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96화 (96/250)
  • [제31장] 불패마왕 3

    “싫어. 아버지가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어떻게든 내가 살릴 테니 조금만 참아.”

    임요요가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하지만 그녀 눈에도 부친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보였다.

    다만 말을 안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불패마왕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요요야. 너무 슬퍼 마라.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는 것이란다. 조금 빨리 가고 조금 늦게 가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 사실 이 아비는 마교주가 될 생각이 없었단다. 다만 무공을 좋아하고 선친의 뜻을 이어받았을 뿐이지. 다만 선조분들처럼 중원 정복 욕심은 부리지 않았다. 물론 수하들이 제멋대로 정파 무사들과 싸우기도 했지만, 본교의 특성상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본교를 종주로 삼고 세력을 확대하려는 수많은 문파는 더욱 통제가 어려웠지. 하지만 나는 끝까지 큰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 한데 이렇게 뜻하지 않게 죽게 되다니 비통한 게 사실이다.”

    “중원삼성 그놈들이 그렇게 강해?”

    “내가 방심을 했었다. 갑자기 나의 처소로 잠입해 보통 고수가 아니라고 생각했었지만, 놈들이 합공을 가할 줄은 몰랐거든. 일대일 대결이었다면 아마도 이 아비가 이겼을 수도······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특수 독에 당한 것이었지. 요요 너도 그 독에 당해 이 아비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흡수대법을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데 그 해독방법을 알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혹시라도 내가 당한 금제처럼 일정 시간이 지나면 목숨을 잃게 되지 않을지 걱정이 크구나.”

    “까짓것 죽으면 죽는 것이지. 차라리 지금이라도 나가서 마혈존자 그놈 목을 베는 게 어때?”

    “그럴 시간이 없다. 요요야. 내 말을 잘 들어라. 혹시라도 너에게 기회가 생겨 다시 본교를 장악할 수 있다면, 반드시 중원무맹과 손을 잡도록 해라. 중원무맹은 지금 어려움에 부닥쳐 있으니 본교와 동맹을 맺으려 할 것이다. 그 길만이 본교를 지키는 길이다. 그 희망을 위해 마지막으로 내가 할 일이 있을 것 같구나.”

    불패마왕이 힘들게 손을 내밀어 임요요의 맥문을 잡았다.

    임요요가 영문을 모르고 그대로 있자, 불패마왕이 자신의 내공을 그녀에게 넣어주기 시작했다.

    잠력을 이용해 자신의 몸속에 남아 있는 내공을 임요요에게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이는 그가 천마대장경을 통해 터득한 방법이었다. 특수 독 때문에 공격을 하는 데 내공을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타인에게 내공을 넣어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상당한 무리가 따르기 때문에 모든 내공을 넣어준 후 자신은 곧바로 죽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죽게 될 몸이라면 자식에게 내공을 주고 죽으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를 눈치채지 못할 임요요가 아니었다.

    사실 그녀는 아직 금제까지는 당하지 않아 움직임이 불패마왕보다 원활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곳까지 불패마왕을 데리고 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그녀 역시 특수 독 때문에 내공 발현이 어려웠다. 불패마왕의 의도를 간파한 그녀가 곧바로 손을 뿌리쳤다.

    “으윽!”

    불패마왕이 뒤로 물러났다.

    임요요가 화를 냈다.

    “누가 내공 달라고 했어? 그렇게 죽으면 내가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안 그러면 무슨 방법이 있느냐? 나는 이제 일각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불패마왕이 탄식했다.

    임요요가 자신의 손을 뿌리치는 바람에 내공 주입이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 또한 경각에 달린 것이다.

    그래 봤자 약간의 차이였지만 일각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이럴 때 그 녀석이 와서 도와주면 무슨 방법이라도 있을 텐데······.”

    임요요가 한 사람을 떠올리며 아쉬워했다.

    그 사람은 바로 백자안이었다.

    불패마왕의 이야기를 듣고 백자안이 천마력을 얻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였다.

    실제 백자안이 천마검을 잡는 즉시 충격을 받고 움직이지 못하지 않았던가.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

    “그런 사람이 있어. 바보 같은 놈이지.”

    “허허. 우리 요요가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구나.”

    불패마왕이 죽음에 직면한 자신의 상황도 잊고 미소를 지었다.

    “그게 아니야. 바보 같은 놈인데, 그만 내가 얼굴을 보여주고 말았어.”

    “네 얼굴을 보여줬을 정도라면 보통 녀석이 아니구나. 내 사위가 될 수도 있는데, 그 녀석 얼굴을 한번 보지도 못하고 가다니······.”

    불패마왕이 감겨오는 눈을 억지로 떴다.

    눈을 감게 되면 다시 뜨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임요요가 불패마왕의 등 뒤 명문혈에 내공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불패마왕의 목숨을 연장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겨우 버티고 있는 백요요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단점이 있었다.

    “안, 안 된다.”

    불패마왕이 거부를 했으나 이를 막을 힘이 없었다.

    “쳇, 안되면 같이 가면 되는 것이지. 아버지와 함께 저승에 가는 거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래도 그 바보 같은 녀석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봤으면 좋겠는데······.”

    극도로 안색이 창백해진 임요요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 가면 반시진 정도면 그녀와 불패마왕 두 사람 모두 목숨이 끊어지게 될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흡수대법을 펼칠 수만 있다면 늦지 않는데······.’

    임요요가 아쉬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흡수대법은 최고의 해독방법이었다.

    따로 해약을 찾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와 불패마왕이 중독된 독은 보통 독이 아니었다.

    지금으로서는 해독이 불가능했다.

    ‘모든 것이 꿈만 같구나.’

    임요요가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렸다.

    그녀를 낳아준 어머니는 출산 때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 때문에 무척 외로움을 탔던 그녀였다.

    부친인 불패마왕은 인자했지만 교의 일로 바빠 자주 볼 수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무공 연마뿐이었다.

    성녀라는 직책을 가졌지만, 그것과 관련해 따로 업무를 보지는 않았다.

    그 결과 여자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흡수대법을 연마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가. 말도 아이처럼 괴상하게 하고. 아, 이렇게 정말 끝난단 말인가.’

    임요요가 한숨을 쉬었다.

    불패마왕은 겨우 눈을 뜨고 있었다.

    임요요에게 내공을 받아 생기를 잃고 있지 않았지만, 그 힘은 너무 미약했다.

    “내 딸아. 너무 아쉬워 마라. 모든 게 운명인 것이니.”

    “아버지. 죄송해요. 그동안 제가 너무 버릇이 없었어요. 하지만 그게 제 마음을 표시하는 방법이었어요.”

    임요요가 다시 눈물을 흘렸다.

    이제 말도 짧게 하지 않았다. 순간적이지만 괴상한 성격의 소녀에서 현숙한 여인이 된 것 같았다.

    “알고 있다. 요요야. 마음을 편히 해라.”

    불패마왕 역시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두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

    한 사람이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한데 그는 백자안이 아닌가.

    동방무맹주의 얼굴이 아니라 무정공자 얼굴로 다시 역용한 그는 임요요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때 혹시 몰라 그녀에게 추적향을 몰래 뿌려두었는데, 그 효과를 봤구나. 안 그랬으면 절대 이곳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임요요와 불패마왕은 백자안이 온 것도 모르고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생기가 모두 빠져나가기 직전이라 눈꺼풀이 너무 무거웠다.

    반 무의식 상태라고 할까.

    백자안은 두 사람의 상태가 심각함을 깨닫고 즉시 자리에 앉아 양손으로 각각 내공을 넣어주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목숨만 연장해줄 뿐 해독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완전히 의식을 잃어버렸다.

    물론 아직 숨진 것은 아니었다.

    ‘으음, 그래도 한 시진 정도는 시간을 번 것 같다. 잠시 쉬면서 방도를 구하자. 무작정 내공만 넣는다고 될 것이 아니다.’

    백자안이 손을 떼고 주위를 살폈다.

    그의 눈에 띈 것은 바로 천마검과 천마대장경이었다.

    백자안은 직감적으로 천마대장경 안에 방법이 있음을 깨달았다.

    곧바로 천마대장경의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보는 즉시 암기를 하는 그의 능력은 정점에 달해 있었다. 모든 내용을 암기하는 데 걸린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놀라운 무공들이다. 역시 천마답구나. 하지만 내가 찾는 것은 이 두 사람의 몸에 있는 특수 독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특히 이 남자에게는 독 말고도 특수 금제가 걸려 있다. 아무래도 불패마왕인 것 같은데, 시간이 없다. 더는 생명을 연장하기 어렵다.’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자신의 몸속에 천마가 남긴 천마력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그였다.

    하지만 그 천마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두 사람을 치료할 수 있을지 몰랐다.

    이는 임요요와 불패마왕의 신체적 특징과도 관련 있어 쉽지 않았다.

    백자안이 천마대장경을 다시 살폈다.

    혹시라도 놓친 부분이 있는가 해서였다.

    그러다가 마지막 장 내용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혹시······.’

    백자안이 눈을 빛내며 순수 천마력을 일으켜 마지막 장을 매만졌다.

    그때였다.

    신기하게도 법문 같은 것이 빼곡하게 나타났다.

    마치 이전에 익혔던 무형법문을 보는 것 같았다.

    백자안이 급히 그 내용을 암기한 순간.

    그 내용이 다시 사라졌다.

    하지만 이미 모두 머릿속에 담아둔 그였다.

    ‘아, 천마력을 사용해서 펼칠 수 있는 무공이구나. 천마심공(天魔心功)이라. 이 무공은 일종의 무형검이다. 천마가 죽기 전에 깨달음을 얻어 무형검의 경지에 올랐던 것인가. 천마력이 없는 사람은 익히게 되면 오히려 주화입마가 되니, 세상에 나 혼자서만 익힐 수 있는 무공이군. 어쩌면 이 천마심공으로 두 사람을 치료할 수 있을 것 같다.’

    백자안이 집중해서 천마심공을 익혔다.

    그 원리가 이전에 그가 익힌 무명심법과 비슷해 어렵지 않았다.

    참고로 그는 심법의 이름을 원래대로 무명심법으로 부르고 있었다.

    다만 팔대무공만은 지존검을 얻었기 때문에 계속 지존검법 등 지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얼마 후 겨우 천마심공을 익힌 백자안이 두 사람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성공이다. 독은 물론이고 금제까지 풀 수 있겠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임요요와 불패마왕 두 사람의 안색이 서서히 돌아오며 눈을 떴다.

    두 사람이 백자안을 보고 깜짝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직감적으로 그가 자신들을 구해준 것을 깨달았다.

    사실 정신을 차리기 직전에 누군가의 공력이 몸속으로 들어와 치료해주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그 사람이 두 사람 중 다른 한 사람으로 생각했었다.

    한데 한 사내가 담담히 앉아 있지 않은가.

    특이한 것은 백자안의 태도였다.

    적으로 오인되어 공격받을 수 있는 위험이 있음을 알고도 태연했다.

    오히려 걱정한 것은 불패마왕이었다.

    임요요가 혹시라도 오해해 백자안을 공격할까 봐 얼른 말했다.

    “귀하가 우리 부녀를 치료해주었소?”

    “네.”

    백자안이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임요요가 그의 얼굴을 보고 뒤늦게 깜짝 놀랐다.

    “너는?”

    백자안이 급히 전음을 날렸다.

    「소저. 사정이 있으니 내가 백자안이란 사실은 말하지 말아 주시오. 영웅무관 무정공자로 대해주면 고맙겠소. 무정 사범이라 부르면 될 것이오.」

    「알았어.」

    “요요야. 아는 사람이냐?”

    “네. 아버지. 아까 제가 말한 사람이에요. 절 도와준다고 약속을 했었는데, 때마침 나타났네요. 한데 우리를 어떻게 치료한 것이지?”

    “요요야. 말투가 그게 뭐냐? 생명의 은인이라 할 수 있는 분이다. 공손하게 대하거라.”

    “네. 아버지.”

    임요요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특수 독이 말끔히 제거된 것도 기뻤지만 백자안을 다시 만난 것이 믿기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천마동에서 헤어진 후 늘 백자안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풍운장원으로 가서 그에게 직접 도움을 청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장기간 실종 상태임을 알고 실망하고 돌아갔던 그녀였다.

    “아버지 몸 상태는 어때요?”

    “하하하. 나 말이야. 특수 독도 제거되었고, 금제도 말끔히 풀렸다. 너는?”

    “저도 해독이 되었어요.”

    “귀하의 이름이 어떻게 되오? 나는 불패마왕이오.”

    “짐작했습니다. 저는 무정공자라고 합니다. 낙양 영웅무관의 사범을 맡고 있지요. 무정 사범이라고 부르면 됩니다.”

    백자안이 침착하게 자신의 신분을 밝힌 후 경과를 설명했다.

    쫓긴다는 소식을 듣고 임요요를 돕기 위해 이곳 천지산에 왔고, 추적향을 뿌려둔 덕분에 은거지를 찾았다는 사실. 그리고 천마검으로부터 얻은 천마력과 천마대장경 상의 무공까지 익히게 된 것까지. 물론 흡수대법을 배우는 등 이전에 천마동에서 있었던 일까지 자세히 설명했다.

    다만 자신이 백자안이란 사실은 여전히 밝히지 않았다.

    불패마왕이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특히 임요요로부터 흡수대법까지 익힌 것까지 알고 무척 놀란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그렇게 된 것이로군. 이제 한 식구라 할 수 있으니 말을 편하게 하겠네. 자네가 천마력을 얻고 천마대장경의 모든 무공을 암기하고, 특히 우리가 보지 못한 그 천마심공까지 익히게 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네. 이해하고 그 점에 있어 절대 책임을 묻지 않겠네. 원래대로라면 당장 죽여야 하지만 특별히 봐주겠네. 물론 자네의 무공이 나보다 더 높은 것 같아 어차피 가능한 일이 아니지만 말일세.”

    “감사합니다.”

    “자, 이제 말해보게. 나를 구해준 진짜 의도가 무엇인가?”

    “눈치를 채셨으니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교주께서 복권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대신 중원무맹과 협력해 혈교, 사사천교, 대인자문, 그리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배후세력을 제거하는 데 힘을 보태주십시오.”

    “하하하. 좋네. 내 생각과 같으니 어찌 거절할 수 있겠나? 수락하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