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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66화 (66/250)
  • < [제22장] 해남도 1 >

    [제22장] 해남도

    “웬 놈들이냐?”

    목선에 탄 왜구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쾌속선에 탄 사람이 백자안과 단목수련 두 사람밖에 안 보이자 일단 확인부터 하려는 것 같았다.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해신을 만나 뵙고 아뢸 말씀이 있어 해남도에 가는 길이오.”

    “네놈들이 감히! 해신님을 뵈려 한다는 말이냐?”

    우두머리 왜구의 말이었다.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저자가 우두머리 같으니 섭혼술로 기억을 빼앗은 후 왜구로 역용해야겠다.’

    백자안이 섭혼술을 펼칠 준비를 했다.

    그가 연마한 섭혼술은 죽인 후에도 펼칠 수 있어 효과적이었다.

    “그대의 이름이 무엇이오?”

    백자안의 물음에 우두머리 왜구가 화를 냈다.

    “네놈이 나를 희롱하는 것이냐? 저놈들을 죽여라! 수상한 놈들은 모조리 죽이라는 상부의 명이다.”

    “네!”

    “네!”

    왜구들이 일제히 활시위를 당겼다.

    십장 정도 떨어진 거리라 화살 공격이 매우 유리한 상황이었다.

    왜구들이 일제히 백자안과 단목수련을 조준했다.

    단목수련이 급히 전음을 날렸다.

    「무정 사범님. 어떻게 하실 건가요? 놈들을 모조리 죽여도 될 것 같은데, 따로 생각하신 것이라도 있나요?」

    「놈들을 죽인 후 왜구로 역용하려 하오. 그래야 대장선까지 접근할 수 있지 않겠소?」

    「놈들에게 들키지 않을까요? 아무 지식도 없는 상황에서 말이에요.」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소. 섭혼술로 놈의 주요 기억을 알아낼 수 있으니······.」

    「그게 가능하다면 저도 한 사람 부탁드려요. 역용술은 자신 있으니 이름과 중요 기억 정도만 알아도 놈들을 속일 수 있을 거예요.」

    「알겠소.」

    백자안이 전음을 날린 후 우수를 뻗었다.

    그때였다.

    왜구들이 화살을 발사했다.

    휙휙휙.

    내공이 실려 있어 파공성이 컸다.

    하지만 백자안이 날린 장력에 의해 모두 되돌아가고 말았다.

    회전장력이라는 것이었다. 내공이 최상승 경지에 오르면 장력으로 상대 무기가 날아오는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푹푹푹.

    되돌아간 화살들이 왜구들의 목을 그대로 관통해버렸다.

    “으윽!”

    “크윽!”

    비명과 함께 왜구 이십 명이 일제히 쓰러져 즉사했다.

    한 명의 예외도 없었다.

    아무리 왜구들의 무공이 강해졌다고는 하나 백자안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특히 백자안의 내공은 지금 불가사의한 경지에 달해있었다.

    그것은 천마동에서 흡수한 천마진기 때문으로, 과거 천마의 공력 자체가 무한대였다.

    그러한 천마의 공력이 백자안 자신의 공력과 합쳐졌으니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천마진기와 무명진기의 결합.

    그것은 매우 순조로웠다.

    이전과 달리 무명진기의 포용성으로 인해 어떤 충돌도 없었던 것이다.

    지금 백자안은 그 천마진기를 무명진기로 변환시켜 두었다. 하지만 유사시에는 천마진기만 따로 내어 사용할 수도 있었다.

    그 외 무공 면에서도 천마진기 덕분에 큰 발전을 가져왔다.

    천마진기 자체가 깨달음이 내재한 내공이기 때문이었다.

    백자안은 기존 육합계열 무공의 이해 폭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었다.

    왜구들이 모두 사망하자, 백자안이 놈들이 타고 있던 목선을 흡입장력으로 끌어당겼다.

    목선에 올라탄 백자안이 왜구 중 우두머리에게 섭혼술을 펼쳤다.

    그 결과 놈의 이름이 카즈지로라는 사실과 해신 미야모토 휘하 십대전투부대 중 하나인 해신대(海神隊) 대원임을 알 수 있었다.

    해신대 대원의 총수는 모두 만 명으로, 미야모토 직속 경호부대였다.

    해신대의 지휘체계는 대주 휘하 백 명의 조장이 있어, 각기 백 명의 수하를 거느렸다.

    백자안에게 죽임을 당한 왜구들은 해신대 제100조 조원들이었다.

    카즈지로의 직책은 부조장으로, 조마다 다섯 명의 부조장이 있어 각기 20명의 수하를 거느리고 있었다.

    ‘해신대 제100조 다섯 부조장 중 한 명이란 말이군. 생각보다 지휘체계가 잘 갖춰져 있구나.’

    백자안은 카즈지로의 다른 기억까지 알 수 있었다. 무공 격차가 큰 덕분으로 세밀한 부분까지 모두 알 수 있었다.

    그다음은 단목수련을 위해 죽은 왜구 중 가장 뚱뚱한 놈을 골라 섭혼술을 펼쳤다.

    놈의 이름은 사사키로 해신대 제100조 일반 조원이었다.

    역시 기억을 모두 흡수한 후 전이대법을 펼쳐 단목수련에게 전달해주었다.

    무명부록에 있는 이 전이대법은 자신의 지식이나 기억을 상대방에게 전수해주는 비술이었다.

    주로 무공을 전수할 때 사용하나, 지금처럼 특정 기억을 가르쳐주는 데도 유용했다.

    단목수련은 사사키의 기억을 모두 받아들인 후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기억했어요. 신기하군요. 억지로 기억할 필요 없이 모두 흡수했어요.”

    “알겠소. 그럼 바로 역용을 합시다.”

    “네.”

    백자안과 단목수련이 각각 카즈지로와 사사키로 역용했다.

    두 사람의 역용술은 수준급이었다.  역용이 완료되자 카즈지로와 사사키 두 사람의 시신은 바다에 버려졌다.

    “적의 공격을 받아 조원들이 모두 죽고 우리 두 사람만 살아남은 것으로 하면 될 것이오. 놈들의 지휘체계와 조직, 암호 등을 모두 파악했으니 들킬 우려는 없을 것이오.”

    “네. 하지만 제가 받은 기억에 의하면 일반 조원은 말할 것도 없고 조장 신분으로도 대장선에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데, 그 부분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대주를 만나 놈을 죽이고 다시 역용할 생각이오.”

    “해신대주 말인가요?”

    “그렇소.”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신대주 정도가 되면 보고를 위해 해신 미야모토를 만날 수 있었다.

    개별 면담이 어렵다면 작전회의 참석이라도 가능한 것이다.

    백자안과 단목수련이 목선을 움직이려 할 때.

    멀리서 다시 배 다섯 척이 나타났다.

    백자안이 삼매진화를 일으켜 그와 단목수련이 타고 온 쾌속선에 불을 질렀다.

    화르르.

    쾌속선이 불에 탔다.

    얼마 후 다가온 배는 큰 배 한 척과 소형선 네 척이었다.

    소형선은 백자안과 단목수련이 타고 있는 배와 같은 종류였다. 역시 스무 명 정도의 왜구들이 타고 있었다.

    아무래도 조금 전 죽은 왜구들과 같은 조인 100조 조원들인 것 같았다.

    문제는 대형선이었다.

    갑판 위에 천여 명의 왜구들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는 것이 보통 기세가 아니었다.

    백자안은 카즈지로의 기억을 빌어 그 배가 해신대 대주가 타고 있는 지휘선임을 알았다.

    해남도에 정박해 있는 왜구들의 배는 모두 천여 척으로 주력 배가 바로 이 전투선이었다.

    천여 명의 왜구들이 타고 있는 이 전투선 한 척만으로도 마을 한 곳을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카즈지로! 어떻게 된 것이냐?”

    소형선 한 척에 탄 중년 왜구의 물음이었다.

    그는 해신대 제100조 조장으로 히데히사라 했다.

    “놈들이 저지선 안으로 들어오려 해 전투를 벌여 배를 침몰시켰습니다. 그 와중에 조원들이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살아남은 사람은 저와 사사키 두 사람입니다.”

    백자안이 배 안에 있는 왜구들의 시체를 가리켰다.

    히데히사가 안색을 굳혔다.

    “어떤 놈들이었느냐?”

    “정의련 놈들이었습니다. 단 두 명이었는데, 무공이 강해 겨우 처치할 수 있었습니다.”

    “두 명밖에 안 되었다는 말이냐?”

    “네. 무적세가에서 파견한 정탐무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수중고혼이 되었지요.”

    백자안이 불에 탄 채 침몰하고 있는 쾌속선을 가리켰다.

    “알겠다. 대주님께 보고를 드려야 하니 너희 두 사람은 나를 따라 지휘선에 오르자.”

    “네.”

    “네.”

    백자안과 단목수련이 히데히사를 따라 지휘선에 올랐다.

    지휘선에는 깃발이 하나 꽂혀 있었다. 깃발에 해신대라는 부대이름이 적혀 있었다.

    백자안이 대주가 있는 지휘실로 들어가며 눈을 빛냈다.

    ‘정규 병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인자문이 지휘부를 장악한 이후로 왜구들이 막강해진 이유가 있었군. 하지만 지금 내 임무는 최대한 빨리 미야모토를 암살하는 것이다. 그래야 시간을 벌어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울 수 있다.’

    * * *

    해신대주는 체격이 왜소한 노인이었다.

    하지만 기도가 범상치 않았다.

    내공을 갈무리해 겉으로는 평범했지만, 몸 전체가 한 자루 칼과 같았다.

    “그래, 고작 두 명에게 열여덟 명이 죽었다는 말이냐?”

    “네. 대주님. 모두 조장인 제 잘못입니다.”

    히데히사가 부복을 한 채 머리를 지휘실 바닥에 찧었다.

    뒤에 있던 백자안과 단목수련 역시 따라 했다.

    보고는 히데히사가 두 사람을 대표해서 했다.

    조장 이상만 직접 대주에게 보고를 하는 관례가 있는 것 같았다.

    지휘실 안에 무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해신대주의 이번 일에 대한 처결이 곧 있을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지휘실 안에 있는 왜구들은 모두 백여 명.

    해신대 지휘부 고수들이었다.

    만 명이나 되는 해신대 대원들을 백 명의 조장만으로 다스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주 휘하 백여 명의 고수들이 지휘선에 상주하고 있었다.

    이들의 지위는 부대주급으로 조장들 역시 그들의 명에 따라야 했다.

    호칭은 해신사자(海神使者)라 불리며 최근 대부분 대인자문 출신 고수들로 물갈이된 바 있었다.

    백자안은 그들의 기도에 솔직히 매우 놀라고 있었다.

    다들 절정고수급이기 때문이었다.

    ‘왜구들의 수는 모두 십만으로, 해신대 같은 전투부대가 아홉 개가 더 있다. 각 부대에 이런 절정고수들이 백여 명씩 있다고 볼 때, 무려 천 명의 절정고수가 있는 셈이구나. 관군과 무림인들이 대패한 이유가 있었구나.’

    백자안이 머리를 계속 바닥에 찧으며 궁리를 했다.

    일단은 지금 상황을 모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질책을 받고 무사히 넘어가리라 생각했는데, 분위기가 매우 안 좋게 흘러가고 있었다.

    ‘설마 죽이기야 하겠나?’

    백자안이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여기서 전면전을 벌이게 되면 이번 암살 계획은 큰 차질을 빚게 될 것이었다.

    무엇보다 해신사자들 때문에 자신이 이긴다는 확신도 없었다.

    ‘어떻게든 해신대주 저자를 죽이고 역용을 다시 해야 하는데 큰일이군.’

    백자안이 불안해할 때.

    해신대주가 손을 들었다.

    머리를 찍는 것을 그만하라는 표시였다.

    히데히사에 이어 백자안과 단목수련도 동작을 그만했다.

    해신대주가 말했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패한 싸움이다. 특히 전후 사정으로 보아 저 두 놈은 싸움에 적극 가담하지 않아 비겁하게 살아남은 것으로 판단된다. 형제들의 원혼을 다스리기 위해 할복을 명한다. 칼 두 자루를 가져와라. 바로 시행할 것이다.”

    “존명!”

    “존명!”

    왜구 두 명이 대도 두 자루를 가져와 백자안과 단목수련 앞에 놓았다.

    히데히사가 옆으로 물러난 후 말했다.

    “카즈지로! 사사키! 대주님의 명이시다. 어서 할복하라! 그것만이 명예를 지키는 길이다.”

    “억울합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백자안이 일단 읍소를 했다.

    싸우는 것은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할 생각이었다.

    “이놈들! 어서 빨리 할복하지 못하겠느냐?”

    히데히사가 노성을 터뜨렸다.

    할복은 참형보다 명예로운 처형 방법이었다.

    “죽기 싫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백자안이 거듭 말했으나, 해신대주는 이맛살만 찌푸릴 뿐이었다.

    “할복하지 않으면 바로 목을 베어주어라. 못난 놈들! 죽음을 두려워하다니, 내 수하라는 게 부끄럽다.”

    “존명!”

    히데히사가 직접 검을 뽑았다.

    자신이 직접 목을 벨 생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해신대주가 마음을 바꿔 자신까지 처형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잠자코 있던 단목수련이 말했다.

    “놈들에게 중요한 정보를 들었습니다. 해신께 직접 보고를 드려야 합니다. 저희를 이렇게 죽이면 나중에 해신께서 진노하실 겁니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해신대주가 관례를 깨고 직접 단목수련에게 물었다.

    미야모토와 관련한 일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보고해야 했다.

    미야모토의 성격은 매우 괴팍해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면 대주라 해도 용서치 않았다.

    “직접 말씀드려야 합니다. 특급 보안 사항입니다. 할복은 해신님을 만나 뵙고 하겠습니다. 물론 해신께서 용서해주시리라 믿습니다만.”

    “아무나 해신님을 뵐 수 없다. 어서 말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해신님의 암살 계획과 관련된 겁니다. 더는 말씀을 못 드리니 저희를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 [제22장] 해남도 1 >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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