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장] 영웅대회 2
이차 관문에 설치된 기관진식은 일종의 환상진법이었다.
실제 공격이 아니므로 참가자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대신 그 공격이 매우 강했다.
수백 수천 개가 넘는 암기 공격에 탈락자들이 속출했다.
암기를 맞고 쓰러진 참가자들은 곧바로 탈락이었다. 탈락자는 기관 밖에 자동으로 나오게 되어 있었다.
“으윽!”
“크윽!”
암기를 맞은 참가자들이 바닥에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신형이 광채를 내며 사라졌다.
환상진법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 눈에는 마치 소멸하는 것처럼 보였다.
“대단한 진법이군. 실제라고 해도 믿겠다.”
무명객이 지존보를 펼쳐 암기들을 피하며 눈을 빛냈다.
김지혜와 부채도사, 백록공자 세 사람은 일찌감치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제한 시간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기관을 통과하는 것이 다른 변수를 줄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무명객은 서두르지 않았다.
기관의 끝을 알 수 없어 초조할 만도 했지만, 자신의 속도에 따라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면서 지존보를 연습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른 팔대무공과 달리 지존보는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이전에 보법부터 연마한 것 같구나. 이전에는 일성 정도 익혔던 것 같군.’
무명객이 앞으로 나아가며 자신의 무공 경지를 가늠해봤다.
일단 무형검 초보에 접어든 것은 확실한 것 같았다.
다만 팔대무공은 모두 삼성 수준에 달해 있었다.
별다른 연마도 없었지만 팔대무공의 경우 깨달음이 중요해 곧바로 삼성에 도달한 것이었다. 무형법문의 도움을 톡톡히 본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명객은 아쉬운 점이 많았다.
‘너무 초조해하지 말자. 어쩌면 삼성 정도가 지금 내 수준에 있어 최선일지 모른다. 이 정도 수준으로 어느 정도 고수까지 상대할 수 있을지 궁금하구나.’
반시진이 다가오자 무명객이 속도를 높였다.
암기는 이제 수만 개가 넘었다. 각종 기관 공격도 끝없이 계속되었다.
주위 환경도 수시로 바뀌었다.
동굴 같은 긴 통로에서 절벽 위로, 어떤 때는 바닷속에 들어가 있기도 했다.
무명객은 그 모든 것이 환영이란 것을 알고 계속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드디어 출구가 보였다.
무명객이 빠르게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마지막 공격으로 불화살 한 대가 정면에서 날아왔다.
휘익.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빠르기였다.
무명객이 호신강기로 화살을 막아냈다.
“으음······.”
무명객이 가볍게 한번 비틀거린 후 기관 밖으로 나왔다.
“합격입니다!”
무명객의 합격을 선언하는 심사단 무사의 말에 출구 밖에서 기다리던 특별 관람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
짝짝짝.
무명객이 포권으로 답례했다.
출구 밖에는 김지혜, 부채도사, 백록공자 등 이차 합격자 삼십여 명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다들 힘들었는지 초췌한 표정이었다.
그때였다.
둥둥둥.
북소리와 함께 제한 시간 종료가 선언되었다.
“반시진이 지났습니다. 환상진법 가동을 멈추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짝짝짝.
백여 명 중 서른 명가량이 합격했다.
생각보다 적은 숫자였다.
‘잘하면 내일 본선 진출자가 백 명 정도로 줄어들 수도 있겠군. 대인자문의 공격이 임박해 일부러 난도를 올린 것인가.’
무명객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김지혜, 부채도사, 백록공자 세 사람에게 갔다.
“큰형님!”
“무명객님!”
일차 때처럼 다들 축하해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다지 놀라지 않는 모습이었다.
“괜찮습니까?”
“나는 괜찮네. 자네들은?”
“마지막 불화살 공격에 기혈이 조금 흔들렸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네. 마지막 불화살이 호신강기를 시험하는 것이더군.”
“네. 도저히 피할 수 없도록 만들어놓은 것이더군요. 그 때문에 막바지에 탈락자가 많이 나왔습니다.”
“그랬었군. 김 소저께서는 어떠합니까?”
“저도 기혈이 조금 흔들렸을 뿐이에요. 이제 마지막 관문이 남았네요. 생각보다 어려운 것으로 봐서 본선 진출자가 예상보다 훨씬 줄어들 것 같아요.”
“하기야 위기 상황에서 대회를 장기간 개최하는 것도 문제이니까요. 난도를 올린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김지혜가 말한 바로 그때.
심사단 무사가 말했다.
“합격자들은 마지막 삼차 관문장으로 이동하십시오.”
“네.”
* * *
“마지막 세 번째 관문은 자신의 절기를 심사위원분들께 보이는 겁니다. 순서대로 나와서 자신의 무공을 펼치면 됩니다. 참고로 심사위원 다섯 분 중 세 명이 합격 깃발을 들어주셔야 최종 합격이 되어 내일 본선에 진출할 수 있게 됩니다. 아무쪼록 모든 분께 행운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심사단 무사의 말이었다.
삼십여 명의 이차 합격자들이 순서대로 줄을 섰다.
물론 이차 합격자들이 그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앞선 참가자들도 백 명 단위로 이삼차 관문을 치렀다. 이후에도 다시 참가자들이 관문돌파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다만 접수는 오늘 해지기 전까지로 제한되어 있을 뿐이었다.
“첫 번째 참가자 나오십시오. 미리 말씀드리지만, 무공은 가장 자신 있는 것으로 지체 없이 펼치셔야 합니다. 머뭇거리게 되면 곧바로 탈락 판정을 받게 될 겁니다. 시간이 부족한 탓이니 다들 협조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십시오.”
심사단 무사가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짝짝짝.
격려의 박수가 쏟아졌다.
특별 관람객 천여 명의 박수였다.
무명객은 맨 마지막 순서라 느긋하게 기다렸다.
둥둥둥!
북소리가 울리자, 첫 번째 응시자가 검법을 펼쳤다.
휙휙휙.
날카로운 검초를 보인 그는 맨 마지막으로 근처에 비치된 바위 하나를 그대로 잘랐다.
쩍.
바위가 둘로 갈라지자 엄청난 박수가 쏟아졌다.
짝짝짝.
궁금한 것은 결과였다.
과연 심사위원 중 몇 명이 합격 깃발을 들어줄 것이냐가 관심 사항이었다.
휙휙휙!
깃발이 빠르게 올라갔다.
모두 두 명의 깃발이었다.
“불합격!”
비록 큰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바위를 두 동강 낸 것치고는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불합격된 무사 역시 억울한 표정이었다.
심사위원석 정 중앙에 앉아 있던 백의노인이 말했다.
“내공이 강하긴 하나 검초가 너무 단조로웠소. 아쉽게 생각하오. 그래도 이차 관문까지 통과했으니 정식무사가 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오.”
말을 한 사람은 심사위원장으로 동방무맹 태상장로 백두노인(白頭老人)이었다.
백두노인의 명성은 매우 높았다.
탈락자 역시 고개를 숙인 후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빠른 무공 시전과 그 평가가 이어졌다.
합격자는 두 명 중 한 명꼴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차 관문 합격자 역시 네 명밖에 남지 않았다.
바로 부채도사, 백록공자, 김지혜, 무명객 네 명이었다.
부채도사가 먼저 나왔다.
“부채도사라고 합니다.”
부채도사가 옆에 비치된 큼지막한 바위를 부채로 내리쳤다.
깡, 하는 소리와 함께 바위가 그대로 가루가 되어 버렸다.
도원결의 때 무명객에게 보여주었던 무공보다 한 단계 높은 무공 수위였다.
결과는 만장일치 합격이었다.
“합격!”
“감사합니다.”
부채도사가 심사위원들과 관람객들을 향해 포권했다.
다음은 백록공자로 그는 검법을 보여주었다.
휙휙휙.
지독하게 빠른 쾌검식.
일반 사람들은 검의 움직임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다만 파공성이 대단해 내공이 막대하다는 것을 다들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 역시 바위를 검으로 내리쳤다.
콰콰쾅.
바위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거의 가루 수준이었다.
결과는 부채도사와 마찬가지로 만장일치 합격.
와아아.
짝짝짝.
“합격!”
“초식도 훌륭하고 그 위력 또한 대단하오.”
백두노인이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었다.
다음 차례는 김지혜.
그녀의 인기는 이전 관문들에서도 입증이 되었지만 최고였다.
와아아.
짝짝짝.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합격한 것 같이 함성이 하늘을 찔렀다.
김지혜는 오른 주먹으로 역시 바위 하나를 강타했다.
순간, 바위가 그대로 가루로 변해버렸다.
놀라운 내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동방무맹에 복귀한 후 그동안 아껴두었던 가문의 내단을 복용했다.
태극단(太極丹)이란 것으로 한 알만 먹어도 일갑자 내공의 증진이 있었다.
그녀는 태극단의 약효를 완벽하게 흡수했다. 그 결과 내공 역시 일갑자 더 높아진 상태였다.
“합격!”
역시 만장일치 합격이었다.
관람객들이 환호한 것은 물론이었다.
박수 소리가 너무 커 다음 차례인 무명객이 부담을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무명객 역시 일차관문에서부터 인기를 얻고 있는 중이었다.
격려의 박수가 쏟아졌다.
다들 무명객이 어떤 무공을 보여줄지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무명객이 펼친 것은 다름 아닌 경공이었다.
팔대무공 중 가장 능숙한 지존비를 펼친 것이었다. 이는 의외이기도 했다.
최종 관문이기 때문에 보다 공격적인 무공이 훨씬 유리했다.
하지만 무명객이 보여준 지존비는 차원이 달랐다.
휙휙휙.
백장 거리를 마치 순간 이동을 하는 것처럼 갔다 왔다.
단순히 한 지점이 아니었다. 북두칠성 모양으로 일곱 군데를 그야말로 순간적으로 빠르게 경공으로 다녀온 것이었다.
너무나 빨랐기 때문에 그 잔영이 남아 북두칠성 모양을 만들었다.
이동하는 모습을 심사위원은 물론이고 아무도 보지 못했다.
말은 길었지만, 순식간의 일이었다.
백두노인이 탄성을 내며 제일 먼저 합격 깃발을 올렸다.
나머지 심사위원들 역시 올렸다. 결과는 만장일치 합격이었다.
와아아.
짝짝짝.
“직접 보고도 믿을 수가 없구려. 이형환위요? 아니면 경공이오?”
“경공입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오! 아직 더 발전할 여지가 있다는 말이오?”
“네. 배움에는 끝이 없는 게 아니겠습니까?”
“좋은 말이오. 무명객 그대를 기억하겠소.”
백두노인이 말을 한 후 자신 역시 박수를 보탰다.
짝짝짝.
“삼차 관문까지 통과하신 분들은 합격증을 받아 가십시오. 내일 아침 영웅대회 개막과 함께 본선이 시작되니 늦지 않게 오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본선은 일대일 비무 방식으로 거행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내일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심사단 무사의 말에 무명객, 김지혜 등 합격자들이 합격증을 받아갔다.
합격자는 십여 명이었다.
이대로라면 내일 본선 진출자는 백 명 안팎이 될 것 같았다.
무명객, 김지혜, 부채도사, 백록공자 네 명은 합격증을 받은 후 자연스레 다시 모였다.
화제는 단연 무명객의 무공이었다.
“정말 대단한 경공이었습니다. 일곱 방위를 단숨에 순간이동하여 일부러 북두칠성 잔영을 만들어 내다니. 아무도 따라 할 수 없는 신기였습니다.”
백록공자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하, 과찬이네. 그래 봤자 경공에 불과하네. 공격 무공에 자신이 없어 고육책으로 경공을 보여준 것이지. 실전무공이 약해 내일 비무가 걱정이네.”
김지혜가 고개를 저었다.
“겸손의 말씀이에요. 저는 무명객님이 강력한 우승 후보라고 생각해요. 제가 정말 고수를 알아보지 못했군요. 정말 감탄했어요.”
“아닙니다. 우승 후보는 바로 김 소저시지요. 아까 내공을 일부만 사용하신 게 아닙니까?”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지요?”
“여유가 있어 보이시더군요. 그것은 아직 보여주지 않은 것이 많다는 뜻이지요. 제발 내일 김 소저와 대결하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호호. 제가 할 말이에요. 저야말로 무명객님을 초반에 만나지 않았으면 해요.”
“하하하. 김 소저께서는 이제 저희는 신경도 안 쓰시는군요. 큰형님만 견제하시네요?”
부채도사가 웃으며 말했다.
“그게 아니에요.”
김지혜가 변명했지만, 웃음소리에 묻혀버렸다.
무명객이 말했다.
“모두 내일 최선을 다합시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그게 가장 중요할 듯합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