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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90화 (90/250)
  • [제29장] 대인자문 3

    한 달 후.

    무명객 주재로 작전 회의가 열리고 있는 취의청은 열기로 가득했다.

    신임 동방무맹주가 된 무명객이 처음 주재한 회의. 그래서 그런지 삼백여 명의 지휘부 고수들의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다.

    지난 한 달간 무명객은 총군사 풍류도인의 의견을 대폭 받아들여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핵심은 새롭게 맹의 일원으로 받아들인 흑도 무사들의 적절한 배치였다.

    십만에 달하는 그들의 능력에 맞게 주요 보직을 맡게 했다. 덕분에 사기가 매우 높아졌다.

    무명객은 흑백을 가리지 않고 그 능력에 맞게 지위를 부여했다.

    무공이 높은 흑도 고수들에게는 대거 장로 자리도 주었다. 하급무사들 역시 차별대우를 하지 않았다.

    다만 그동안의 행적을 살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죄를 지은 자들은 모두 잡아들였다. 그리고 무공폐쇄라는 엄중한 벌을 가했다.

    무엇보다 맹의 규율을 엄격히 재정비해 앞으로 양민들을 괴롭히는 행동을 하는 자는 가차 없이 처벌하기로 했다.

    기존 동방무맹 무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리가 있거나 평판이 좋지 못한 자는 어김없이 잡아들여 그 죄에 맞는 벌을 부가했다.

    단 한 달이지만 이렇게 숙청되거나 쫓아낸 무사들만 일만에 달했다.

    하지만 병력은 오히려 늘어났다.

    중도 성향의 무림인들이 대거 모여든 것이었다.

    무명객이 실제로 정사를 가리지 않고 공정한 인사를 단행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모여든 것이었다.

    사실 기존의 동방무맹은 너무 백도 위주로 돌아간 경향이 있었다.

    그 때문에 중도 성향의 무림인들 역시 흑도로 몰려 배척을 받기 일쑤였다.

    하지만 무명객이 공평한 인사를 단행하고 널리 인재를 받아들이자 그들 역시 닫힌 마음을 풀 수 있었다.

    그렇게 모인 무사들의 수는 모두 삼십만 정도.

    동방무맹 전체 무림인 수를 생각하면 상당히 많은 병력이었다.

    동방무맹 기존 지휘부의 변동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부맹주는 태극문주 태극검선이, 총군사는 풍류도인이 그대로 맡았다.

    태상장로 역시 백두노인이 유임되었다.

    변화가 가장 큰 것은 바로 맹주 자리였다.

    맹주에 무명객이 취임했다. 기존 맹주였던 백의무제는 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가 요양에 전념하고 있었다.

    무명객은 백의무제를 형식적이지만 태상맹주로 임명해 그 예우를 다했다.

    변화가 가장 큰 곳은 바로 장로원으로, 상당수 흑도 고수들을 장로로 임명해 그들의 불만을 달랬다.

    무명객은 앞으로 그들 중에 공을 세운 자가 나타나면 중요 보직에 임명할 것을 약속해주었다.

    그 외 몇몇 자리는 변동이 있었다. 김지혜가 동방무맹의 총순찰이 된 것이 그중 하나였다.

    그 외 무명객의 의제들인 부채도사와 백록공자는 좌우호법에 임명되어 맹주를 근접 호위하게 했다.

    영웅대회가 끝난 후 기존의 약속대로 동방비고를 적극적으로 개방해 자신의 실력에 맞게 무공을 익히게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동방비고에는 수십만 권이 넘는 비급이 있었다.

    그중 일반 무사들에게 개방된 곳은 일층으로, 이층과 삼층에 있는 상승비급들은 볼 수 없었다.

    아무리 개방을 한다고 하지만 상승무공이 수록된 비급까지 개방하면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층에 있는 비급만 해도 십만 권에 달했다. 그중 일부는 대단한 위력을 지니는 무공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동방비고에 들어간 무사들은 각기 한 가지 무공씩을 연마할 수 있었다. 그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단 한 달 만에 전체 무사들의 무공이 두 배 정도로 강화된 것이었다.

    무명객 역시 가만있지 않았다.

    그는 놀랍게도 동방비고에 있는 모든 무공을 섭렵했다.

    단 한 달 만에 수십만 권이 넘는 비급을 모두 본 것이었다.

    일반무사들에게 개방된 일층에 있는 비급은 물론이고, 맹주에게만 출입이 허가된 이삼층에 있는 비급들도 모두 보고 암기할 수 있었다.

    이는 특수한 대법을 이용한 덕분이었다. 아직 다 연마하지는 못했지만, 그 내용만큼은 모두 기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무명객 자신뿐이었다.

    그가 이번에 톡톡히 효험을 본 대법은 일종의 속독술로, 투시가 가능해 비급을 전체적으로 한번 쳐다보는 것만으로 모든 내용을 기억하는 게 가능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저녁이 되어 동방비고가 문을 닫을 때면 어김없이 들어가 그런 식으로 비급을 열람했다. 어제 비로소 모든 비급을 다 본 그는 지금은 빠르게 그 내용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특히 동방비고에는 중원 무공이 수록된 비급도 많았기에 무명객은 큰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기본적인 무공의 대성을 이룰 수 있었다.

    물론 이 모두가 그가 무형검을 연마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그는 자신이 이전에 익혔으나 아직 기억회복을 미처 못한 무공들도 모두 떠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 무공에는 흡수대법과 같은 마교의 무공과 육합계열 무공 등 기초 무공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마교 무공까지 익히고 있었다니 의외다. 마교 무사였던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런 무공까지 연마하고 있었다니. 가장 특이한 것은 바로 육합심법이란 무공이다. 육합계열 무공은 중원과 동방 무림 전체에 널리 퍼져 있으나, 이 육합심법이란 무공은 실로 처음 듣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이 육합심법이란 무공으로 인해 나의 과거를 알 수도 있을 듯하구나.’

    태사의에 앉은 무명객이 회의 중 잠시 휴식 시간을 이용해 상념에 잠겼다.

    옆에는 총순찰 김지혜가 앉아 있었다.

    “김 총순찰.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들어보겠소?”

    “네. 맹주님. 말씀하세요.”

    “혹시 육합심법이란 무공을 아시오?”

    “아, 그 무공을 어떻게 아세요? 육합심법은 저의 동료사범이 직접 창안한 심법이에요.”

    “아, 그렇소? 그 사람이 누구요?”

    무명객이 반색했다.

    중원과 동방을 오가며 견식이 넓은 김지혜라 그냥 한번 물어본 것이었다. 한데 대번에 안다는 대답을 들은 것이었다.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고, 저 역시 그 심법을 배우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육합심법을 직접 창안해 가르친 분은 바로 무정공자란 분이세요. 무정 사범이라고 불리셨지요.”

    “아! 그분은 지금 어디에 있소? 총순찰이 근무했다던 낙양 영웅무관에 있소?”

    “그게······.”

    김지혜가 안색을 굳혔다.

    무정공자를 떠올리면 아직도 눈물이 나는 그녀였다.

    애써 아직 살아있을 것이라고 믿지만 부녀자들을 구하고 산화했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분은 돌아가셨어요. 해남도 전투 때 일이지요. 하지만 저는 어딘가에 살아계시리라 믿어요. 아직 시신을 찾지 못했으니까요.”

    “아!”

    무명객이 탄성을 터뜨렸다.

    직감적으로 자신이 바로 그 무명 공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분이 어떻게 돌아가신 것이오?”

    무명객의 물음에 김지혜가 자신이 아는 바를 설명해주었다.

    무명객이 주목한 부분은 무정공자가 바다 한가운데서 실종된 점이었다.

    폭발과 함께 죽은 것으로 여겨진다지만, 무명객 자신이 바다에 떠다니다가 건져진 것을 생각하면 여러모로 맞았다.

    가장 유력한 증거는 바로 그가 알고 있는 육합심법이었다.

    마치 자신이 창안한 것처럼 그 내용이 전체적으로 관통이 되었다.

    특히 육합심법을 배운 사람 중에 당시 해남도에 간 사람은 소녀 세 명뿐이란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남자 관원이 해남도에 가지 않았다면 내가 정말 무정공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구나. 문제는 무정공자의 신원 역시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시간을 내어 영웅무관에 가봐야겠다.’

    무명객이 눈을 빛냈다.

    우연히 자신의 신세내력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알아낸 그였다.

    하지만 그다지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었고, 일단 동방무맹의 안정이 우선이었다.

    “무정 사범에게 육합십법을 배운 그 세 명의 소녀가 누구요?”

    “호호. 맹주님도 미인을 알아보시는군요. 그 세 명은 중원무림의 대표적인 미인들이에요. 백리설아, 백소영, 악미미 세 사람이지요. 이 중 백리 소저와 악 소저는 제가 일전에 설명해드린 무림삼미에 속하지요.”

    “아, 그렇구려. 기억하고 있소. 남은 무림삼미 중 한 명으로 중원무맹주 단목군의 딸인 단목수련이란 소녀도 해남도 전투에 참여했다고 했던 것 같은데······.”

    “네. 맞아요. 사실 무정 사범님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바로 단목 소저예요.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단목 소저는 특수 임무를 위해 설중화라는 와룡대원으로 행세했었는데, 해남도에 잠입해 해신을 암살하려는 무정 사범을 돕다가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해요.”

    김지혜가 그때 사정을 다시 한번 설명해줬다.

    이전에 한번 들은 이야기였지만 그때는 건성으로 들었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무정공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자 주의 깊게 들었다.

    ‘단목수련이라는 소저를 직접 만나 그때 상황을 들어보면 더욱더 명확해질 것이다.’

    무명객이 생각을 정리할 때.

    풍류도인의 보고가 이어졌다.

    “지난 한 달간 대인자문 놈들의 동태는 예상외로 조용합니다. 아무래도 맹주님께서 이전에 추측하신 대로 평범서생 그자가 대인자문주가 맞는 것 같습니다. 놈이 맹주님의 무공을 두려워해 총공격을 미루고 있는 것이지요.”

    “으음,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중원무맹에서는 지원 요청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했지요?”

    “네. 일단 중원무맹의 상황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미 마교와 혈교, 그리고 사사천교가 삼각동맹을 맺어 중원무맹을 협공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문파가 멸문을 당했고, 사망자는 수만 명이 넘고 있지요. 이대로는 중원무맹 총단이 있는 낙양이 함락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풍류도인의 말에 좌중이 술렁였다.

    만약 동방무맹이 무너지면 이것 또한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그 때문에 지난번 해남도 전투 때처럼 지원무사들을 파견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었다.

    물론 이미 중원무맹 총단 측에서 전서구를 보내 빠른 지원을 부탁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동방무맹 역시 대인자문 무사들의 침공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첩보에 의하면 대인자문 역시 무사들을 징발해 그 총수가 삼십 만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동방무맹 역시 삼십만 무사를 확보했으나, 아직 개인적인 무력에 있어 열세인 것은 사실이었다.

    비록 동방비고 개방으로 인해 무공이 급상승했으나, 대인자문 역시 마찬가지로 특수 훈련을 통해 무공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명객이 말했다.

    “중원무맹에 대한 지원을 더 미루는 것은 안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인자문 놈들의 공격에 대비도 해야 하니 전 병력을 보낼 수는 없습니다. 십만 정도 무사들을 보내 지원을 해주고 싶은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총군사부터 말씀해주십시오.”

    “저 역시 더는 미루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아직 확실하지 않으나, 대인자문 놈들이 무사들을 우리 동방무맹이 아닌 중원 쪽으로 보내고 있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단독으로 우리 동방무맹을 공략하는 것이 버겁다고 생각했는지, 중원무맹을 협공하고 있는 삼혈맹(三血盟)에 가담해 힘을 보탠 후 지원을 받아 우리 동방무맹을 침공하려는 계획이지요. 이미 은밀히 함선 수십 척이 중원 쪽으로 출발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네. 워낙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어 좀 더 확인 후 보고 드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 봐서 그렇게 파악하는 게 맞는다고 봅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더욱더 지원을 미룰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내일이라도 당장 십만 무사를 엄선해 낙양으로 파견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마교, 혈교, 사사천교로 이루어진 삼혈맹의 다음 목표는 우리 동방무림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번에 중원무맹을 도와 놈들을 제거하는 것이 바로 우리 동방무림을 지키는 길이 될 겁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한데 총 지휘자로 누구를 보내실 겁니까?”

    “으음,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본 맹주가 직접 무사들을 이끌고 가겠습니다. 중원 무림인사와 교분이 있는 총순찰을 데리고 갈 것이니, 총군사께서는 부맹주와 함께 총단을 잘 지켜주십시오.”

    “맹주님께서 가시면 우리 동방무림이 위험합니다. 차라리 부맹주를 보내십시오.”

    “그건 안 됩니다. 대인자문 놈들이 삼혈맹과 손잡은 게 사실이라면 충분한 병력을 보냈을 것이고, 당분간 우리 동방무림을 공격할 여력은 없을 겁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대인자문놈들까지 중원에서 제거하는 것이 효과적일 겁니다. 그렇게 알고 준비를 해주십시오. 십만을 데리고 가도 이십만 무사들이 남아 있으니 설령 놈들이 기습을 가해와도 바로 무너지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소식을 듣게 되면 곧장 총단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다들 제 명을 따라주십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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