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67화 (67/250)
  • < [제22장] 해남도 2 >

    “지금 뭐라고 했느냐? 암살이라고? 누가 감히 해신님을 암살할 수 있다는 말이냐?”

    해신대주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적잖이 당황하는 것 같았다.

    단목수련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다.

    옆에 있던 히데히사가 말했다.

    “사사키. 네놈이 죽기 싫어 마음대로 혓바닥을 놀리는구나. 대주님. 더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곧바로 목을 베어야 합니다. 이놈들이 그런 소리를 들었다면 저에게 먼저 보고했을 겁니다.”

    “아니다. 좀 더 들어보자. 아닌 게 아니라 해신님을 암살하려는 움직임이 놈들 진영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해신님이 돌아가시면 관례에 따라 우리 모두 본토로 돌아가야 하니, 놈들이 마지막 발악으로 충분히 시도할 수 있는 것이지.”

    “하지만 해신님의 무공은 천하무적입니다. 이미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분인데, 어찌 암살에 당하겠습니까?”

    “물론 해신님은 무적이시니 암살 따위에 당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하지만 살수가 해남도에 진입해 해신님께 공격을 시도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만 해도 우리는 모두 할복해야 한다.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하지만 이놈들이 거짓말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네 이놈들! 암살은 무슨 암살이냐? 도대체 놈들 중에 어떤 고수가 있어 해신님을 암살할 수 있다는 말이냐?”

    “백자안.”

    단목수련이 담담히 말했다.

    옆에 있던 백자안이 오히려 깜짝 놀랐다.

    하지만 기호지세라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단목수련의 재치를 믿고 있는 것이다.

    단목수련이 실은 설중화라는 사실을 안 이후부터 그녀에 대한 인상이 매우 달라졌다.

    친근감이 들며 그 말에 신뢰감이 더 느껴졌다.

    사람은 같은 사람인데 그러한 느낌의 변화는 백자안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백자안 그놈이 남해검파로 왔다는 말이냐?”

    “네. 놈들이 분명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해신님은 백자안 그놈에게 죽을 거라고.”

    “다른 말은 안 하더냐?”

    “했습니다. 하지만 특급 보안 사항이라 해신님께 직접 말씀드려야 합니다. 제 말은 모두 끝났습니다.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단목수련이 눈을 감았다.

    더는 암살과 관련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히데히사가 말했다.

    “놈들에게 속으면 안 됩니다. 우리 중에 백자안 그놈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얼마든지 꾸며댈 수 있습니다.”

    “으음, 헷갈리는군.”

    해신대주가 눈썹을 찌푸렸다.

    백자안이 말했다.

    “대주님. 저희가 정말 죽을 죄를 지은 겁니까? 저희 두 사람은 죽을힘을 다해 놈들을 죽였습니다. 놈들은 정말 고수였습니다. 동료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절대 처치하지 못했을 겁니다. 한데 오히려 저희보고 할복을 명한 것은 이번 일을 그냥 덮어버리려는 의도가 아니십니까? 지금까지 패전을 몰랐던 해신대에 오명을 남겨선 안 되니까요.”

    “네놈이!”

    해신대주가 우수를 높이 들었다.

    당장에라도 백자안을 죽일 기세였다.

    사실 백자안과 단목수련 두 사람을 모두 살려둘 필요는 없었다.

    미심쩍지만 뭔가 정보를 알고 있는 듯한 단목수련만 살려둬도 충분한 것이다.

    히데히사가 검을 휘둘러 백자안의 목을 베어간 것은 그 직후였다.

    백자안이 정곡을 찔렀기 때문에 이를 빌미로 죽여도 추궁을 당할 것 같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그의 검을 막은 사람은 바로 해신대주였다.

    “대주님! 왜 그러십니까? 카즈지로 이놈은 대주님을 능멸했습니다. 죽어 마땅합니다.”

    “아니다. 놈의 말이 옳다. 죽을 정도의 죄를 지은 것은 아니지. 히데히사 너도 알다시피 우리 해신대 일만 무사는 해신님 휘하 직속 경호부대다. 다른 전투 부대보다 그 전투력이 훨씬 높지. 그래서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전사자도 나오지 않았다. 한데 갑자기 스무 명 가까운 전사자가 나와 아예 이 일을 덮어버리려 했던 것이다. 너도 알고 있었느냐?”

    “네. 저 또한 상부에 보고할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알게 되면 다른 부대 대주들이 비웃을 것이며, 해신님 또한 진노하실 것이니까요.”

    “그렇다. 우리 해신대는 끝까지 무적이어야 한다. 이미 육지 전투는 우리 측 승리가 확정적이다. 오만 무사가 지금 무서운 속도로 남해검파로 진격 중이지. 남해검파에 무림맹과 정의련에서 온 무사들이 있다고는 하나 우리 적수는 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때 비록 소규모 전투였으나, 사망자가 다수 나왔다는 사실이 알려져서야 하겠느냐?”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이놈들 처리에 대한 결론을 내려주십시오. 어찌 되었든 해신님께 데려가는 것만은 절대 안 됩니다. 분명 앙심을 품고 우리 두 사람을 모함할 겁니다.”

    “으음, 그럴 수도 있겠군. 이 문제는 보통 문제가 아니니 간자를 보내 암살 관련 사실을 알아보겠다. 그동안 이놈들은 해남도 감옥에 보낸다.”

    “감방에 쳐 넣으실 겁니까?”

    “그건 아니다. 간수로 보낼 것이다. 카즈지로, 사사키. 들었느냐? 네놈들이 이치에 닿지 않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해신님과 관련한 중요 사항이라 잠시 살려두는 것이다. 그곳에서 입을 꾹 닫고 조용히 간수 임무만 수행하면 용서해주는 것도 고려해보겠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백자안과 단목수련이 고개를 숙였다.

    히데히사가 말했다.

    “사사키. 대주님이 선처를 해주셨으니, 지금이라도 아까 하지 못한 말을 해라. 대주님께서 네놈들을 다시 죽이라고 번복하시는 않을 것이다.”

    “정말입니까? 해신님 이름으로 약속하시면 모든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단목수련의 말에 해신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약속하마.”

    사실 간자를 보내 상황을 알아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곧 전면전이 벌어질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단목수련이 말했다.

    “사실 우리 두 사람은 놈들과 싸우다가 전력의 열세를 깨닫고 죽은 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놈들이 서로 이야기를 하더군요. 곧 백자안 그놈이 단독으로 대장선으로 가서 해신님을 암살할 계획이라고. 그러면서 그 방법으로 대주님을 죽인 후 역용을 한다고 했습니다.”

    “백자안 그놈이 나를 죽이고 나 대신 대주 행세를 하려 했다는 말이냐?”

    “네. 물론 그놈들끼리의 말이라 확신할 수는 없으나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다가 놈들이 뒤를 돌아본 순간 저와 부조장이 암기를 날려 해치웠지요. 하지만 놈들이 바로 죽지 않아 배에 불을 질러 수장시킨 겁니다.”

    “으음, 좋다. 네 말이 사실이라고 하자. 한데 왜 해신님께 직접 보고하려 한 것이냐?”

    “죄송하지만 대주님을 완전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이미 백자안 그놈에게 당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아니 그보다 이 사실을 해신님께만 전해 암습에 대비하시라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그전에 소문이 나면 백자안 그놈이 작전을 변경할 수 있으니까요. 이상입니다.”

    “으음, 일리가 없지는 않군. 좋다. 일단 해남도 감옥에 가서 간수로 있어라. 감옥과 대장선과는 거리가 가까우니 내가 해신님께 보고를 드리면서 필요하면 너희를 부르겠다. 우리 대원들이 전사한 사실은 비밀에 부쳐야 한다. 전사자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알겠느냐?”

    “네.”

    “명심하겠습니다.”

    백자안과 단목수련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히데히사가 말했다.

    “조원들에는 제가 철저히 입단속 시키겠습니다.”

    “당연하지. 히데히사 네가 이 둘을 감옥에 데려다줘라. 죄수들이 수만 명이 넘어 간수들이 모자란다고 하니 환영할 것이다. 단 두 명이지만 그래도 해신대 대원이니까.”

    “존명!”

    히데히사가 백자안과 단목수련을 데리고 지휘실에서 나갔다.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던 해신사자 중 한 명이 말했다.

    “대주님. 저놈들의 말을 정말 믿으십니까?”

    “그렇지는 않소. 하지만 우리 첩보 사항과 비슷해서 일단 해신님께 보고를 드리려는 것이오. 아, 물론 보고가 끝나고 해신님께서 저놈들을 보고자 하지 않으시면, 그때는 바로 죽일 것이오. 감히 나와 흥정을 하려 하다니 간이 배 밖에 나왔다고 할 수 있지.”

    “하하하. 역시 대주님이십니다.”

    * * *

    해남도 감옥.

    해남감옥이라 불리는 이곳은 원래 대륙에서 죄를 지은 죄인을 데려와 가두던 곳이었다.

    하지만 왜구들이 해남도를 점령한 이후에는 양민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감옥에 갇힌 양민들은 대부분 해남도 백성들이었다.

    왜구들의 통치에 반항하거나 불만을 토로했다는 죄목이었다. 하지만 실제는 왜국 본토로 데려갈 부녀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감옥에 갇힌 부녀자들의 수는 자그마치 삼만 명이었다.

    젊고 예쁜 여자들만 추려서 언제라도 본토로 데려갈 수 있게 준비를 해두는 의미였다.

    부녀자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영문을 모르다가 간수들의 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왜국으로 압송된다는 말을 들은 부녀자들은 대성통곡을 했다. 하지만 힘없는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본토로 데려갈 때까지 간수들에게 부녀자를 범하지 말라는 엄명이 떨어졌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간수 중 일부는 암암리에 마음에 드는 부녀자를 골라 욕심을 채울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백자안과 단목수련이 해남감옥에 도착했을 때는 다음날 새벽이었다.

    곧바로 간단한 절차를 거쳐 간수가 되었다.

    두 사람은 다행히 한 조가 되어 감방 하나를 교대로 감시하게 되었다.

    하는 일은 매일 인원을 점검하고 밥을 갖다주는 일이었다.

    두 사람이 조용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교대시간이었다.

    정오 무렵 두 사람이 간수실에서 전음으로 대화를 나눴다.

    「무정 사범님.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여기서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지 않겠어요?」

    「해신대주 그자가 우리를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오. 놈이 우리를 불러 죽이려 할 때 분명 주위에 사람이 적을 것이니, 그때 놈을 죽이겠소.」

    「부르지 않을 수도 있어요. 이곳에서 시간만 보낼 가능성도 매우 높아요.」

    「아, 물론 그런 상황이 되면 다른 방법을 강구할 것이오. 다행히 이곳 해남감옥과 대장선이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 정 안된다면 내일 밤쯤 잠입해 미야모토를 제거할 생각이오. 물론 대주급 고수로 역용해 지척까지 가서 기습하는 것보다는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미룰 수가 없으니 어쩌겠소?」

    「네. 좀 더 상황을 두고 보지요.」

    단목수련이 전음을 날렸을 때.

    부간수장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해남감옥에 있는 왜구 간수의 수는 대략 천 명 정도였다.

    지휘체계는 간수들을 총지휘하는 간수장 아래 열 명의 부간수장이 있었다. 부간수장은 각각 백 명의 간수를 거느리고 있었다.

    지금 나타난 부간수장은 제10 부간수장이었다.

    “부간수장님!”

    백자안과 단목수련이 고개를 숙였다.

    오늘 새벽에 봤던 자였다.

    부간수장이 말했다.

    “계집 한 명을 차출해야겠다. 어서 가자.”

    “무슨 이유로 말입니까?”

    “웬 잔말이 많으냐? 건방진 놈들. 네놈들이 해신대 출신이라고 내게 대드는 것이냐?”

    < [제22장] 해남도 2 > 끝

    ⓒ 행호사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