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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94화 (94/250)
  • [제31장] 불패마왕 1

    [제31장] 불패마왕

    중원무맹 취의청.

    새롭게 단장한 이곳 취의청에는 삼백여 지휘부 고수가 오늘도 모여 있었다.

    단목군의 장례가 끝난 지도 벌써 열흘째.

    낙양성을 포위하고 있는 마교와 혈교, 사사천교, 대인자문 무사들의 동선이 비교적 명확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참고로 대인자문은 삼혈맹에 전격적으로 가입하여 이제 삼혈맹에서 사혈맹(四血盟)으로 불리고 있었다.

    회의를 주재한 사람은 바로 총군사 만박서생이었다.

    물론 그 외 집법장로 황보생, 총순찰 영호광, 와룡대주 단목수련, 화산파 장문인 매화검선, 화산옥녀 악미미 등 주요 고수들의 얼굴도 보였다.

    아직 남해기인 등 상당수 고수가 낙양에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점차 천하 각지에 있던 주요 고수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백자안과 김지혜 역시 당당히 자리를 차지해 경청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주로 듣는 처지였다.

    지난 열흘간의 상황은 오히려 단순했다.

    새 맹주를 뽑는 영웅대회 소식이 퍼져나가자, 더욱더 많은 무림인이 낙양 총단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대부분 피난의 성격이 짙었다.

    사혈맹 무사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낙양으로 가는 길목을 차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치 사냥하듯 무림인들을 대거 낙양으로 노골적으로 몰았다.

    사람들이 이점을 느끼면서도 낙양 총단으로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밖의 곳에서는 사혈맹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미처 피하지 못한 인근 문파들의 멸문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아직 영웅대회까지는 이십일 정도 남았지만, 더는 방어에만 치중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었다.

    “놈들의 만행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습니다. 별동대를 조직해 사혈맹 중 일부라도 격파해야 합니다. 이대로 포위망이 계속 좁혀지면 나중에 그야말로 전멸을 당하고 말 겁니다. 총군사께서는 어떤 비책을 가지고 계시기에 계속 우리보고 영웅대회 때까지 참고 기다리라고 하십니까?”

    형산파 장문인 장대선생의 말이었다.

    그가 장문인으로 있는 형산파의 상황은 실로 참담했다.

    문하 제자 대부분이 사망해 그 복수를 다짐하고 있는 그였다.

    “장대선생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제는 어떤 계획이 있는지 말씀해주시는 게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성안으로 들어오는 길이 몇 군데 남아 있지만, 대회 날이 되어 모든 무림인이 들어오고 난 후에는 놈들이 그 길마저 막아버릴 겁니다. 이후 놈들이 총공격을 가해오면 그대로 갇혀서 몰살될 수도 있을 겁니다.”

    총순찰 영호광의 말이었다.

    그 역시 맹주이자 사부인 단목군의 죽음으로 인해 충격이 말이 아니었다.

    비록 백자안을 모함한 일로 단목수련과 예정된 약혼이 취소되었지만, 사부에 대한 복수심은 누구보다도 높았다.

    만박서생이 담담히 말했다.

    “여러 번 말씀드렸듯이 보안 사항이라 자세히 말씀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만 대인자문 놈들이 낙양 동쪽을 서서히 막고 있는 것은 저로서도 뜻밖의 상황입니다. 원래는 동서남북 네 곳 중 한 방향 정도는 탈출로로 남겨두려고 했었지요. 하지만 지금 놈들과 충돌하면 총단으로 오고 있는 무림인들의 길목을 막을 우려가 큽니다. 아직 많은 무림인이 오지 못했습니다. 저의 계획은 영웅대회 때 새롭게 선출될 맹주님께 보고드려 승인을 받고 실행에 옮길 겁니다. 다만 답답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한마디 한다면 일종의 유인작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전력에서 두세 배 이상 열세인 우리로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놈들이 이미 총군사의 계획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도 무림인들이 총단으로 오는 길을 막지 않고 있는 것은 놈들이 총군사의 계획을 역이용하여 단번에 전 무림을 장악하려는 음모가 아니겠습니까?”

    장대선생이 언성을 높였다.

    만박서생은 요지부동이었다.

    “물론 그렇겠지요. 하지만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두 저를 믿고 좀 더 기다려 주십시오. 사실 사방이 적으로 덮여 탈출로가 막힌 다해도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겁니다. 어차피 놈들과 전면전을 피할 수 없을 테니까요. 차라리 지금 필요한 것은 전면전이 아니라 놈들의 내부 분열을 노리는 겁니다.”

    “내부 분열이라면 혹시 마교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악미미의 물음이었다.

    화산파가 비록 큰 피해를 보고 이곳 낙양으로 철수했지만, 그동안 그녀의 활약은 눈부셨다.

    무공이 급상승한 그녀는 부친인 매화검선과 비교해도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 실력으로 많은 적을 제거했다.

    백자안이 그녀를 보고 눈을 빛냈다.

    ‘확실히 이전보다 기도가 엄정하다. 노력을 많이 했구나. 성격도 많이 침착해진 것 같군.’

    아까 취의청에 들어왔을 때 악미미를 발견하고 기뻐했던 그였다.

    기억을 회복하지 못했으면 알아보지 못했겠지만, 다시 보니 감회가 깊었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정혼녀이기 때문이었다.

    ‘사적인 문제는 전쟁이 끝난 후 생각해도 늦지 않다.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어 보기에 좋구나.’

    백자안이 미소를 지었다.

    만박서생이 말했다.

    “악 소저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최근 정보에 의하면 마교의 전대 교주 불패마왕이 딸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교 내부가 소란스럽다고 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고수 몇 명을 보내 불패마왕 측과 손잡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 불패마왕이 탈출을 했습니까? 듣기로는 중원삼성에게 붙잡혀 모처에 감금되어 있다고 하던데······.”

    태상장로 천수노인(天壽老人)의 말이었다.

    그는 최근까지 폐관 수련 중이라 맹의 일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총단이 위기에 처하자 서둘러 출관한 것이었다.

    그는 단목군이 급사한 이후 차기 맹주감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일단 그 무공이 매우 높아 단목군조차 함부로 못 했다고 전해졌다. 마침 신공까지 대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알려져 기대가 큰 고수였다.

    “네. 불패마왕의 딸이 천마검을 얻어 천룡삭을 끊었다고 합니다. 다만 아직 불패마왕이 그 무공을 회복하지 못해 현 교주 세력에 의해 쫓기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우리 낙양성 인근에 있다고 하니, 이 기회에 불패마왕을 도와 교주 자리를 되찾게 한다면 우리와 동맹을 맺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으음, 하기야 불패마왕은 마도이긴 하나 신의가 있다고 알려졌지요. 교주가 된 이후로도 우리와 사소한 다툼은 끊이지 않았으나 노골적인 정복욕을 드러낸 적도 없었지요. 저는 찬성입니다. 다만 마교와 동맹을 맺는 것은 어려울 겁니다. 다만 가벼운 연대 정도는 가능할 겁니다.”

    “정확하게 보시는군요. 태상장로님의 혜안에 감탄했습니다. 다만 어떤 식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을지 그게 걱정입니다. 이미 불패마왕에게 충성을 바치던 마교 고수들은 대부분 숙청되었다고 전해지니까요.”

    만박서생이 안색을 굳혔다.

    계획은 좋았지만, 그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고수를 보내 돕는다는 것도 말이 쉽지 실행하기 힘든 계획이었다.

    무엇보다 불패마왕을 도와 마교를 우군으로 돌릴 수 있는 그럴만한 고수가 없었다.

    “아, 이럴 때 백자안 무인이 있었다면······.”

    만박서생이 탄식했다.

    “아니면 영웅무관의 무정공자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거듭된 만박서생의 탄식에 좌중의 사람들이 안색을 굳혔다.

    절대고수 한 명이 아쉬운 마당이라 두 사람의 부재가 크게 느껴졌다.

    부친을 잃고 초췌해진 얼굴의 단목수련이 말했다.

    “무정공자께서는 돌아가셨을 가능성이 크지만, 백 공자는 반드시 돌아오실 거예요. 백소영 소저에게 들었는데 백 공자가 풍운장원에 서신을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그것도 동방무맹주님이 직접 전달해주셨다고. 그게 사실인가요?”

    “그렇습니다.”

    백자안이 자초지종을 설명해줬다.

    물론 풍운장원에서 말한 그대로였다.

    사람들이 기뻐한 것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당장의 고수가 필요한 만박서생으로서는 아쉬운 표정이었다.

    백자안이 말했다.

    “총군사께서 괜찮으시면 제가 한번 마교 진영 쪽으로 가보겠습니다. 은밀하게 움직이면 놈들도 알아차리지 못할 겁니다.”

    “아, 맹주께서 직접?”

    만박서생이 기뻐했다.

    차마 직접 부탁을 못 했지만 내심 이 일을 맡길 사람은 동방무맹주뿐이라고 생각하던 그였다.

    “너무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영웅대회 때까지 기한으로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대신 아직 마교에 대한 많은 정보가 부족하니 자료가 있다면 저에게 주십시오. 듣기로 불패마왕의 딸이자 마교 성녀가 바로 이전에 중원에 나타나 화제를 모았다던 귀면탈 소녀라고 하던데 그게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당시에는 귀면탈 소녀의 정체에 대해서 몰랐는데, 나중에 그 사실이 조금씩 알려졌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녀가 죽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죽어 마땅한 자들이었지요. 아마도 마교주 직계의 전통인 천마행(天魔行) 중이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천마행이라면?”

    “천마행은 일종의 비무행입니다. 마교는 특이하게도 교주 직계가 수련 후 색마 등 죽어 마땅한 자들을 골라서 직접 처단하는 것이 전통이지요. 하지만 그 와중에 불패마왕이 중원삼성에게 붙잡힌 것을 알고 결국 천마검까지 찾아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그렇군요.”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귀면탈 소녀에 대한 정보가 생각보다 많이 강호에 알려진 것 같았다.

    ‘도와주기로 약속했으니 오히려 잘되었군. 총군사 생각대로 마교를 우군으로 돌릴 수 있다면 큰 힘이 될 것이다. 마교가 혈교 정도만 막아줘도 힘의 균형이 조금은 회복될 수 있을 테니까.’

    백자안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회의는 계속되었다.

    일단 마교 쪽은 백자안이 개입하기로 하자, 만박서생은 한결 마음이 가벼운 표정이었다.

    “불패마왕을 복권시켜 마교를 우군으로 돌리는 문제는 일단 동방무맹주님께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은 손을 놓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또한 불패마왕의 의도가 우리와 다르다면 굳이 그를 도울 필요도 없겠지요. 어디까지나 마교는 오래도록 우리와 적대관계인 게 사실이니까요. 다음 문제는 바로 정의련입니다.”

    만박서생이 정의련을 언급하자 좌중이 다시 술렁였다.

    정의련주이자 무적세가주인 독고승의 행보가 무림인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그 단적인 예로 단목군이 사망하자, 독고승을 맹주로 합의 추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전쟁에 참여하기를 꺼리는 그를 끌어들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란 것이 그 이유였다.

    “무적세가주는 아직도 중립을 지키고 있습니까?”

    장대선생의 물음에 만박서생이 미소를 지었다.

    “네. 아직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무적세가주가 직접 보낸 전서구를 받았습니다.”

    “오! 그래서요?”

    “자신을 맹주로 합의 추대하면 기꺼이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아무리 무적세가주의 명성이 높고 지난 혈교와의 전쟁에서 공이 크지만, 합의추대는 좀 너무한 것이 아닙니까? 고수들의 결집을 위해서라도 그건 안 될 말씀입니다.”

    장대선생의 반박에 상당수 참가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박서생이 말했다.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의련 무사들과 연대를 해 사혈맹과 대적하려면 어느 정도의 성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 혼자서 결정할 일이 아니라 이렇게 여러분의 의견을 구하는 겁니다.”

    “생각해두신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네. 생각해보니 무적세가주 입장에서도 정식으로 시합에 참여해 많은 대결을 벌이는 것은 탐탁지 않을 겁니다. 소문에 의하면 무적세가주 역시 중원삼성의 회유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 점을 고려할 때 우대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에 하나 정의련 마저 사혈맹과 힘을 합친다면 그야말로 끝장이니까요. 그래서 무적세가주에게 곧바로 결승 진출권을 주는 문제를 논의해봤으면 합니다. 쉽게 말해 대회 우승자와 마지막으로 붙게 해서 그 승자를 맹주로 뽑자는 것이지요.”

    “좋은 생각입니다. 어차피 무적세가주 정도면 결승에 오를 실력입니다. 합의추대 방식만 아니라면 그 정도가 괜찮을 것 같군요. 물론 그가 맹주가 되지 못하더라도 정의련이 우리와 힘을 합친다는 조건이 먼저 수락되어야 할 겁니다.”

    천수노인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시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무적세가주에게 답신을 보내겠습니다.”

    이후 회의는 일사천리였다.

    중요 내용은 은자림 고수들에게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미 생사신의가 은자림으로 가서 영웅대회 때까지 고수들을 모셔올 거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백자안은 회의를 마치고 안심각으로 돌아왔다.

    마교 일은 내일 다시 만박서생과 의논해 최대한 빨리 출발하기로 했다.

    ‘모든 상황이 폭풍 전의 고요와 같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또 죽어 나갈 이번 전쟁의 끝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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