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84화 (84/250)

[제27장] 영웅대회 3

둥둥둥!

“영웅대회 개최를 선언합니다!”

동방무맹 총군사 풍류도인의 개최 선언에 수십만 군웅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

대인자문의 침공을 목전에 둔 위기 상황이라 그런지 비장함이 깃든 함성이었다.

영웅대회가 열리는 곳은 바로 동방무맹의 대연무장.

백만 명도 수용 가능한 곳이라 대회를 열기에는 충분했다.

“오늘 영웅대회의 의의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맹주님이 아닌 제가 개회 선언과 인사 말씀을 하게 된 것은 바로 맹주님께서 직접 시합에 출전하시기 때문입니다.”

와아아.

다시 한번 함성이 쏟아졌다.

동방무맹주 백의무제가 맹주 선출 시합에 나가기로 한 것은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 소식 역시 하루도 채 되지 않아 동방성 전체에 퍼졌다.

물론 흑도 수장이라 할 수 있는 흑의무제의 출전 또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 때문에 새 맹주는 두 사람 중 한 명이 될 거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었다.

새 맹주는 동방무림 역사상 최초로 흑백 무림을 통합해서 지휘하는 통합맹주가 될 가능성이 컸다.

이미 대회 결과에 승복하기로 흑백 무림인들 모두 맹세한 상황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게 대인자문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전 무림의 힘을 합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개별 무력에서 밀리는 동방 무림으로서는 단합을 통해 이를 극복하는 것이 최상책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일반 고수들의 시합 참가도 봇물이 터지듯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두 무제의 무공보다는 못하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이었다.

그럼에도 정상적인 시합 절차는 밟아야만 했다.

그렇게 해야만 새 맹주의 정통성이 확보되기 때문이었다.

풍류도인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이번 영웅대회의 목적은 새 맹주를 뽑아 대인자문 놈들을 막아내는 데 있습니다. 사실 현 맹주이신 백의무제께서는 이미 맹주 자리를 내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는 맹주님이라 부르지 않고 백의무제님으로 부르겠습니다. 이는 공평을 기하기 위한 것으로, 만약 백의무제께서 최종 승리를 거두신다면 다시 한번 맹주님이 되어 우리 동방무림 전체를 이끌게 될 것입니다.”

와아아!

함성이 다시 쏟아졌다.

이번에는 흑도 무림인들의 목소리가 더 컸다.

사실 흑도 쪽에서는 백의무제가 맹주 지위를 이용해 편파적으로 시합을 벌일 것이라는 우려가 매우 컸다.

하지만 미리 맹주 자리를 내놓았다고 발표하자 그런 우려가 상당히 가신 것 같았다.

물론 기존 동방무맹 무사들의 사기 또한 매우 높았다.

맹주 자리를 미리 내놓은 것 자체가 백의무제의 엄청난 자신감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이번 영웅대회의 주된 행사는 맹주 선출시합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비무시합을 영웅대회로 통칭하겠습니다. 참고로 영웅대회 본선 진출자는 모두 백이십팔 명입니다. 미리 고지한 대로 이들 본선 진출자들이 일대일 비무를 벌여 최종 두 명을 뽑을 겁니다. 그리고 그 두 명이 각각 두 분의 무제와 겨뤄 그 승자끼리 최종 결승을 벌이게 됩니다. 물론 최종 결승의 승자가 바로 통합 맹주가 되는 것이지요. 통합 무림맹의 이름은 동방무맹 그대로 사용할 것이라는 점도 미리 말씀드립니다. 그럼 지금부터 대회를 진행하겠습니다. 본선 진출자분들은 모두 단상 위로 올라와 주십시오.”

와아아.

짝짝짝.

엄청난 함성과 박수 소리와 함께 본선 진출자들이 단상 위에 올라왔다.

모두 백이십팔 명이었다.

그중 백 명 정도는 어제 예선을 통과한 사람들이었다. 나머지는 예선 없이 본선에 오른 유명 고수들이었다.

유명 고수 중에는 태극검선 등 동방무맹의 기존 지휘부 고수들이 대다수였으나, 이 또한 공평을 기하기 위해 흑도의 유명 고수들도 상당수 있었다.

예선을 통과한 백여 명의 고수 중에는 무명객, 김지혜, 부채도사, 백록공자 네 사람도 있음은 물론이었다.

그들은 단상 위에 상기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무명객은 군웅들을 한번 쳐다본 후 고개를 돌려 단상 뒷부분 귀빈석에 앉아 있는 삼백여 명의 고수들을 봤다.

그들은 동방무맹의 현 지휘부 고수들과 흑도의 유명 고수 중 시합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일종의 심사단 겸 감시단인 그들은 대회의 공정함을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있을 것이었다.

‘외적을 상대하는 데는 정사가 따로 없다고 하더니 생각보다 단결이 잘되고 있구나. 하지만 흑도 쪽 고수가 통합맹주가 되면 다시 화친론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무맹객이 눈을 빛냈다.

그랬다.

그의 생각대로 흑의무제 등 흑도 쪽 고수들이 맹주가 되면 화친론을 다시 주장할 가능성이 컸다.

백의무제 등 동방무맹 현 지휘부는 그 점을 우려해 미리 흑도 쪽에 다짐을 받으려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모든 결정 권한은 새 맹주가 가져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물론 현실적으로 흑도 쪽에서 통합맹주가 된다 해도 반드시 화친 쪽으로 기울어진다는 보장은 없었다.

대인자문 쪽에서 수뇌부 교체를 화친의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통합 맹주가 된 마당에 묵시적인 합의라 할 수 있는 전면전이 아니라 화친을 택하면 내부 분열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컸다.

둥둥둥!

“시간 절약을 위해 여덟 분의 참가자들이 남을 동안 동시 비무를 개최하겠습니다. 순서대로 두 명씩 한 조가 되어 비무대 위로 올라오시기 바랍니다.”

풍류도인의 말에 본선 진출자들이 순서대로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두 명씩 한 조가 되었는데, 그러한 조가 열 개 정도 되었다.

다시 말해 한 번에 스무 명씩 대결을 벌이게 되는 것이었다.

관람하는 군웅들 입장에서는 눈이 바빠지게 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자신과 가까이에 있는 개별 비무대 위의 시합만 보면 큰 문제가 없었다.

무명객은 가장 마지막 순서를 배정받았기 때문에 비교적 여유가 있었다.

반면 김지혜, 부채도사, 백록공자는 비교적 앞 순서를 배정받았다.

본선 시합 순서는 스스로 지원도 가능했다. 그들 세 명은 최대한 무명객과 초반에 부딪히는 것을 피하고자 초반 순서를 택한 것이었다.

얼마 후 각 조의 참가자들이 준비를 모두 마치자, 열 개조의 시합이 바로 개시되었다.

와아아.

차차차창.

“으윽!”

“하압!”

함성과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기합과 비명.

비무대 밑으로 떨어지는 것을 패배로 간주하는 시합 규칙에 맞춰 열띤 비무시합이 벌어졌다.

물론 생사결 까지도 허용된 시합이라 사상자도 속출했다.

특히 흑백 양도의 고수끼리 싸움이 벌어질 때 그런 경향이 더욱더 강했다.

평소 원한이 있던 문파 소속 고수들의 싸움에는 대놓고 상대의 목숨을 노렸다.

하지만 목숨이 위태롭다고 느껴질 때는 스스로 비무대 밑으로 내려와 위기를 넘길 수도 있어, 실제 사망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비무대 밑으로 떨어져 패배가 확정된 상대에게 공격을 가한 자는 실격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끝까지 목숨을 취하는 것 또한 어려웠다.

대기석으로 물러나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무명객은 찬찬히 여러 비무를 관전했다.

물론 그가 유심히 본 것은 김지혜와 부채도사, 백록공자 세 사람의 시합이었다.

그들 세 사람은 예상대로 어렵지 않게 첫 시합을 승리로 거두었다.

그것도 상대를 크게 다치게 하지 않고 무난하게 승리를 거둬 실력의 차이를 느끼게 했다.

무명객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바로 김지혜의 조부인 태극검선의 비무였다.

상대는 흑도 고수 중 명성이 매우 높은 백골객(白骨客)이란 사내였다.

백골객은 흑의무제의 오른팔 격으로, 이번 출전의 성격이 태극문 문주이자 동방무맹 부맹주인 태극검선과 유사했다.

두 무제의 혹시 모를 상황 변화를 대비해 두 사람이 출전한 것이었다.

혹시 모를 상황이라 함은 자객의 습격으로 백의무제와 흑의무제 두 사람이 각각 내상을 입는 경우였다.

사실 그럴 우려는 상당히 컸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은 오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준결승 시합이 벌어질 때까지 모처에서 시합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첫 시합부터 강한 상대를 만났군.”

태극검선이 백골객을 보며 담담히 말했다.

“흥! 일찌감치 나를 떨어뜨리기 위해 네놈들이 대결 순서를 조작한 것이 아니냐? 대종사께서 대의를 위해 이번 시합에 참여하셨지만, 네놈들 백도 놈들의 음흉한 계략에 속을 내가 아니다.”

백골객이 내공을 실어 소리쳤다.

그가 말한 대종사는 물론 흑의무제였다.

“하하하. 오해가 있었던 것 같소. 백골객 귀하와 나는 예선 없이 본선에 올라온 지라 우연히 이렇게 첫 번째로 만나게 된 듯하오. 혹여 자신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순서를 바꿔 달라고 주최 측에 부탁하시오. 혹시 모르니까.”

“태극검선 네놈이 나를 능멸하는 것이냐? 지난 수십 년 동안 네놈이 문주로 있는 태극문 놈들이 우리 백골문 제자를 수없이 죽였으니, 이 기회에 복수하겠다.”

“실력이 있다면 그렇게 해보시오. 다만 나를 이겨 혹시 맹주가 되면 대인자문 놈들은 확실하게 제거해주시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

백골객이 들고 있던 백골 지팡이를 휘둘렀다.

백골로 만든 이 지팡이에서는 극독의 일종인 시독이 묻어 있었다.

스치기만 해도 시독에 중독되어 상대는 한 줌 혈수로 변해 죽고 마는 것이다.

아무리 생사결이 허용된다고는 하나 너무 과도한 살공이 아닐 수 없었다.

태극검선이 자신의 애검인 태극검(太極劍)으로 가볍게 원호를 그렸다.

순간 검기 모양의 방패가 생겨났다.

바로 검기방패였다.

백골 지팡이에서 나온 시독이 그 검기방패에 막혀 더는 다가오지 못했다.

“갈!”

백골객이 빠르게 다가와 백골 지팡이로 태극검선의 머리를 강타했다.

태극검선이 신형을 솟구친 후 연속으로 검초를 뿌렸다.

바로 태극검법(太極劍法)이었다.

슈슈슉.

백골객 역시 만만치 않았다.

백골 지팡이로 태극검을 일일이 막아냈다.

까까까깡.

둔탁한 소리와 함께 치열한 대결이 벌어져다.

순식간에 수백 합을 겨룬 그들은 검광 속에서 대결을 이어갔다.

그야말로 막상막하였다.

군웅들 대부분이 두 사람의 대결을 보기 위해 몰려들 정도였다.

하지만 싸움의 여파로 생겨난 광채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스스슷.

게다가 비무대 밑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원형으로 돌며 싸우는 두 사람의 경력이 마치 먼지 회오리처럼 시야를 가렸다.

하지만 무명객은 두 사람의 움직임을 똑똑하게 볼 수 있었다.

‘대단한 무공들이군. 가히 두 무제를 제외하고 흑백 양측의 최고수라 할 수 있겠군. 백골객이 백도 고수들을 다치게 할까 봐 일부러 초반에 태극검선과 붙게 한 것 같은데, 쉽지 않을 것 같구나. 실력이 비슷해 실수를 안 하는 사람이 승리할 것 같다.’

무명객이 눈을 빛낸 순간.

백골객이 백골 지팡이를 던지는 광경이 보였다.

동시에 두 손으로는 쌍장을 날렸다. 바로 백골장풍(白骨掌風)이었다.

쏴아아.

태극검선이 다급한 표정으로 태극검을 십자로 휘둘렀다.

검기방패가 다시 생겨났고, 백골 지팡이가 튕겨 나가는 순간.

백골 지팡이가 그대로 터져버렸다.

콰콰쾅.

“으윽!”

태극검선이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백골 지팡이는 백골객이 수십 년 동안 사용하던 병장기라 지금처럼 폭발시키리라는 예상을 못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방심이 불러들인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기혈이 흔들리는 바람에 검기방패에 균열이 생겼고, 그 틈으로 백골장풍이 침투한 것이었다.

태극검선이 급히 호신강기를 두텁게 했으나, 비무대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비록 내상은 입지 않았지만, 그의 패배가 확정된 것이었다.

그로서는 태극검법의 최후초식을 아직 펼쳐보지 못했기에 아쉬운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태극검법 최후초식은 흑의무제를 상대할 때 써먹으려고 아껴둔 것이었다.

“아! 어찌 이런 일이······.”

태극검선이 통탄했으나 이미 늦은 후였다.

“백골객 승리!”

개별 비무대마다 배치된 심사단 무사가 백골객의 승리를 선언했다.

와아아아.

흑도 무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첫 승리를 거두고 관전을 하던 김지혜 등 백도 무사들이 탄식하며 아쉬워했다.

객관적인 실력에서 태극검선이 우세하다고 보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더욱더 그랬다.

“할아버지!”

김지혜가 부축하려 했으나, 태극검선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괜찮다. 이제 믿을 사람은 지혜 너뿐이구나. 내 몫까지 해다오.”

“네. 할아버지.”

김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태극검선이 패배하고 자리를 떴다.

무명객이 비무대 위에 오른 것은 얼마 후였다.

앞선 태극검선의 패배를 본 그가 눈을 빛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준결승까지 진출해야 할 것 같구나. 흑의무제를 이긴 후 최종 결승에서 백의무제께 승리를 양보하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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