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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61화 (61/250)
  • < [제20장] 천마석실 2 >

    천마석실.

    특수 철문을 열고 들어간 그곳은 생각보다 단출했다.

    석실도 그렇게 크지 않았다.

    평평한 바위 위에 검 한 자루가 꽂혀 있고 그 옆에 비급 한 권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귀면탈 소녀가 비급을 먼저 집었다.

    백자안은 그녀 뒤에서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는 애당초 천마의 유물에 대해 욕심이 없었다.

    팔대무공도 제대로 연마하지 못한 터라 다른 무공을 배울 엄두를 못 내었다.

    게다가 천마의 무공은 마교의 것이 아닌가.

    잘못 익히다가 주화입마라도 되면 큰일이었다.

    백자안이 담담히 귀면탈 소녀가 들고 있는 비급을 보았다.

    <천마대장경(天魔大藏經)>

    비급의 제목이었다.

    ‘천마가 말년에 남긴 무공이 수록되어 있다는 천마대장경이구나.’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귀면탈 소녀가 비급의 내용을 잠시 살피더니 품속에 넣었다.

    이제 남은 것은 바위에 꽂힌 검이었다.

    검은 검집 채 꽂혀 있었다. 바위 역시 보통 바위가 아니었다.

    백자안은 직감적으로 자신이 도와줄 일이 검과 관련된 것임을 알았다.

    귀면탈 소녀가 말했다.

    “천마검(天魔劍)이야. 네가 나 대신 뽑아줘야 해.”

    “그냥 뽑으면 되는 것이오?”

    “아니. 그냥 뽑으면 바로 즉사야. 흡수대법을 연마한 사람만이 뽑을 수 있게 안배가 되어 있지.”

    “그럼 소저가 뽑으면 되지 않겠소? 흡수대법을 연마했으니까.”

    “여자는 뽑을 수 없어. 천마 할아버지가 남자만 뽑을 수 있게 만들어 놨어. 물론 일단 뽑히면 그런 제한이 없어지지.”

    “하지만 나는 흡수대법을 모르오.”

    “익혀. 지금 바로. 흡수대법을 연마하면 공력을 단숨에 회복할 수 있을 거야. 무형지독에 대한 영구면역도 생기게 되고.”

    귀면탈 소녀가 품속에서 얇은 양피지 한 장을 꺼냈다.

    “받아. 흡수대법 구결이야. 기억한 후 바로 돌려줘.”

    “정말 지금 바로 익히라는 것이오? 그게 가능하겠소?”

    백자안이 얼떨결에 받았다.

    공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말에 관심이 갔다.

    “구결을 암기해. 그대로 진기를 운행하면 내가 뒤에서 도와줄 테니까 바로 배울 수 있을 거야. 혼자서는 몇 십 년이 걸려도 연마하기 힘들지만, 옆에서 먼저 배운 자가 도와주면 금방 배우는 것이 흡수대법이지. 나도 그렇게 배웠어.”

    귀면탈 소녀가 제법 긴 말을 또박또박했다.

    그녀 역시 신중히 처리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백자안은 아직 승낙하지 않았다.

    다만 호기심에 양피지에 적힌 흡수대법 구결을 보았다.

    그리고 곧바로 암기했다.

    무명심법을 연마한 이후로 암기력은 가히 불가사의할 정도로 높아져 있었다.

    흡수대법 구결은 의외로 간단했고, 금방 외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원리는 매우 복잡한 것이었다.

    무명심법을 오래도록 연마하면서 깨우친 구결 이해력이 아니었다면 절대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었다.

    “모두 외웠소.”

    “이해는?”

    “이해도 했소.”

    “역시 내가 사람을 잘 봤군. 이해를 못 한다고 했으면 바로 죽였을 것이다. 그리고 천마광장에 있는 만박서생을 데리고 왔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두렵구려. 솔직해서 마음에 드오.”

    백자안이 미소를 지었다.

    왠지 귀면탈 소녀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그였다.

    따지고 보면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줬을 뿐만 아니라 가족의 목숨도 구해준 은인이었다.

    그녀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이미 자신이 흡수대법 구결을 이해할 것으로 믿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흡수대법을 운공해라. 기해혈에서 첫 진기만 만들어내면 내가 진기 인도를 통해 일주천을 시켜줄 것이다. 너는 그 흐름을 기억하고 네 자신의 힘으로 다시 일주천하면 흡수대법을 완전히 익힐 수 있을 것이다.”

    “무슨 뜻인지 알겠소.”

    백자안이 가부좌를 하고 귀면탈 소녀의 말대로 흡수대법을 운기했다.

    첫 진기가 만들어진 순간, 귀면탈 소녀의 손이 백자안의 등 뒤 명문혈에 닿았다.

    순간, 괴이한 진기가 그의 몸속으로 들어와 진기를 이동시켰다.

    그리고 일주천이 시작되었다.

    백자안은 진기의 흐름이 매우 독특한 것을 깨닫고 그 경로를 기억했다.

    사실 원래는 흡수대법의 구결을 하나하나 오래도록 연구해야 깨달을 수 있는 경로였다.

    하지만 귀면탈 소녀 덕분에 핵심을 바로 깨우칠 수 있었다.

    마치 진법 속에서 생로를 따라가는 기분이었다.

    생로를 기억해두면 다음에는 혼자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백자안은 흡수대법의 묘리에 감탄하며 한편으로 안심했다.

    우려와 달리 흡수대법 역시 무명심법의 통제 안에 둘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중해. 천마석실의 문이 열리면 얼마 후 천마동 전체가 진짜 무너지게 되어 있어. 망부석 삼만 개를 구하려면 최대한 시간을 단축하는 게 좋을 거야.”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귀면탈 소녀의 말대로 집중을 했다.

    그렇게 일주천이 끝나고 귀면탈 소녀가 손을 뗐다.

    잠시 비틀거리는 것이 생각보다 엄청난 내공을 사용한 것 같았다.

    하기야 특별한 방법이긴 하지만 지금의 경우 무공 전수와 다름없었다.

    백자안이 몇 십 년을 걸려야 깨달을 수 있는 비결을 대신 깨우쳐준 것이라 그만큼 내공 소모가 컸다.

    백자안이 그 점을 깨닫고 스스로 일주천을 했다.

    그 결과 흡수대법을 완전히 연마했음을 깨달았다.

    또 한 가지 기쁜 일이 있었다.

    귀면탈 소녀의 말대로 내공을 모두 회복한 것이었다.

    알고 보니 흡수대법은 매우 뛰어난 치료 약이었다.

    특히 내공과 관련한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었다.

    백자안이 속으로 탄성을 내었다.

    흡수대법을 미리 알았다면 이전에 자신이 겪었던 내공 충돌 현상도 해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도의 무공이라고 우습게 봐서는 안 되겠다. 흡수대법은 굳이 살상용으로 사용하지 않아도 무궁무진한 효능이 있는 뛰어난 무공이다. 흡수대법 역시 천마가 젊었을 때 창안한 무공이라고 하던데, 그럼 말년에 창안한 무공의 위력은 더욱 뛰어나겠군.’

    백자안이 귀면탈 소녀가 품속에 갈무리한 천마대장경을 떠올렸다.

    그녀가 천마대장경의 무공까지 연마한다면 그 무공을 당할 자가 얼마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없어. 이제 천마검을 뽑아서 내게 줘. 그러면 모든 게 끝나.”

    귀면탈 소녀가 재촉했다.

    백자안이 말했다.

    “그전에 한 가지 부탁이 있소.”

    “뭐야? 조건을 거는 거야?”

    귀면탈 소녀가 살기를 드러냈다.

    “한 가지 물건을 원하오.”

    “무슨 물건? 천마대장경을 줄 수는 없다. 본교의 보물이니까.”

    “천마대장경을 원하는 것이 아니오. 다른 게 아니라 화산옥녀에게서 빼앗아갔던 옥비녀를 주시오. 그 옥비녀가 있어야 그녀를 살릴 수 있소.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오.”

    “너······ 혹시 백자안이냐?”

    “그렇소. 어떻게 알았소?”

    백자안이 순순히 시인했다.

    귀면탈 소녀가 말했다.

    “아까부터 조금 이상했었다. 이전에 너와 겨룰 때 그 기운을 기억하고 있었거든. 진기 인도를 할 때 너의 기운이 백자안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었지. 화산옥녀와 혼인할 생각이냐?”

    “그건 아니오. 단지 그녀에게 약속했을 뿐이오. 옥비녀를 되찾아 주겠다고. 아마 내 추측이 맞는다면 그 옥비녀는 소저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돌려주시오.”

    “흥! 싫다면? 나는 일단 내 물건이 된 것을 돌려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너의 가족을 구해줬다. 이야기는 들었겠지? 내 부탁을 한 가지 들어줘야 한다고.”

    “물론이오. 사실 한 가지가 아니라 세 가지를 들어주려고 했었소. 천마검을 뽑는 것이 그 한 가지였소?”

    “그렇다. 너만이 무리 없이 흡수대법을 배우고 천마검을 뽑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 좋다. 네가 나를 위해 두 가지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니, 그 말을 믿고 옥비녀를 돌려주겠다.”

    귀면탈 소녀가 귀면탈 뒤쪽에 손을 넣어 옥비녀를 빼서 주었다.

    백자안이 옥비녀를 받고 품속에 넣었다.

    “이제 천마검을 뽑아라.”

    귀면탈 소녀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백자안이 그 점을 깨닫고 의아해했다.

    “왜 그러는 것이오? 무슨 문제가 있소?”

    “으음, 아니다. 어서 뽑아라. 시간이 없다. 약속을 지켜라.”

    “알겠소.”

    백자안이 천마검을 집으려다가 질문을 다시 던졌다.

    “혹시 소저의 아버님이 마교주 불패마왕이시오?”

    “그렇다. 눈치가 빠르군. 내 아버지께서 불패마왕이시지.”

    “부친이 천마시를 주고 천마대장경과 천마검을 가져오라고 하신 모양이구려.”

    “그렇다. 천마시는 원래 내가 가지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천마검이지.”

    “천마검이 필요한 이유를 물어도 되겠소? 혹시 불패마왕께서 곤란에 처하신 것이오?”

    “어떻게 알았느냐?”

    “직감이오. 천마검이 있어야 불패마왕을 구할 수 있는 것이오?”

    “그렇다. 그만 묻고 어서 천마검을 뽑아라.”

    “알겠소.”

    백자안이 대답 후 바로 천마검을 뽑았다.

    흡수대법을 따로 펼치지 않고 그저 내공을 사용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흡수대법의 기운이 작용했는지 우웅! 하는 검명과 함께 천마검이 뽑혔다.

    그때였다.

    천마검을 통해 엄청난 기운이 백자안의 몸속으로 들어왔다.

    천마검에 내재해 있던 천마진기(天魔眞氣)였다.

    천마가 천마검을 남길 때 자신의 모든 공력을 천마검에 넣어두었고, 누구든 천마석(天魔石)에 꽂힌 천마검을 뽑게 되면 그 천마진기를 흡수하도록 안배를 해둔 것이었다.

    하지만 워낙 강력한 진기라 일각 정도는 무방비 상태에 빠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으으······.”

    백자안이 그 자리에 주저앉자 고통을 참았다.

    하지만 온몸이 마혈에 찍힌 것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

    급기야 손에 힘이 떨어져 천마검을 놓치고 말았다.

    귀면탈 소녀가 다가와 천마검을 집어 든 것은 그 직후였다.

    그녀는 말없이 천마검을 검집에서 빼서 높이 들었다.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어. 흡수대법을 외부인이 연마해서는 안 되거든. 무조건 죽여야 해.”

    “으으······ 애초에 나를 죽일 생각이었소?”

    “그래. 백자안 네가 흡수대법에 당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때 이용하려고 마음먹었지. 흡수대법이 통하지 않는 신체야말로 가장 빨리 흡수대법을 배울 수 있거든. 그리고 사실 나 네가 백자안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너의 체취를 기억하고 있었거든. 하지만 어차피 넌 무형지독 때문에 죽을 운명이었잖아. 날 원망하지 않았으면 해.”

    “으으······ 삼만 군웅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오?”

    “그들은 내가 책임지고 구해줄게. 이미 내가 들어온 출구가 뚫려 있으니 천마마비류만 해소해주면 알아서 탈출할 거야. 물론 나는 그전에 사라지겠지. 다시 말하지만 정말 미안해. 사실 난 너를······.”

    귀면탈 소녀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천마검을 내리쳤다.

    백자안은 피할 수가 없었다.

    그저 담담히 귀면탈 소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쐐애액.

    천마검이 백자안의 목을 치기 직전.

    천마검이 멈췄다.

    귀면탈 소녀가 말했다.

    “내 허락 없이는 흡수대법을 평생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겠어?”

    “물론이오. 어차피 사용할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소.”

    “좋아. 그 말을 믿고 살려주겠다. 흡수대법은 많은 효용이 있으니까 공격할 때만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거야. 망부석은 내가 알아서 해. 난 갈 테니까.”

    귀면탈 소녀가 말을 한 후 귀면탈을 벗었다.

    예상과 달리 경국지색의 미녀였다.

    무림삼미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어쩌면 더 뛰어난 미색이었다.

    “가족 말고 내 얼굴을 처음 보여주는 거야. 사실 처음부터 매우 망설였어. 네가 두 가지 부탁을 더 들어준다고 하기에 그냥 살려주려다가 아버지 말씀을 거역하기 힘들어 죽이려고 했었지. 하지만 결국 살려줬네. 운이 좋은 줄 알아.”

    “내 부탁이 필요한 일이 또 있었소?”

    백자안이 통증이 거의 가신 것을 느끼고 물었다.

    이제는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래. 중원삼성이라고 아버지를 공격한 놈들을 찾아가 죽여야 해. 물론 그 전에 천마검으로 아버지를 묶은 천룡삭(天龍索)을 끊어야 하겠지.”

    “불패마왕이 잡혀 있다는 것이오?”

    “그래. 아버지를 구출하기 위해 천마검이 필요했던 거야. 하지만 이건 내 일이야. 너의 도움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아.”

    “불패마왕을 붙잡았을 정도라면 그 중원삼성이란 사람들의 무공은 매우 높을 것이오. 상대가 되겠소?”

    “안되면 죽는 거지. 뭐. 그래도 내겐 이제 천마대장경이 있잖아. 잘 있어. 아무래도 이게 마지막인 것 같네.”

    소녀가 귀면탈을 다시 쓴 후 천마동을 벗어나 사라졌다.

    백자안이 한숨을 내쉰 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언제 붕괴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천마광장으로 가서 군웅들을 구해야 했다.

    ‘서두르자.’

    < [제20장] 천마석실 2 >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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