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장] 절대신위 1
[제28장] 절대신위
둥둥둥!
북소리와 함께 영웅대회도 이제 절정을 향해 나가고 있었다.
본선 진출자 중 각 비무 승자가 총 여덟 명이 남게 된 지금 열기는 대단했다.
비무대를 쪼개 한 번에 열 번의 비무를 하게 한 것은 생각보다 훨씬 시간을 단축시켰다.
그래서 아직 해가 지지도 않았는데 하루 만에 여덟 명의 참가자만 남게 된 것이었다.
하루빨리 새 맹주를 뽑고 전열을 정비해야 할 동방무맹으로서는 일부러 대회를 늦출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내친김에 오늘 준결승 진출자 두 명을 뽑기로 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여덟 분은 다시 단상 위로 오르십시오. 대진표를 다시 짜야 할 것 같습니다.”
와아아.
둥둥둥.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후라 군웅들의 관심은 다시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무엇보다 최고수 반열에 오른 여덟 고수의 면면에 모든 이목이 쏠렸다.
그도 그럴 것이 여덟 명의 고수 중 상당수가 무명소졸이기 때문이었다.
그 점이 군웅들을 더욱더 들뜨게 했다.
무명소졸을 은거기인으로 생각해 오히려 더 기대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여덟 명 중에는 김지혜 말고도 부채도사, 백록공자, 무명객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행이라 할 수 있는 그들 네 명이 모두 계속 승리를 거둔 것이었다.
“공정하게 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출전 순서에 따라 대진표를 정하겠습니다. 다만 관례에 따라 서로 대결을 원하는 출전자들이 있으면 우선시하겠습니다.”
풍류도인의 말에 수십만 군웅들이 술렁였다.
대부분 동조를 하는 표정이었다. 벌써서로 대결을 벌였으면 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하지만 당사자인 시합 참가자의 의사가 우선이었다.
포문을 연 것은 바로 무명객이었다.
“백골객과 싸우고자 합니다.”
“하하하! 좋다. 무명객이라고 했나? 애송이 주제에 감히 나를 뽑다니, 간덩이가 부었군. 네놈 머리를 박살 내 주마.”
백골객이 어이가 없다는 듯 무명객을 노려봤다.
하지만 그의 경고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태극검선과의 첫 시합을 승리로 거둔 후 이어진 시합에서 백도 고수들을 모조리 죽인 그였기 때문이었다.
개중에는 실력 차가 많이 나서 굳이 죽일 필요가 없는 상대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 두수 만에 죽였다.
그 때문에 그는 흑도 측 무사들을 제외한 군웅들의 공분을 사고 있었다.
무명객이 백골객을 지목한 것은 당연히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였다.
백골객은 새로운 백골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아직 그 지팡이는 건재했다.
김지혜, 부채도사, 백록공자 세 사람의 무공이 높긴 하지만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 이유이기도 했다.
“좋습니다. 무명객과 백골객 두 분의 대결이 상호 합의로 결정되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싸우고 싶은 상대가 있으면 지금 말씀해주십시오. 없으면 순서대로 결정하겠습니다.”
풍류도인의 말에 남은 참가자들이 서로의 눈치를 봤다.
하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둥둥둥.
북소리가 한번 울린 후 결국 출전 순서에 따라 상대가 결정되었다.
첫 번째 시합은 무명객과 백골객 두 사람의 대결이었다.
한 차례 설전을 벌인 두 사람이었기에 생사결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예상은 대부분 백골객의 승리였다.
이는 백골객이 태극검선을 이겼기 때문으로, 그 결과에 대한 충격은 아직 남아 있었다.
반면 무명객은 모든 시합을 아슬아슬하게 승리를 거두고 올라왔다.
상대에게 중상을 입힌 경우도 거의 없었다.
무명객은 절세 경공인 지존비로 상대를 현혹했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장풍으로 상대를 비무대 밑으로 떨어뜨리는 전략을 사용했다.
하지만 백골객에게까지 그 방법이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후후후! 네놈이 나를 능멸했으니 반드시 죽이겠다. 그러하니 처음부터 최고의 무공을 펼치도록 해라. 저승에 가서 후회하지 말고. 그래도 지금까지 올라온 것은 한가락 한다는 말인데, 그냥 죽이려니 미안해서 하는 말이다.”
백골객이 백골 지팡이를 흔들며 말했다.
그의 지팡이는 공포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원래 백골 지팡이는 두 개 있었다.
그동안 강적을 만나지 않아 하나만 사용했는데, 이번에 숙적이라 할 수 있는 태극검선을 상대하는 데 하나를 사용한 셈이었다.
“실력이 있는 사람은 말이 적은 법이오. 그대는 이미 졌소. 이미 그대에게 당해 목숨을 잃은 사람이 여럿 있으니 본인 또한 사정을 봐주지 않겠소.”
무명객이 처음으로 지존검을 뽑았다.
백골객의 포악함이 너무 지나쳐 그 목숨을 거두려고 결정한 것 같았다.
물론 그를 따르는 흑도 무사들의 복수도 걱정이 되긴 했으나, 흑도 무사들의 특성상 강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다. 정정당당한 대결에서 승리하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지존검법을 처음으로 사용하게 되겠군. 방심하면 내가 질 수도 있다.’
무명객이 눈을 빛냈다.
앞선 시합들에서 자신이 실력을 어느 정도 확인한 그였다.
그 결과 자신의 무공 경지가 생각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알았다.
단순히 무형검 경지에 올랐다고 해서가 아니라 실전 운용에서도 그 위력을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미친놈! 네놈이 실성했구나. 어서 죽여주지.”
백골객이 백골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었다.
순간, 시독이 지팡이 끝에서 분출되어 무명객을 향해 날아왔다.
무명객이 지존검으로 가볍게 원호를 그렸다.
이는 태극검선이 취한 방어 전략과 유사했다
검기방패를 만들어 시독을 막아내지 않았던가.
하지만 무명객의 경우는 달랐다.
검기방패를 만든 것은 같았다. 하지만 그것에 그치지 않고 검기를 발출해 백골객을 노렸다.
“흥!”
백골객이 코웃음을 치며 백골 지팡이로 검기를 막았다.
꽈앙.
“으윽!”
백골객이 비명과 함께 뒤로 급히 물러났다.
그의 백골 지팡이는 가루가 되어 있었다.
단전 부위는 피에 물들어 있었다.
비무대 끝에 선 그가 피를 한 사발 정도 뿜어낸 후 비무대 밑으로 떨어졌다.
관리무사들이 급히 그를 부축했으나, 이미 정신을 잃은 후였다.
무명객이 담담히 말했다.
“원래는 목숨을 거두려 했으나 외적의 침입을 맞아 정사의 구별 없이 힘을 합치자는 대회의 취지에 맞게 무공만 폐쇄했소. 앞으로 은거를 하고 조용히 살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것이오.”
백골객이 들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었으나, 대신 군웅들이 모두 들었다.
이는 군웅들이 무명객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백골객을 압도적인 무력으로 이긴 그의 인기가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와아아아.
짝짝짝.
흑백 무림인 구별 없이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한데 특이하게도 흑도 무림인들의 함성이 더욱 컸다.
그도 그럴 것이 흑의무제의 신임을 등에 업고 백골객이 그동안 벌인 횡포가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진정으로 그를 존경하는 흑도 무림인은 거의 없었다.
백골객이 문주로 있는 백골문 무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그들은 복수 대신 다른 사람을 문주로 내세워 동방무맹에 참가할 것이었다.
무명객은 포권으로 박수 소리에 화답한 후 당당히 대기석으로 왔다.
이제 한 번만 더 승리하면 내일 두 무제 중 한 사람과 겨루게 될 것이었다.
‘지존검법 제 1초식인 지존천하(至尊天下)만으로도 웬만한 고수는 쉽게 상대할 수 있겠구나. 하기야 초식 하나에 변화만 수백 개이니······.’
무명객이 흡족해했다.
사실 실제 지존검법을 펼칠 때 우려가 적지 않았다.
특히 같은 초식이라도 상대에 맞게 힘을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한데 막상 펼쳐보니 생각보다 훨씬 쉬웠다.
마음먹은 대로 조절이 가능했다.
무명객은 그 이유가 바로 지존검이라고 생각했다.
‘지존검법은 지존검에 특화된 검법이다. 일반검으로는 위력도 약하지만 자칫 주화입마될 위험이 크다. 물론 아직 지존검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내지 못했지만, 역시 천하제일검이라 할 수 있구나.’
무명객이 지존검을 다시 한번 쓰다듬었다.
아닌 게 아니라 지존검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효험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존검에 내재한 기운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현상이었다.
처음에는 몰랐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청명한 기운이 지존검에서 흘러나와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기운은 마치 약수처럼 몸과 마음을 정화했다.
하지만 그 실체를 알기 힘들었다. 하지만 조금 전 검법을 펼치면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지존검법을 실전에서 사용할 때마다 더욱더 그 기운이 강해진다는 것을.
아마도 실전에서 지존검의 각성이 더욱 강해지기 때문인 것 같았다.
‘보검에는 검혼(劍魂)이라는 게 있다고 들었는데, 어쩌면 지존검에도 그러한 것이 있을지 모르겠구나.’
무명객이 생각에 잠시 잠기며 비무대 위에 오르는 두 사람을 봤다.
바로 김지혜와 한 흑의노인이었다.
흑의노인은 흑도 계열의 은거고수로 혈심노인(血心老人)이라 했다.
은거고수라고는 하지만 그는 사실 고수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자였다.
중립 성향의 고수인 그는 무공을 대성한 후 정사를 가리지 않고 비무행을 벌였다.
그 결과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다만 성격이 괴팍해 세력을 이루지 못하고 늘 혼자서 다녔다.
그에게 패한 무림인들은 체면을 생각해 쉬쉬했다. 그 때문에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십 년 전 소식이 끊겼는데, 오늘 이렇게 갑자기 나타난 것이었다.
김지혜가 혈심노인을 보며 안색을 굳혔다.
비록 태극단을 복용했다고는 하지만 상대의 무공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었다.
‘최선을 다할 수밖에. 내가 져도 무명객님이 있으니 큰 부담은 없다.’
김지혜가 미소를 지었다.
대진표에 따라 이번 대결의 승자가 무명객과 겨루게 될 예정이었다.
조금 전 무명객과 백골객의 대결을 직접 본 그녀였다.
그 결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무명객의 무공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솔직히 지존검법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은근히 자신이 있었던 그녀였다.
무명객의 무공이 비록 높지만 기억을 일부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실전에서는 약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실제로 무명객은 초반부터 경공과 장풍 외에 다른 무공은 거의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가볍게 펼친 지존검법을 보고 완전히 생각이 달라졌다.
‘무명객님이 있다고 해도 이번 승부는 사문의 명예가 걸려 있다.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
김지혜가 자세를 바로 했다.
그리고 검을 들었다.
아직 미숙하지만 태극검법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태극문 최고의 무공인 태극검법은 전 삼초, 후 삼초로 나뉘어 있었다.
김지혜가 연마한 태극검법은 전 삼초식이었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처음부터 전 삼초식 중 가장 마지막 초식인 태극제마(太極制魔)를 펼칠 생각이었다.
혈심노인은 느긋하게 기형도를 비스듬히 들고 있었다.
혈심도법(血心刀法).
무려 오십 년 동안 연마한 그의 독문도법이었다.
‘세력이 없는 내게 이번은 무림맹주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두 무제 역시 내 상대가 안 되거늘 어린 계집이 당돌하구나. 감히 나를 이기려 하다니.’
혈심노인이 무심히 김지혜를 쳐다봤다.
그녀가 태극검법을 펼치려 한다는 것을 이미 간파한 그였다.
“시작할까요?”
김지혜가 한 걸음 다가왔다.
혈심노인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태극선자! 나이에 비해 무공이 높은 것은 사실이나 아직 내 적수는 되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패배를 인정하고 비무대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 어떻겠냐?”
“그럴 수는 없지요.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알 수 있지 않나요?”
“맹랑한 계집. 오늘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보여주마.”
혈심노인이 그대로 도를 내리쳤다.
순간, 막강한 도강이 해일처럼 쏟아져 나왔다.
김지혜가 당황하지 않고 검을 수평으로 뻗었다.
바로 태극제마였다.
쏴아아.
슈우욱.
꽈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한 사람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으으······.”
바로 김지혜의 것이었다.
비무대 끝에 밀려난 그녀는 연신 비틀거리고 있었다.
속히 기혈을 안정시키지 않으면 다시 공격을 받아 비무대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컸다.
그 모습을 보고 군웅들이 하나같이 탄식했다.
사실 김지혜의 인기는 정사를 막론하고 가장 높았다.
한데 그런 그녀가 위기에 처한 것이다.
쿵.
혈심노인이 오른발로 비무대를 한번 세게 밟았다.
순간, 그 파동이 김지혜에까지 전달되었다.
“으윽!”
김지혜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비무대 밑으로 떨어졌다.
무명객이 급히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
내공을 넣어주자 빠르게 안색이 회복되었다.
“괜찮습니까?”
“네. 저는 괜찮아요. 무명객님이 저 대신 꼭 저자를 이겨주세요.”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