럽고 안정적이라 쉽게 볼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백자안이 천천히 지존검을 뽑았다.

    이미 음파를 차단해 지휘막사 밖으로 새 나가지 않게 만들어 놓은 그였다.

    “귀하가 마혈존자요?”

    백자안이 담담히 물었다.

    마혈존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네놈은 누구냐? 아니 누가 보내서 왔느냐?”

    “중원삼성.”

    백자안의 말에 마혈존자와 구뇌선생이 깜짝 놀랐다.

    “그, 그게 정말이냐? 정말 중원삼성 그분들이 날 죽이라고 명을 내렸다는 말이냐?”

    마혈존자가 불신의 표정을 지었다.

    백자안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거짓말에 마혈존자가 동요하는 것을 본 때문이었다.

    “거짓말하지 마라. 교주님. 놈의 말에 속으면 안 됩니다. 이자는 중원무맹에서 보낸 자객일 가능성이 큽니다.”

    구뇌선생이 소리쳤다.

    그의 손에는 핏빛 비수 하나가 들려있었다.

    무공 또한 대단하다고 알려진 그였다.

    마혈존자가 옆에 있어서인지 금세 안색을 회복하고 있었다.

    “시끄럽군.”

    백자안이 지존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순간, 구뇌선생이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마혈존자가 급히 보니 구뇌선생의 목이 그대로 잘려져 있지 않은가.

    “네, 네놈이······.”

    마혈존자가 분노하며 검을 찔러 들어왔다.

    평범해 보였지만 막사 안이 검광으로 가득해지며 검강이 백자안에게 쏟아졌다.

    비좁은 공간에서 엄청난 위력의 검강이 쏟아진 것이었다.

    특수 단약으로 인해 이전보다 열 배 이상 무공이 강해진 마혈존자의 무공이었다.

    특수 단약을 먹기 전에도 불패마왕과 비슷한 수준의 무공을 지닌 그였다.

    열 배 이상 높아진 그의 무공 수위는 사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 혼자 오기를 잘했구나. 불패마왕이 왔다면 반드시 패했을 것이다. 마치 내공수를 먹고 무공이 급상승한 것 같구나.’

    백자안이 급히 지존보를 펼쳤다.

    이 지존보는 다른 팔대무공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무명보에서 이름만 바꾼 보법이었다.

    하지만 그 위력은 이전의 무명보와는 확연히 달랐다.

    무형법문을 통해 터득한 깨달음이 더해져 완전한 무형검의 무공으로 거듭난 것이었다.

    스스슷.

    해일처럼 쏟아지는 검강 사이로 백자안의 신형이 움직였다.

    검강이 비켜나가며 지휘막사를 완전히 박살 냈다.

    콰콰콰쾅.

    백자안이 막사 안으로 들어오면서 펼쳐 둔 진법이 파괴되며 폭음이 일었다.

    지휘막사 밖을 지키고 있던 마교 무사들과 인근 막사에 있던 지휘부 고수 수백 명이 매우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백자안의 지존검이 마혈존자의 목을 잘라갔다.

    바로 지존검법의 제2초식 지존만상이었다.

    마혈존자가 급히 피하려 했으나 이미 늦은 후였다.

    백자안의 무공은 자신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무공이 열 배 이상 높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유형검에 불과했다.

    반면 백자안은 이번에 확실한 무형검의 경지에 도달했다.

    참고로 유형검에 머물게 되면 아무리 무공이 높아져도 무형검을 이길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설사 무공이 백배 이상 높아져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여기서 무공의 상승 기준은 내공이었다.

    마혈존자 역시 특수 단약을 복용한 후 내공이 열 배 이상 높아졌다.

    당연히 무공의 위력이 열 배 이상 높아졌다.

    하지만 깨달음이 수반되지 않아 여전히 유형검 단계였다.

    반면 백자안은 무형검 단계로 그 질이 달랐다.

    스팟.

    지존검이 마혈존자의 목을 스치며 피분수가 솟구쳤다.

    “크윽!”

    마혈존자가 목을 부여잡으며 비틀거렸다.

    백자안이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목이 그대로 잘려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워낙 내공이 높아져서인지 목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으으······ 뭣들 하느냐? 놈을 죽여라!”

    마혈존자가 소리쳤다.

    그사이 지혈까지 되어 목에서 흐르던 피까지 멈췄다.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마혈존자의 몸이 금강불괴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금강불괴가 아니었다.

    외공의 최고봉이라는 금강불괴라면 지존검이 목을 자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신체가 불사의 몸으로 변한 것 같구나. 중원삼성에게서 받아먹었다는 그 특수 단약 때문인가.’

    백자안이 역시 팔대무공인 지존장을 펼쳤다.

    쏴아아아.

    꽈앙.

    “으윽!”

    마혈존자가 다시 비틀거렸다.

    하지만 여전히 쓰러지지 않았다.

    “크하하아! 나는 불사신이다. 뭣들 하느냐? 놈을 죽여라!”

    연신 피를 토하면서도 마혈존자가 소리를 질렀다.

    “존명!”

    “존명!”

    마교 무사들이 일제히 백자안을 포위했다.

    지휘부 고수 삼백여 명이 마혈존자 앞을 가로막으며 보호막을 쳤다.

    백자안으로서는 순식간에 몰려든 천여 명의 마교 무사들부터 상대해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피를 봐야 한단 말인가.’

    백자안이 지존검을 높이 들었다.

    그때였다.

    휙휙 하는 소리와 함께 두 개의 인영이 나타났다.

    한데 그들은 바로 불패마왕과 임요요가 아닌가.

    가까이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그들이 폭음 소리를 듣고 나타난 것이었다.

    “모두 멈춰라. 내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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