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장] 절대신위 3
부채도사와 평범서생.
두 사람은 대결 시작이 되었음에도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무형의 기세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평범서생은 이전처럼 검을 들고 있었다.
부채도사는 부채를 비스듬히 들어 공격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두 사람 모두 미동도 없이 서 있었기 때문에 아직 우열을 가르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이전 대결에서 침착함을 잃지 않았던 부채도사가 언제부터인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 둘째가 밀리는구나. 평범서생 저자의 무공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무명객이 안색을 굳혔다.
사실 내심 부채도사의 승리를 점쳤던 그였다.
부채도사와 백록공자 두 사람 모두 대단한 고수이긴 하지만, 부채도사가 확연히 한 수 위였기 때문이었다.
반면 평범서생은 백록공자를 힘겹게 이기고 올라온 터라 그러한 예상은 대부분의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시작부터 밀리고 있는 것은 바로 부채도사였다.
“대단하군.”
부채도사가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평범서생이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별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검을 좀 더 높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 역시 무형의 기세만으로 부채도사을 이기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본격적인 대결을 벌일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한숨을 돌린 부채도사가 부채를 던졌다.
아니 부채가 그의 손에서 떠났다고 할 정도로 움직임이 적었다.
슈우우.
파공음에 비해 속도가 매우 느린 공격이었다.
무공을 배운 자라면 충분히 부채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평범서생이 처음으로 두 눈 가득 이채를 띠었다.
부채도사의 실력이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이었다.
“흐음.”
평범서생이 내공을 더욱 끌어올리며 검으로 부채를 내리쳤다.
그야말로 평범한 방어였다.
느리게 날아오는 부채.
그리고 서두르지 않고 기다렸다가 부채를 막는 검.
두 무기가 부딪치는 순간.
꽝, 하는 폭음과 함께 비무대가 크게 흔들렸다.
“으으······.”
부채도사가 신음을 내뱉으며 쌍장을 날렸다. 평범서생 역시 좌장으로 장풍을 쏟아냈다.
다시 한번 폭음과 함께 비무대가 흔들렸다.
부채도사가 신형을 솟구친 것은 그때였다.
십장 높이까지 치솟은 그는 허공을 선회하며 날아다니던 부채를 회수했다.
평범서생이 검을 높이 들고 날아오르자, 두 사람의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되었다.
까까까깡.
부채와 검이 서로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상대적으로 약할 것 같던 부채는 전혀 찢어지지 않았다.
평범서생의 검 역시 평범하면서도 비범했다.
특수 내력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부채를 막아내면서도 전혀 손상이 없었다.
이후는 치열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허공에서 수백 합을 겨루던 두 사람의 신형이 빠르게 원형으로 돌았다.
까까까깡.
금속성과 함께 검광이 짙게 쏟아졌다. 군웅들은 검광 때문에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정확하게 볼 수 없었다.
확실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은 무명객을 비롯한 몇몇 고수뿐이었다.
무명객이 보기에 부채도사가 처음의 열세를 조금씩 만회하고 있었다.
숨겨둔 힘을 발휘하자 힘의 균형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평범서생은 여전히 태연했다.
평범해 보이는 검초를 마치 연습하듯 뿌리며 대응을 해나갔다.
‘평범서생 역시 이제는 자신의 진짜 실력을 보이겠군. 그러지 않으면 둘째를 이길 수 없다.’
무명객이 눈을 빛냈다.
두 고수의 대결을 보고 그 역시 얻는 게 있었다.
자신이었으면 어떻게 평범서생을 상대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집중했다.
그 이면에는 혹시라도 백의무제 역시 평범서생에게 패배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부채도사는 지금 자신의 실력을 거의 다 드러내고 있었지만, 평범서생은 그러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승부는 이미 결정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좀체 평범서생은 비장의 한 수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 점이 무명객을 의아하게 했다.
비무시합에서 초반에 자신의 실력을 모두 드러내지 않는 것은 사실 매우 흔한 일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다음 상대가 자신의 무공을 간파해 싸움에서 불리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내공 소모를 감수하고 이렇게 지구전을 펼치는 것은 조금 의아한 일이었다.
‘혹시 본 실력을 보이기 힘든 사정이 있는 것일까.’
무명객이 의아해하는 순간.
평범서생의 검이 부채도사의 어깨를 찔렀다.
부채도사가 초반 내공의 소모를 이기지 못하고 움직임이 둔해진 때문이었다.
이후는 평범서생의 절대적 우세였다.
간신히 균형을 맞추어 가던 부채도사가 급격히 흔들렸다. 그 기회를 평범서생이 놓치지 않았다.
포위망을 좁혀 비무대 끝까지 부채도사를 몰아붙인 평범서생이 마지막엔 지풍을 날렸다.
“으윽!”
종아리를 맞은 부채도사가 비틀거렸다.
비무대 밑으로 떨어지기 직전.
부채도사가 부채를 확 폈다.
그러고 보니 그의 부채는 대결 도중 계속 접혀 있었다.
화라락.
부채가 펴지며 부챗살 수십 개가 암기처럼 날아갔다.
부채도사의 구명절초였다.
마치 비수 수십 개를 날리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놀라운 점은 그 속도였다.
마치 빛의 속도를 방불케 했다.
평범서생이 흠칫했다.
순간, 그의 전신에서 붉은빛이 우러나왔다.
호신강기를 최대한 높인 것이었다.
부챗살이 호신강기를 뚫지 못하고 우수수 떨어졌다.
부채도사의 안색이 더욱더 굳어졌다.
부챗살은 여분이 있어 다시 끼우면 되지만, 비장의 한 수가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조금 전 부챗살 공격을 펼치느라 내공의 소모가 극심했다.
퍽.
평범서생의 주먹에 턱을 맞은 그가 비무대 밑으로 떨어졌다.
“평범서생 승리!”
와아아.
짝짝짝.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백록공자와 김지혜가 쓰러진 부채도사를 부축했다.
무명객 역시 다가가 상세를 살폈다.
“괜찮은가?”
“네. 큰 부상은 아닙니다. 다만······.”
부채도사가 힘겹게 말했다.
괜찮다는 말과 달리 그는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입가에 피도 흐르고 있었다.
무명객이 내공을 넣어주자 그의 안색이 조금 회복되었다.
이미 오늘 시합은 모두 끝난 상황이라, 군웅들은 모두 흩어지고 있었다.
내일 무명객, 평범서생, 백의무제, 흑의무제 최종 4인의 대결을 기대하며 모두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마침 부산성에서 올라온 보고에도 대인자문의 본격적인 침공 소식은 없었다.
그 때문에 시합에서 패배한 태극검선도 부산성에 내려가지 않았다. 그는 내일 최종 승자가 배출되는 것을 확인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부채도사가 무명객에게 힘겹게 전음을 날렸다.
「큰형님. 평범서생 저자의 무공이 수상합니다. 특히 마지막 대결에서는 사기(邪氣)를 느꼈습니다. 그것도 매우 특수한 사기 말입니다.」
「그가 사파의 인물이란 말인가?」
「네. 하지만 우리 동방무림의 고수와는 다른 기운이었습니다. 중원무림 사파 고수도 아닌 것 같고······ 잘 모르겠습니다. 놈과 붙게 되면 조심하십시오. 놈은 아직 자신의 실력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알고 있네. 이제 좀 쉬게.」
무명객이 부채도사의 수혈을 짚었다.
계속 전음을 보내는 것이 무리였기에 편히 잠잘 수 있게 한 것이었다.
“잠이 들었으니 셋째가 돌보도록 하게.”
“네. 큰형님.”
백록공자가 부채도사를 업고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
처소는 동방무맹 총단에서 마련한 귀빈각이었다. 이번에 본선에 진출한 모든 사람이 그곳에서 대회 기간 내내 지낼 수 있었다.
무명객, 김지혜, 부채도사, 백록공자 네 사람 역시 대회장과 이동 거리가 짧은 귀빈각에 지내고 있었다.
“김 소저도 조부께 가보시오.”
“내일 시합 준비하는 데 제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알겠습니다. 지금은 따로 없습니다. 방에서 조용히 회복운공을 할 생각입니다.”
“네. 그럼 내일 봬요.”
김지혜가 인사한 후 태극검선의 처소로 갔다.
홀로 남은 무명객은 곧바로 자신의 방으로 왔다.
이미 밤이 늦어 회복운공을 한 후 한숨 잘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그다지 편하지는 않았다.
평범서생의 무공에 대해 아직 정확한 파악을 못 했기 때문이었다.
가부좌를 한 채 회복운공을 하며 그가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내일 두 무제 중 누구와 대결을 벌일지도 모르겠구나. 일단은 내 바람대로 흑의무제와 맞붙게 될 것 같은데, 아직 명확하게 결정이 되지 않았다고 하니······.’
무명객이 내일 붙게 될 상대를 생각했다.
처음 그가 최종 2인에 들게 되면 두 무제 중 흑의무제와 붙게 되리라 생각했다.
두 무제 중 한 명을 상대로 고를 수 있다고 들어 일부러 흑의무제를 선택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공식적인 답변이었다.
총군사 풍류도인의 말이었으니 확실했다.
‘지휘부에서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나와 평범서생 중 누구와 대결하는 것이 유리한지 지금쯤 결정이 되었겠지. 어쩌면 나에 대해서는 김 소저에게 물어볼 수도 있겠군.’
무명객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깊은 묵상에 잠겼다.
사실 회복운공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서둘러 회복운공을 끝낸 그가 마음을 편안히 하며 내일 있을 시합을 생각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밖에서 김지혜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명객님. 주무세요?”
“아닙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무명객의 말에 김지혜가 방으로 들어왔다.
“다행히 아직 안 주무셨군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네. 말씀하십시오.”
무명객이 미소를 지었다.
야심한 밤에 소녀가 자신의 방에 들어온 것이라 당황도 했지만, 내일 시합 때문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김지혜 역시 무명객의 인품을 믿는지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조금 전 할아버지 처소에서 총군사님을 뵀어요.”
“저에 관해 물어보시던가요?”
“네. 사실대로 말씀드렸어요.”
“뭐라고 하시던가요?”
“평범서생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 적인지 우군인지 알 수 없지만, 무명객님은 믿을 수 있겠다고 하셨어요.”
“그 말씀은 내일 대진표를 확정하셨다는 뜻이군요.”
“네. 내일 첫 시합은 백의무제님과 평범서생의 대결로 정해졌어요. 총군사님 말씀으로는 만에 하나라도 백의무제께서 패한다면, 무명객님이 반드시 흑의무제를 이겨달라고 하시더군요.”
“혹시 맹주님, 아니 백의무제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그건 아니에요. 다만 평범서생의 무공이 대단하고 그 사문이 불명확해 일단 그를 제압하시려는 것 같아요. 하지만 만에 하나로도 일이 어긋나면 최후의 희망을 무명객님께 건다는 뜻이지요.”
“백의무제님도 아십니까?”
“네. 이미 총군사님과 상의를 끝냈다고 하셨어요. 요컨대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백의무제님이 평범서생을 이겨도, 어차피 무명객님이 흑의무제에게 일부러 패할 이유는 없지 않나요?”
“그렇긴 합니다만 제 실력에 흑의무제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무슨 말씀이세요? 총군사님 말씀으로는 무공 파악이 안 되는 것은 오히려 평범서생보다 무명객님이라도 하더군요.”
“하하하.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하기야 저 역시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니······.”
무명객이 쓴웃음을 지었다.
김지혜가 미소를 지었다.
“여유가 있어 보여서 좋네요. 아닌 게 아니라 총단 지휘부에서 무명객님께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고 해요. 대회가 끝나면 반드시 중용될 거예요. 아무쪼록 내일 무운을 빌어요. 저는 무명객님이 새 맹주님이 된다고 해도 전혀 놀라지 않을 거예요.”
“과찬이십니다. 어찌 되었든 내일 최선을 다해 흑의무제를 꺾겠습니다.”
“감사해요. 그럼 편히 주무세요.”
“네. 내일 보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