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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79화 (79/250)

[제26장] 지존검명 1

[제26장] 지존검명

다음 날 아침.

새벽 무렵에 백의각에 복귀한 무명객은 잠시 눈을 붙인 후 아침 식사를 했다.

식사 후 곧바로 작업에 투입될 예정이라 보수대원들이 지하 식당에 모여 있었다.

무명객은 제10조 보수대 대원들이 모여 있는 탁자에서 식사했다.

인원 점검의 편리함 때문에 아침 식사는 같은 조원끼리 모여서 해달라는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제10조 조장 이문수가 열심히 인원 파악을 하고 있었다.

조원이 백 명이나 되기 때문에 미리 파악해두는 것이었다.

“하하하. 한 분도 빠짐이 없이 모였군요. 나중에 작업에 투입될 때는 시간이 없으니 질문 있는 분은 지금 하셔도 좋겠습니다.”

이문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신의 조에 한 명의 이탈자도 나오지 않은 점이 뿌듯한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정식 무림맹 무사였다.

대부분 양민인 조원들을 이끌고 작업을 시켜야 하는 그는 이탈자가 나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성공적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이 근무평정에 들어가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조장님! 점심 식사는 어떻게 합니까? 뒷산에서 진지 보수 작업을 하면서 점심때 다시 이곳으로 와서 식사하는 겁니까?”

“하하하. 그건 아닙니다. 식부 하인들이 때에 맞춰 음식을 가져다줄 겁니다. 물론 식수는 작업 현장에 충분히 비치해 두어 목 마르는 일이 없도록 할 겁니다. 다른 질문은 없습니까?”

“동화산에 귀신 울음소리가 난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한 대원의 질문이었다.

특이한 질문이라 무명객을 비롯한 조원들이 고개를 들어 호기심을 나타냈다.

이문수가 껄껄 웃었다.

“하하하. 용바위 쪽에서 기이한 소리가 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짐승 울음 같기도 하고, 전설에서나 나오는 검의 울음 같기도 하지요. 사전 답사를 하러 갔을 때 분명 그런 소리가 들렸고, 지금도 가끔 들리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우리 작업은 낮에만 진행하기 때문에 위험하지도 않을 겁니다.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겁니다.”

“아직 그 소리의 정체에 대해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셨군요.”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모레 영웅대회가 열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대회 준비로 바쁩니다. 지금 그런 한가한 일에 인원을 투입할 여력이 없지요. 개인적으로 그 소리는 특별한 게 아니라 바람 소리가 아닌가 합니다. 동굴이 많은 곳이라 간혹 바람이 동굴 안팎으로 불면서 그런 소리가 나지요. 아, 이제 시간이 다 되었군요. 식사도 모두 마친 것 같으니, 이대로 바로 연무장에 모여 장비를 받고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일어나 주십시오.”

“네.”

보수대 제10조 조원 백 명이 이문수의 인솔하에 식당에 나와 대연무장으로 향했다.

대연무장에서 삽과 곡괭이 등 장비를 받은 그들은 줄을 지어 동화산으로 갔다.

총단 뒤에 병풍처럼 있는 동화산은 멀지 않았다. 조원들이 작업 현장에 도착하는 데 한 시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현장에 가보니 진지가 구축되어 있었다. 군데군데 손볼 부분이 많았다.

주로 짐승들이 훼손한 것으로 보였다. 간단한 설명을 듣고 모든 조원이 작업에 투입되었다.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농사일에 능숙한 양민이 대부분이라 숙련도 역시 높았다.

무명객은 묵묵히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

쉬는 시간이 거의 없어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어하는 사람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전혀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힘을 쓸수록 더 기운이 나는 게 아닌가.

‘기이한 일이군. 마치 마르지 않는 샘 같다.’

무명객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육체에 대한 확신이 드는 것.

그것 또한 자신감의 주요 원인이 될 수 있었다.

‘의동생들은 대회 준비를 잘 하고 있나 모르겠군.’

무명객이 문득 어제 의형제를 맺은 부채도사, 백록공자 두 사람을 떠올렸다.

만난 지 하루 만에 의형제를 맺은 것이 우습기도 했다. 그만큼 뜻이 통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 중요한 것은 마음이지. 알고 지낸 시간도 중요하지만, 그 마음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지.’

무명객이 마음을 편히 했다.

의동생이 두 명이나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영웅대회 후 객잔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었지. 만약 만나지 못하면 거처를 객잔에 남긴다고 했으니, 어떻게든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나 역시 영웅대회에 나가서 무사가 되는 것인데, 아직 무학 이론가에 불과하니······.’

무명객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무형검에 대한 이론 설파를 몇 번 한 후 집중을 해봤지만 여전히 어떤 무공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전에 무공을 배웠을 것이라는 추측도 그냥 추측일 뿐이었다.

역용술도 마찬가지였다.

얼굴 가죽을 만져보고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역용 흔적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모든 게 나의 망상이었을까. 머무는 바 없이 무공을 펼친다는 나의 주장도 실천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게 아닌가.’

무명객의 안색이 굳어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에 비해 의형제를 맺은 부채도사와 백록공자의 무공은 매우 뛰어났다.

도원결의 후 담소를 나누면서 그들은 각자의 무공을 보여주었다.

일장에 집채만 한 바위를 가루로 만드는 등 보는 사람의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고수였다.

영웅대회 우승이 목표라는 그들의 말도 진지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두 동생에게 비하면 나는 무공 면에서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지만 나와 의형제를 맺을 정도라면 내게 어떤 장점을 봤다는 말인데······.’

무명객이 천천히 자신의 마음을 살폈다.

물론 겉으로는 여전히 묵묵히 작업 중이었다.

‘누구나 한때 자신의 능력을 비하할 수 있고 실의에 빠질 수 있다. 이것은 섣불리 남과 비교하는 습관 때문이다. 하지만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길을 걸어간다면 어찌 실의에 빠질 것인가. 나를 믿어야 한다.’

무명객의 눈이 빛났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무공 구결 기억에만 매달려 실제 자신의 힘을 확인해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그는 지금 작업을 하면서 힘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주먹으로 뭔가를 한번 쳐보든가 하는 그런 단순한 힘의 확인이 한번 필요한 시점이었다.

‘굳이 머릿속에 떠올라야 무공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론은 그럴싸하게 만들어놓고, 실제 행동은 다른 사람과 똑같이 하고 있었구나.’

무명객이 바닥에 떨어진 돌멩이 하나를 주웠다.

조약돌 정도의 크기였으나 여간 단단한 게 아니었다.

무명객은 다른 사람 모르게 그 돌멩이를 한번 세게 쥐어봤다.

순간,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돌멩이가 손안에서 그대로 가루로 변한 것이었다.

푸시식.

가루가 된 돌멩이 잔해가 손가락 틈 사이로 흘러내렸다.

‘어찌 이런 일이······.’

무명객이 놀라며 이번에는 좀 더 큰 돌멩이를 가지고 시험해봤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힘을 조금 세게 주자 어김없이 가루로 변해버렸다.

그 결과 무명객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무공 구결은 생각이 안 나지만, 기본 내공은 추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강한 것 같다. 다만 어찌 된 일인지 겉으로는 전혀 표시 나지 않는다. 나조차 속을 정도로······.’

자신감을 얻은 무명객이 이번에는 작대 하나를 들고 마음대로 검초를 펼쳐봤다.

무의식적으로 아무 검법이라도 펼칠 수 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검초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기본 무공 발현 방법을 배워야 할 것 같구나. 내공은 끝이 없을 정도로 많은 것 같으니, 너무 서두르지 말자.’

무명객이 다시 마음을 다스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

총단 하인들이 주먹밥과 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무명객은 그늘이 있는 곳으로 갔다.

용바위 두 개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곳이었다.

무명객은 조용히 혼자서 식사했다.

사람들 역시 그에게 신경 쓰지 않고 대화를 나눴다. 그 내용은 역시 주전파와 화친파의 대립 문제였다.

“아, 글쎄 흑도 수장이라 할 수 있는 흑의무제(黑衣武帝)가 영웅대회 참가를 조건으로 맹주님께 맹주 자리를 요구했다더군. 그게 사실인가?”

“그렇다고 하네. 그냥 달라고 한 것은 아니고 대회 우승자에게 맹주 자리를 주자는 것인데, 의외로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고 있지.”

“그것은 무슨 이유인가? 흑도 세력까지 끌어안아 대인자문 놈들에게 대항할 수 있기 때문인가?”

“그러하네. 맹주께서 사석에서 맹주 자리를 내놓겠다고 말씀하신 적도 있다고 하네. 무엇보다 대회 출전자들에게 엄청난 동기부여가 되어 고수들이 대거 몰려들 수 있지.”

“그러다가 흑의무제가 무림맹주가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그렇게 크지 않을 걸세. 흑의무제가 출전하게 되면 맹주님 역시 참가하실 테니까. 만약 맹주님께서 결승에서 흑의무제를 이기면 흑도 십만 무사를 얻게 되니, 대인자문 놈들과도 한번 해볼 만하게 되는 것이지.”

“하기야 이십만 대 이십만으로 무사 수에서도 비슷해지게 되겠군. 맹주님께서 흑의무제의 조건을 받아들일까?”

“나는 받아들이시라 보네. 자리에 연연하는 분도 아닐뿐더러 지금은 대인자문 놈들을 막아내는 것이 급선무이니까. 내일 정식으로 그 문제에 대해 발표한다고 하니까 그때 보면 알겠지.”

“그렇겠군. 만약 그렇게 되면 이번 영웅대회는 정사를 막론하고 최고의 고수를 뽑는 대회가 되겠군. 우리 동방 무림의 최고수가 과연 누가 될까? 출신은 따로 안 본다면서?”

“그러하네. 우승자가 왜국 출신만 아니면 된다고 하네. 특히 주최 측에서 기대하고 있는 곳은 중원 무림이지. 중원에 고수가 많으니 이번 대회에 참가를 많이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큰 것 같아.”

“하기야 중원과 우리 동방 무림은 교류가 활발해 출신이 중요한 게 아니지. 사실 나는 중원무림의 최고수 중 한 명인 백자안 공자가 우리 동방무맹의 맹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

“백자안? 그가 그렇게 강한가?”

“물론이네. 그가 아니면 무정공자라고 최근 이름을 날린 고수가 있는데, 그 사람도 괜찮지. 다만 그는 해남도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알려져 가능성이 희박한 게 안타깝네.”

“나도 무정공자, 아니 무정 사범이란 자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네. 하지만 가장 강한 자는 아무래도 혼자서 왜구 오만 명을 죽인 화신이겠지.”

“화신 역시 죽었다고 알려졌지. 다만 무정 사범과 마찬가지로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으니, 그가 나타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걸세.”

“백자안, 무정공자, 화신 세 사람으로 압축되는군. 하지만 무정공자와 화신 두 사람은 죽었을 확률이 높고, 백자안 공자는 중원 무림 상황 역시 최악이라 우리 동방무림을 도와줄 여력이 없을 것이네. 결론적으로 믿을만한 사람은 우리 맹주님, 즉 백의무제님뿐이지.”

“하하하, 그러면 이번 대회 역시 백의무제와 흑의무제 두 고수의 대결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겠군.”

“물론이네. 동방쌍무제(東邦雙武帝)라 하면 중원 무림인들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지.”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가운데 무명객은 식사를 끝내고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햇살을 받으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었다.

몸속에 막대한 내공이 있다는 것이 확인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 힘을 사용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중이었다.

단순히 주먹질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기를 발출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장풍이라도 날릴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장법 하나만으로 고수가 된 사람도 많으니까.’

무명객이 미소를 지었다.

기억을 잃었을 뿐이지 무림의 상식까지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주로 중원무림 지식이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관련 내용이 떠오르고 있었다.

일종의 기억 회복이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었다.

그때였다.

용바위 근처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우우웅!”

“귀신 울음소리다!”

“이 소리가 바로 그 소리인가!”

사람들이 웅성댔다.

이문수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는 두 번째로 듣는 소리였다.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출처를 파악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소리가 용바위 주위에서 난다는 것만 느낄 뿐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사방에서 들리는 소리 같아 방향을 모르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무명객 역시 귀를 기울이며 눈을 빛냈다.

그의 청각은 매우 뛰어났다. 정신을 차린 후 그 사실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내공의 힘 때문이라는 것은 조금 전에야 알 수 있었다.

‘이건 검의 울음소리, 즉 검명(劍鳴)이다. 용바위 뒤쪽 수풀이 있는 곳에서 들리는데, 사람들이 그 위치를 모르는 것 같구나. 한데 이상하게 이곳 지리가 눈에 익다. 혹시 이전에 내가 한번 와본 곳일까. 작업을 마치고 주위를 한번 수색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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