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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71화 (71/250)
  • < [제23장] 구출 3 >

    백자안과 단목수련이 밀실에서 나온 것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두 사람은 각각 운송대주와 운송관으로 역용하고 있었다.

    그 말은 계획대로 스미치카와 키리히코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음을 의미했다.

    물론 두 사람의 시체는 해신대주와 히데히사의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갑판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대인자문 고수들이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아까 밀실에 내려가는 것을 막았던 대인자문 고수 타츠이가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해신대주를 죽이신 겁니까?”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이자들이 나와 운송관을 암살하려 했소. 놈들의 기운이 이상해 대비하지 않았다면 내가 당했을 것이오.”

    “해신대주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믿을 수가 없군요.”

    “나 또한 마찬가지요. 그래서 지금 최근 내가 익힌 섭혼술을 펼쳐 이번 일의 전모를 밝히려 하오.”

    “섭혼술 말입니까?”

    “그렇소. 사실 최근 후지산 어느 동굴 안에서 섭혼술에 관한 비급을 발견해 연마한 적이 있소. 특수 섭혼술이라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으면 실토를 받을 수 있을 것이오. 원래 바로 펼치려 했으나 내 말을 믿지 않을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이렇게 데리고 나온 것이오.”

    백자안의 말에 삼백여 대인자문 고수들이 다시 한번 놀랐다.

    상대를 미혹시키는 미혼술의 일종으로 간단한 섭혼술을 익힌 사람은 제법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죽은 사람의 입을 열게 하는 섭혼술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타츠이가 일단 해신대주 시체를 확인했다.

    대표로 나선 것은 그의 직책이 바로 운송대 부대주이기 때문이었다.

    “죽은 게 틀림없습니다.”

    타츠이가 확인해주자, 백자안이 곧바로 섭혼술을 펼쳤다.

    그 방법은 간단했다.

    손을 들어 상대의 정수리에 있는 백회혈에 대고 특수 진기를 넣는 것이었다.

    진기를 넣은 방식이 매우 교묘해 아무나 할 수 없긴 하지만 보기에는 너무 간단했다.

    번쩍.

    죽었던 타츠이가 눈을 떴다.

    눈빛은 잿빛이었다.

    백자안이 물었다.

    “사자(死者)여! 내가 묻는 말에 진실하게 대답하겠는가?”

    “네. 죽음의 신께 맹세합니다. 다만 어서 저승으로 가야 하니 간단하게 물어봐 주십시오.”

    “알겠다. 네가 나를 죽이려 한 이유가 무엇이냐? 누가 시켰느냐?”

    “말씀드리겠습니다. 운송대주님을 죽이려 했던 것은 바로 부녀자들을 구출해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저에게 명을 내린 사람은 바로 백자안입니다.”

    “무슨 황당한 이야기냐? 중원에 백자안이라는 고수가 있다는 이야기는 나도 들었다. 한데 왜 네놈이 그놈의 명을 들어야 한단 말이냐? 네놈은 해신의 경호를 책임지는 해신대의 대주가 아니냐?”

    “저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놈이 저를 특수대법을 통해 세뇌를 시켰습니다. 명을 듣지 않으면 바로 머리통이 박살 나도록 되어 있어 거역할 수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괜찮으냐?”

    “네. 이미 죽었는데 무슨 세뇌가 되겠습니까? 한때 친구였던 대주님을 암살하려다가 이렇게 당했으니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좋다. 백자안 그놈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복주 포구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복주로 가서 놈을 죽이면 될 겁니다.”

    “놈이 나를 보고 도주하지 않을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외람되지만 제가 운송대주님 행세를 하려 했거든요.”

    “날 밀실에서 죽인 후 내 얼굴로 역용하려 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아, 드릴 말씀이 많은데 저승사자가 불러서 더는 힘들겠습니다. 백자안 그놈을 이 기회에 죽이지 못하면 큰일입니다. 놈은 단신으로 본토에 가서 대인자문주님까지 죽일 생각이니까요. 그러하니 바로 본토로 가지 마시고 제 말대로 복주로 가서 놈을 제거하십시오. 아, 물론 놈이 두렵다면 그냥 본토로 가셔도 됩니다.”

    “네놈이! 내가 백자안 그놈 따위를 두려워하겠느냐? 다만 놈의 얼굴을 몰라서 가지 않으려는 것이다.”

    “놈이 스스로 다가올 겁니다. 운반선 백여 척이 보이면 혼자서 마중을 나올 것이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으윽!”

    해신대주가 비명과 함께 다시 숨을 거뒀다.

    섭혼술이 끝난 것 같았다.

    “어찌 이런 일이······.”

    백자안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타츠이가 물었다.

    “정말 대단한 섭혼술이군요.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놈의 권유대로 복주까지 가서 백자안 그놈을 죽일 겁니까?”

    “백자안 그놈의 무공은 매우 뛰어나다고 들었소. 여러분도 봤듯이 해신대주조차 놈에게 당해 꼭두각시가 되었소. 그냥 본토로 가는 게 좋겠소.”

    “하지만 문주님 안위에 관계된 일입니다. 이대로 계집들만 태우고 돌아갔다가 나중에 정말 백자안 그놈이 문주님을 암습이라도 한다면 그 책임은 우리 모두 지게 될 겁니다. 대주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무공이 문제라면 저희 삼백 고수가 있지 않습니까? 놈은 우리가 타고 있는 것까지는 모르고 있을 겁니다.”

    “으음, 운송관,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저 역시 부대주의 의견과 같습니다. 일단 백자안 그놈이 문주님을 노리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놈이 해신을 노린다는 이야기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해신을 죽이면 그다음 대상은 바로 본토에 계시는 문주님이시지요. 하지만 백자안 그놈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해남도에 들르지 않고 곧바로 복주로 가야 합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인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시간상으로 맞지 않습니다. 해남도에 가서 이 사실을 밝히면 해신이 만나보자고 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백자안이 눈치채고 그냥 달아날 공산이 큽니다. 둘째, 시간이 늦지 않는다고 해도 해신 측에 공을 빼앗길 우려가 있습니다. 대주님 혼자만이라면 해신에게 병력 지원을 요청해야 하나, 지금 우리 무력으로도 충분합니다. 백자안 그놈의 무공이 아무리 높아도 우리 삼백 고수의 합공을 막아내지 못할 것이니까요.”

    “좋다. 운송관의 뜻에 따르겠다. 부대주도 같은 생각이오?”

    “네. 어서 복주로 가시지요. 놈이 단신으로 우리 배에 올라타기만 하면 그때는 모든 게 순조로울 겁니다. 다만 적의 관할 영역이니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곧바로 철수해야 할 겁니다.”

    “좋소. 지금 바로 복주로 출발하겠소. 각 운반선에 연락해 뱃머리를 돌리게 하라!”

    “존명!”

    둥둥둥!

    북소리와 함께 각 배에 지시가 전달되었다.

    깃발을 이용하여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운반선 한 척에는 대인자문 무사 열 명이 타고 있었다.

    모두 백여 척이니 총 천여 명 정도.

    상당히 많은 숫자였다. 하지만 백자안이 아까 각 선박에 있는 대인자문 무사들을 보니 고수는 각 선박에 한두 명 정도뿐이었다.

    반면 지휘선에 있는 삼백 고수는 하나같이 무공이 출중해 부담이 컸다.

    ‘이놈들 처리는 일단 복주까지 가서 생각해보자. 해안 가까이만 가면 선원들이 없어도 아군을 불러서 뭍으로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놈들에게 섭혼술을 펼쳐 배를 포구까지 끌고 가는 방법도 있겠군.’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얼마 후 운반선들이 모두 뱃머리를 돌려 복주 쪽을 향하자, 북소리와 함께 일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 * *

    백여 척의 운반선이 해남도 동쪽으로 지날 때였다.

    해남도 쪽에서 큰 배 한 척이 빠르게 다가왔다.

    지휘선에 타고 있던 백자안과 단목수련이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타츠이가 말했다.

    “대주님. 해신대 지휘선입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하필 이런 때······.”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지금 배 안에는 해신대주의 시체가 있었다.

    해신대 지휘선에 타고 있는 해신사자들이 시체를 보게 되면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오해를 살 가능성이 있습니다. 해신사자들은 아직 해신대주가 백자안 그놈에게 세뇌를 당했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습니까? 시체를 수장시키십시오.”

    “좋은 생각이오. 해신대주와 히데히사 두 사람은 이미 본토로 돌아갔다고 합시다.”

    “알겠습니다.”

    타츠이가 무사 두 명을 시켜 해신대주와 히데히사의 시체를 바다에 버렸다.

    얼마 후 해신대 지휘선이 운송대 지휘선 지척까지 다가왔다.

    “무슨 일이오?”

    백자안이 물었다.

    해신사자 중 대표라 할 수 있는 해신수석사자가 말했다.

    “지금 어디를 가는 것이오? 본토로 돌아가지 않았소? 우리 대주님은 어디에 계시오?”

    “우리는 문주님의 특명을 받아 모처로 가는 중이오. 이것은 우리 대인자문의 문제이니 그대들은 간섭하지 마시오. 해신대주와 히데히사 두 사람은 벌써 해남도로 돌아갔소. 아직 만나지 못했소?”

    “그렇소. 대주님은 그렇다 치고 그대들이 이렇게 우리 허락도 없이 대륙 쪽으로 항해하는 것은 문제가 크오. 해남도 인근 해상의 경계는 우리 해신대 관할이니 속히 그 이유를 밝히시오.”

    “그대들도 대인자문 출신이 아니오? 본문에서 실질적인 파견을 보내준 사람도 많고 말이오. 한데 이렇게 우리 문주님의 위신을 생각하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려 하니, 그 뒷감당을 할 자신이 있소?”

    “우리는 해신님의 뜻을 최우선시하오. 어서 밝히시오. 안 그러면 저지할 수밖에 없소.”

    “으음, 좋소. 같은 편끼리 싸울 수도 없으니. 하지만 우리를 따라가서는 안 되오. 그대들이 따라가면 표적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오.”

    “표적이 누구요?”

    “백자안.”

    “백자안 그놈이?”

    “그렇소. 자세한 사정은 보안상 말해줄 수 없지만, 놈은 지금 우리를 기다리고 있소. 한데 그대들이 함께 가면 놈이 눈치를 채고 달아날 게 분명하오. 이제 내 말을 이해하겠소?”

    “으음, 그게 사실이라면 더욱더 우리가 가야 하오. 만약 우리 배가 문제라면 우리 해신사자들만 이 배로 옮겨오겠소.”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소?”

    “백자안 그놈은 우리 해신님을 암살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소. 우리가 힘을 보태면 놈을 잡기가 더욱더 쉬워질 것이오.”

    “우리만으로 충분하오. 거절하겠소.”

    백자안이 단호히 거절했다.

    대인자문 고수 삼백여 명에 각 운반선에 타고 있는 천여 명의 무사들을 모두 상대해야 했다. 한데 막강한 무공의 소유자인 해신사자들까지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해신사자들은 막무가내였다.

    허락도 받지 않고 해신사자 백여 명이 모두 백자안이 타고 있는 배로 건너와 버렸다.

    “이제 갑시다.”

    해신수석사자가 말한 후 자신이 타고 왔던 배를 해남도로 돌려보냈다.

    그 배 역시 삼백여 왜구들이 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백자안으로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배가 돌아갔기에 돌려보낼 도리도 없어 수락하고 말았다.

    “알겠소.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소. 백자안 그놈을 잡게 되면 그 공은 우리가 독차지할 것이오.”

    “알겠소.”

    해신수석사자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보고하게 되면 어느 쪽이 결정적인 공을 세웠는지 알려질 것이었다.

    오히려 이런 백자안의 의도적인 욕심이 그의 경계심을 풀리게 하는 작용을 했다.

    사실 그는 굳이 백자안을 잡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탔다기보다 대인자문 고수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였다.

    무엇보다 부녀자 삼만 명을 데리고 대륙 쪽으로 가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디로 가는지 이제 밝혀주시오.”

    “복주요. 놈들의 근거지이니 경거망동을 하지 말기 바라오.”

    < [제23장] 구출 3 >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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