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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68화 (68/250)
  • < [제22장] 해남도 3 >

    “그게 아니라 죄수를 어디로 데리고 가는 지 저희도 알아야 할 게 아닙니까? 나중에 간수장님이 여쭤보시면 그냥 부간수장님이 차출해갔다고 말씀드리면 되는 겁니까?”

    백자안의 말에 부간수장이 노기를 더욱 띠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부녀자 한 명을 데려가 욕심을 채운 후 바다에 버린 것이 벌써 한 달째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해남감옥 간수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일반 간수들은 상부의 엄명 때문에 감히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지만, 부간수 이상은 사정이 달랐다.

    부녀자를 수시로 데려가 욕심을 채우는 것은 부간수장 열 명 모두 똑같이 저지르는 일이었다.

    물론 간수장을 비롯하여 각 특수부대의 대주들, 그리고 해신 미야모토에게도 매일 밤 부녀자가 상납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어김없이 욕심을 채운 후 부녀자를 죽여 수장시켰다.

    희생된 부녀자들은 간수들이 명을 받고 골라서 집무실까지 데려갔는데, 유독 제10 부간수장만은 자신이 직접 골랐다.

    한 감방 안에는 대략 백여 명의 부녀자가 있었다. 그중에 자신의 취향에 맞는 여자가 꼭 한 명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한데 하필 오늘이 백자안과 단목수련이 담당하고 있는 감방 차례였다.

    물론 백자안과 단목수련이 해신대에서 온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뭔가 죄를 짓고 온 것이라는 것을 그 역시 눈치채고 있었다.

    게다가 해신대주 역시 매일 밤 여자를 상납받고 있었으며 개중에 가장 심한 편이었다.

    그래서 어떤 반발도 없으리라 생각했다. 한데 백자안이 이런 식으로 나온 것이었다.

    “카즈지로. 한 번 더 내 말에 토를 달면 명령불복죄로 목을 베겠다. 계집을 차출해나가는 것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더는 내 심기를 건드리지 말도록. 알겠나?”

    “네.”

    백자안이 어쩔 수 없이 일단 대답을 했다.

    간수실에는 다른 간수 백여 명이 있었다.

    교대 시간이라 제10 간수부대 간수 전원이 거의 다 모여 있었다.

    그들은 제10 부간수장에게 대드는 백자안을 보며 혀를 차고 있었다.

    사실 선임 간수들인 자신들이 미리 설명을 해줘야 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굳이 공개적으로 말할 수도 없는 내용이었다.

    백자안이 결국 수긍을 하자, 더는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이었다.

    다만 부간수장에 대한 인사는 모두 깍듯이 하고 있었다.

    “가시지요.”

    백자안이 단목수련과 함께 부간수장을 안내했다.

    감방문을 여는 열쇠는 백자안이 가지고 있었다.

    부녀자를 한 명 내주고 단목수련과 임무 교대를 하면 되었다.

    단목수련이 급히 전음을 날렸다.

    「무정 사범님. 정말 이자에게 여자를 내주실 건가요? 여자를 내주면 분명 간살할 거예요. 여러 경로로 들은 정보로 거의 확실해요. 어떻게든 막아야 해요.」

    「나 역시 고민 중이오. 좋은 방법이 없겠소? 최대한 조용히 처리해야 할 것 같은데······.」

    「어차피 제거해야 할 자이니 이 기회에 무정 사범님이 이자로 행세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부간수장이라면 간수장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고, 간수장 정도면 해신을 직접 만나보지는 못해도 작전회의에 참석할 수 있을 거예요.」

    「알겠소. 그렇게 합시다.」

    백자안이 동의를 했다.

    이제 문제는 부간수장을 제거하는 방법이었다.

    일단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으로 가야 했다.

    그러한 곳이 마침 있긴 했다.

    감방이 있는 통로 맨 끝에 빈 감방 하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자안이 뒤따라오는 부간수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뭐 하는 것이냐?”

    부간수장이 놀랄 때 백자안이 지풍을 날려 그의 사혈을 찍어버렸다.

    워낙 빠른 공격이라 주위에 있던 간수들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단목수련이 자연스럽게 부간수장을 부축했다.

    백자안과 함께 그를 데리고 마지막 감방 쪽으로 갔다.

    마침 그 감방은 백자안과 단목수련이 관리하는 감방 바로 옆이었다.

    당시 다른 간수들 대여섯 명이 주위에 있었으나, 백자안과 단목수련이 부간수장을 자연스럽게 부축하고 있어 이상한 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백자안이 다른 간수들이 듣도록 언성을 높였다.

    “저 빈 감방에서 제게 할 말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설마 저를 혼내시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간수들이 그제야 힐끔힐끔 돌아봤다.

    하지만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부간수장의 뒷모습이었다.

    게다가 백자안이 섭혼술을 펼치며 그의 육신을 조종하고 있었다. 발놀림이 죽은 자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렇게 간수들이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는 가운데, 백자안 혼자 부간수장을 데리고 빈 감방 안에 들어갔다.

    단목수련은 들어가지 않고 감방 앞에 있었다.

    얼마 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윽! 부간수장님!”

    백자안의 비명이었다.

    간수들이 급히 뛰어와 감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제10 부간수장과 감방 바닥에 쓰러져 죽어 있는 백자안의 모습이 보였다.

    물론 그사이 백자안이 부간수장을 죽이고 그로 역용한 것이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다른 간수 한 명이 급히 물었다.

    백자안이 말했다.

    “카즈지로 이놈이 갑자기 나를 죽이려 했다. 조금 전 내게 대들어 후환을 걱정한 모양인데, 내가 가까스로 공격을 피한 후 놈을 죽였다. 상부에는 하극상 죄로 보고할 수 있도록.”

    “네.”

    “네.”

    어차피 백자안과 단목수련 두 사람은 해신대 출신이라 간수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까 백자안이 대드는 것을 모두 목격한 터라,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백자안이 단목수련을 향해 말했다.

    “사사키. 네놈 역시 수상하다. 안심이 안 되니 너는 앞으로 사흘간 내 호위가 되어 충성심을 보여라.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명을 따르겠습니다.”

    단목수련이 고개를 숙였다.

    백자안이 뒤처리를 간수들에게 명한 후 단목수련과 함께 감옥에서 나왔다.

    두 사람이 향한 곳은 바로 조금 전 죽은 제10 부간수장의 막사였다.

    * * *

    죽은 제10 부간수장의 이름은 타케요시였다.

    따라서 백자안의 이름 역시 카즈지로에서 타케요시로 바뀌었다.

    부간수장의 막사는 해남감옥의 출구 쪽에 있었다.

    왜구들 대부분은 인근에 있는 포구에 배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전각은 따로 없었다.

    물론 기존 해남도 관아의 간수들이 쓰던 건물이 있었으나, 전투 중 불타고 지금은 남아 있지 않았다.

    백자안은 막사에 들어오기 전 주위를 둘러봤다. 대연무장처럼 넓은 곳에 막사 수백 개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왜구 간수 천여 명이 숙소로 사용하는 곳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건가요? 이번 일이 해신대주에게 알려지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예요.”

    “물론 놈이 이번 일을 듣게 되면 단목 소저를 소환할 가능성이 있소. 그전에 단목 소저 역시 다른 사람으로 역용을 해야 할 듯하오.”

    “하기야 그게 가장 안전하겠네요. 하지만 누구를 제물로 삼아야 할지······.”

    단목수련이 말을 한 그때였다.

    막사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며 중년 왜구 한 명이 들어왔다.

    한데 그는 바로 제9 부간수장이 아닌가.

    백자안은 섭혼술로 인해 그의 이름과 특징 등을 알고 있었다.

    “소타. 어쩐 일인가?”

    백자안이 자연스럽게 물었다.

    제9 부간수장 소타가 막사 안을 두리번거렸다.

    “새 계집 하나 데려온다고 하더니 어디 있는가? 오늘 밤 계집들 모두 본토로 보낸다고 마지막으로 계집 한 명을 고른다고 하지 않았나? 한데 계집 대신 사내 간수를 데려왔군. 이놈은 뭔가?”

    “사사키라고 합니다.”

    단목수련이 고개를 숙였다.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섭혼술로 얻은 기억에 없는 부분을 소타가 말했기 때문이었다.

    “본토로 보내는 것이 확실히 결정되었나?”

    백자안이 눈치채지 않을 정도로 넘겨짚어 보았다.

    “물론이지. 아침에 내가 말하지 않았나? 지금 바로 간수장님 주최로 간부회의가 열릴 예정이네. 오늘 밤 본토에서 운반선 백 척이 도착할 예정이지. 한 배에 삼백 명의 계집을 태우면 되네. 해신께서도 허락한 사항이니 배가 도착하자마자 계집들을 감옥에서 끌어내 태울 것이네.”

    “아, 그랬었지. 알겠네. 헉! 저게 뭐지?”

    백자안이 손으로 소타 뒤를 가리켰다.

    소타가 고개를 돌린 순간.

    백자안이 그의 사혈을 찍었다.

    소타가 비명도 없이 즉사했다.

    그 후는 일사천리였다.

    섭혼술을 펼쳐 기억을 빼앗은 후 이전처럼 단목수련에게 전해주었다.

    단목수련이 다시 역용술을 펼쳐 소타로 변한 것은 물론이었다.

    문제는 소타의 시체였다. 백자안이 그를 사사키 시체로 바꿔버렸다.

    이후 수하들을 부른 백자안은 사사키가 하극상을 저질러 죽였다고 밝히고 즉시 수장할 것을 명했다.

    왜구들은 죽으면 대부분 수장을 시킨다.

    인근에 포구가 있어 바로 명이 시행되었다.

    “진급하는 게 쉽네요. 반나절 만에 간수에서 부간수장이 되다니.”

    단목수련이 미소를 지었다.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간부회의가 열리니 어서 갑시다. 놈들의 부녀자 압송 계획을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막아야 할 것 같소.”

    “동감이에요.”

    얼마 후 도착한 간수장 지휘막사에는 간수장 주재로 부간수장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백자안과 단목수련이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그들이 가장 마지막으로 도착한 부간수장이었다.

    “타케요시. 소타. 어서 오시오 바로 작전회의를 시작하겠소.”

    간수장 아키토미의 말이었다.

    “네. 말씀하십시오.”

    “말씀하십시오.”

    부간수장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아키토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에 모두에게 알렸듯이 오늘 밤 본토에서 출발한 운반선 백 척이 도착하오. 우리 임무는 계집 삼만 명을 무사히 배에 실어 보내는 것이오. 물론 간부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출발 직전에 백 명의 계집은 남겨둘 생각이오. 남길 계집들은 출발 직전에 고를 생각이니, 일단은 모두 태우도록 하시오. 예상 출발 시각은 오늘 밤 자정이니 모든 일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진행하기 바라오. 질문이 있소?”

    “운반선을 마중 나갈 사람은 없습니까? 혹시 놈들이 정보를 듣고 운반선을 공격이라도 한다면 큰일이 아닙니까?”

    백자안의 물음이었다.

    아키토미가 눈을 빛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해신대주가 직접 무사들을 데리고 마중 나가기로 했으니까.”

    “해신대주는 믿을 수 없습니다. 그는 우리 간수 부대를 얕보는 자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각 전투부대의 대주는 나와 동급이긴 하나 실제 세력은 우리 간수 부대보다 열 배 이상 강하오. 인원 역시 열 배이니 어쩌면 더 강할지도 모르겠군. 우리끼리 있으니 이번 한 번 만은 봐주겠지만, 괜히 분란을 조장하는 말은 삼가시오.”

    “그게 아닙니다. 오늘만 해도 해신대에서 파견한 간수 두 명이 하극상을 벌여 제가 직접 처단했습니다.”

    백자안이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다들 놀라는 표정이었다.

    백자안이 말했다.

    “저와 소타 두 사람이라도 보내주십시오. 병력은 필요 없습니다. 해신대주 그가 딴 짓을 하는지만 지켜보겠습니다.”

    “으음, 알겠소. 안 그래도 연락 임무를 맡을 사람을 보내야 했는데 잘 되었소. 잠시 후 출발한다고 들었으니 지금 바로 포구로 가보시오.”

    아키토미가 말한 후 지휘 서신을 한 장 써 주었다.

    백자안이 서신을 받아 품속에 넣은 후 단목수련과 함께 지휘막사에서 나왔다.

    “어서 갑시다.”

    “네.”

    < [제22장] 해남도 3 >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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