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장] 마혈존자 1
[제32장] 마혈존자
사흘 후.
불패마왕과 임요요 두 사람의 회복운공이 끝났다.
사흘 전 백자안에 의해 특수 독을 해독하고 금제를 풀었지만, 이전의 공력을 완전히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와 더불어 천마대장경의 무학을 익히려는 의도도 있었다.
특히 불패마왕의 경우 그 의욕이 대단했다.
이미 그 내용을 암기하고 있던 터라 조금씩 공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자 꼭 필요한 무공 위주로 익힌 것이었다.
사실 그가 익힌 교주 무공와 천마대장경의 무공은 많은 부분이 중첩되었다.
하지만 우열을 따진다면 당연히 천마대장경 상의 무공이 월등했다.
불패마왕은 사흘이란 짧은 시간 안에 그동안 부족했던 점을 상당히 채웠다.
특히 그가 중점을 둔 부분은 독과 금제에 대한 방어력이었다.
중원삼성에게 당한 것이 무공 실력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 중독 때문으로 판단하고 있는 그였다.
그 때문에 다시 중원삼성을 만났을 때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 했다.
금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독 때문에 별다른 방어를 못 했지만, 중독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금제를 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 부분에 있어 백자안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백자안이 불패마왕과 임요요 두 사람의 몸에 넣어준 천마력을 적절히 사용하는 방법을 전수받은 것이다. 그로 인해 독과 금제 문제를 미리 방어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백자안 역시 지난 사흘간 쉬고 있지만은 않았다.
불패마왕의 정식 허락을 얻어 천마대장경의 무공을 대부분 익혔다.
무형검의 경지에 오르면 무공 습득 속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라져서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불패마왕과 임요요는 그가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몇 가지 정도만 익힌 것으로 알고 있었다.
“무정공자. 그래 얼마나 익혔나? 사실 천마대장경의 무공은 평생을 연마해도 다 익힐 수가 없네. 소림 칠십이종 절예처럼 몇 가지만 대성해도 성공이지. 물론 나는 교주 무공을 익혀 차후 절반 정도는 익힐 수 있을 것 같지만 말이야. 그래도 자네는 흡수대법을 익혔으니 서너 가지는 배울 수 있을 것이네. 다 익힐 수 없다고 해서 너무 낙심 말게. 자네는 우리가 익히지 못하는 천마심공을 연마하지 않았나? 그것만 대성해도 대단할 거야.”
“감사합니다. 덕분에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천마대장경에 수록된 무공 수준이 실로 놀랍더군요. 천마 그분의 무공이 얼마나 높았는지 이제야 실감이 납니다.”
“하하하. 천마 조사께서는 고금제일인이시지. 하지만 자네 역시 무공이 대단한 것 같네. 처음부터 느꼈지만 이미 나를 능가한 것 같더군. 물론 천마대장경만 보면 나보다 성취가 낮겠지만 말이야.”
불패마왕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표정으로 봐서 천마대장경으로 인해 본신 무공이 몇 배 더 강해진 것 같았다.
백자안이 미소를 지었다.
“과찬이십니다. 제 무공은 교주님보다 훨씬 낮습니다. 단지 천마력을 얻어 두 분을 치료할 수 있었을 뿐이지요. 게다가 교주께서는 이제 이전보다 두세 배 이상 강해지셨으니, 저는 상대가 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하하. 그건 또 무엇 때문인가?”
“교주님과 저는 이제 한배를 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 서로 싸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하하. 물론이네. 생명의 은인이자 장차 내 사위가 될 자네와 어찌 싸우겠나?”
“아버지!”
임요요가 눈을 흘기며 소리쳤다.
얼굴이 붉어진 것이 민망한 듯했다.
불패마왕이 껄껄 웃었다.
“요요야. 네가 부끄러워할 때가 다 있다니. 정말 놀랍구나. 여자가 다 되었어.”
“아버지도 참. 저 원래 그런 여자였어요. 그보다 이제 슬슬 밖으로 나가야 하지 않겠어요? 무정 사범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오. 하지만 나가기 전에 미리 계획을 세워둬야 할 것 같습니다. 교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으음, 일단 마혈존자 그놈을 죽이는 게 급선무네. 놈이 제거되기만 하면 의외로 쉽게 교를 다시 장악할 수 있네.”
“그자가 천지곡에 있다고 하셨지요?”
“그러하네. 지휘막사에 있을 걸세. 하지만 경계가 만만치 않아 접근이 쉽지 않을 걸세. 중원삼성이 함께 있을 수도 있고 말이야.”
불패마왕이 안색을 굳혔다.
무공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중원삼성은 부담되는 존재였다.
게다가 그들만 제거하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백자안도 말했지만 그 역시 중원삼성이 어떤 신비세력의 하수인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임요요가 말했다.
“마혈존자 그놈이 중원삼성으로부터 상승무공을 전수받았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교의 고수 상당수가 아버지를 배신한 것도 놈의 무공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흥! 충신은 어떤 경우에도 지조를 잃지 않는 법이다. 교를 다시 찾게 되면 일반 무사들은 봐주더라도 지휘부 고수들은 모조리 쳐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외부 세력에게 본교를 팔아먹은 놈들이니까.”
불패마왕의 눈이 이글거렸다.
자신의 수족과도 같았던 많은 마교 고수들이 이미 숙청되어 목숨을 잃은 상황이었다.
아무리 마혈존자의 무공이 뛰어나다고 해도 한번 배신한 놈들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백자안이 안색을 조금 굳혔다.
불패마왕이 교주 자리를 찾고 난 후 불 피바람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림의 생리상 어느 정도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그나마 불패마왕이 피의 숙청은 지휘부에 국한할 생각을 하는 것은 고무적이었다.
게다가 강자에게 충성하는 마교의 전통상 마혈존자의 핵심 측근들 외에는 다시 수하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최대한 마교 전력을 우군으로 만들어야 한다.’
백자안이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말했다.
“마혈존자는 제가 제거해드리겠습니다. 대신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말만 하게. 중원무맹과 동맹을 맺으라 했던 것 말고 또 있나?”
“같은 맥락입니다. 교를 다시 장악하시게 되면 혈교를 상대해주십시오.”
“하하하. 좋네. 안 그래도 혈교 그놈들이 호시탐탐 본교를 노렸었지. 내 약속하지. 그럼 중원무맹은 사사천교를 상대하게 되는 것인가?”
“네. 그리고 대인자문은 동방무맹이 맡을 겁니다.”
백자안이 좀 더 상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임요요에게 듣긴 했지만 최근 강호 소식을 알지 못했던 불패마왕이었다.
불패마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 계획인지 모르겠지만 잘 짰네. 하지만 결국은 중원삼성 그놈들의 배후세력을 상대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할 것 같군.”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자들의 진정한 의도를 모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놈들, 아니 신비세력이라고 하지. 그놈들의 의도는 빤하지 않은가. 무림세력끼리 충돌시킨 후 양패구상하게 만들어 어부지리를 얻으려는 것이지. 어차피 놈들 눈에는 본교를 비롯해 혈교, 사사천교, 대인자문 모두 토사구팽의 대상으로 보일 테니까.”
“예리하시군요. 저 또한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요요가 말했다.
“하지만 혈교나 사사천교, 그리고 대인자문에서 그 사실을 정말 모르고 있을까요?”
“물론 알고 있을 것이오. 그들로서는 오히려 신비세력이 토사구팽의 대상일 것이오. 하지만 중원무맹과 동방무맹은 공동의 적이라 할 수 있기에 일단 협력하는 것일 것이오. 그 점이 실은 매우 우려할 일이 아닐 수 없소.”
“자네 말이 맞네. 하지만 일단 지금은 내가 다시 본교를 장악하는 게 급선무이네. 우리 세 사람 힘만으로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네. 솔직히 본교 장로나 원로 고수들이 합공을 가하면 승산이 없네. 개별적으로는 내 상대가 되지 않으나 두세 명만 힘을 합해도 무시 못 할 전력이거든. 한데 그런 고수가 수백 명이니 잘못하면 크게 낭패를 볼 수 있네. 한데 어떤 식으로 마혈존자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자네 혼자서는 무리라고 생각하는데······.”
“은잠술을 발휘해 놈의 막사로 들어가면 됩니다. 제가 놈을 죽인 후 사자후로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그때 두 분이 오시면 됩니다.”
“나와 둘이서 가지. 자네 혼자서는 위험하네. 경계가 무척 삼엄할 것이네.”
“그 때문에 저 혼자서 가려는 겁니다. 두 사람이 가면 놈들의 감시망에 걸릴 가능성이 큽니다. 발각되면 교주님 말씀대로 수백 명의 고수가 나타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오히려 역공을 당해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큽니다.”
“좋네. 자네 무공을 믿겠네. 하지만 놈을 죽인다고 해서 다른 놈들이 나를 받아들일지 모르겠군.”
“저도 장담은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마혈존자를 제거한 이후에 교주님을 공격하는 것을 망설일 사람이 많을 겁니다. 그때 아까 교주님 말씀대로 마혈존자 측근들을 무사들이 보는 앞에서 제거한다면 일거에 교를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교주 신물은 가지고 있습니까?”
“천마령(天魔鈴) 말인가?”
“네.”
“중원삼성 그놈들에게 빼앗겼네. 지금은 아마 마혈존자 그놈이 가지고 있을 걸세. 놈을 죽이면서 천마령을 반드시 회수해주게.”
“알겠습니다. 하지만 교주께서는 이제 천마검이 있지 않습니까? 만에 하나 천마령이 없다고 해도 천마검으로 명을 내릴 수 있을 겁니다.”
“하하하. 내가 미처 그 생각을 못 했군. 천마검은 천마 조사님의 신물로 진정한 교주 신물이라 할 수 있지.”
불패마왕이 임요요의 허리에 걸려 있는 천마검을 바라봤다.
임요요가 급히 천마검을 풀어 불패마왕에게 주려고 했다.
“아니다. 이 검은 너의 것이다.”
불패마왕이 손을 저어 거절했다.
“아버지가 가지고 계셔요.”
“아니다. 나는 천마령을 회수하면 된다. 천마검의 인연은 요요 네게 있다. 장차 나를 이어 본교를 물려받아야 할 테니, 그 천마검이 너를 지켜줄 것이다.”
“피! 내가 언제 교주가 되고 싶다고 했어?”
“허엄, 또 그 말투냐?”
“아, 아니. 여자인 제가 어떻게 교주가 되겠어요? 전 성녀인걸요.”
“성녀가 교주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전례가 없다고 그것이 꼭 불가능한 것은 아니란다. 뭐, 정 하기 싫으면 너와 혼인할 남자에게 교주 자리를 양보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불패마왕이 말을 하며 백자안을 쳐다봤다.
“아버지!”
임요요가 다시 소리쳤다.
“허허허. 알았다. 그 문제는 그렇게 급한 게 아니니까 다음에 하지. 아직 내가 건재하니 앞으로 최소한 십 년은 더 교주를 할 생각이다. 물론 빼앗긴 교주 자리부터 찾아야 하겠지.”
불패마왕이 눈을 빛냈다.
백자안이 말했다.
“이제 슬슬 밖에 나가보도록 하지요. 제가 먼저 나가서 놈들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천라지망을 쳐둔 것 같던데, 천지곡에 가기 전에 놈들에게 발각이 되면 낭패니까요.”
“일단 입구까지 같이 가세.”
“네.”
백자안이 앞장을 섰다.
불패마왕과 임요요도 긴장하며 그를 따랐다.
계획은 명쾌하게 세웠지만, 그 결과는 미지수였다.
특히 불패마왕은 긴장하는 표정이었다.
‘과연 계획대로 될까. 무정공자를 믿기는 하지만, 신원이 불확실한 것이 마음에 걸리는구나. 뭔가 다른 신분이 있는 것 같은데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