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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69화 (69/250)
  • < [제23장] 구출 1 >

    [제23장] 구출

    해남도 남쪽 바다.

    지금 그곳에 백여 척의 배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삼만 부녀자를 압송할 운반선이었다.

    본토에서 보내온 운반선은 대인자문 소속 배였다.

    대인자문 소속 무사들은 기본적으로 색공 또한 익히고 있었기 때문에 여자가 항상 필요했다.

    단순히 노리개로 삼기 때문만이 아니라 내공 증진을 위해서 보다 많은 여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번에 대인자문이 왜구들의 지휘부를 장악하고 무공까지 전수한 것도 실은 그 이유가 컸다.

    백여 선박 중 가장 큰 배 위에 올라탄 노인 한 명이 앞을 가리켰다.

    “저기가 바로 해남도다. 도착 즉시 신속하게 계집들을 태운 후 본토로 돌아간다.”

    대인자문 운송대 대주 스미치카의 말에 배 위에 있던 백여 수하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존명!”

    “존명!”

    스미치카는 대인자문의 정식 장로 신분이었다.

    이번에 운송대를 꾸리면서 그가 총책임자를 맡게 된 것이었다.

    실무 책임을 맡으며 스미치카를 보좌하고 있는 운송관 키리히코가 말했다.

    “왜 아직 마중 나오는 사람들이 없을까요? 뱃길을 우리가 안다고 생각한 걸까요?”

    “좀 더 기다려라. 해신대주가 직접 마중을 나온다는 전서구를 받지 않았느냐?”

    “그건 그렇습니다만 자칫 대사를 그르칠까 걱정이 되어서 그럽니다. 이번에 삼만 계집을 데리고 가서 특수대법을 통해 그 음기를 내공으로 변환하게 되면 본문 무사들의 무공이 두 배 이상 강해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동방무림을 정복하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동방무림을 장악하면 그 이후는 중원무림이지요. 한데 이번에 보니 생각보다 쉽게 중원무림을 공략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 남방 무림에 한하지만 이미 점령지도 제법 되는 것 같고요. 곧 남해검파까지 장악하면 장차 본문의 중원 공략에 든든한 교두보가 될 겁니다.”

    “중원무림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전통의 중원무맹이 아직 건재하다. 마교와 사사천교, 혈교까지 막강한 힘을 비축하고 있지. 우리 대인자문이 그들 모두를 제압하려면 최소 삼 년은 걸릴 것이다. 물론 문주님께서 신공을 완성하시면 그 기간이 일 년으로 단축될 수도 있겠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지금 항간에 해신 미야모토가 문주님보다 무공이 더 강하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야말로 헛소리이지요. 미야모토가 문주님께 도전했다가 패배한 게 기정사실인데 왜 그런 소문이 퍼진지 모르겠습니다.”

    “문주님과 미야모토의 대결은 단둘이 벌였기에 그 결과는 사실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 때문에 미야모토 측에서 결과를 왜곡하는 소문을 퍼뜨린 것이지. 하지만 문주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지. 진정한 실력자이시기 때문이다. 미야모토 역시 그 사실을 깨닫고 문주님의 명에 복종하고 있는 것이지. 하지만 미야모토가 딴마음을 품는다면 그 역시 문주님 손에 죽을 것이다.”

    “하기야 신공을 완성하기 전에도 상대가 되지 않았는데, 고금제일신공을 문주님께서 완성하시면 일초지적도 되지 못하겠지요. 아, 저기 배가 보입니다.”

    키리히코가 전방을 가리켰다.

    안개를 뚫고 큰 배 한 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해신대주가 타고 있는 배였다.

    배 위에는 해신대주를 비롯해 해신대 대원 삼백여 명이 있었다.

    백자안과 단목수련 역시 그들 속에 있었다.

    간수장의 지휘서신을 해신대주에게 보여주자, 해신대주가 냉소를 지었다. 하지만 승선을 허락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그는 해신 미야모토를 만나 암살 음모에 대해 보고하려 했었다.

    하지만 갑자기 본토에서 운반선 백 척이 온다는 소식과 함께 마중을 나오게 된 것이었다.

    백자안과 단목수련은 아까부터 계속 전음으로 의논을 하고 있었다.

    별 뾰족한 방법이 없었지만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이었다.

    「일단 부녀자들을 배에 태운 후 남해검파가 있는 복주까지 그들을 데려다주는 것이 최선책이에요. 그게 안 된다면 운반선들을 모두 불태워 침몰시키는 것이 차선책이 될 거예요.」

    「동감이오. 하지만 삼만 부녀자를 태운 후 왜국 본토로 돌아갈 때 우리가 함께 갈 수 없는 게 문제요. 차라리 운반선을 불태우는 게 시간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겠소?」

    「하지만 그렇게 되면 부녀자들이 계속 고통을 받을 거예요. 하루가 늦어질수록 그만큼 피해도 커질 거예요. 지나간 일은 할 수 없지만 앞으로의 피해는 최대한 빨리 막아야 하지 않겠어요?」

    「알겠소. 그러면 일단 해신대주 저놈으로 내가 역용하는 게 필요할듯하오. 저놈이라면 나중에 배웅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가능하겠어요? 선실 안에는 해신사자 백 명도 있어요. 갑판 위의 해신대 대원들은 별것 아니지만, 해신사자들은 달라요.」

    「아, 물론 해신사자들이 모르게 해신대주를 죽일 것이오. 그런 후 감옥에 갇힌 부녀자들을 구한 후 미야모토를 만나 놈을 암살하겠소.」

    「알겠어요. 사범님을 믿겠어요. 문제는 해신대주 저자와 일대일로 이야기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겠군요.」

    단목수련이 운반선을 보고 히데히사 등 해신대 각 조 조장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해신대주를 쳐다봤다.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인 후 해신대주에게 다가갔다.

    “대주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오? 이제 곧 운반선과 조우하게 될 텐데 중요한 게 아니라면 나중에 이야기하시오.”

    해신대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백자안과 단목수련이 자신들을 감시한다는 기분이 들어 최대한 말을 섞지 않았다.

    병풍처럼 그냥 세워둘 생각이었다.

    “대주님. 카즈지로와 사사키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백자안의 말에 해신대 제100조 조장 히데히사가 다가왔다.

    “타케요시. 그 문제라면 나에게 말하시오. 그 녀석들이 뭐 사고라도 쳤소?”

    “물론이오. 놈들이 하극상을 벌여 내가 죽였소.”

    “뭣이라고?”

    히데히사는 물론이고 해신대주 역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단목수련이 말했다.

    “모두 사실입니다. 사사키 그놈을 죽일 때는 저도 함께 있었지요. 어차피 알려질 일이라 지금이라도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놈들이 무슨 하극상을 저질렀다는 것이오?”

    히데히사의 물음에 백자안이 천천히 설명했다.

    대충 둘러댄 것이었으나 하여튼 두 사람이 죽은 것은 사실로 받아졌다.

    해신대주가 말했다.

    “그래서 내게 하자고 하는 말이 무엇이오?”

    “대주님과 독대를 하고 싶습니다. 카즈지로 그놈이 죽기 전에 중요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들어서는 안 될 이야기로 판단했습니다. 그 내용은 오직 저만이 알고 있으며 간수장님도 모르십니다.”

    “으음,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구려. 좋소. 독대를 해주겠소. 혹시 조건이라도 있소?”

    “하하하. 역시 화통하시군요. 모두 다 있는 곳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바로 그렇습니다. 이번 운송작전이 끝나면 저와 소타 두 사람을 해신대로 넣어주십시오. 일단 조장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어차피 계집들을 본토로 보낸 후 저희 간수부대가 할 일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겁니다. 차후 전면전이 벌어지면 전투 부대에 들어가게 될 가능성이 커지겠지요. 그래서 이왕이면 특수부대 중 제일이라는 해신대에 들어가고 싶은 겁니다.”

    “으음, 그야 어렵지 않소. 따라 오시오. 반시진 안에 운반선과 우리 배가 만나게 될 것이니, 많은 시간은 할애해줄 수 없소.”

    “물론입니다. 잠시면 됩니다.”

    백자안이 해신대주를 따라 선실로 내려갔다.

    바로 지휘실이었다.

    지휘실 안에는 백여 명의 해신사자들이 앉아 있었다.

    다들 편한 자세로 운공을 하며 쉬고 있었다.

    그들은 유사시를 대비한 전력이기 때문에 이번 부녀자 운송 작전에 그다지 할 일이 없었다.

    해신대주가 백자안을 데려간 곳은 공교롭게도 지휘실 가장 안쪽에 있는 밀실이었다.

    조금이라도 싸우는 소리가 들리면 해신사자들이 듣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밀실이라 기본적인 방음장치가 있어 크게 소리만 나지 않으면 모를 수도 있었다.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해신대주 이자의 무공은 매우 높다. 일격에 죽이지 못하면 지휘실 안에 있는 해신사자들이 몰려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백자안이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가 사용할 무공은 무명지(無名指)였다.

    팔대무공 중 지풍에 해당하는 무명지는 그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백자안이 이 무명지를 일성 정도 연마하는 데 성공한 것은 며칠 전이었다.

    천마진기를 흡수한 덕분에 깨달음이 깊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다른 팔대무공 역시 무명검법을 제외하고 다들 일성씩을 달성했다.

    처음에는 육합계열 무공만 깨달음이 깊어졌으나, 차차 팔대무공 역시 효과를 보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백자안에게 매우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천마석실에서 우연히 얻게 된 천마진기가 그에게 생각하지 못한 수련 효과를  가져왔다.

    참고로 팔대무공은 다음과 같았다.

    무명보, 무명권(無名拳), 무명장, 무명지, 무명비, 무명검법, 무명도법(無名刀法), 무명금광(無名金光)이 바로 그것이었다.

    무명검법은 기본적으로 지존검이 있어야 제대로 된 연마를 할 수 있어 논외로 하고, 나머지 역시 사실 장구한 시간이 걸리는 무공들이었다.

    그 때문에 백자안 역시 처음에는 가장 기초적인 팔대무공인 무명보를 일성 익히는 데 석 달 가량의 시간이 걸렸었다.

    하지만 다른 무공들은 무명보법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의기소침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사실 무명보를 연마할 때 다른 팔대무공도 조금씩 건드려본 그였다.

    하지만 좀체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무명보라도 일성까지는 연마하자는 생각에 나중에는 다른 팔대무공을 아예 연마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뜻하지 않는 천마진기 흡수로 숨통이 튀었다.

    별 노력 없이 대부분의 팔대무공을 일성까지 연마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는 이제 깨달음의 문제였다.

    팔대무공은 근본적으로 깨달음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라, 이성부터는 연마 시간보다 깨달음이 훨씬 중요했다.

    “무슨 말인지 어서 해보게.”

    해신대주가 담담히 말했다.

    여전히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것이 백자안을 고깝게 보는 것 같았다.

    백자안이 우수를 내밀어 그대로 지풍을 날렸다.

    삼만 부녀자들의 운명이 달린 것이라 공격의 수단 방법을 가릴 여유가 없었다.

    무명지가 발사되자, 해신대주가 본능적으로 움찔했다.

    하지만 그는 역시 고수였다.

    자동적인 호신강기가 전신을 감쌌다.

    지풍이 그 호신강기를 뚫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푹.

    해신대주가 이마에 구멍이 뚫리며 그대로 즉사했다.

    무명지는 상대의 호신강기를 무력화하는 특징이 있었다. 그가 자신의 호신강기를 너무 과신한 탓이었다.

    차라리 신법을 펼쳐 피했다면, 목숨은 건질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면 그때 해신사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백자안은 급히 섭혼술을 펼쳤다.

    밀실 밖에 있는 해신사자 몇 명이 움찔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어서 섭혼술을 마무리하고 역용술을 펼쳐야 했다.

    “대주님. 무슨 일입니까?”

    해신사자 한 명의 목소리가 밀실 밖에서 들렸다.

    섭혼술을 마친 백자안이 해신대주의 모습으로 바꿨다.

    물론 해신대주의 시체는 타케요시의 것으로 바꿔주었다.

    백자안이 심호흡을 한번 한 후 문을 열었다.

    타케요시의 시체를 본 해신사자가 놀란 탄성을 내었다.

    다른 해신사자들 역시 급히 다가와 상황을 목도했다.

    그 기도들이 백자안을 위축시켰지만, 최대한 담담히 말했다.

    “타케요시 이자가 감히 하극상을 벌여 단죄했소. 별일 아니니 신경을 쓰지 마시오.”

    백자안이 해신사자 한 사람에게 명해 갑판 위에 있는 히데히사와 단목수련을 밀실로 데려오게 했다.

    얼마 후 영문도 모르는 히데히사과 단목수련이 들어오자, 백자안이 밀실 문을 잠갔다.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도 신경 쓰지 마시오. 소타 이자의 공범 여부를 밝혀야 하니까.”

    “네. 알아서 하십시오.”

    해신사자들이 웃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 이후 상황은 간단했다.

    영문을 모르던 히데히사를 죽인 후 다시 섭혼술을 펼쳤다. 그리고 단목수련으로 하여금 그로 역용하게 했다.

    히데히사의 시체를 소타의 것으로 바꿔놓은 것은 물론이었다.

    밀실 문이 열리자 해신사자들은 예상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백자안은 갑판 위에 있던 해신대 무사들을 불러 두 시체를 바다에 버리게 했다.

    시체들을 처리한 바로 그때.

    백여 척의 운반선들이 백자안과 단목수련 등이 타고 있는 지휘선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하하하. 해신대주. 오랜만이오.”

    운송대주 스미치카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백자안 역시 손을 흔들었다.

    “어서 오시오. 먼 길에 수고가 많았소. 어서 우리 배로 건너와 술이나 한잔합시다.”

    “그럽시다.”

    < [제23장] 구출 1 >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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